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질병에 시달리던 몸에서 건강한 몸으로

글/ 중국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저는 올해 80세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의 길로 들어선 지 이미 29년째가 됐으며 그동안 겪은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저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과 파룬따파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세상 사람들과 ‘진선인(眞·善·忍)’의 아름다움을 나누기 위해 저의 몇 가지 생생한 경험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1. 법을 얻기 전의 고난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는 완전한 문맹입니다. 10살 때부터 저는 생산대에 가서 거름을 건지고 물을 긷는 등 남자가 하는 일을 했습니다. 오빠가 부인을 맞이한 이후 식구가 너무 많아져 밥을 먹을 때 저는 사람이 많아 비좁은 것을 보고 항상 밖으로 나가서 먹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눈치를 보는 것 같아 보이자 서둘러 저보다 8살 많은 짝을 찾아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첫 번째 생각은 제가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시댁에서 주는 예물비로 집안의 빚을 갚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16살 되던 해 섣달 23일, 시댁에서 200위안의 예물비를 주었는데 그때까지도 저는 상대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17살이 되던 해 우리는 결혼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야 시아버지가 정당한 직업에 종사하지 않은 채 먹고 마시고 도박을 일삼는 사람이며, 시어머니는 여러 번 화가 나서 우물에 뛰어들었다가 구출되곤 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시아버지는 술주정을 부리며 저를 욕했고 처음에 제가 밥을 할 줄 몰라 죽을 묽게 끓이면 시아버지는 끊임없이 욕을 퍼부었습니다. 시댁도 몹시 가난해 양식과 땔감이 부족했으므로 저는 매일 땔감을 주워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밥을 지을 수 없었습니다.

다년간의 피로, 영양결핍, 잦은 화로 인해 저는 나이가 많지 않음에도 여러 가지 질병에 걸렸습니다. 뇌 혈액 공급 부족, 심근 허혈이 있었고 저혈당으로 인해 정신이 몽롱하고 힘이 없었으며, 갑상선 염증으로 인해 머리와 팔까지 함께 아팠습니다. 또한 유전성 위장병이 있어 딱딱한 것을 먹지 못해 자주 배가 부풀어 오르고 아팠으며, 허리가 아파서 허리를 펴지 못해 힘든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2. 입도하여 법을 얻다

1997년 봄, 마을의 한 여성이 제 건강 상태를 보고 제게 말했습니다. “왜 연공하러 안 가요? 공원에 파룬궁수련생들이 있는데 아주 좋아요! 병을 제거하고 몸을 튼튼하게 해줘서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지 않아도 병이 나아요. 그들이 또 카드놀이도 안 하고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피우지 않으니 모두 좋은 일이죠.” 저는 듣자마자 “카드놀이를 못 한다면 난 안 해요!”라며 거절했습니다. 시아버지가 늘 카드놀이를 하고 아이들도 따라서 했기에 저도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보고 듣는 중에 점점 중독됐고 우리집도 카드 놀이터가 돼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가지 않았고 그 수련의 인연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같은 해 11월 초, 제가 언니 집에 놀러 갔는데 손님을 좋아하는 언니가 뜻밖에도 저와 잠시도 같이 있지 않고 스카프를 두르며 “파룬궁 연공하러 간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따라서 갔습니다. 저는 그곳에 도착해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 연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제2장 ‘파룬좡파(法輪樁法)’의 포륜(抱輪)을 할 때 저는 아래로 가스가 배출되는 것을 느꼈고 연공을 할수록 편안해졌습니다.

원래 저는 허쯔(合子, 북방에서 유행하는 밀가루 음식) 두 개만 먹어도 배가 너무 부르고 몹시 팽창해서 끊임없이 걸어 다녀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집에 돌아온 이후 배가 부풀어 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의아해하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파룬궁은 너무나 신기해, 방금 한번 연공했는데 이렇게 효과가 나타나다니? 꼭 꾸준히 해야겠어.’ 그때부터 저는 매일 연공하러 갔습니다. 12월이 되자 모든 병이 사라져 몽롱하지도 않았고 가슴이 두근거리지도 않았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법공부를 할 때 저는 글자를 하나도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이 읽을 때 저는 듣기만 했는데 들을수록 더 듣고 싶어졌고 마음이 더욱 맑아졌으며, 이 공이 어쩌면 이렇게 좋을까 싶었습니다! 사람을 욕하지 않고 싸우지 않으며 이익을 탐하면 덕을 잃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게 됐고 ‘전법륜(轉法輪)’ 책에서 말씀하신 대로 행동했습니다.

당시 우리 지역에서는 대법서적이 몹시 부족했는데 만약 책이 한 권 생겨서 다른 사람이 읽을 때 함께 보면 혹시 저도 읽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져 선생님 한 분이 제게 ‘전법륜’ 한 권을 주었습니다. 저는 책을 읽을 줄 몰라 수련생이 읽을 때 눈으로 따라갔습니다. 카드놀이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하기 위해 낮에 저는 보일러실 근처에 가서 다 탄 석탄 찌꺼기를 주웠습니다. 집에 돌아온 이후 저는 기억을 더듬으며 ‘전법륜’을 읽었고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우리집에서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전법륜’에 있는 몇몇 글자들을 알게 됐습니다.

수련생들은 대법에서 혜택을 얻어 모두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파룬따파에 감사드리며, 이렇게 좋은 파룬따파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려 했습니다. 우리 몇몇 수련생은 이곳저곳으로 법을 알리러 다녔고 가는 곳마다 ‘파룬따파 무료 공법교습’이라는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때로는 여러 마을로 가고 때로는 시장으로 갔는데 우리는 가자고 하면 바로 갔고 아무리 멀어도 힘들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로 인해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와 대법 수련이 가져다주는 상서로움과 아름다움을 누렸습니다.

1998년 저는 남편에게 권했습니다. “연공하면 건강해져서 주사를 맞을 필요도 없고 약을 먹을 필요도 없으니 그 돈을 아껴서 다른 데 쓰면 얼마나 좋아요?” 그렇게 남편도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섰고 우리집이 연공장이 되어 당시 20명이 넘는 사람이 함께 연공했습니다.

3. 갑작스러운 풍운의 변화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이 청원을 가기로 결정하고 제게 물었습니다. “같이 갈래요?” 저는 “파룬따파가 이렇게 좋고 사람한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데도 연공을 못 하게 하니 저도 갈래요!”라고 말했습니다. 21일 저녁 우리 일행 6명은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베이징으로 갔습니다.

22일 아침 식사 이후 한 수련생이 우리를 보더니 수련생으로 짐작하고 쪽지 하나를 건네주었는데, 그 위에는 ‘하나의 부동(不動)이 만(萬)가지 움직임을 제약하는 것이다!’(미국중부법회 설법)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크나큰 격려였습니다. 비록 서로 알지는 못했지만 같은 법을 수련하기에 우리의 마음은 굳게 연결돼 있었고, 우리에게는 우주 대법 수호라는 공동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많은 군인이 달려와 다짜고짜 우리를 밀치며 군용 트럭에 밀어 넣었습니다. 차 안에서 많은 수련생이 계속해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正法)입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돌려주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지치면 다 함께 ‘논어(論語)’를 외웠고 저도 따라 외웠습니다. 신기하게도 저는 그때부터 스스로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논어’를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베이징 펑타이 운동장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수련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은 우리를 지키며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날은 유난히 더웠는데 오후 3~4시경 무더운 하늘의 태양 근처에 갑자기 일곱 빛깔의 상서로운 구름이 나타났고, 천목이 열린 어떤 수련생이 공중에 나타나신 사부님의 커다란 법신을 뵙고는 하늘을 향해 “사부님! 사부님!” 하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당시 많은 수련생이 사부님의 법신을 뵈었습니다. 그 장면은 제자들에 대한 사부님의 격려였고 이 장면은 우리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영원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됐습니다.

오후 4~5시경 파룬궁 박해를 담당하는 현장(縣長)이 우리를 본 현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는 가는 길에 계속해서 우리에게 “당신들 뭘 하러 왔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파룬따파가 이렇게 좋은데도 연공을 못 하게 하니 그저 공정함을 되찾으려는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안 분국에 도착한 이후 우리는 감금되어 감시를 받았고 가족들이 밥을 가져다주었습니다. 15일 후 우리는 어느 공장 건물로 끌려갔습니다.

일주일 후 우리는 다시 공안 분국으로 끌려갔고 경찰이 우리 각자를 불법적으로 심문하며 “어떻게 갔어? 누구와 함께 갔어? 돈은 얼마나 가져갔어?”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수련생을 보호해야 함을 생각하며 “차를 타고 갔고, 아무도 모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젊은 경찰이 제게 사부님을 욕하라고 했을 때 저는 “우리 사부님은 이렇게 좋으신 분이시고 우리한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시고, 병을 제거해 주시고 돈 한 푼 받지 않고 제 병을 고쳐주셨으니 저는 욕하지 않겠습니다. 당신 선생님이 당신한테 지식을 가르쳐주셨는데 선생님을 욕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듣더니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웃으며 가버렸습니다.

한 달쯤 됐을 때 간부로 있는 남동생의 전우 한 명이 분국에 와서 보고는 “이렇게 연세도 많으신 분이 여기서 뭐 하십니까? 빨리 집에 가시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온 이후에도 끊임없는 교란이 있었습니다. 우리집이 법공부 장소이기도 했고 제가 청원을 다녀왔기에 저는 중점 감시 대상이 됐습니다. 마을 여성들이 교대로 문 앞에서 저를 지켜보며 제 행동을 감시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남문으로 나가 동쪽으로 수십 미터를 가자 누군가 바로 보고했습니다. 제가 북문으로 돌아서 오니 경찰이 이미 우리집에 와 있었는데 우리집이 공안국과 매우 가까웠기 때문이었습니다. 현 공안국과 각 부서의 직원들은 며칠이 멀다 하고 우리집에 와서 소란을 피웠고 제 신분증도 빼앗아 갔습니다.

한번은 경찰이 또 소란을 피우러 왔길래 제가 그들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아직도 끝내지 않았나요? 제가 그저 병을 제거하고 몸을 튼튼히 하려는 것 아닙니까? 공안국은 나쁜 사람을 잡는 곳인데 제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한번 알아보시고 물어보세요. 당신들 공안국의 차가 오기만 하면 온 거리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게 되니 얼마나 악영향을 끼칩니까! 제 신분증도 가져갔으면서 또 뭣 하러 왔습니까?” 저의 정념이 솟아오르자 사부님께서 제자를 도와주셨습니다. 그들은 그제야 비로소 그만두었고 더는 우리집에 소란을 피우러 오지 않았습니다.

4.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다

이후 저는 소규모 단체 법공부에 참가했고 수련생들과 서로 교류를 했습니다. 파룬따파가 이렇게 좋은데 장쩌민(江澤民)이 탄압하고 박해하며, 수련생들이 박해받고 있고, 민중이 중공의 거짓말에 속아 파룬따파를 적대시함으로 인해 도태될 위험에 직면해 있으니 우리가 마땅히 진상을 알려 거짓말에 속은 중생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알려야 할까요?

수련생이 제게 진상 소책자 몇 권을 주었는데 저는 두려워서 감히 배포하지 못했습니다. 수련생이 “자전거 바구니에 넣기만 하면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장에서 시험 삼아 자전거 바구니에 몇 번 배포해 보았습니다. 점차 제 담력이 커졌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상업 광고도 어디에나 배포하는데, 이렇게 사람을 구하는 좋은 진상 자료를 내가 왜 감히 배포하지 못하겠어? 배포하자!’ 그때부터 저는 밤에 대량으로 진상 자료를 배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우리 두 수련생이 낮에 서로 협력하며 나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처음에 저는 남자들과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진상 자료 보관과 발정념(發正念)을 맡았고 다른 수련생이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언제까지나 다른 수련생에게 의존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관념을 바꾸고 두려움을 돌파해 스스로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배포할 수 있어야 파룬따파의 복음을 전하고 더 많은 중생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저는 줄곧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전거를 탔고 나중에는 스쿠터를 탔으며, 최근 몇 년간은 아들이 새 스쿠터로 바꿔주었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은 바로 자신을 연마하는 과정입니다. 저는 거의 매일 나가 진상을 알리면서 각양각색의 사람과 일을 겪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 욕하는 사람, 음탕한 말을 하는 사람, 돈을 요구하는 사람, 그리고 신고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20년간의 연마는, 진상을 알리지 못하고 알릴 줄 모르던 저를 어떤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자는 늘 사부님의 도움과 보호를 느끼며 매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다년간 진상을 알렸기에 많은 사람이 저를 알아봅니다. 하루는 제가 시장에서 진상을 알리고 있는데 70대가 넘은 한 남성이 먼저 제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들 파룬따파가 좋다는 걸 인정합니다. 한번은 자전거를 타고 큰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자전거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멈출 수가 없어서 서둘러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웠더니 무사히 내리막길 아래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그가 또 한번은 제게 “나도 당신들 대법제자를 본받아 좋은 사람이 돼서 남을 등쳐먹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일의 경과를 설명했습니다. 두 아가씨가 자전거를 타다가 그를 도로의 도랑으로 쳐서 넘어뜨려 그의 얼굴과 손이 까졌는데, 두 아가씨가 놀라서 벌벌 떨자 그가 “두려워하지 말아요. 내가 알아서 약을 좀 바르면 돼요”라며 두 아가씨를 그냥 보내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60대가 넘은 한 남성이 있었는데 제가 진상 달력을 주자 그는 그것을 받았고 파룬따파 진상 호신부(護身符)도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다시 저를 만났을 때 자신이 전동 삼륜차를 타다가 차가 뒤집혔는데 일어나서 보니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는 “진상 호신부가 정말 소용이 있네요. 파룬따파가 저를 보호해 주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진상 자료를 조금 더 달라면서 집에 가서 잘 읽어보겠다고 했습니다.

진상 자료를 본 일부 중생들은 먼저 우리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말은 다 사실입니다. 공산당은 정말 끝장날 겁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지금은 말단 관리도 크게 횡령하고 고위 관리는 막대하게 횡령해서 횡령하지 않는 관리가 없습니다. 수많은 공장이 도산하고 대학생들이 노점을 차립니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키려 하지 않겠습니까! 어서 중공의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하시고 절대로 그것의 순장품이 되지 마세요.”

한번은 저와 두 수련생이 10여 리 밖의 시장에 가서 진상을 알리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 의해 악의적인 신고를 당해 파출소로 납치됐습니다. 경찰이 우리를 불법적으로 심문하며 “왜 거기에 가서 자료를 배포했지?”라고 묻길래, 우리는 “그저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그들에게 알려서 그곳 민중들도 혜택을 받게 하려는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결합해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원래 온몸에 병이 있었는데 파룬따파 수련 후 모두 나았고, 지금은 78세지만 귀도 먹지 않고 눈도 침침하지 않으며 아무런 병도 없이 스쿠터를 타고 어디든 간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자세히 훑어보더니 백발홍안에 맑고 상쾌한 기운과 생기가 넘치는 것을 보고는 그렇게 나이 든 사람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한 수련생은 자신이 20여 년 전에 유방암과 자궁근종에 걸려 유방과 자궁을 모두 절제했다고 말했습니다. 생명이 다해가고 있을 때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해 지금은 몸이 아주 건강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은 우리가 알리는 진상을 듣더니 자신들 어머니의 건강 상태와 비교해 보며 파룬따파 수련에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 깨달은 바가 있어 “좋으면 집에서 연공하세요. 그럼 당신들을 난처하게 하지도 않을 것이고 상부에 보고하지도 않겠습니다. 집에 전화해서 이분들을 데리러 오라고 해!”라고 말했습니다.

5. 고향 사람들의 인정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경찰과 각급 정부 관계자들이 반복적으로 소란을 피워 저는 마을의 유명 인사가 됐습니다. 다년간 저는 파룬따파 ‘진선인’의 법리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고 착실히 수련하며 어느 곳에서나 좋은 사람이 됨으로써 파룬따파에 대한 고향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바꾸고 사람들에게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저는 수련을 통해 신체가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교양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의 지혜를 열어주셨기에 지금 저는 50여 권의 대법서적과 ‘명혜주간(明慧周刊)’을 통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문서 자료들도 볼 수 있게 됐고, 더욱이 기억력이 크게 향상됐으며 언어 표현 능력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저는 40대부터 150도 돋보기를 썼는데 수련 후 시력이 회복됐고, 현재 80세지만 바느질할 때 돋보기를 쓰지 않으며 아무리 작은 글씨라도 다 볼 수 있습니다. 자녀들은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것을 지지했기 때문에 모두 복을 받아 나날이 번창하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집안을 깨끗이 정리정돈하고 밭의 채소도 그 누구의 집보다 잘 관리합니다. 제가 심은 오이와 호박은 우리집에서 다 먹지 못해 늘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마을의 많은 사람이 저를 칭찬합니다. “○○을 좀 봐요, 80세인데도 한 손에 10kg짜리 물통을 하나씩 들고 밭에 가서 채소에 물을 주는데 허리조차 굽지 않잖아요.” 그러면 누군가가 즉시 “저 사람은 파룬따파를 배워서 그렇잖아요”라고 말합니다.

한번은 마을의 한 집에 며느리가 들어와 마을 서기가 그곳에서 일손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고향 사람 앞에서 저를 칭찬했습니다. “○○을 좀 보세요, 저렇게 확고하게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나요. 공안국에서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에 서명하라고 해도 절대 서명을 안 하고 꿋꿋이 연공을 한단 말이에요! 저렇게 몸이 건강하니 자녀들이 얼마나 시름을 놓겠어요!”

저의 건강한 신체와 언행의 변화를 친척들과 고향 사람들이 모두 똑똑히 보았고, 중공 매체의 유언비어 선전은 더 이상 그들을 현혹하지 못했습니다. 제 친정과 시댁의 모든 친척은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고, 마을 사람들도 모두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믿게 됐으며 대부분 삼퇴를 했는데 그중에는 당시 저를 감시했던 사람도 포함돼 있습니다.

제자는 우주의 대법을 세상에 전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제자에게 지혜를 내려주시고 건강한 신체로 법공부를 하며 수련할 수 있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반드시 사명을 명심하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하며 파룬따파의 복음을 끊임없이 전파하겠습니다. 모든 중생이 인연 있는 기회를 얻어 대법제자의 진심 어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상을 깨달아 파룬따파의 자비로운 제도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9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9/15/5135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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