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공부 중 ‘나약함’에 대해 깨달은 약간의 인식

글/ 중국 대법제자 심청(心淸)

[명혜망] 나약함의 표면적 의미는 유약해 만만하고 모든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일반인이 보기에는 일종의 무능한 표현이다.

“연공이라고? 당신들은 연공함에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 남들이 당신을 형편없게 만들어 놓았지만, 당신은 마음속에서 또 남과 같이 대해서는 안 되며, 도리어 남에게 감사드려야 한다니. 당신들은 모두 아큐(阿Q)다! 하나하나가 다 정신병이다!”(전법륜) 이는 사부님의 한 단락의 법으로, 일반인이 수련을 이해하지 못해 수련생을 나약하다고 여기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나 자신도 원래 나약함에 대해 치우치게 이해했다. 어릴 때부터 길러온, 잘못을 저질러도 감히 말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하며, 용기가 없는 모습이 나약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관해 나는 습관을 들이고 관념을 형성해 이미 뿌리가 깊었다.

1970년경 겨울, 나는 임업장에서 일했다. 한번은 임업장 중심 구역으로 영화를 보러 갔는데 같은 숙소를 쓰는 친구가 손이 시릴까 봐, 가는 김에 그녀의 장갑을 가져가 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영화관 안은 사람이 많고 조명이 어두워 친구를 찾지 못했고 그 일을 잊어버렸다. 다음 날 장갑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지만 친구에게 감히 말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친구는 계속 내가 장갑을 훔쳤다고 의심하며 내 작은 나무 상자를 뜯고 옷 주머니까지 뒤졌으나 장갑을 찾지 못했다. 그때부터 친구는 나를 원망하며 내 다른 물건을 장갑 대신 훔치고 나에 대해 헛소문을 퍼뜨렸다. 원래 나는 내가 잘못했다는(장갑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지만 인정할 용기가 없었다. 지금까지도 친구는 장갑이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세월이 흐르며 이는 영원한 수수께끼가 됐고, 나에게도 영원한 아쉬움이 됐다. 이후에 만약 친구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나는 좋은 장갑을 사서 돌려주고 직접 사과하며 일의 전말을 설명할 것이다. 만약 여전히 정법시기가 끝나기 전이라면 반드시 진상을 알려 친구를 구할 것이다.

수년간 법공부와 수련을 거치며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인식이 매우 얕아 근본을 파고들지 못했다.

3년 전 가을, 나는 배추를 조금 심었다. 배추가 속이 차기 시작할 무렵, 이웃이 심은 콩이 낮은 담을 따라 자라 지지대 꼭대기까지 타고 올라가 길게 늘어지며 내가 심은 배추를 가렸다. 원래 배추는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쪽에 있었는데 이렇게 되니 생장에 더욱 지장을 줬다. 그래서 나는 콩 지지대를 이웃의 밭 쪽으로 약간 밀어뒀다. 감히 힘껏 밀지는 않았는데 나만 생각할 게 아니라 상대방도 배려해야 하며 그저 채소를 가리지만 않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대법(大法)을 수련하니 예전처럼 일을 저지르고도 아무 말 없이 넘어갈 수는 없었기에 나는 이웃에게 이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 이웃은 아무 말도 안 하고 화도 내지 않았으며, 도리어 지지대를 크게 더 밀어줬는데 이번에는 배추를 전혀 가리지 않게 됐다. 대법 법리의 이끌림과 정념의 주도하에, 나는 용감하게 내가 한 일(그리고 일어날 수 있는 결과)을 직면할 수 있었다. 수련은 정말 좋다. 진정으로 심성을 제고하는 아름다움을 체험했고, 마음이 환해져 더는 억눌리지 않았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마침내 완고한 ‘나약함’이라는 관념을 돌파하고 단단한 껍질을 뚫고 나와 마침내 제고했다. 그 근원을 파고들어 보니 ‘두려움’ 한 단어였다. 남이 책망할까 두렵고, 욕할까 두렵고, 듣기 싫은 말을 할까 두렵고, 이것저것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 남이 뭐라고 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모두 여지없이 드러났다. 말하느냐 마느냐는 비록 한 생각 차이지만 그 차이는 천 리나 된다. 말하느냐 마느냐는 수련생과 속인의 본질적인 차이이고, 우주의 ‘진선인(眞·善·忍)’에 동화됐는지의 증거다.

내가 중공의 박해를 받는 과정에서 정념이 부족했을 때, 대법의 요구대로 하지 않았을 때, 사부님과 법을 100% 믿지 못했을 때는 모두 두려운 마음 때문이었다. “두려운 마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릇된 일을 할 수 있게 하며, 두려운 마음은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기연을 잃게 하며, 두려운 마음은 사람이 신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생사의 고비이다.”[정진요지3-생사의 고비(死關)에서 벗어나라] 두려움이지 나약함이 아니다.

사악한 박해가 심각할 때,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과 맞서 싸우거나, 욕하거나, 보복할 기회를 찾지 않고 진정한 자아가 되어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며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고 자신의 서약을 이행하는 것이다.

사악한 박해 속에서 어떤 수련생은 처음에는 꽤 잘했지만 나중에는 잡힐까 두렵고, 맞을까 두렵고, 형을 선고받을까 봐 두려워 겁에 질려 집에 숨어 책을 보며 법공부만 했다. 감히 수련생과 접촉하지 못하고, 감히 법공부 팀에 참가하지 못하며, 진상을 알리지 않고, 자료를 배포하지 않고,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지 않았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나약함이다.

이는 내가 법공부 중에 깨달은 점이니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9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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