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묘우(妙宇)
[명혜망] 저는 84세 할머니이며 대법을 수련한 지 30년이 됐습니다. 저와 남편이 법을 얻고 사람을 구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1. 기적을 목격하고 대법을 굳게 믿다
저는 평생 의료계에 종사하며 수많은 환자를 보았고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 주었지만, 정작 은퇴한 후에는 온몸에 병을 얻었습니다.
제 남편은 평생 교직에 몸담았기에 저는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모든 에너지를 교육에 쏟아 부어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배출했는데, 그중에는 시장이나 대학 학장이 된 사람도 있으며 국내외 제자들 모두 그를 매우 존경합니다.
사람들은 교사를 자신을 태워 남을 비추는 촛불에 비유합니다. 은퇴 후 그는 저보다 더 비참하게도 암에 걸렸습니다. 저와 수간호사인 며느리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치료해 보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종양 병원에서는 그에게 수술을 권했지만,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 남편에게 책을 한 권 선물하며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책입니다. 읽어본 후 좋은 반응이든 나쁜 반응이든 나타나면 계속 읽으시고, 아무 반응이 없으면 책을 돌려주세요. 구하기 힘든 책입니다.”
남편은 아침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20여 분 뒤 화장실에 갔습니다. 그는 제게 “변에 온통 고름과 피가 섞여 나왔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책을 읽었고, 화장실도 계속 들락거렸습니다. 그러고는 제게 “책에서 말하기를, 이건 신체를 정화하는 거래. 내가 대법과 인연이 있나 봐”라고 말했습니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자, 더 이상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고생하지 않게 됐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식사 때 그는 우리와 함께 밥을 먹겠다고 했고 무엇이든 다 먹을 수 있게 돼, 우유와 빵으로만 연명하던 생활과 작별했습니다. 며칠 뒤 그는 산책하고 자전거를 타며 거리에 나가 장을 볼 수 있었고 약도 끊었습니다. 그가 읽은 책이 바로 파룬궁 책이었습니다.
저는 의사라서 본래 기공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앞에서 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다른 기공도 믿지 않았으며, 오직 대법을 배웠습니다. 저와 남편은 파룬궁수련생들이 여는 9일 학습반에 참가해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밤에 돌아와서 저 역시 끊임없이 화장실에 갔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연공을 하자 제 온몸의 병도 사라졌습니다. 법공부와 연공을 통해 대법이 헤아릴 수 없이 깊고 오묘하며, 천 년 만 년에 만나기 힘든 것임을 체득했고, 저 자신의 인생관이 바뀌었으며, 어떻게 좋은 사람이 돼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법을 널리 알려 더 많은 사람이 법을 얻게 했습니다.
그러나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의 박해가 시작됐습니다. 대법제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법을 실증하고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습니다.
2000년 10월 1일, 우리는 베이징에 갔는데 천안문 광장에는 관광객이 많았습니다. 8시가 넘자 갑자기 가지런히 서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 겉옷을 벗었는데, 노란색 옷을 입고 있었고 사람 수는 계속 늘어났습니다. 그들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 ‘사부님은 결백하시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외침은 하늘 끝까지 닿을 듯했습니다. 중공 악당 인원들은 속수무책이었고, 대형 버스가 끊임없이 무장경찰을 실어 나르며 경찰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이때 무리 안에 있던 수련생들이 “진정하게 수련하는 제자들은 앞으로 나서라!”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밖에 있던 수련생들이 끊임없이 무리 안으로 들어가며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때 우리 연공장의 수련생들이 현수막을 들고 들어가는 것을 본 저는 주저 없이 남편을 끌고 무리 안으로 들어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와 수련생들은 버스로 끌려갔지만, 버스 안팎에서 구호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대법제자들이 법을 실증하며 대법의 위엄을 보여주자 사악은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이후, 우리는 2년형의 불법적인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습니다. 몇 달 후, 노동수용소에 새로 들어온 한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꽃이 피었어요.” 무슨 꽃이 피었느냐고 묻자, 그녀는 “‘전법륜(轉法輪)’ 뒤표지의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 큰 꽃이 됐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와서 보니, ‘전법륜’ 뒤표지의 꽃봉오리가 과연 큰 꽃으로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과학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일이었으며, 제가 대법을 굳게 믿도록 더욱 확고히 해주었습니다.
2. 고향에 돌아가 사람을 구하다가 세 번의 위험을 무사히 넘기다
저와 남편의 친척, 옛 동창, 오랜 친구들 그리고 남편이 가르쳤던 옛 제자들 대부분이 고향에 있었기에, 이 사람들은 반드시 구해야 했습니다. 고향은 1백여 리 떨어져 있었는데, 차가 없으면 이 사명을 완수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때, 전기차가 출시되자 남편은 한 대 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매장에 가서 정말로 전기차 한 대를 몰고 왔습니다. 남편은 은퇴 후 운전을 할 줄 아는 제자에게 운전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고 반나절을 배우더니 운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는 또 마치 미리 안배된 듯한 운전 연습장을 찾아내 7일 동안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맹연습을 한 끝에 능숙하게 도로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매번 고향에 돌아갈 때마다, 우리 두 사람은 먼저 혼례 용품점에 가서 어느 집에 경사가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아는 집이면 가서 축의금을 냈습니다. 먼저 그 가족에게 진상을 알린 후 하객들에게 알렸습니다. 제가 한 테이블 사람들에게 왜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탈퇴하는지 설명했습니다. 설명이 끝나면, 남편이 각자에게 탈퇴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남편은 준비해 온 명단 수첩을 꺼내어 동의하는 사람에게 미리 지어둔 새 이름이 적힌 쪽지를 주고 어느 급의 중공 악당 조직인지 명시했습니다. 7~8분이면 한 테이블에 진상을 다 알렸습니다. 결혼식이 시작될 때쯤 우리는 우리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연회가 끝난 후 묻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50~60명이 구원받았습니다. 만약 경사가 없으면 집집마다 찾아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점심에 식당에서 식사한 후에도 계속 알렸습니다. 오후 4시에 돌아오면서도 50~60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둘은 매주 한 번씩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우리의 이 전기차는 세 번의 아찔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한번은 한 옛 제자의 집에 가던 중 샹수이셴(上水線) 다리 위를 지날 때 차체 하부와 뒷바퀴가 끼어 앞바퀴가 공중에 뜨는 바람에 우리가 밀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오던 한 사람이 이 상황을 보고 아주 놀라며 “저 혼자서는 못 도와드리겠네요. 여러 사람이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고속도로 다리 아래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는 “제가 가서 부탁해 볼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담배라도 한 보루 사다 주세요”라며 그에게 100위안을 쥐여주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담배를 들고 사람들을 데려왔는데 모두 10명이었습니다. 양쪽에 5명씩 서서 가볍게 차를 옮겼고, 마침 한 사람당 담배 한 갑씩 돌아갔습니다. 그들이 담배를 피우며 쉬는 동안,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에 대해 말했으며, 남편은 그들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당원도 한 명 있었는데 모두 탈퇴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제자의 집에 도착해 진상을 알렸습니다. 문밖에서 몇몇 사람들이 우리 차를 구경하고 있길래, 저는 또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10여 명이 ‘삼퇴’를 했습니다.
또 한번은 우리가 전기차를 몰고 좁은 길에서 작은 다리를 지나 큰길로 진입할 때였습니다. 남편이 급커브를 돌며 작은 다리에 올랐는데 앞바퀴 하나가 다리 상판 아래로 빠지면서 차가 약간 기울어 쉽게 뒤집힐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우리는 조심조심 차에서 내렸습니다. 큰길에는 행인들이 오가고 있었는데, 모두 이 위험천만한 광경을 구경하러 다가왔습니다. 남편은 시내로 가서 우리 차를 끌어올려 줄 차를 찾으러 갔습니다. 저는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16명이 ‘삼퇴’를 했습니다. 이것은 사부님의 보호로 우리가 위험 속에서도 사람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도 역시 고향에 갈 때였습니다. 큰 다리와 부교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큰 다리는 10km를 더 돌아가야 해서 우리는 자연스레 부교 쪽으로 향했습니다. 부교 앞에 도착하자 ‘부교 보수 중, 우회하시오’라고 적힌 팻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둑을 타고 큰 다리 쪽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막 큰길로 올라서려 할 때 둑 위가 아주 진흙탕이어서 왼쪽 바퀴가 둑 가장자리로 미끄러졌고 차가 기울었으나 다행히 둑 밑으로 굴러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남편은 우리 차를 끌어올리기 위해 다른 차를 찾으러 갔습니다. 이때 큰길에 농업용 삼륜차가 있었는데, 부부가 차를 세우고 구경하러 왔습니다. 남자가 말했습니다. “이거 너무 위험하네요. 제 차에 밧줄이 있으니, 저기 맞은편 나무에 전기차를 묶어두면 안전할 겁니다.” 저는 이 두 분의 친절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이때 남편이 차를 찾아왔고 금세 우리 차를 큰길로 끌어올렸습니다. 저는 그 차에 타고 있던 두 사람에게도 진상을 알리고 그들에게 50위안을 주었으며, 그들은 기뻐하며 돌아갔습니다. 이번의 아찔한 상황을 통해 저는 네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켜주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하에, 저와 남편은 아찔한 상황 속에서도 무사히 많은 사람을 구했습니다. 대역병이 창궐해 도시가 봉쇄될 때까지 우리의 전기차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5년 동안 1만 km를 주행하며 거의 1만 명을 구했습니다. 남편은 “이 전기차는 대법의 법기이니 충분한 가치가 있어요. 잘 보호해서 기념으로 남겨둡시다”라고 말했습니다.
3. 두려운 마음을 닦아 없애고 선연을 맺다
우리 노부부가 예전에 불법적인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이유로 사회보장국은 연금 지급을 중단했습니다. 우리는 성정부 정보공개실에 성에서 연금 지급을 중단한다는 문서 제정의 법적 근거를 공개하라고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공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법위,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파출소를 시켜 우리를 위협했습니다. 하루는 두 수련생이 법공부를 하러 왔는데, 잠시 후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열어보니 5명이 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는 국보에서 나왔고, 이쪽은 파출소 지도원이야. 너희한테 심문할 게 있어.” 저는 “들어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수련생들에게 “손님이 오셨으니 만두는 그만 빚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더 캐묻지 않았습니다.
국보 대장이 말했습니다. “너희가 성정부 정보공개실에 무슨 공개 신청을 한 거야? 우리한테 파룬궁수련생 관리를 잘하라고 하잖아. 다른 부서에서 지시가 내려왔으면 맞받아쳤겠지만, 성정부에서 내려온 거라 대충 응대라도 해야 해.” 남편은 그가 아주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보 공개는 국가가 시민에게 부여한 권리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공개하지 않으면서 우리더러 성 인력자원사회보장청에 알아보라고 하더군요. 그들은 공개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당신들을 시켜 우리를 위협하게 하니, 정말 가련하고 슬픈 일입니다.”
이때 나머지 세 명은 무언가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창턱에 있는 전단지는 어디서 난 거야?” 제가 대답했습니다. “며칠 전 청명절에 고향에 성묘하러 갔다가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마침 잘됐네요, 당신들은 볼 기회가 없을 테니 한 부씩 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들의 주머니에 전단지를 찔러 넣어 주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제 세 아들도 모두 은퇴했으니, 당신들도 제 자식처럼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 시 국보 지대장이 바로 제 남편의 제자였는데, 파룬궁수련생을 잡아들이는 공로로 부처급까지 승진했고, 저를 잡아들여 2년 동안 불법적으로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 남편이 직접 그를 찾아가지 않고 똑같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그의 옛 동창을 보내 그를 만류하게 했더니, 그는 다시는 박해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는 뒤에서는 여전히 똑같이 나쁜 짓을 저질렀습니다. 반년도 안 돼 그는 간암에 걸렸고 수술 후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예를 들었습니다. “남편이 가르쳤던 반장 하나가 모 시 잔첸구(站前區)의 정법위 서기였는데, 남편이 친척을 통해 파룬궁을 박해하는 일에 대해 스스로 처신을 잘하라고 전갈을 보냈습니다. 그는 ‘선생님의 말씀은 성지(聖旨)와 같지만, 저는 군인 출신이라 명령을 집행해야 합니다’라고 답을 보내왔습니다. 결국 그는 후두암에 걸려 수술 후 말을 하지 못하게 됐고, 1년도 채 안 돼 역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아는 사례가 더 있지만 길게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남편은 그들을 위해 몹시 마음 아파했습니다. 이 대법은 깊고 오묘해 수련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모릅니다. 사부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경고하신 시가 한 수 있는데, 제목이 ‘영험한지 아닌지’입니다. ‘선악에는 응보가 따르고 천리(天理)는 밝나니 하늘 가득한 신불(神佛)이 사람의 행위를 보고 있노라 법도(法徒)를 박해한 죄는 하늘에 사무치거늘 현세(現世)에 응보가 있을진대 영험한지 아닌지’(홍음 4-영험한지 아닌지). 문화대혁명 때 사람들을 핍박했던 자들은 모두 업보를 받았다는 것을 당신들은 모를 겁니다. 제발 나쁜 짓을 하지 마세요.”
그들이 떠나려 할 때, 저는 앞장서던 사람이 제 대법서적을 가져간 것을 발견하고 “이리 내놓으세요!”라고 소리쳤습니다. 두 간부가 문가로 가자 남편이 그들을 붙잡으며 “이 책은 우리 목숨과도 같아서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살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간부들도 책을 가져간 사람에게 다시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저는 뛰어나가 책을 되찾아 왔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기에 저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진상 자료 배포, 진상 지폐 사용, 대법을 비방하는 전시판을 철거하는 일에 참여하는 등, 대법과 관련된 일이라면 저는 무엇이든 다 했습니다. 저는 매일 20~30명에게 진상을 알립니다. 남편은 저를 가리켜 ‘감독관’이라고 부르는데, 매일 흔들림 없이 세 가지 일, 즉 법공부, 연공, 그리고 발정념을 해냅니다. 저는 정성을 다해 대법 수련 속의 일들을 잘 해내고 있으며, 여기에는 사부님의 이끄심과 가지(加持)가 있습니다.
맺음말
1996년에 법을 얻었을 때를 회상해 보니, 어느덧 30년이 흘렀습니다. 처음에는 대법 속에 감싸여 세계관이 변하고 공산당 당문화(黨文化)가 제거됐으며 천기를 알고 법리를 깨달아 가장 좋은 사람이 됐습니다. 이렇게 좋은 대법을 반드시 더 많은 사람이 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해, 우리는 주변의 친척과 친구들에게서부터 시작해 홍법을 했습니다. 현급 간부부터 평범한 민중에 이르기까지 수백 명이 법을 얻었는데, 이것은 대법과의 인연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1999년, 홍법의 사명을 다 마치지도 못했는데 중공 악당이 파룬불법에 대해 하늘과 땅을 뒤덮는 듯한 박해를 가했습니다. 얼마 후 사부님께서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라는 경문을 발표하시어 제자들이 원만을 향해 나아가는 믿음을 굳건히 해주셨고, 근본적인 집착을 닦아 없애야만 비로소 원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27년간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서 저는 불법적으로 감금되고 판결을 받은 적도 있지만, 사부님의 법인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홍음 2-사도은)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저를 이끌어 이 험난하면서도 소중한 수련의 여정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해주신 분은 바로 사부님과 대법입니다.
(2026년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1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1/6/5159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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