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만고연(萬古缘)
[명혜망 2008년 5월 26일] 사부님께서는 《시드니법회 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부 사람은 수련함에 있어서 그는 난이 너무나 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리 큰 것이 아니다. 당신이 그것을 크다고 느낄수록 그것은 더욱 높고 크게 변하며 당신이 더욱 작게 된다. 만일 당신이 개의치 않고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청산을 남겨 두었거니, 땔나무 없을까 봐 걱정이랴는 격으로, 사부가 있고 법이 있는 한 무엇이 두려운가? 그것을 상관하지 말라! 내려놓았을 때 당신은 난(難)이 작게 변해졌고 당신이 크게 변해졌으며, 당신은 한 걸음에 넘길 수 있어 그 난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보증하고 이러하다. 넘기지 못함은 실질적으로 그가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하거나 혹은 법에 대하여 믿지 않기 때문이다. 대다수는 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지 않으면 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며 모두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원인이 조성하여 그가 넘기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사람의 그 한 발자국에서 물러서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넘기지 못한다.” (《시드니법회 설법》)
동수들이여, 우리는 9년 동안 사악의 박해를 받았다. 고난의 검은 천막은 마귀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고, 처량한 시기의 비애를 만들고, 억눌린 마음속에는 검은 구름이 가득하고, 냉혹함은 성도(聖徒)의 영광(英光)을 가리고, 명을 재촉하는 유령은 먼지투성이이고, 그들은 마음대로 인류의 조금 남은 문명과 선량을 먹어버리고, 무량한 중생은 의연히 속세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마비되어 홍색 마귀에게 통제당하고 우롱당하고,……우리가 겪는 고난은 왜 끝이 없고 끝이 보이지 않는가?
우리의 어떤 동수들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 걸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진상을 말하지 않고 법을 실증하지 않고 세인을 구도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곧 이렇게 집에 앉아 있는가? 평시에도 책을 보고 연공하고 사부님께 향불을 피우고 절을 하면서 대법을 포기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한손으로는 사람의 것을 놓지 않고 다른 손은 부처님을 붙들고 있으면서 두발은 두개의 배를 디디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자비하시어 또 당신을 버리지 못하고 당신을 끌고 가자니 당신은 힘껏 뒤로 물러서고 사부님께서 어떻게 점화하여도 모두 깨닫지 못하고 있다. 동수여! 당신이 말해보라, 사부님께서는 당신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가?
우리의 어떤 수련생은 시끄러움과 모순을 만나면 안으로 찾지 않고 안으로 수련하지 않고 자신을 찾지 않고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하늘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면서 불만만 속에 가득하다.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의 잘못이고 곧 자신의 도리만 맞다고 한다. 어떤 이는 말이 많고 이것은 길고 저것은 짧다고 평론하면서 서쪽에서 말하고 동쪽에서 말하면서 시비를 일으킨다. 어떤 이는 작은 이익을 따진다. 다른 사람이 몇 마디 하면 크게 화를 낸다. 집에서는 땅이 반 자나 몇 치가 작아도, 심지어 몇 삽의 흙 때문에도 속인과 길고 짦음을 논하고 손해를 좀 보아도 싸우려고 든다. 당신이 생각해보라, 당신을 연공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심성이 속인보다도 못하니 당신은 어떻게 수련하여 올라갈 수 있겠는가? 법도 배우고 책도 보지만 일에 부딪치면 사부님의 말씀을 곧 잊어버린다. 자신이 수련인이란 것을 잊어버리고 마음대로 하면서 사부님께서 당신에게 수련하여 제고할 기회를 주어도 당신은 곧 제고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의 어떤 수련생은 수련을 이렇게 오래 했는데 색욕지심의 완고한 것이 산과 같아 집착을 고집하고 항상 방종하고 추구한다. 장시간 색마에 통제당하고 심지어 사람으로서도 하지 못할 일까지 한다. 동수들이 대법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지적할때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자그마한 문제이길래 크게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때는 “세 가지 일”을 노력하는 식으로 하면서 자기의 강대한 집착을 은폐하고 있다. 아직도 당신은 떨어졌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당신은 대법을 파괴하고 더럽히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곧 이 일로 인하여 사악이 감옥에 가두어 놓고 마난에 깊숙히 빠져 들어가게 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구세력과 공산사당에 의해 생명까지 빼았겼다. 이러한 일이 당신의 신변에 있는데 당신은 아직도 청성하지 못한가? 그 한때의 감각과 환각을 위하여 사악의 마귀에게 통제 당하여 정신을 혼돈하게 하고 자기의 앞길을 훼멸하고 자기의 수련을 훼멸시킨 것이다. 자기의 일생과 자기 세계의 무량한 중생을 훼멸시킨 것이다. 이렇게 전 시기 동안 노력한 것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 당신은 생각해보라,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곧 당신의 이런 상태를 알면서도 법을 범한 것인데, 그러고도 뼈저리게 뉘우치지 않고 당신은 이렇게도 무기력한가? 그래도 사부님께서 관용해주고 자비하게 당신을 구도해달라고? 그러나 당신은 생각해보았는가? 사부님께서 이런 당신을 보고 어떤 감수이실지? 당신이 말해보라, 사부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어떤 수련생은 아이가 공부를 잘 못하면 조급해 하고 열이 오르며, 학교에 합격하지 못해도 조급해하고 일자리를 찾지 못해도, 배우자가 없어도,…… 당신은 모두 조급해하고 열이 오른다. 당신은 왜 사부님께서《전법륜》에 말한 “당신은 다른 사람의 생활을 간섭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지할 수 없다.”는 이 말을 잊었는가? 집사람에게 병이 있을때 당신은 조급해하고 당신은 발정념으로 그들을 도와 신체를 “청리”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공능으로 그들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구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의 친인에 대한 강렬한 집착이 아닌가? 마지막에는 자신이 크게 병에 걸린 다음 사부님께서 관계하지 않는다고 원망한다. 당신이 사부님의 요구대로 하지 않는데 사부님께서 어떻게 당신을 관계하겠는가? 이러한 정을 제거하지 않으면 당신은 자비한 마음을 수련해낼 수 없는 것이다. 법을 얻는 것은 얼마나 힘든것인가? 당신은 어찌하여 법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가?
우리의 어떤 수련생은 신체 어디가 조금 편안하지 않으면 온종일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아! 나의 난이 너무 크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또 소업을 시켜주십시오! 내가 당신에게 절을 하겠습니다!” 당신은 사부님이 자비하므로 당신의 업을 없애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사부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감당하기를 바란다. 심지어 관을 넘기지 못할때는 또 사부님에게 말하기를, “사부님, 나는 정말로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약을 조금 먹고 견디겠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당신이 누구를 대할 면목이 있는가? 당신의 이것은 수련인가? 곧 당신처럼 이렇게 사부님과 따지는 사람이 수련인인가? 당신이 대법제자라고 할 수 있는가? 모두 당신과 같으면 우리의 수련은 언제 가야 결속할 수 있는가? 우리의 마난은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나는가? 동수여! 당신은 왜 이렇게 쓸모가 없는가? 당신의 그 인내는 어디로 갔는가? 당신의 정념은 어디로 같는가? 당신은 왜 깨닫지 못하는가?
“우리에게 누락이 있어도 사악은 와서 박해하지 못한다!” 당신이 말한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곧 전반적으로 구세력의 일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수련중에서 왜 그렇게 큰 누락이 생기고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줄 수 있는가? 왜 그 집착을 틀어잡고 놓지 않는가? 왜 어떤 착오는 알면서 고의적으로 범하는가? 동수여! 사악의 박해가 결속될 수 없는 것은 모두 우리 자신이 조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만약 우리가 진상을 말하는 중에서 매개 대법제자들이 열 명만 구해도 곧 십억이 아닌가? 그럼 이 박해는 벌써 결속되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수련중에서 용맹정진하고 어떠한 집착도 없다면 우리의 수련은 벌써 결속되었을 것이 아닌가? 우리의 일사일념이 모두 법에 있고 진정으로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할 수 있음이 수련이노라”(《實修》) 를 할 수 있다면 그럼 우리의 마난은 벌써 없어졌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사부님을 믿고 법을 존경하고 반석같이 견고하면 우리의 고난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경문중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이여! 사부의 마음이 조급해도 소용이 없다! 당신들은 왜 속인의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가? 한 걸음 앞으로 더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가?” (《집착을 더 없애자(再去執著)》)
동수들이여, 정신을 바짝 차립시다! 사악의 박해는 하루라도 더 지탱되면 안 됩니다. 오직 진정한 수련과 진수(眞修), 실속있게 대법을 수련해야만 우리는 고난중에서 초탈될 수 있는 것이다! 동수들이여 걸어나오라! 오직 우리가 마땅히 구도해야할 한 사람이라도 구하기 위하여 걸어나오라!!
문장완성 : 2008년 5월 25일
문장발표 : 2008년 5월 26일
문장수정 : 2008년 5월 29일 13:3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