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련에서 얻은 것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원래 한 공공기관에서 일했는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다는 이유로 중국공산당(중공)의 박해를 받아 강제로 해고당해 살 집이 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남동생의 집인데, 동생은 예전에 어머니와 내가 이곳에 머물도록 해 주었다. 3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남기신 모든 저축과 장례비는 동생 혼자 관리하고 있다. 어머니는 생전에 중학교 고급 교사로 퇴직하셨기에 급여가 비교적 높으셨다. 그래서 동생은 내가 계속 이 집에 머무는 것을 허락했다.
회사가 자금 부족으로 운영이 중단되면서 올해 설부터 지금까지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 동생은 체제 내 공직자인데 올해 3월 말부터 감찰기관에 구금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 이 기간에 올케와 조카가 매일 우리집에 찾아왔다. 갑자기 집안에 이렇게 큰일이 생겼으니 그들의 정신적 압박이 얼마나 클지 짐작할 만했다. 세상일의 무상함에 탄식하며 속인이 참으로 고달프다고 느꼈다. 그들이 안쓰러웠고 이 고통스러운 시기에 그들에게 위로를 건네며 압박감을 덜어 주고, 힘닿는 데까지 돕고 싶었다. 그들이 가끔 밖에서 볼일을 봐야 했기에 든든한 후방 지원군이 되어주자고 생각한 것이 나의 첫 마음가짐이었다.
올케와 조카가 매일 우리집에 오면서 올케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내게도 심성을 높일 기회가 많아졌다. 이런 특정한 환경 속에서 숨겨져 있던 수많은 집착심이 남김없이 드러났다. 그들이 올 때면 장보기, 밥하기, 청소를 모두 내가 도맡았다. 그저 환경을 바꾸고 싶었을 테니 그들이 기분 좋게 지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고, 기꺼이 그들을 위해 봉사했다. 나중에 올케가 직접 밥을 하겠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도록 두었다.
매일 돼지 뼈, 채소, 기타 부재료 등을 한데 섞어 그들을 위해 찌개를 한 솥 끓여 주었는데, 그들은 무척 맛있게 먹었다. 이 일을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로 여겨 오전에 일찍 찌개를 끓여 그들을 위해 준비해 두었고, 올케가 밥을 할 때 수고를 덜어 주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올케가 딱 자신과 아들이 먹을 만큼만의 밥과 반찬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는데, 식사 때마다 올케는 자기가 만든 반찬을 내게서 아주 먼 곳에 두었다. 때로는 사 온 조림 요리마저도 조카 앞에 놓고 두 사람이 각자 알아서 먹을 뿐 나를 부르지 않아 무척 민망했다. 그들이 내게 밥을 먹으라고 부를 때면 그저 찌개 국물에 밥을 말아 삭힌 두부를 곁들여 먹었고, 그들과 같은 상에서 식사할 뿐이었다. 시간이 길어지자 올케에게 반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녁 6시에 한 시간 동안 정념을 발하고 7시 이후에 밥을 먹었다. 그들은 때때로 헬스장에 가야 해서 오후 5~6시에 밥을 먹었다. 헬스장에 가지 않는 날이면 올케는 7시가 넘어서야 밥을 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그들은 보통 점심을 밖에서 배불리 먹고 와서 저녁에는 배가 고프지 않다 보니 밥을 아주 늦게 했다. 하지만 나는 몹시 배가 고팠다. 밥을 하러 가려고 해도 올케가 주방에 있어 도무지 끼어들 틈이 없는 것 같아 포기하고, 올케가 다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해야 했다. 어떤 때는 8시가 넘도록 기다리느라 배가 홀쭉해질 지경이었고, 마음속으로 올케를 깊이 원망했다.
올케가 밥을 한 번 차리고 나면 주방은 여기저기 어지럽혀져 난장판이 됐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와 정리를 다 했다고 해도 주방은 여전히 어수선하고 지저분했기에, 올케가 설거지를 하든 안 하든 나는 다시 한번 전부 정리를 해야 했고 매일 거의 한 시간 넘게 걸렸다. 그런데 다음 날 그들이 오면 올케가 단 몇 분 만에 물건들을 다시 어질러 놓는 것을 보았다. 올케의 이런 행동을 보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올케는 자주 오는데도 들어올 때 슬리퍼조차 갈아 신지 않고 마음대로 집 안을 돌아다녔고, 내 수고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에 원망이 끊이질 않았다. 게다가 올케는 물건을 사 가지고 오면 포장지를 전혀 버리지 않았다. 특히 고기류는 날것이든, 익힌 것이든, 포장 비닐, 플라스틱 통, 랩 같은 것들, 그리고 다 먹은 아이스크림 통, 초콜릿 겉포장 등을 물로 대충 헹구기만 하고 베란다에 널어두었는데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더운 날에는 파리, 바퀴벌레가 많아 특별히 화가 났고, 올케가 돌아가고 나면 홧김에 이 더러운 것들을 쓰레기통에 내다 버렸는데 매일이 이런 식이었다. 가끔은 정말 무의미하고 피곤하게 느껴졌고, 갈수록 올케가 꼴 보기 싫어졌다.
이런 일이 매일 벌어졌다. 3월 말부터 7월까지 줄곧 이어졌다. 일정 기간이 지날 때마다 극심한 압박감을 느꼈고, 마치 좁은 틈새에 끼어 숨 막히게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올케의 이런 행동들은 내가 이 집에 살지 못하게 하려는 거겠지? 그럼 나가서 방을 구해야겠다. 내게는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했다. 오빠에게 이런 일들을 이야기했지만, 오빠는 최소한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며 반대했다.
이틀 전, 올케가 밥을 할 때 딱 두 사람 몫만 준비했고 먹을 때도 나를 부르지 않자 마음이 몹시 언짢았다. 올케가 너무 막무가내라고 느꼈고, 내가 이렇게 선하게 대하는데 그녀는 내게 멋대로 굴며 아무 거리낌 없이 내게 상처를 주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내가 왜 굳이 이런 환경에서 살아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심지어 ‘불법(佛法)은 자비와 위엄이 함께 존재하니 더는 이렇게 지낼 수 없어’라고까지 생각했다.
억지로 참을 필요 없이 나가서 방을 구하면 조용하고 자유로울 텐데 마다할 이유가 있겠나 싶었다. 마음속으로 남몰래 결정을 내린 뒤 그들에게 더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멀어지고만 싶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은 점점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돌아갈 때는 예의 바르게 내게 인사를 건넸다.
하루는 저녁 6시에 정념을 발하는데, 거의 끝나갈 무렵 머릿속에 사부님 법이 번쩍 떠올랐다. “한 마음으로 세상에 내려와 법 이미 얻었구나 훗날 하늘로 날아가면 끝없는 법 속에서 유유자적하리라”(홍음-소원을 풀다). 예전에는 이 시를 그다지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때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 바로 올케, 조카같이 나와 인연 있는 이 모든 사람과 비교했을 때 내가 먼저 법을 얻었고, 그들도 어쩌면 나와 같은 시기에 하늘에서 법을 위해 내려온 생명일 텐데 내가 그들보다 운이 좋아 먼저 법을 얻고 대법제자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내게 가서 그들을 일깨우고 그들을 구하라고 하셨으며, 이것이 대법제자의 책임이다. 갑자기 막혔던 가슴이 뻥 뚫렸고 올케, 조카 등 그들이 바로 내가 구해야 할 중생임을 깨달았다!
3월 말의 어느 날, 생생한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속에서 나는 거인이었고 내 곁에는 황록색 옷을 입은 자그마한 여자가 서 있었는데 키가 내 발목 정도밖에 오지 않았으며 그녀의 두 발아래에는 각각 스쿠터가 한 대씩 있었다. 그녀가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자 나도 그 작은 여자를 따라 걸었다. 잠에서 깬 뒤에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바로 그날, 올케가 내 꿈에서 본 것과 똑같은 초록색 스웨터를 입고 왔다. 단번에 그 작은 여자가 올케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꿈의 의미를 깊이 따져 보지는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 꿈은 내게 하나의 진상을 보여 준 것이었다. ‘올케는 그렇게 작고 나는 이토록 큰데 내가 왜 그녀와 따지려 들었을까? 그러면 내가 그녀와 똑같은 수준이 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그녀에게 이끌려 다니기까지 했으니 이 얼마나 형편없는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구나! 내가 잘해야 그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 문득 크게 깨달았다. 그동안 사부님께서 올케와 조카가 나와 함께 생활하도록 안배하신 것은 내게 있는 수많은 사람 마음, 즉 쟁투심, 원망심, 보답을 구하는 마음, 이익심, 질투심, 너그럽지 못한 마음, 자존심, 그리고 나 자신을 지키려는 사심, 각종 악념들을 없애 주고 내게서 자비를 닦아 내게 하려 하심이었건만 나는 이를 전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마음의 응어리가 단번에 풀리며 더는 올케를 원망하지 않게 됐고, 올케와 나 사이에 발생한 문제를 더 이상 사람의 이치로 바라보지 않게 됐다. 갑자기 자비의 자그마한 함의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중생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마땅히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해야 한다. 부모가 자기 자식의 잘못을 일일이 따지겠는가? 그렇지 않다. 부모는 자기 자식에게 사심이 없고 관대하며 그저 자식이 잘되기만을 바랄 뿐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현재 내가 자비에 대해 이해한 바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어떻게 행동했던가? 올케 일행과 지낼 때 철저히 사람 마음, 사람의 생각으로 대했고 내 수련 중에 나타난 일들을 사람의 이치로 생각했으니, 이것이 수련인가? 내가 대법제자라 불릴 자격이나 있을까? 게다가 생활 속에서 마주친 이 인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 수련을 도우러 온 이들이고, 그들이 나를 위해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다져주고 있으니 나는 마땅히 그들에게 감사해야 하며, 동시에 내게도 업력과 빚을 갚아야 할 요인이 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질서 있게 안배하신 것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모든 일에서 심성을 지키고 대법에 동화되는 것이 맞다. 아울러 나와 인연 있는 이 사람들은 내가 구해야 할 중생이기도 하니 나 자신을 잘 닦아야만 비로소 이 신성한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 나는 너무나도 부족했고 수많은 수련의 기회와 인연을 놓쳐 버렸으니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다!
관념을 바꾸고 대법에 따라 착실히 수련하자 올케 일행 역시 변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는 그저 시작에 불과할 뿐이며, 깨달음과 실천 사이에는 여전히 상당한 거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대법이 있음을 알기에 나는 반드시 각종 더럽고 완고한 사람 마음을 닦아 없애며 신의 자비를 닦아 내어, 나와 인연 있는 중생을 구하고 사명을 욕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심성이 높아질 수 있었던 까닭은 지난 몇 달간 법공부를 중시했기 때문임을 잘 안다. 나는 사부님의 ‘전법륜(轉法輪)’ 이외의 모든 설법을 한 편 한 편, 한 단락 한 단락씩 외웠고 매일 틈만 나면 암기하며 이미 5~6개월을 버텨냈다. 모든 단락의 법을 매우 능숙하게 외우게 되니 언제 어디서든 법을 외울 수 있었고 매 순간 법 속에 용해되어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게 되었다. 법을 외울 때 나는 법의 더욱 깊은 함의를 많이 알게 됐고, 외울수록 더 외우고 싶어졌으며, 외울수록 법이 얼마나 소중한지, 수련이 얼마나 얻기 어려운지, 사부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깨달았고 대법 수련이 얼마나 신성하고 아름다운지도 깊이 체득할 수 있었다.
이 기간에 내 자신에게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일찍이 중공으로부터 불법 판결을 받고 박해를 당한 적이 있는데, 돌아온 이후로 제5장 공법을 연공할 때면 늘 정신이 몽롱해졌고 심지어 잠들어 버릴 때도 있었다. 수련생들의 글도 읽어보고 각종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몇 년이 지나도록 돌파하지 못해 몹시 분하고 괴로웠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마침내 돌파해 내어, 정공을 연공할 때 조금도 몽롱해지지 않게 되었으며 아주 고요하고 무척 편안해졌다.
나는 반드시 사부님 말씀을 듣고 마지막 얼마 남지 않은 이 수련의 기회를 소중히 여겨, 모든 시간을 다잡아 법공부를 잘하고 나 자신을 잘 닦아 정법정각(正法正覺)을 성취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26/51298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26/512984.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