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더 이상 잿빛이 아니다

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명혜망] 수련하기 전, 나는 부인과 난치병을 앓고 있었다. 월경이 시작되면 멈추지 않았고, 한약과 양약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근본적으로 치료되지 않았다. 탕약을 자주 마신 탓에 나중에는 얼굴에 뾰루지가 잔뜩 났고 기미까지 덮였다. 기미가 하나로 이어지면서 얼굴이 마치 한 겹의 검은 가죽처럼 변해버려 본래의 피부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얼굴이 망가진 것 같아 거울조차 보기 싫었다. 그때 내게 삶이란 온통 잿빛이었고, 햇빛도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절에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무엇을 찾아야 할지 몰랐고 원하던 것을 찾지도 못해 매우 실망하곤 했다.

1. 마침내 사부님을 찾다

1998년,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홍음(洪吟)’을 처음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시는 이러했다. “사부님 찾은 지 몇몇 해인가 하루아침 친히 뵈옵게 되었구나 법 얻어 되돌아 수련하나니 원만 이루어 사부님 따라 돌아가리라”[홍음-연귀성과(緣歸聖果)]. 나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연이어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그토록 힘들게 찾아 헤맸는데, 마침내 사부님을 찾은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늘 기운이 부족했다. 삼복더위에 치마를 입을 때도 무릎에는 털로 된 토시를 덧입어야 했다. 앉았다가 일어설 때는 허리가 90도로 굽어졌고, 한참을 움직여야만 비로소 허리를 곧게 펼 수 있었다.

내가 법을 얻었을 때는 35세였다. 그전에는 책을 볼 때면 눈이 아파서 4~5줄만 읽어도 통증을 견딜 수 없었고, ‘전법륜(轉法輪)’을 한 번 다 읽는 데 무려 한 달이나 걸렸다. 신기하게도 ‘전법륜’을 두 번째 읽을 때는 눈이 전혀 아프지 않았다.

예전에는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피곤했다. 하지만 연공을 한 지 두 달 만에 병이 씻은 듯이 나아 온몸이 가벼워졌다. 설을 앞두고 대청소하는 일은 모두 내가 도맡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바쁘게 움직여도 몸이 가뿐했고 힘이 넘쳐났다.

법을 수련한 지 대략 반년쯤 지났을 때, 사부님께서 내 몸을 정화해주셨다. 월경이 시작된 첫날, 배가 너무 아파 서 있을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었고, 식은땀을 흘리며 많은 핏덩어리를 쏟아냈다. 나는 변기에 앉아 5~6시간가량 일어나지 못했는데, 마치 온몸의 피가 다 교체되는 것 같았다. 밤이 되자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다. 둘째 날에는 출혈량이 줄었고, 5일째 되던 날에는 피가 멎으며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거울을 본 나는 뜻밖의 기쁨에 놀랐다. 얼굴의 기미가 몰라보게 옅어졌고 안색이 훨씬 깨끗해 보였다. 이후 얼굴에 났던 뾰루지들도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졌다. 여동생은 내게 말했다. “언니, 다시 미인이 됐네.”

나는 지금 60대가 되었지만 피부가 곱고 매끄러우며 주름이나 기미 하나 없이 47~48세 정도로 젊어 보인다.

2. 시어머니와의 묵은 원한이 풀리다

수련하기 전, 나는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시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뒤로 몇 년 동안 시어머니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대법을 배운 지 1년 반이 지난 후, 법공부를 통해 내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측은지심이 생겨나면서 몇 년간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원망이 눈 녹듯 사라졌고, 시어머니 역시 변하셨다.

시어머니는 80대가 되어 시동생과 함께 살고 계셨다. 나는 매달 시어머니를 우리집으로 모셔 와 목욕을 시켜드렸다. 시어머니는 갑상선기능항진증이 있어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셨다. 한번은 목욕을 마친 후 주무실 때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틀어드렸더니, 시어머니는 들으시다가 스르르 잠이 드셨고 그날 밤 아주 달게 숙면하셨다. 아침에 일어나신 시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나도 배워야겠다.” 나는 시어머니께 MP3를 사드려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으시게 했다.

2005년 여름 어느 날, 남편이 집에 돌아와 내게 말했다. “어머니 모시고 병원에 가게 300위안만 줘.” 시어머니는 퇴직금도 있고 모아둔 돈도 있었다. 당시 남편은 직장이 없어서 나 혼자 돈을 벌어 가정을 꾸렸고, 아이는 갓 초등학교 1학년에 올라갔으며 우리는 셋방살이를 하던 처지였다. 순간 마음속으로 약간 화가 났지만, 이것이 내 마음을 닦으라는 일깨움임을 즉시 깨달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남편에게 돈을 건넸다. 몇 년 뒤 그때 일을 언급하자 남편은 고개를 푹 숙였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나는 가게 문을 일찍 닫고 시어머니의 머리를 다듬어 드렸으며 ‘수의’까지 지어드렸다. 평생 꾸미기를 좋아하셨던 시어머니셨기에, 내가 직접 지어드린 수의는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예뻤고 시어머니도 보시고 아주 흡족해하셨다. 마지막 며칠간 시어머니가 식사를 전혀 하지 못하시자, 나는 가게 문을 일찍 닫고 집에 돌아와 좁쌀 완자죽을 비롯해 영양가 높은 죽을 쑤어드렸다. 시어머니에게는 여섯 자녀가 있었지만, 나는 그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의존하지 않고 그저 며느리로서 내가 해야 할 도리를 다했다.

3. 정념으로 박해에 맞서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나중에 나는 직접 ‘파룬따파는 천고의 기연(機緣)이다’라는 글귀를 새긴 틀을 만들었고,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거리로 나가 스프레이를 뿌렸다. 집에 돌아오니 이미 한밤중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정법수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는 4가지 색깔의 색종이를 사서 진상을 손으로 적은 뒤 밖으로 나가 벽에 붙였다. 네 가지 색을 번갈아 가며 붙이니 눈에 아주 잘 띄었다. 나중에 외지 수련생이 복사기 한 대를 구해다 주었는데, 1분에 4장이 복사되어 손으로 쓰는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그 후 우리에게는 838 흑백 레이저 프린터가 생겼고, 뒤이어 컬러 잉크젯 프린터로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우리가 만드는 진상자료는 갈수록 정교하고 아름다워졌다. 우리는 자체적으로 예쁜 진상 탁상달력을 제작했고, 다른 수련생들이 ‘작은 꽃’(가정 자료점)을 피울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2005년, 우리의 자료점이 파괴되면서 나는 납치돼 끌려갔다. 경찰은 전선을 내 코앞까지 끌어와 전기봉을 충전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나는 사부님의 법을 외웠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전법륜)

나는 마음속으로 전기봉을 향해 말했다. ‘사악에 협조해 대법제자를 박해하지 마라. 대법제자를 박해하면 죄를 지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파출소장이 직접 나서서 고문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나는 철제의자에 묶인 채 고압 전기봉으로 얼굴, 입술, 귓불, 손바닥, 손가락 끝을 지짐당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고,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평온하고 순정(純正)한 마음을 유지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정념을 발해 전류가 역방향으로 흐르게 했다. 전류는 내 몸에서 물리치료를 받을 때보다도 미약하게 느껴졌고, 파출소장은 투덜거리며 말했다. “전기봉이 누전됐나.” 방 안을 가득 메운 경찰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나는 구치소로 이송됐고 단식을 하며 박해에 반대했다. 며칠 뒤, 나는 강제 음식물 주입을 당했지만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한 대장이 발로 나를 걷어차 바닥에 넘어뜨렸다. 수감자를 묶어두는 쇠고리 위로 엎어졌지만 나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다음 날, 그가 감방의 작은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자마자 나는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과 얘기 좀 해야겠어요.” 그는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나?” 내가 대답했다. “그래요.” 그러자 그는 당황하며 얼버무렸다. “나 바빠, 일이 좀 있어서. 이따 올게.” 그러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나는 그가 다음 날 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구치소를 떠날 때까지 10여 일 동안 그의 모습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나중에야 나는 내가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도 그가 지레 겁을 먹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구치소 측은 책임을 지기 싫어 나를 수감하지 않으려 했다. 파출소와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은 어쩔 수 없이 나를 병원으로 보냈다. 파출소장은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퍼부으며 사부님과 대법을 모독했다. 나는 정념을 발해 그가 응보를 받게 했다. 2~3일이 지나도 아무런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안으로 찾았다. ‘내 정념은 효과가 좋은데,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인가?’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말하건대 수련인은 적이 없다. 당신들은 오로지 사람을 구원하는 몫이 있을 뿐이다”(각지 설법7-시카고시 법회 설법). 파출소장이 그토록 악랄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를 자비로 대해야 했다. 나는 사부님의 법을 떠올리며 마음을 바꿨다. 그를 마치 내 가족처럼 대하며 그를 조종하는 모든 사악한 요소를 제거해 그를 구했다. 그 후로 그는 두 번 다시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고 나를 괴롭히지도 않았다. 이 과정에서 나는 의사와 간호사, 경찰 모두에게 진상을 알렸다.

나는 불법으로 5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감옥 측은 나를 받아주지 않았고 나는 당당하게 마굴을 빠져나왔다.

 

원문발표: 2026년 9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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