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어릴 적 기억에, 둘째 이모가 사촌 오빠 두 명을 데리고 우리집에 와서 우리 가족에게 파룬궁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사촌 오빠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닦으라고 하신 것은 ‘진선인(眞·善·忍)’입니다. 사람을 때리지 않고, 욕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잘 대해야 합니다”라고 한 말이었다. 사촌 오빠의 말은 내게 조금 믿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촌 오빠는 나쁜 아이여서 학교에서 자주 사람을 때렸고 다들 그를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사촌 오빠는 또 처음에는 대법이 이렇게 신기하다는 것을 믿지 않고 학교에서 사람을 때리고 욕을 했는데, 맞은 사람은 아프지 않고 오히려 때린 자신이 아주 아팠다고 했다. 그리고 욕을 하려고 할 때도 욕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그는 사람을 때리면 안 되고 욕을 해도 안 되며 ‘진선인’의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당시 몹시 푹 빠져서 들으며 마음속으로 ‘파룬궁 정말 신기하구나!’라고 생각했다. 이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누군가 ‘파룬궁이 나쁘다’는 말을 퍼뜨리기 시작했다(주: 이때부터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무고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는 나도 파룬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22살 때 나는 교제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바로 지금의 남편이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우리가 함께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나와 몇 마디 나누고 싶어 하셔서 나는 약간 긴장한 채 전화를 건네받아 아주머니께 인사했다. 아주머니는 나와 몇 마디 말씀을 나눴는데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나는 무슨 말인지 좀 알아듣기 힘들었다. 아주머니가 ‘파룬궁’이라는 세 글자를 말했을 때는 똑똑히 들렸고, 아주머니는 내게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까지 해주셨다. 나는 속으로 ‘오랜만에 파룬궁 이야기를 듣네. 아주머니가 파룬궁을 수련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교제한 지 반년이 됐지만 그도 내게 자기 어머니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아마 그는 내가 알고 나서 헤어지자고 할까 봐 두려웠던 것 같았다. 나는 그 시절 파룬궁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몰랐지만 마음속으로 파룬궁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다.
2008년에 남자친구가 “우리 올해 결혼하자”라고 말했다. 나는 부모님께 이 일을 말씀드렸다. 우리 어머니는 집에서 멀다는 이유로 반대하시며 그와 헤어지라고 하셨다. 내 혼사 때문에 어머니는 매일 몰래 우셨고 몸도 많이 야위셨다. 어머니는 또 친척과 친구들을 찾아가 내게 헤어지라고 설득하게 하셨다. 나는 몹시 슬퍼서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전화 통화를 하며 그가 울었고 나도 울었으며 우리는 모두 몹시 슬퍼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마지막에는 그래도 그를 선택했다. 나는 이렇게 클 때까지 줄곧 어머니 말씀을 아주 잘 들었지만, 결혼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내 스스로 결정했고 어머니 말씀을 듣지 않았다.
결혼 이후 시어머니는 늘 나를 데리고 놀러 나가셨다. 놀러 나간다고는 했지만 사실 시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놀러 간다는 것을 구실 삼아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러 가셨던 것이다. 나갈 때마다 나는 시어머니를 도와 스티커를 붙였다. 그때는 무서운 줄 몰랐다. 사악이 수련인을 어떻게 박해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후 시어머니는 자신이 중공에 박해당했던 일들을 내게 들려주셨다. 시어머니는 세뇌반에 여러 번 끌려가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당했고 시아버지가 때리고 욕도 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시어머니가 무척 가엾게 느껴졌다. 시어머니는 이런 일들 때문에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대법에 대해 더욱 확고해지셨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임신을 했다. 나는 신기한 꿈을 하나 꾸었다. 꿈속에서 한 할머니를 보았는데 할머니가 나를 불러 세우더니 물으셨다. “아가, 너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믿니?” 나는 “믿어요. 저희 시어머니가 파룬궁을 수련하시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으시더니 “가자, 나를 따라 들어오너라”라고 하셨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어느 방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뒤 할머니는 나를 바깥방에서 기다리게 하셨고 안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어린 아기를 안고 나와 내게 주셨다. 나는 아기를 받아 안고 포대기를 열어 살펴본 뒤 “여자아이네요”라고 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아래를 보렴.”이라고 하셨다. 나는 아래쪽을 보았다. 나는 첫째 아이는 딸이고 둘째 아이는 아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꿈에서 깼다. 이 꿈은 너무나 생생해서 18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후 정말로 첫째는 딸이었고 둘째는 아들이었다. 정말 너무나 신기했다!
2010년 시어머니는 20여 명의 경찰에게 강제로 납치되셨다. 나는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없어서 아이를 안은 채 시어머니 곁에 서 있었다. 당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나는 무척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시어머니가 살인을 하거나 불을 지른 것도 아닌데 왜 좋은 사람을 잡아가는 걸까? 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경찰)까지 동원하다니. 이런 일은 정말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고 나는 무척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불법적으로 1년 동안 강제노동을 당하며 그 안에서 1년 동안 고초를 겪으셨다. 우리도 밖에서 편히 지내지 못했다. 아이는 아직 첫돌도 지나지 않았는데 장난도 심했고, 다른 사람은 찾지 않고 나 혼자만 힘들게 했다. 시아버지는 매일 수심에 잠긴 채 날마다 밖에 나가 연줄을 찾아 시어머니를 데려오려 하셨다. 생각나는 사람과 찾아가야 할 사람은 다 찾아갔지만 모두 시아버지를 거절했다. 누구도 감히 이 일에 관여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시아버지도 그제야 단념하셨다.
2012년에 내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5~6개월쯤 됐을 때 나는 배가 아파서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에서 뒹굴었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링거를 맞아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내가 네게 연공을 가르쳐 주마. 한 번 해보렴. 네 통증이 가라앉는지 보자꾸나”라고 하셨다. 나는 당시 그다지 큰 희망을 품지 않았다. 나는 “네, 그럼 한 번 해볼게요”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내게 결가부좌를 가르쳐 주셨는데, 내가 오래 앉아 있으면 견디지 못할까 봐 우선 15분 동안 앉게 하셨다. 앉은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몸이 저릿저릿하면서 마치 몸속에 한 줄기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고 느낌이 아주 편안했다. 아직 15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갑자기 배가 아프지 않았다. 내 몸에서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한 것이다!
시누이는 ‘장쩌민 고소’ 때문에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 이후로 매년 경찰이 시누이를 괴롭혔다. 만약 그들이 전화를 걸었을 때 시누이가 받지 않으면 그들은 시아버지를 찾아가 시아버지에게 압력을 가했다. 시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집에서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소란을 피우셨고 또 아주 듣기 거북한 말씀도 하셨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밖으로 나가 몸을 피하곤 하셨다. 이런 일들은 모두 나중에 시어머니가 내게 말씀해 주신 것이다. 나는 출근을 했기에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와서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2021년의 어느 날로 기억하는데, 내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 9시가 넘었었다. 시아버지가 1층에서 나를 기다리시다가 시누이를 좀 도와주라고 하셨다. 나는 “시누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시아버지는 “네가 시누이 대신 영상을 하나 찍어주면 된다”라고 하셨다. 나는 듣자마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집안 분위기도 이상했다. 머릿속에 갑자기 예전에 시어머니가 내게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나는 대략적인 뜻만 기억하고 있었다. ‘남을 도와 수련하지 않겠다는 말을 써주면 안 되고, 영상을 찍거나 사진을 찍어서도 안 된다. 그러면 얼마나 큰 업을 짓게 되겠어. 누가 하라고 시켜도 절대 하면 안 된다.’ 나는 곧바로 시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했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내게 무릎까지 꿇으셨다. 나는 이 일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고 시아버지를 부축해 일으켜 드리면서도 끝내 그 부탁을 들어드리지 않았다. 나는 마음이 무척 괴로웠다. 노인이 자식을 위해 기꺼이 남에게 무릎까지 꿇으시다니. 나는 무슨 일만 생기면 매번 용감하게 직면하지 않고 도피하기만 하는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몇 달이 지나 시아버지는 또 시누이 일로 다시 소란을 피우기 시작하셨다. 이번에는 더 심하게 소란을 피우셨다.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와 시누이 중 아무도 자기 말을 듣지 않자 칼 한 자루를 가져와 자신을 찌르려 하셨는데 내가 그 칼을 빼앗았다. 이번 일로 나는 너무 놀라 심장병이 도졌다. 내 심장이 꽉 조여드는 것 같았고 온몸이 저려왔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침실에 숨어서 나오지도 않았다. 나는 억지로 참으며 2층으로 올라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집에 오라고 했다. 그는 내 목소리가 이상한 것을 듣고 서둘러 집으로 오다가 하마터면 다른 사람의 차와 부딪힐 뻔했다. 잠시 후 나는 진정이 됐고 마침 남편도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자 그는 먼저 위층으로 올라왔고 내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랐다. 나는 “나 많이 괜찮아졌어, 아무 일 없어. 빨리 아버님 좀 어떻게 되셨는지 가봐”라고 말했다. 나는 시아버지가 집에서 늘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누가 아버님께 전화를 걸었든 그 사람에게 다시 전화 걸어. 이후에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우리 아버님을 찾지 말라고 해. 아버님은 연세도 많으시고 몸도 안 좋으시니까, 만약 우리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해.” 남편이 그들에게 전화를 건 이후 몇 년간 시아버지는 다시는 소란을 피우지 않으셨다.
사실 2019년에 나는 몇 달 동안 법공부를 한 적이 있다. 그때는 그저 대법이 좋다는 것만 알았을 뿐 법공부가 깊지 못했고 연공도 하는 둥 마는 둥 했으며 꾸준히 이어가지도 못했다.
2021년 말에 나는 직장을 그만뒀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했고, 게다가 내 몸도 줄곧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사를 찾아가 진찰을 받고 약을 많이 먹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장기간 불면증에 시달리며 술로 나 자신을 마취시켰다. 첫 1주일 동안은 밤에 마시면 그래도 4~5시간은 잘 수 있었는데, 그 이후에는 술을 마셔도 더는 효과가 없었다. 오랜 불면증으로 우울증까지 왔고 매일 죽고 싶었지만 죽을 수가 없었다. 허리도 좋지 않아 툭하면 일어서지 못했고, 며칠을 누워 있어야만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심장도 좋지 않았다. 말하자면 온몸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보기만 하면 “너는 왜 이렇게 말랐니?!”라고 말했다. 안색도 좋지 않아 거무스름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매일 그저 정신없이 멍하게 살아가며 사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매일 고통 속에서 발버둥 쳤다.
직장에 나가지 않은 지 며칠 안 됐을 때 갑자기 법공부를 하고 연공이 하고 싶어졌다. 나는 시어머니를 찾아가 연공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내가 법공부와 연공을 하겠다는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셨다. 나는 낮에는 법공부를 하고, 새벽에 일어나 연공을 했다. 다시 한번 대법 책을 들어서 읽으니 마치 정수리에 감로수를 붓는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알고 보니 이것은 천서(天書)이자 보서(寶書)였구나!’ 나는 몹시 감격했다. 나는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오직 수련을 해야만 자신을 깨끗이 씻어내고 자신의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보면 볼수록 더 보고 싶어졌고, 두 달 안에 모든 대법서적을 한 번 다 읽었다.
시어머니는 내가 연공을 꾸준히 해내지 못할까 봐 내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거라. 가부좌 30분, 포륜 30분 정도 하고, 처음 시작할 때는 조금만 해도 괜찮단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시어머니 말씀을 듣지 않았고 처음 포륜을 시작할 때 나는 1시간을 버텼으며, 가부좌는 최장 40분을 했다. 나는 1시간을 돌파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해도 돌파할 수 없었고 식은땀이 날 정도로 아팠다. 가부좌를 한 지 7일째 되던 날,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전법륜)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마음속으로 묵송했는데 얼마나 묵송했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1시간을 버티고 앉아 있었다. 가부좌가 1시간을 돌파한 이후 몸이 하루가 다르게 가벼워졌다.
내가 연공한 지 이틀째 되던 날 허리 부위에서 ‘뚝뚝’ 소리가 몇 번 나는 것을 들었는데 갑자기 허리가 아프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얼마나 오래 서 있어도 괜찮아졌다. 내 허리가 다 나은 것이다.
수련에 따라 내 몸도 건강을 회복했다. 위대하신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리며 사부님께 엎드려 절을 올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7/28/51279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7/28/512796.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