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린성 여자감옥은 2012년 11월 16일 옛터인 창춘시 난관구 싱푸향에서 새터인 창춘시 콴청구 란자진 궈자촌으로 이전했다. 24년간 이 감옥은 인성을 말살하는 여러 악랄한 수단과 고문으로 불법 감금된 파룬궁수련자들을 짓밟았다. 아래는 그중 일부 사례다.
1. 지린시 위리신, 감옥 병원에서 약물 고문을 당해 박해로 사망하다

위리신
위리신은 36세 여성으로 전 지린성 지린시 총공회 간부였다. 1999년 9월 6일, 그녀는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러 베이징에 갔다가, 지린시 제1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9개월 17일간 박해를 받았다. 2000년 9월 5일, 그녀는 다시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러 베이징에 갔고, 9월 29일에 베이징 악질 경찰에게 납치됐다. 베이징 다싱현의 한 파출소에서 그녀가 성명을 밝히지 않자, 경찰은 그녀를 심하게 구타했을 뿐만 아니라, 기둥에 묶어놓고 머리채를 잡아 기둥에 찧었으며 바늘로 찌르기, 라이터로 지지기, 담배꽁초로 지지기 등의 고문을 가했다. 다음 날 새벽 4시경, 그녀는 악질 경찰이 자는 틈을 타 지혜롭게 탈출했다.
2000년 11월 22일, 위리신은 지린시 공안국 악질 경찰에게 납치돼 지린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고, 여러 차례 수갑과 족쇄가 하나로 이어진 형구를 찼다. 그녀는 5년형을 불법 선고받은 후, 2001년 5월 29일 지린성 여자감옥(옛터)으로 끌려갔다. 그녀가 단식하며 항의하자, 3일째 밤 지린성 공안 병원으로 끌려가 밧줄과 수갑으로 묶인 채 강제로 링거를 맞았다. 그녀가 여자감옥으로 돌아온 후에는 밧줄로 나무 등받이 의자에 묶였고, 나중에는 침대에 묶인 채 입 벌리는 기구인 개구기가 사용됐으며, 천으로 눈을 가린 채 숟가락으로 입에 음식물이 주입됐다. 시간이 지나자 악인들은 매일 24시간 내내 그녀의 입에 개구기를 넣고 빼지 않았으며, 개구기를 뺐을 때는 이미 입을 다물 수 없는 상태였다.
2001년 9월 21일, 생명이 위독해진 그녀는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녀는 귀가 후 법공부를 통해 신체가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10월 8일과 9일, 지린성 여자감옥 부감옥장 우쩌윈(武澤雲), 옥정과 부과장 리젠(厲劍) 등이 그녀의 건강 상태를 추궁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했다.
2002년 3월 5일, 그녀는 셋집에서 지린시 창이구 롄화 파출소 악질 경찰에게 납치됐고, 먼저 지린시 촨잉구 즈허 파출소로 납치됐다가 이어 촨잉 공안분국 제4 형사경찰중대로 끌려갔다. 경찰은 그녀에게 높이 매달기, 호랑이 의자 앉히기 고문으로 시달림을 준 후 지린시 제1 구치소로 끌고 갔다.
2002년 3월 8일, 그녀는 지린성 여자감옥으로 다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그녀가 단식으로 항의하자,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이 주사됐다. 4월 7일 그녀가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부모와 남동생이 병원에서 그녀를 보았는데, 손발이 굵은 천 띠로 침대에 고정돼 묶여 있었고, 남녀 악질 경찰 2명과 죄수 2명이 감시하고 있었다. 그녀가 정신이 들었을 때 어머니에게 말했다. “제가 조금만 움직여도 감시하는 죄수(살인범)가 뺨을 때리고, 감옥 병원에서는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도 주사했어요.” 약물을 한 번 주사할 때마다 발의 혈관을 한 번씩 갈랐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단 하루 간호했는데, 악질 경찰은 그녀를 지린성 공안 병원으로 옮기고 가족을 쫓아내며 더 이상 간호하지 못하게 했다.

고문 시연: 독주사 놓기(불명 약물 주사)
위리신이 공안 병원에서 감옥 병원으로 돌아온 후,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다시 그녀를 보았을 때 두 손이 위로 묶이고 두 발도 침대에 고정된 채 불명 약물을 주사받고 있었다.
2002년 5월 10일, 감옥은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위리신의 병세가 무거워 베쑨 의대 제1병원으로 옮겨야 하니 가족이 오라고 했다. 가족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병원 3층 복도에서 작은 이동식 침대에 웅크린 채 의식을 잃은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이미 피골이 상접하게 야위어 있었고, 오랫동안 기다려도 병상을 찾지 못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원할 수 있었다. 그녀는 계속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약물 주사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으며, 두 노인은 사흘 밤낮을 줄곧 침대 곁에서 지켰다. 5월 13일 오전 10시 20분, 66일간의 고통스러운 시달림 끝에 그녀는 지린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5월 14일 오전 8시경 감옥 측은 경찰차 3대를 동원했고 6~7명의 경찰이 가족을 화장터로 끌고 가 시신을 강제로 화장했다. 화장할 때 경찰은 사망 증명서의 가족 성명 서명란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가족 이름 ‘추이푸친(崔福琴)’을 위조해 적어 넣었다.
2. 쓰핑시 한추이위안, 감옥에서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으로 사망하다

한추이위안
한추이위안[혹은 한춘위안(韓春媛)]은 33세 여성으로 지린성 쓰핑시 대법제자다. 그녀는 파룬궁 진상 자료를 인쇄하고 배포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불법 선고받았다. 2002년 7월, 그녀는 지린성 여자감옥(옛터)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으며 악질 경찰의 강제 ‘전향’에 항의해 단식했다. 2002년 8월 초순, 수감 중이던 10여 명의 죄수가 그녀에게 야만적으로 음식물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죄수 장리화(江利華)가 쇠 집게로 입을 억지로 벌리려다 치아 한 개가 부러졌다. 죄수 청옌(程艷), 왕리화(王立華) 등은 온몸으로 그녀 위에 앉았고, 마약 밀매범 자오톈루이(趙天瑞)도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탔다. 죄수들이 그녀를 꽉 누르고 목까지 조르자, 당장 그녀는 입을 벌린 채 입에 거품을 물고 인사불성이 됐다. 나중에 의사가 와서 그녀에게 주사 두 대를 놓았고,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다.
3. 랴오위안시 양구이친과 양구이쥔 자매, 모두 박해로 사망하다
양구이친과 양구이쥔 자매는 지린성 랴오위안시 둥랴오현 바이취안진 사람이다. 2002년 3월 12일, 랴오위안시 시위서기 자오진치(趙振起)가 직접 시 공안국장 등 40여 명을 이끌고 자료점을 포위해 양구이친, 양구이쥔 등 15명의 파룬궁수련자를 납치했다. 두 사람은 공안국으로 납치된 후 호랑이 의자 앉히기, 고압 전기봉으로 전신 충격, 매달아 수갑 채우기, 궁침(宮針), 불붙은 담배로 머리 그을리기 및 발 지지기 등 고문으로 시달림을 받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궁침 고문은 바늘이 매우 가늘어 살에 찔러도 흔적이 남지 않고 피도 나지 않지만 극심한 통증을 유발해 일반인은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악질 경찰은 궁침으로 수련자들의 손가락 끝, 발가락 끝, 목을 찔렀다.
2002년 9월 말, 두 자매는 각각 14년형과 13년형을 불법 선고받았고 10월에 등 뒤로 수갑이 채워진 채 지린성 여자감옥(옛터)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양구이친은 낮에 강제노동에 시달렸고 밤에는 화장실에 갇혔다. 악질 경찰 자오쉬(趙旭), 리하이옌(李海艷)은 흉악범 청훙보(程洪波)를 사주해 6명의 죄수 감시조를 조직하여 그녀를 감시하고 강제로 벌을 세우게 했으며, 조금이라도 똑바로 서지 않으면 즉시 심하게 구타했다. 얼굴은 맞아서 멍이 들었고 다리는 걷어차여 부어올랐으며 소변을 실금해 쭈그리고 앉아 소변을 볼 수 없었다.
2002년 11월 13일, 양구이친은 감옥에서 학살당했는데 당시 나이 48세였다. 2003년 6월 양구이쥔도 감옥에서 학살당했으며 나이는 불과 43세였다.
4. 지린시 덩스잉, 투옥 4개월여 만에 박해로 사망하다

덩스잉
덩스잉은 42세 여성으로 지린성 지린시 룽탄구에 거주했으며 전 지화용기 프레스 공장 직원이었다. 2002년 9월 15일, 그녀는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지린시 융지현 춘덩향 타이핑촌 주민 두징루(杜景錄)의 악의적인 신고를 받고(그는 신고 포상금 천 위안을 받음), 융지현 공안국 춘덩 파출소 악질 경찰에게 납치돼 융지현 구류소에 불법 감금돼 박해를 받았다. 이후 2003년 2월 18일 융지현 법원에서 7년형을 불법 선고받았다.
2003년 3월 초, 그녀는 지린성 여자감옥(옛터)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그녀가 신앙을 견지하자, 경찰은 진순화(金順華) 등 6~7명의 죄수를 사주해 수시로 그녀를 심하게 구타했다. 그로 인해 그녀는 의식이 흐려지고 끊임없이 구토하며 식사를 하지 못하게 됐고, 수시로 극심한 전신 통증을 겪었다.
2003년 7월 18일, 하루 동안 감옥에서 그녀의 집으로 10번이나 전화를 걸어 가족에게 빨리 데려가라고 재촉했다. 가족이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고 인사불성이었다. 가족이 그녀를 지린시 톄둥 화공 제2병원에 입원시켜 응급 처치를 받게 하자 의사가 말했다. “환자는 전신이 쇠약해졌고 쓸개도 파열됐으며 소뇌가 위축됐습니다. 뇌신경이 섬유화되고 소뇌 내부는 이미 한 가닥씩 석회화되어 전신 기관이 모두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병원 측의 응급 처치에도 소용이 없었고, 다음 날(7월 19일) 오후 1시에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5. 지린시 첸수친, 감옥에서 구타당해 사망하다
첸수친은 61세 여성으로 지린시 창이구 롄화제 첸쿤위안 단지 27동에 거주했다. 2010년, 그녀는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지린시 창이구 잔쳰 파출소 악질 경찰에게 납치됐는데, 이는 그녀가 악질 경찰에게 8번째 납치된 것이었고 이후 5년형을 불법 선고받았다. 지린시 구치소에서 그녀는 시달림을 받아 허리가 90도로 굽고 몸이 매우 야위었으며 위독한 상태가 되어, 악질 경찰은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며칠 후 그녀의 건강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지린시 창이구 롄화 파출소 경찰은 집에서 그녀를 납치해 지린성 여자감옥(옛터)으로 끌고 갔다.
지린성 여자감옥에서 첸수친이 ‘전향’을 거부하자, 감옥 내 교육 감구 3층 독방에 감금돼 고문 박해를 받았다. 악질 경찰 소대장 궈샤(郭霞)는 죄수들을 사주해 그녀를 심하게 구타하고 물고문을 가했다. 머리를 물통에 밀어 넣었다가 들어 올리고 다시 힘껏 누르는 등 물을 먹이고 들이마시게 하는 짓을 반복했다. 그녀는 거의 질식해 죽을 뻔했고, 어쩔 수 없이 타협했다.

중공 고문 시연도: 파룬궁수련자의 머리를 물통에 밀어 넣어 물고문하기
첸수친이 정신을 차린 후 대법을 굳게 수련하겠다고 즉시 성명하자 또 체벌을 받았고, 그녀가 단식하며 항의하자 5층에 갇혀 더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그녀는 장기간 악질 경찰에 의해 가장 잔혹한 늘이기 고문으로 침대에 묶여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시달렸고, 어쩔 수 없이 ‘5서(五書, 다섯 가지 수련 포기 각서)’를 작성했다. 정신을 차린 후 ‘5서’가 무효라고 성명하자, 또다시 3층에 감금돼 심한 구타, 밧줄로 묶기, 매달아 늘이기, 물고문 등 고문 박해를 받았다. 그녀가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자, 2011년 2월 악질 경찰의 사주를 받은 감시조(죄수)에 의해 구타당해 사망했다.
첸수친이 구타당해 사망한 후, 감옥 측은 진상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에 링거 바늘을 꽂고 서둘러 병원으로 이송한 뒤 심장병 돌발로 사망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6. 리수현 자오옌샤, 투옥 22일 만에 늘이기 고문을 당해 사망
자오옌샤는 55세 여성으로 지린성 쓰핑시 리수현 리수진 스판 단지에 거주했다. 2011년 5월 31일, 그녀는 리수현 공안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악질 경찰에게 납치됐고 당일 밤 쓰핑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박해를 받았다. 리수현 법원에서 3년 반 형을 불법 선고받은 후, 2011년 9월 14일 지린성 여자감옥(옛터)으로 비밀리에 끌려가 교육 대대 3소대에 감금돼 박해를 받았다.
경찰은 그녀를 3층 독방에 가두고 강제로 세뇌했으며, 심한 구타, 밧줄로 묶기, 매달아 늘이기, 화장실 못 가게 하기, 물 못 마시게 하기, 체벌 등 잔혹하게 시달림을 줬다. 그녀가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자 결국 악질 경찰 대대장 장수전(張淑珍)과 부대장 쑨(孫) 모(2011년 교육 감구로 전근)는 감시조 양후이(楊惠, 사기범), 추이하이위(崔海玉, 살인범), 허팡난(何方楠, 경제사범)을 사주해 4개의 띠로 능지처참하듯 그녀를 침대에 매달고 늘였다. 한 번 늘일 때마다 1시간 동안 이어졌고 대소변을 실금할 때까지 지속됐다. 그럼에도 악질 경찰은 멈추지 않고 며칠 뒤 또다시 두 번째로 늘이기 고문을 가했다.

중공 고문: 능지처참
2011년 10월 5일 밤 7시에서 8시 무렵, 악질 경찰의 사주를 받은 감시조 죄수들은 또 그녀에게 늘이기 고문을 가했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진상을 은폐하기 위해 대대장 장수전은 감시조 양후이에게 다른 죄수의 새 속옷을 빌려오게 하여 자오옌샤에게 입힌 뒤, 감옥 내부 병원으로 보내 이미 사망한 그녀에게 링거 바늘을 꽂고 심장병 발작으로 응급 처치를 했으나 사망했다고 외부에 거짓 선언했다.
7. 창춘시 쑨슈샤, 감옥에서 구타당해 사망하다

쑨슈샤
쑨슈샤는 51세 여성으로 지린성 창춘시 얼다오구 창장 초등학교 근처에 거주했다. 2009년 9월 29일 밤, 창춘시 얼다오구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얼다오 공안분국, 진쳰푸 파출소 수십 명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쳐 남편 왕즈훙(王志宏)과 함께 납치하고 집 안 물품을 강탈했다. 왕즈훙은 창춘시 솽양 제3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박해를 받았고, 그녀는 공안 병원에 불법 감금돼 박해를 받았다. 2010년 10월 21일, 창춘시 얼다오구 법원이 비밀리에 불법 재판을 열어 그녀에게 10년형, 왕즈훙에게 3년형을 불법 선고했다.
그녀는 불법 선고를 받은 후 지린성 여자감옥(옛터)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그녀가 신앙을 견지하며 ‘전향’을 거부하자, 감옥 5층 독방에 감금돼 똑바로 누운 채 3일간 밧줄로 묶여 있었고 다시 7일간 매달려 기절할 때까지 시달렸으며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응급 처치를 받으러 갔다.
그녀가 돌아온 후 또다시 4층에 갇혀 박해를 받았고 여러 차례 기절할 때까지 시달림을 받았다. 악질 경찰은 그녀를 3층에 가두고 엄격히 관리하며 두 명의 감시조 톈구이핑(田桂平)과 한리리(韓麗麗)를 사주해 잔혹하게 박해했다. 2012년 4월 30일, 그녀는 감시조 톈구이핑, 한리리에게 구타당해 사망했다.
8. 눙안현 푸구이화, 투옥 두 달도 안 돼 박해로 사망

푸구이화
푸구이화는 55세 여성으로 창춘시 눙안현 사오궈진에 거주했다. 2013년 6월 3일 이른 아침, 창춘시 공안국, 눙안현 공안국 국보 대대장 탕커(唐克), 뤼밍쉬안(呂明選) 등은 사오궈 파출소 악질 경찰과 결탁해 그녀의 집에 들이닥쳐 쇠망치로 방범창을 부수고 모녀와 친구 쑨옌샤(孫艷霞)를 폭력적으로 납치해 눙안현 공안국에서 고문했다. 그녀를 어두운 방에 가두고 다리를 쇠몽둥이로 의자에 가로질러 고정한 뒤, 국보 대대장 탕커가 부러진 몽둥이로 그녀의 팔, 두 다리, 오른쪽 무릎, 양발 발가락 등의 부위를 30분 동안 끊임없이 때렸고, 뤼밍쉬안은 손바닥으로 머리를 때렸다. 그녀는 맞아서 두 손이 경련을 일으키고 온몸을 떨었다. 쑨옌샤는 심한 구타, 철근으로 다리 누르기, 뾰족한 나무 막대기로 발목 찌르기, 나무 막대기로 종아리뼈 때리기, 머리채를 잡아 벽에 찧기 등의 고문을 당했다.
그녀는 눙안현 법원에서 3년형을 불법 선고받은 후, 2014년 9월 12일 지린성 여자감옥으로 끌려가 감금 박해를 받았다. 투옥된 지 한 달여 만에 고문으로 체형이 심하게 굽어 키가 165cm에서 155cm로 줄었고, 체중은 원래의 80~85kg에서 50여kg으로 줄어들었으며, 두 다리와 양발이 심하게 부어 걸을 때 비틀거리며 마치 병든 70세 노파처럼 보였다.
8감구에서 악질 경찰 장잉(張瑩), 감시조 등은 그녀에게 초장시간 세뇌와 체벌 시달림을 가했고 씻고 화장실에 가며 돈을 쓰는 등 기본 인권을 박탈했다. 매일 새벽 4시 50분부터 밤 12시까지 계속 벌을 세우며 앉혔는데, 몇 살짜리 어린아이조차 앉기 힘든 20cm 높이의 작은 둥근 의자에 두 다리를 모으고 두 손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채 강제로 앉아 있게 했다.

중공 체벌 시연도: 장시간 앉기 체벌
2019년 8월 15일, 쓰핑시 공안국, 리수현 공안국은 수백 명의 경찰 병력을 출동시키고 관할 주민센터 직원을 동원해 창춘시 현지 경찰과 협력하여 창춘시에서 파룬궁수련자 무리와 그 가족에 대한 납치를 시작했으며, 성 내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수련자와 친척의 집에도 가서 납치를 벌였다. 푸구이화와 작은 사위 멍샹치(孟祥岐), 남편 야오더이(姚德意), 사돈 멍판쥔(孟凡軍), 왕구이전(王桂珍)은 각각 자신의 집과 일하던 식당에서 납치됐고, 큰딸 위젠리(于健莉)와 남편 왕둥지(王東吉) 및 시부모 왕커민(王克民), 왕펑즈(王鳳芝)도 같은 날 자신의 집에서 납치됐다.
2021년 2월 26일, 푸구이화 일가 7명은 모두 리수현 법원에서 7년형에서 7년 반 형을 불법 선고받았다. 그중 그녀는 7년 반 형, 큰딸 위젠리는 7년형을 불법 선고받았다.
2021년 5월 27일, 두 사람은 쓰핑시 구치소에서 지린성 여자감옥으로 끌려갔다. 푸구이화는 8감구 1층에 보름 동안 격리 수감됐고, 이후 감구 책임자 쳰웨이(錢偉)에 의해 3층 ‘310 엄관(엄격 관리) 감방’으로 이감돼 43일간이나 지속적으로 엄관을 받았다. 엄관 후 또다시 ‘311 집중 감방’으로 이감돼 이른바 집중 엄관을 받았고, 불과 3일 만인 2021년 7월 25일에 집중 엄관으로 박해를 받아 사망했다.
그녀가 박해로 사망한 후, 감옥 측은 가족이 시신을 보지 못하게 막았고 시신은 강제 화장됐다.
9. 샹리제, 생전 지린성 여자감옥서 고문으로 불구가 되고 억울하게 세상 떠나

샹리제
샹리제는 59세 여성으로 지린성 랴오위안시 사람이다. 1994년 8월 8일 대만 타이난현 주민 양진이(楊進義)와 중국 본토에서 혼인 신고를 했고 부부 사이가 화목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그녀는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러 베이징에 갔다가 두 차례 강제노동을 당했고 이후 다시는 대만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2006년 4월 25일, 그녀는 파룬궁 박해 관련 진상을 폭로하다 다시 악질 경찰에게 납치됐고, 동시에 1만 위안에 가까운 개인 재산을 불법으로 몰수당했다. 랴오위안시 구치소에서 단식하며 항의하자, 악질 경찰은 그녀를 쇠의자에 묶고, 침대에 매달아 늘이며, 족쇄를 채워 시달림을 주었다.
2006년 12월 6일, 랴오위안시 룽산구 법원은 구치소에서 그녀를 포함한 9명의 파룬궁수련자에 대해 비밀 재판을 열었으며, 전후로 두 시간도 안 돼 서둘러 끝마쳤다. 2006년 12월 15일 밤, 그녀는 불법 판결문을 받아 11년형을 선고받았다.
2007년 1월 29일, 그녀는 지린성 여자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8감구(전 교육 감구)에서 밧줄로 묶어 공중에 매달기, 사지를 침대에 묶어 늘이기, 팔 억지로 꺾기 등 고문을 당해 결국 오른팔이 불구가 됐고 노동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2017년 출옥 후, 그녀는 곧바로 현지 공안 부서에 의해 세뇌반으로 끌려가 계속 박해를 받았다.

고문 재연도: 샹리제가 당한 밧줄로 묶어 매달기 고문
샹리제가 당시 교육 감구에서 겪은 고문에 대한 진술이다. “당시 교육 감구는 전향률과 실적을 올리기 위해 불법적으로 형사범을 이용해 내게 불법적으로 ‘육형(肉刑)’인 밧줄 묶기를 가했습니다. 사지를 먼저 묶고 침대보다 1m 높이로 공중에 매달았는데, 한 번 매달면 7~8시간이었습니다. 내려놓은 후에는 먼저 발을 침대에 묶고 양손을 앞의 다른 침대에 묶어 늘였는데, 매번 극한까지 늘였으며 중간에 작은 의자를 두어 간격을 벌렸습니다. 한 번 늘이면 5~6시간 넘게 지속됐는데 심장이 찢어질 듯했고 살고 싶지 않을 만큼 비참한 고통이었습니다. 그건 누구도 견딜 수 없는 고문이었습니다. 나는 매일 그들에게 침대에 묶여 매달리고 늘여졌으며 씻지도 못하고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도 가지 못했습니다. 대소변을 볼 때면 항상 사지를 묶은 상태에서 형사범이 바지를 벗기고 아래에 대야를 받쳐주었습니다. 이렇게 보름도 안 돼 내 오른팔은 꺾인 채 굽어 움직일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자 형사범은 내 오른팔을 위아래로 억지로 꺾었고, 보름도 안 돼 내 오른쪽 팔꿈치 관절 뼈를 꺾어 탈구시켰습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침대에서 전후로 무려 5개월 넘게 나를 시달리게 했습니다. 이 5개월 동안 한 번도 밧줄을 풀어주지 않았고, 잠잘 때조차 사지가 단단히 묶인 채 풀려나지 못했습니다.”
2017년 10월 24일, 샹리제는 신분증으로 표를 구매하다 가방 수색을 받아 대법 물품이 발견됐고, 또다시 랴오위안시 구치소로 납치돼 모함을 받았다. 2018년 3월 20일, 룽산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은 후 3년 반 형의 억울한 선고를 받고 다시 지린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받았으며, 마침내 2025년 9월 20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10. 지린시 두훙팡, 감옥에서 박해로 불구가 되고 억울하게 세상 떠나

두훙팡
두훙팡은 63세 여성으로 지린성 지린시 야금건설회사 서비스회사 근로자였다. 2007년 3월 14일, 두훙팡과 남편 궈윈칭(郭雲慶), 아들 궈펑런(郭鋒任)은 다시 지린시 공안국 룽탄구 분국과 장베이 분국 국보 대대, 형사경찰대 악질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녀와 아들은 지린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고 그녀가 단식하며 항의하자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이후 그녀와 아들은 이른바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으로 풀려났다. 박해를 피하기 위해 그녀는 12살 아들을 데리고 어쩔 수 없이 타향으로 떠돌며 힘겹게 생활했다.
2007년 7월 10일, 남편 궈윈칭은 지린시 창이구 법원에서 비밀리에 14년형을 불법 선고받은 후 지린성 궁주링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2008년, 그녀는 또다시 경찰에게 납치됐고 이후 8년형을 불법 선고받아 지린성 여자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그녀에게 신앙 포기를 강요하기 위해 감옥 측은 독방 감금, 높이 매달기, 장기간 벌 세우기, 장기간 잠 안 재우기 등 박해 수단을 동원해, 원래 건강했던 그녀를 정신이 온전치 못할 정도로 박해했다.
악질 경찰은 그녀의 ‘전향’을 강요하기 위해 작은 의자에 앉는 체벌을 가했다. 아침 5시부터 밤 11시까지 계속 앉게 하고 꼼짝도 못 하게 하며 형사범이 감시하게 했다. 작은 의자의 남은 작은 모서리에 병을 올려놓고, 조금만 움직여 병이 바닥에 떨어지면 발로 그녀를 걷어찼다. 대소변이 마려워도 화장실에 못 가게 했고, 한번은 그녀가 이틀 밤낮을 참기도 했다. 이렇게 그녀는 줄곧 세 달 넘게 앉아 있었고, 나중에는 허리가 아파 똑바로 펴지 못했으며, 두 다리는 나무토막처럼 감각이 없어지고 벌릴 수 없게 됐다.
장시간 벌을 세우며 말을 못 하게 했고, 말을 하려면 사부님을 욕하게 했다. 한번은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벌을 서고 있었는데 형사범이 사부님 사진이 있는 책을 그녀의 바지 가랑이 속에 쑤셔 넣으려 했다. 그녀가 온 힘을 다해 막다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 기절했다. 그녀가 깨어난 후 죄수는 꾀병을 부린다며 그녀의 머리를 잡아당겨 벽에 세게 찧었다. 당시 그녀는 바지에 소변을 지렸고 나중에 체온으로 말렸다.

중공 고문 시연도: 구타, 머리 찧기
각종 잔혹한 박해를 겪은 후, 원래 선량하고 낙관적이며 건강했던 그녀는 정신이 거의 붕괴될 정도로 박해를 받았고, 반신 손과 발, 다리의 감각을 잃었다. 그런데도 감옥 측은 그녀를 풀어주지 않고 계속 병원에 가두어 이른바 ‘치료’를 받게 했다.
2016년 7월 3일, 그녀는 8년의 억울한 옥살이 박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2019년 4월 24일, 남편 궈윈칭은 고난을 겪고 구사일생으로 14년의 억울한 옥살이 박해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와 마침내 부부가 재회할 수 있었다.
궈윈칭은 귀가 후 매일 침대에 마비돼 누워 있는 아내를 간호했다. 그녀는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어 대소변을 완전히 침대에서 해결했고 밥 먹는 것도 전적으로 남편이 떠먹여 주는 것에 의존했다. 식사 한 번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고 때로는 사방에 내뿜기도 했다. 2025년 7월 23일 밤, 두훙팡은 고통 속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자오허시 왕슈롄, 두 번째 투옥된 지 3개월이 안 돼 박해로 사망
왕슈롄은 67세 여성으로 지린성 자오허시 신구 B구역에 거주했다. 2011년 12월 23일, 그녀는 자오허시 바이스산진 허우류촌에서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자오허시 공안국 바이스산 파출소 악질 경찰에게 납치됐고, 이후 자오허시 법원에서 비밀리에 3년 반 형을 불법 선고받아 2012년 9월 중순 지린성 여자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출옥한 지 반년도 안 된 2015년 6월 16일에 또다시 세뇌반으로 납치돼 5일간 감금 박해를 받았다.
2023년 10월 27일, 그녀는 자오허시 공안국 허베이제 파출소 악질 경찰에게 납치됐으나 신체검사 불합격으로 ‘취보후심’ 조치를 받고 풀려났다. 2024년 11월, 그녀는 자오허시 공안국 사건 담당자 판취안예(潘全野)의 전화를 받고 공안국으로 와서 ‘수속을 밟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녀가 공안국에 도착하자 수란시 검찰원으로 끌려가 ‘취보후심’ 절차를 밟게 됐다. 그녀는 이것이 추가적인 사법 모함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자오허시를 떠나 타향으로 떠돌았다.
2025년 7월 10일경, 그녀는 광시에서 현지 경찰에게 납치된 후 자오허시 경찰에게 압송돼 지린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11월 하순, 그녀는 수란시 법원에서 3년 반 형을 불법 선고받았다.
2026년 2월 13일, 그녀는 지린성 여자감옥 8감구로 끌려갔고, 5월 10일에 박해로 사망했다. 감옥 측은 ‘심장병으로 응급 처치를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원문발표: 2026년 9월 3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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