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건축은 신을 배척하는 그릇된 길을 걷고 있다(2)

글/ 먀오윈한(邈雲漢)

[명혜망](이전 편에 이어) 셋째, 모더니즘 건축의 탄생은 현대주의 문학 예술 운동과도 떼어놓을 수 없다. 19세기 중반부터 사실주의 문학과 화파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유파는 지나치게 개성적이고 감정적인 낭만주의에 반대하며 눈에 보이는 것만 쓰고 그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신을 찬미하는 신화 이야기를 쓰고 그리는 것에도 반대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실주의와 낭만주의 모두 고전주의 정신에 반대하며 인간과 신의 연결을 끊고 인간이 신을 모방하고 덕행을 높여 신에게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주의는 사회 하층민의 고통 등 현실 상황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실(종종 어두운 면)에 대한 반영과 비판을 도덕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은 오히려 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졌는데, 과거 사람들은 줄곧 도덕의 핵심이 신의 계명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주의 화파의 극단화된 형태는 자연주의다. 자연주의 화파는 당시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실증과학, 다윈의 진화론, 사회학의 깊은 영향을 받아 그림은 사진술로 찍어낸 사진과 같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본래 현실보다 높아야 할 예술품을 철저히 현실 수준으로 끌어내린 것으로 역시 예술이 신을 표현하는 것을 배척하고 인간 본성 속의 신성에 반대한 것이다. 이후 인상파가 다시 이러한 사실주의의 극단화된 형태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사실 인상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전주의의 작화 기법마저 버렸다. 이러한 현대 화파들이 하나하나 일어나는 것은 겉보기에는 뒤의 것이 앞의 것을 반대하는 것 같지만 결국 실제로는 힘을 합쳐 고전주의의 정신과 기법을 모조리 쓰레기통에 쓸어 넣은 것이다.

후기 인상파와 상징주의는 다시 표현주의와 입체주의를 탄생시켰다. 표현주의는 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발전했고 입체주의의 중심은 처음에 프랑스였다. 이 둘은 20세기 초 전위 예술의 양대 산맥이었다. 표현주의는 인간의 감정 표출을 주장했는데, 사실주의가 일찍이 신의 아름다움을 배제했기에 이 시기 문학과 회화가 표현하는 감정은 종종 불안, 조급함 등 어두운 면이었지, 신의 인도하에 부정적인 감정을 선하고 긍정적인 감정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회화 속 불량한 요소는 다시 그것을 보는 사람들을 물들였다. 표현주의와 달리 입체주의 화파는 기하학적 면의 이러한 이성(외계 문명의 방식)을 강조했지만 이는 신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자신을 반성하고 완벽하게 하는 데 쓰이는 이성이 아니었다. 이 두 파는 비록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인간 본성에 신성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문예 작품이 진선미를 묘사하는 것을 부정했다.

이탈리아에서 이목을 끈 것은 밀라노 문학 분야에서 제기된 미래주의로, 1909년 마리네티가 프랑스 ‘르 피가로’에 ‘미래주의 선언’을 발표한 것을 탄생의 표지로 삼는다. 1914년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는 ‘미래주의 건축 선언’을 발표하며 도시는 거대한 기계이고 건축은 철강, 콘크리트, 유리, 엘리베이터 등 신소재와 신기술을 반영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 선언은 자동차와 비행기의 고속의 미를 찬양하고 과거의 건축 형태를 모방하는 것에 반대했다.

미래파 신도이자 화가, 언론인인 필리아(본명 루이지 콜롬보)는 항상 미래주의 건축이 파시스트 건축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꿈꿨고, 심지어 통치 당국에 아부하기 위해 미래파가 파시스트 정권의 대표적인 건축이라고 속였다. 이 파의 일부는 전쟁을 선전하며 청년들에게 거리로 나가 문화 혁명을 진행할 것을 요구했고 또 도서관과 박물관을 모두 부숴버리자고 주창했다. 이 때문에 당시 사회의 비웃음과 혐오를 받았는데 이 점은 중국의 ‘무산계급(문화 계층과 전 사회에 대한) 문화대혁명’과 대조해 볼 수 있다.

현재의 연구자들도 미래파 건축이 대부분 계획 단계에 머물렀고 완성된 소수의 건축도 유럽 신건축의 주류나 일반적인 국제 양식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음을 발견했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도 미래파를 자칭하는 건축에는 여전히 독일 표현주의가 섞여 있었는데, 이 파의 진정한 목적이 건축 자체에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파는 러스킨의 복고적 정서를 경멸하고 속도, 기계, 대공업, 전쟁을 광신적으로 숭배하며 새 시대가 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들은 오래되고 낡은 것을 극도로 증오하며 폭력과 과학기술을 통해 구세계를 씻어내고 과거 인류의 문명적 성취(많은 부분은 신의 영감을 받아 창작됨)를 제거해 기계와 과학기술의 유토피아를 창조하려는 망상을 품었다. 이 파가 극단적이고 급진적이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탈리아 미래주의를 파시즘의 전야로 보기도 한다.

이것들이 모더니즘 건축이 탄생하게 된 물질적 재료, 사회 문화, 문학 예술적 배경이다.

2. 모더니즘 건축의 기원 과정

19세기 낭만주의의 영향 아래 영국에서는 미술공예운동이 발전했다. 존 러스킨이 이에 대한 사상적 무기를 제공했고 러스킨의 추종자 윌리엄 모리스가 1860년대에 본격적으로 이 운동을 일으켰다.

러스킨의 산업 문명에 대한 많은 비판은 마르크스의 학설과 고도로 일치했다. 예를 들어 산업 혁명이 가져온 기계화와 인간성 소외 등이다. (비록 이러한 비판이 대체로 사실에 부합하지만 문제는 어떤 방식을 취했고 최종 결과가 어떠했는지, 이러한 비판이 유혈 운동을 선동하는 구호로 사용됐는지 여부다.) 모리스는 엥겔스로부터 감정적인 공상 ‘사회주의자 동맹’ 조직의 일원이라고 비난받았다. 모리스는 자신이 설계한 레드 하우스의 평면을 오직 기능적 요구에 따라 배치했고 균형과 대칭의 고전미에 반대했다.

이 운동은 표면적으로는 중세 시대를 그리워하고 그 시절로 돌아가자고 말해 사람들을 매우 현혹했지만 그 밑바탕에는 신을 배척하는 사상이 숨겨져 있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회화, 조각, 건축의 위상이 높아져 ‘자유 7학과(중세 유럽의 7가지 교육 체계)’에 버금가게 됐다. 그 목적은 단순히 장식이나 보기 좋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러한 표현 기법이 신께서 인간에게 하사하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히 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둬야 했고 이처럼 신에게 바치는 예술은 항상 실용적인 공예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미술공예운동은 정반대로 실용적인 공예(그들은 이를 ‘미술’이라고도 불렀다)의 위상을 높이고 자연적인 장식 문양으로 신에 대한 표현을 대체하려 했다. 위험한 것은 신을 표현하지 않고 신을 무시하는 예술이 신에 반대하는 예술과 멀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운동에는 또 다른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정통 예술은 과거에 주로 문화적인 귀족 계층이 주도했기에 이 운동들은 귀족 계층을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불로소득을 취하며 사치스럽고 향락만을 추구하는 계층으로 묘사하고 규정하려 했다. 이는 인류 전체의 도덕성 타락과도 관련이 있다. 화살을 단독으로 특정 집단에 겨누고 성급한 일반화와 교사 및 선동을 통해 전체 귀족 계층을 사회 구조에서 쫓아내고 그들의 사회적 기능을 소멸시키는 데 도달했다. 이는 중국이 향신과 지주를 추악하게 묘사해 결국 향신과 지주 계층을 소멸시킨 것과 성격 및 수법이 거의 똑같다.

경제적 측면의 무산계급은 귀족 계급의 적이 아니지만 이러한 운동은 의도적으로 문화와 경제의 차이를 혼동시켰다. 문화 계층이 사회 문화를 전승하고 전반적인 도덕 수준을 유지하며 인간의 사상과 행동에 대한 신의 규범을 보존하는 등 중요한 측면에서 발휘하는 핵심적인 역할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따라서 신을 배척하는 전체적인 기획은 항상 먼저 하층민들이 문화 계층을 증오하도록 선동하는 것이다. 예술에 나타난 표현을 보자면 유럽 전통 예술의 주류를 반대하는 것이었다. (‘문화대혁명’ 중에 나타난 각종 난장판과 대조해 보라.)

19세기 영국은 전통 관념이 매우 강했기에 러스킨과 모리스의 주장은 당시 비주류로 여겨졌고 심지어 일종의 기형적인 병태로 치부되기도 했다. 오히려 나중에 벨기에의 아르누보(Art Nouveau, ‘새로운 예술’이라는 예술 사조)를 거치면서 그들의 주장은 유럽 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다. 이 두 운동은 건축 자체에만 국한되지 않고 평면 디자인, 가구 디자인, 공예 미술 등 예술의 많은 분야를 다루었다. 아르누보의 창시자는 빅토르 오르타였고 그의 대표작은 1890년대에 완성된 브뤼셀 ‘민중의 집’이다. 철강과 유리로 지어진 이 건축물은 사회주의 노동자 연맹의 본부 사무실이었다. 제정 러시아에서 발행된 ‘예술 세계’ 잡지에서도 이를 소개했다.

설명할 필요가 있는 점은 이 잡지가 현지 전위 예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전위 예술가들과 볼셰비키 혁명 세력은 의기투합했다. 그들은 예술이 ‘액자 속의 고고한 자화자찬’(이 표현은 정통 예술에 대한 멸시와 부정적인 정의다)이 아니라 인류의 삶을 재창조하고 공산주의 물질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도구라고 굳게 믿었다. 이는 뒤에서 언급할 바우하우스의 이념과 일맥상통한다. 여기까지 이르면 이러한 신을 반대하는 예술 운동과 공산주의의 공모 관계는 이미 매우 뚜렷해진다.

(계속)

图1:古典建筑代表作凡尔赛宫(Versailles palace)的外装修示例。1682年由太阳王路易十四开始建造,分多阶段完工;在此期间,凡尔赛宫所在的凡尔赛(巴黎郊外)超越了巴黎,成为法国实际意义上的首都。古典建筑与现代建筑的内装修设计在空间美学、材料运用及哲学理念上有着截然不同的追求。

고전 건축의 대표작 베르사유궁의 외관 장식 예시. 1682년 태양왕 루이 14세가 건축을 시작해 여러 단계에 걸쳐 완공됐고 이 기간 동안 베르사유궁이 있는 베르사유는 파리를 넘어 프랑스의 실질적인 수도가 됐다. 고전 건축과 현대 건축의 실내 장식 디자인은 공간 미학, 재료 활용 및 철학적 이념에서 전혀 다른 것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图2:古典建筑代表作凡尔赛宫的内装修示例——镜厅(Galerie des Glaces),位于法国凡尔赛宫核心,由儒勒·阿曼-芒萨尔设计。长达 73 米的空间内嵌有 17 个巨大的落地拱形镜窗,对应着对面的同尺寸拱形窗户,将花园景色引入室内。天花板绘有路易十四的功绩壁画,搭配无数水晶吊灯与镀金浮雕,是欧洲宫廷室内设计的巅峰之作。

고전 건축의 대표작 베르사유궁의 실내 장식 예시인 거울의 방. 프랑스 베르사유궁의 핵심에 위치하며 쥘 아르두앙 망사르가 설계했고 길이 73m의 공간에는 17개의 거대한 바닥까지 닿는 아치형 거울 창이 내장돼 맞은편의 같은 크기의 아치형 창문과 마주 보며 정원 경치를 실내로 끌어들이며 천장에는 루이 14세의 업적을 기리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수많은 수정 샹들리에와 도금 부조가 어우러졌다. 유럽 궁정 실내 디자인의 최고봉이다.

图3:古典建筑代表作埃尔埃斯科里亚尔修道院图书馆 (Library of El Escorial)内装修示例。该图书馆位于西班牙马德里附近,由建筑师胡安·包蒂斯塔·德·托莱多与胡安·德·埃雷拉设计;其内装以精致的木质书架、大理石地板以及天花板上的宏伟壁画(象征七艺:修辞学、逻辑学、音乐等)闻名,完美体现了文艺复兴时期对知识、秩序与古典神圣感的人文追求。

고전 건축의 대표작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 도서관의 실내 장식 예시. 이 도서관은 스페인 마드리드 인근에 위치하며 건축가 후안 바우티스타 데 톨레도와 후안 데 에레라가 설계했고 정교한 목재 서가, 대리석 바닥, 그리고 천장의 웅장한 벽화(수사학, 논리학, 음악 등 자유 7학과를 상징함)로 유명하며 르네상스 시기 지식, 질서, 고전적 신성함에 대한 인문학적 추구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图4:古典建筑代表作——罗马圣彼得大教堂(St. Peter's Basilica)的内部设计示例。这座教堂的室内空间由贝尼尼、米开朗基罗等文艺复兴时期的大师共同打造。其中贝尼尼设计的青铜华盖(Baldachin)高达近 30 米,以扭曲的螺旋柱和精细的镀金装饰震撼人心;内部大理石镶嵌、马赛克壁画与巨大的穹顶空间,展现了高超的神圣感与空间张力。

고전 건축의 대표작인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의 내부 디자인 예시. 이 성당의 실내 공간은 베르니니,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시기의 거장들이 공동으로 만들었고 그중 베르니니가 설계한 청동 발다키노는 높이가 약 30m에 달하며 나선형 기둥과 정교한 도금 장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며 내부의 대리석 상감, 모자이크 벽화, 거대한 돔 공간은 뛰어난 신성함과 공간의 장력을 보여준다.

图5:西班牙巴塞罗那德国馆 (Barcelona Pavilion)。现代建筑内装修以“形式服从功能”为原则,强调空间的流动性、结构(如钢筋与混凝土)的裸露,以及工业化新材料的应用。

스페인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현대 건축의 실내 장식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를 원칙으로 삼아 공간의 유동성, 구조(철근 및 콘크리트 등)의 노출, 공업화된 신소재의 적용을 강조함.

 

원문발표: 2026년 9월 7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9/7/51364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9/7/513640.html

© 1999-2026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