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들의 응집력으로 대법이 신성한 위력을 드러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우리 지역의 수련생 두 명이 현(縣) 도심에서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하던 중 악인에게 신고당해 현(縣) 공안국 정보(政保,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에게 납치됐다. 당일 현 구류소로 보내졌고 강제로 15일간 구류하겠다고 했다.
우리 지역 대법제자들은 즉시 서로 소식을 전해 모두가 이 일을 알게 됐다. 수련생들은 다 함께 행동에 나서 납치된 수련생을 위해 정념을 발했다. 어떤 수련생은 집에서 밥을 지을 때도 마음속으로 수련생을 위해 정념을 발했고 수련생마다 마음을 다해 정념을 발했다.
그날 오후 나는 납치된 A 수련생의 이모와 함께 A가 사는 마을의 촌 간부를 찾아가 촌위원회 명의로 증명서를 발급해달라고 부탁했다. 하나는 A가 이 마을 주민임을 증명하는 것이고, 둘째는 집에 초등학생 딸이 있는데 밥을 해주고 데리고 오갈 사람이 없으며 아들도 아직 어려서 돌봐줄 사람이 없는 등 실질적인 어려움이 있으니 배려해주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증명서를 다 작성한 후 공인을 찍어야 했다. 회계 담당자는 “공인은 서기가 갖고 있는데 촌 서기가 볼일이 있어 외출해 집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실은 회계 담당자가 겁이 나 도장을 찍어주지 못한 것이었다. 위에서 문책할까 봐 우려했기 때문이다.
나는 서기가 언제 돌아오든 우리가 여기서 계속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밤이 되도록 우리 둘은 집에 돌아가 밥도 먹지 않은 채 계속 서기의 집에서 기다렸는데 마음이 매우 조급했다. 나는 이 조급한 마음도 닦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수련생에게 말했다. “우리 둘이 마침 여기서 정념을 발합시다. 정념으로 두 수련생을 가지(加持)해 수련생에 대한 모든 교란과 박해를 해체합시다. 사부님 제자에게 가지해주십시오.”
우리는 밤 10시가 넘도록 계속 기다렸고 그제야 서기가 돌아왔다. 우리는 서기와 대화하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훌륭함을 알려줬다. 파룬따파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닦아 선하게 하고 남을 배려하게 하며 사회에 수많은 이로움만 있고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고 이야기했다.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따파에 대한 이번 박해를 일으켜 수천수만의 가정을 산산조각 내고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도 이야기했다. 그 후 나는 이야기할 만큼 했다고 느꼈고 시간도 너무 늦었기에 “서기님, 더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느 정도 이해한 듯했고 우리가 증명서를 꺼내자 즉시 공인을 찍어줬다.
밤사이 큰 눈이 내렸는데 무척 많이 내려서 꼬박 하루 밤낮 동안 그치지 않았다. 낮에도 영하 10여 도까지 떨어져 그 지역에서 수년 만에 보기 드문 혹한이었고 땅바닥은 온통 얼음이라 걷기만 해도 미끄러졌다. 비록 혹독한 날씨였지만 나는 그래도 A의 이모에게 제안했다. “우리 증명서를 가지고 사람을 데리러 갑시다. 더는 기다릴 수 없어요.” 수련생은 난감해하며 말했다. “이렇게 눈이 많이 오고 게다가 아직도 내리고 있잖아요. 길에는 얼음이 한 겹 덮여서 무척 미끄러운데 어떻게 가요?”
나는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운지 아닌지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빨리 A를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곳은 대법제자가 있을 곳이 아니었고 게다가 사람을 구하는 일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스쿠터에 올라타 눈보라를 뚫고 집에서 20여 리(약 10km) 떨어진 구류소로 곧장 향했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쳤다.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마다 칼로 베는 듯이 아팠다. 나는 두 벌의 오리털 점퍼를 껴입었는데도 몹시 추웠다. 나는 조심조심 스쿠터를 몰면서 한편으로는 손으로 눈을 닦았다. 그렇지 않으면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법을 외웠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홍음2-정념정행).
나는 가는 내내 법을 외웠고 사부님께서 제자를 가지해주셔서 가는 내내 막힘없이 뻥 뚫렸으며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 20여 리 길을 가는 동안 행인이나 차량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치 다른 세계의 영상을 보는 듯했다. 큰 눈이 흩날렸고 바람이 불면 온통 새하얀 안개로 뒤덮였으며 흐르는 물의 파문 같기도 했다. 나는 두려움과 사람 마음이 사라졌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으며 마음은 고요하고 매우 탄탄했다.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구류소에 도착해 나는 증명서를 직원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국장님이 사람을 데려가라고 하셨어요(공안 내부 사람이 증명서를 떼오라고 아이디어를 준 것이었다).” 직원이 소장을 불러왔는데 소장은 “사람이 들어온 지 겨우 3일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보내줍니까? 어쨌든 내일(4일째)은 돼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소장을 향해 정념을 발했고 마침내 소장이 물었다. “이렇게 큰 눈이 오는데 어떻게 온 겁니까?” 나는 “스쿠터를 타고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소장은 말했다. “이런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날씨에는 자동차도 감히 밖에 나오지 못하는데 혼자 스쿠터를 타고 20여 리를 오다니 정말 믿기지 않네요. 그래도 내일 다시 오세요.”
4일째가 되자 나는 A의 남편과 함께 승합차를 몰고 낮 12시가 되기 전에 두 수련생을 집으로 데려왔다. 집에 막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함께 낮 12시 정념을 발했고 그다음에 짧게 교류했다.
두 사람 중 또 다른 B 수련생은 구류소 직원이 “당신들 가족이 집으로 데려가려고 왔으니 어서 가세요”라고 알려줬다고 했다. 그녀들은 깜짝 놀랐고 이렇게 빨리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정말 믿지 못했다. B의 가족은 여전히 돈을 써서 사람을 구하려고 사방으로 뛰어다니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구류소 규정상 일찍 사람을 풀어주려면 몇백 위안의 보증금을 내거나 ‘보증서’를 써야 했다. 수련생을 데리러 가는 길에 나는 계속 정념을 발하며 모든 사악한 박해와 교란을 해체했고 사악의 그 어떤 규정도 대법제자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사부님의 가지 아래 수련생들에게 돈을 내게 하지도 않았고 ‘보증서’를 쓰게 하지도 않은 채 두 수련생은 당당하게 돌아왔다.
나도 수련생과 요 며칠 동안 벌어진 조마조마한 정사대전(正邪大戰)에 대한 체험을 교류했다.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整體, 공동체)이므로 수련생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마음을 다해 해야 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심을 내려놓고 자아를 내려놓아야 한다. 대법제자의 정념의 힘은 산을 쪼갤 수 있고 사악을 벌벌 떨게 할 수 있다.
이번 수련생 구출 행동에서 참여한 수련생들은 각기 다른 층차의 법의 기준 요구에 도달했고 사부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이 시련을 풀어주셨다.
구류소 경찰들은 이것이 구류소가 세워진 이래 없었던 신기한 일이라고 했다. 한 푼도 내지 않고 서명도 안 하고 보증서도 안 쓴 채 아무런 수속도 없이 들어온 지 4일 만에 사람을 풀어준 일은 여태껏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대법제자와 접촉하면서 그들은 파룬궁을 연공하는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사석에서 대법제자들에게 절대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고 스스로 잘 보호하라고 전해달라고 말했다.
원문발표: 2026년 9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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