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대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진정으로 법리를 깨닫고 법에 동화돼야만 느낄 수 있다. 대법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하는 사람만이 보고 얻을 수 있다.
오늘 퇴근하고 집에 오자 어머니(수련생)가 말씀하셨다. “또 일이 생겼구나. 네 남동생이 전화해서 아내가 우리집 근처 병원에서 연수를 받게 돼 점심에 우리집에서 밥을 먹고 낮잠도 자야 한다고 하더구나. 게다가 편하게 드나들 수 있게 우리집 열쇠도 하나 맞춰달라고 했어. 거절하고 싶은데 차마 말이 안 나오는구나.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나는 대답했다. “그들이 왜 이렇게 할까요? 분명 우리가 제고해야 할 요소가 있을 거예요. 법에서 어떻게 제고해야 할지 한번 깨달아 봐요.”
어머니는 이미 곧 80세가 되시는데 최근 몇 년간 다리에 나타난 병업 가상을 계속 돌파하지 못해 걷는 것이 그리 편치 않으시다. 점심에 며느리를 위해 밥을 하라는 것은 어머니로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어머니는 남동생이 얼마나 나쁜지, 올케가 얼마나 지나친지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내 딸도 말을 거들며 외숙모가 얼마나 나쁜지 얘기했다. 나는 듣자마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말했다. “그들을 싫어하거나 원망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그들과 같은 층차가 되고 그들과 똑같아지는 것이니 그럼 그냥 속인이 되는 게 아니겠어요? 우리 안으로 찾아봐요. 우리가 제고해야 할 부분이 어딘가 있을 거예요.” 두 사람은 내 말을 듣고 바로 이야기를 멈췄다.
나는 복(福) 자를 만들면서 내가 어떻게 법에서 제고해야 할지 계속 깨달아갔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내용이 떠올랐다. “이전에 우리 많은 수련생이 외부의 사람들과 일부 모순이 발생하거나, 사회의 사람들이나 어느 부서에서 우리를 공평치 못하게 대하면 우리는 언제나 모두 자신의 이 방면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른 방면을 강조했다. 어떤 것은 매우 나빠, 그것이 마구 파괴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생각해 보았는가. 그것이 비록 나쁘고, 그것이 비록 마의 표현이지만, 그것이 어찌 우연히 나타났겠는가? 그의 나쁜 일면을 이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나쁜 면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늘 말하는데, 두 사람이 모순으로 부딪치게 되면 당신들은 서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당신 두 사람 쌍방에게 모순이 발생하면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설사 제삼자로서 이 문제를 보게 되더라도 당신은 마땅히 자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제고 속에서 돌비맹진(突飛猛進)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싱가포르 법회 설법)
사부님의 법에 따라 나는 표면적인 그들의 행동을 보며 나 자신을 대조해 보았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게다가 어머니에게 아주 하기 힘든 일을 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아, 나는 깨달았다. 그들이 드러낸 것은 자신을 위해 남이 하기 힘든 일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었다. 이는 극도로 이기적인 모습으로 남을 배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자신이 하기 힘든 일을 시키니 이것이 바로 남을 곤란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 자신과 대조해 보니 내게도 확실히 이런 행동이 있었다. 올해 내가 가르치는 반 학생들이 수업을 들을 때 자주 잡담을 했다. 내가 여러 번 타이르고 도리를 설명해 줘도 여전해서 매 수업 시간마다 계속 그들을 바로잡아 줘야 했다. 지금 보니 그들에게도 극복하기 어려운 어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도 그들을 곤란하게 한 것이 아닐까? 내가 좀 더 세심하게 그들의 입장에 서서 배려해 줘야 했던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 깨닫고 나는 얼른 두 사람과 교류했고 두 사람도 바로 안으로 자신에게 이런 집착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 이 방면의 집착을 찾아냈고 모두 법에서 제고됐다. 이때 우리는 일어난 일을 되돌아보았다. 만약 남동생과 올케의 이런 ‘좋지 않은’ 모습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찌 이렇게 깊이 숨겨진 나쁜 집착심을 발견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그들을 원망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 오히려 고마워해야 했다! 그 순간 마음이 단번에 확 트였고 우리는 갈등 속에서 제고됐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럼 내일 점심에는 내가 고생스럽더라도 며느리에게 밥을 해줘야겠구나.” 나는 안 된다고 했다. “우주 만사만물은 모두 질서 있게 배열돼 있어요. 예를 들어 식물은 모두 먼저 싹이 트고 그다음 가지와 잎이 자라며 다시 꽃이 피고 마지막에 열매를 맺잖아요. 이 순서는 뒤바뀔 수 없는 게 아니겠어요? 인륜 도덕으로 봐도 장유유서이고 연장자가 우선이에요. 어머니는 지금 80세가 다 되셨는데 40대 중년인 며느리의 시중을 드신다면 그것이 사람의 도의에 어긋나고 자녀가 덕을 잃게 하는 것이니 진정으로 자녀를 위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내일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어요.” 어머니도 동의하셨다.
이튿날 낮 12시가 넘었는데도 올케가 오지 않아 딸이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올케는 오늘 가지 않겠다며 자기가 밥을 챙겨왔고 사무실 동료들이 다 자리를 비워서 낮잠 잘 곳이 생겼다고 했다. 나중에 다시 오게 되면 전화로 연락하겠다고 했고 올 때 밥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며 자기가 직접 해 먹겠다고 말했다.
사실 어젯밤 우리가 법에서 이 일을 이용해 제고된 후 나는 이미 올케의 문제가 직장에서 다 해결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확신이 서지 않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보아하니 우리가 안으로 찾고 대법에 동화되며 대법의 요구에 따라 행동해 ‘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기’(정진요지-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만 한다면 대법이 자동으로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원만하게 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대법 속에서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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