中 상무위원 리창춘은 왜 고개를 숙였을까? | |
파룬궁 탄압 주도, 방문국마다 항의 인파에 곤욕 | |
등록일: 2009년 04월 05일 17시 18분 54초 | |
1965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한 뒤 83년 선양시 당 위원회 서기가 됐고 랴오닝과 허난성 부성장을 거쳐 허난성과 광둥성 당위서기를 지냈다. 1997년 중앙 정치국 위원, 2002년에 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현재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중 서열 5위로 중앙정신문명건설위원회 주임을 맡고 있으며 선전, 언론, 이데올로기, 민족문제, 통일전선을 담당하고 있다. 오랜 준비 끝에 1999년 7월 20일, 파룬궁 탄압을 공개적으로 지시한 장쩌민은 이후 파룬궁 탄압에 소극적인 지방을 직접 시찰하기에 이른다. 200년 2월, 광둥성 당위서기였던 리창춘은 파룬궁 탄압 상황을 점검하러 광둥성에 내려간 장쩌민으로부터 “노력이 부족하다”, “힘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그는 장쩌민이 직접 주재한 성 정치국 회의에서 ‘반성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장쩌민의 친척으로 알려진 그는 2002년 10월, 당 기관지인 ‘광둥지부생활’에 장쩌민의 출생과 성장 배경을 조작하고 미화한 글을 썼고 무려 2백만부를 발행해 각급 단위에 배포했다. 한 달 뒤인 2002년 11월, 중공 16기 대표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당선되었고, 이후 출세가도를 달렸다. 장쩌민, 뤄간(羅干), 류징(劉京), 저우융캉(周永康), 보시라이(薄熙來) 등과 함께 파룬궁 탄압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대기원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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