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실하게 수련의 길을 잘 걸어 사부님의 은혜와 서약을 저버리지 말자

글/ 중국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8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이에 나의 수련 체험을 적어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린다.

1. 인연으로 대법에 돌아오다

법을 얻기 전 나는 쟁투심이 매우 강하고 체면을 몹시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며 속세 속에서 방황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27세 되던 해 생활의 큰 변고로 인해 나는 발걸음을 늦추고 인생과 운명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때 파룬궁이 떠올랐는데 그 전부터 대법에 대해 막연한 호감을 품고 있었다.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파룬궁 연공 음악은 정말 듣기 좋고 들을수록 더 좋아져. 다른 기공 음악은 정말 듣기 싫은데 말이야.” 공원에서 파룬궁 연공장 앞을 지날 때 나는 남편에게 다른 사람의 연공에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하라고 눈짓을 주곤 했다. 동료도 “우리 직장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친하든 안 친하든 모두 당신에게 엄청 잘해주던데 당신도 파룬궁을 해야 할 것 같아”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인연이었다.

나는 예전에 동료에게 빌렸던 ‘파룬궁(法輪功)’을 찾아와 읽기 시작했다. 나의 방황은 책 속에서 답을 찾았고 이어서 책을 따라 혼자 연공 동작을 배운 뒤 공원에 가서 연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부러 아침 일찍 일어났지만 가보니 아무도 없었고 청소하는 사람이 모두 연공을 마쳤다고 알려주었다. ‘좋다, 내일은 반드시 좀 더 일찍 와야겠다.’ 둘째 날 가보니 많은 사람이 포륜(抱輪)을 연마하고 있었다. 기억에 두정포륜(頭頂抱輪)이었고 조금 연공하다가 끝이 났다. ‘또 늦었구나.’ 셋째 날에는 일부러 많이 일찍 갔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 제3장 공법을 연공하고 있었다. 나는 따라 연공했고 보도원은 내가 새로 온 것을 보고 다가와 동작을 가르쳐주며 주로 ‘전법륜(轉法輪)’으로 법공부해야 한다며 어디에서 파는지 알려주었다. 나는 당일로 보서를 모셔왔다. 동료도 이 사실을 안 이후 곧바로 와서 연공 동작을 가르쳐주고 집에서 가까운 연공장과 법공부 장소를 알려주었다. 사부님의 안배하에 나는 정식으로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천만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인연이 이어졌다.

2. 수련 중의 신기한 체험

1) 온몸이 가벼워진 상태를 느끼다

어느 날 아침 연공장에서 연공을 마친 이후 몸이 매우 가벼워진 것을 느끼고 기뻐서 이리저리 높이 뛰었는데 왜 이렇게 가벼운지 마치 몸무게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2) 심장으로 생각하는 느낌을 체험하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설법하신 것과 똑같았다. 확실히 나는 심장(가슴)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3) 가부좌할 때 몸이 늘 뒤로 젖혀졌고 나중에는 위로 끌어올려지는 듯했다. 한쪽 다리가 사라진 것을 느꼈고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으며 마치 우주와 하나로 합쳐진 그런 느낌이었다. 자신이 위로 상승하는 것을 느꼈고 누워 있을 때는 자신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연공 초기 어느 날 밤 별이 나에게 매우 가까이 있는 것을 보았고 한번은 사상이 단번에 공(空)의 상태로 진입해 속인의 일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이후 속인의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며 세상을 떠날 때는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4) 파룬을 보다

처음으로 회전하는 파룬(法輪)을 본 것은 대략 2000년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교란을 배제하고 진상 전단지 한 장을 복도 창틀 위에 올려놓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개를 들어보니 분홍색 파룬이 하늘에서 회전하고 있었고 한참 이후에야 사라졌다. 그때 나는 아들을 안고 혼잣말로 “정말 파룬이네”라고 말했다. 나는 육안으로 파룬을 보았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제자가 나가서 사람을 구하도록 격려해주신 것이었다. 이후 나는 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늘 주변에 파룬이 함께하는 것을 보았다.

3. 법공부의 중요성을 깨닫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공부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간곡히 가르쳐주셨다.

1) 사악한 거짓말을 타파하다

박해가 시작된 이후 나는 비록 매일 연공하지는 못했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매일 법공부를 했다. 그때는 남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매일 점심에 집에 돌아와 방에 들어가서 서둘러 법공부를 했다. 매번 반 강의밖에 배우지 못했지만 법을 얻은 지 거의 1년 된 나로서는 매일 법공부하는 것에 의지해야만 대법을 떠나지 않고 각종 혼란스러운 현상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줄곧 확고하게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직장 상사가 나를 불러 면담했을 때 나는 그녀에게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은 틀렸고 영상에 문제가 있으며 방송국에서 그 ‘불(不)’ 자를 빼버려 결과적으로 의미가 정반대가 됐다고 말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한 번도 세계 종말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며 오히려 세계 종말을 선전하는 것은 모두 사이비교라고 알려주셨다고 말했다.

2) 법을 외워 정공 1시간을 돌파하다

20년 전 명혜망에서 막 법 암기 체험을 교류하기 시작했을 때 나도 수련생을 따라 외우기 시작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점심시간을 이용해 대략 8개월에 걸쳐 한 번 외웠다. 예전에는 정공(靜功)을 45분밖에 하지 못했는데 법을 외운 이후부터 1시간을 할 수 있게 됐고 그 이후 줄곧 최소 1시간을 유지했다. 이후 다시 두 번째로 외웠다. 올해부터 세 번째로 외우기 시작했는데 나는 매일 법을 한 강의 배우고 최소 한 페이지를 외운다. 법 암기는 나를 집중하게 하고 더 많은 법리를 깨닫게 하며 진도를 재촉하지 않아도 추구하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얻게 돼 매번 법을 외울 때마다 수확이 있었다.

3) 법공부는 나에게 정을 내려놓게 하고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했다

아이는 박해가 시작된 이후 태어났다. 남편이 장사를 하느라 집안일을 거의 돌보지 않았기에 나와 아들은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속인 생활은 기본적으로 아들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가 대학에 진학해 집을 떠났을 때 나는 갑자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졌다. 당시 비교적 심한 우울증 증상이 나타났다. 걸핏하면 눈물이 나고 두려웠으며 두통이 생기고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밖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인 환상처럼 느껴졌다. 어떤 물질이 다가왔는데 나는 그것이 다른 공간의 물질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그것이 오면 느낄 수는 있었지만 막아낼 힘이 없었다. 당시에는 방에 있을 수 없었고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알 수 없는 고독과 두려움을 느껴서 누구라도 찾아야 했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잠시 이야기라도 해야 했다. 더 심각한 것은 대법서적을 들 수 없었고 법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발정념도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나는 아이에 대한 정이 너무 무거워 사악에게 틈을 주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사부님께 청했다. “사부님 제자를 도와주십시오. 저는 법공부하고 싶고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하고 싶습니다.” 사부님의 안배하에 혼자 사는 한 노년 수련생이 내가 그 집에 가서 저녁에 법공부하는 것을 허락했다. 우리는 그저 법 한 강의를 배웠다. 나는 그 수련생에게 내 상황을 말하지 않았다. 처음 법공부를 하고 돌아온 이후부터 무섭지 않았고 스스로 법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매주 1~2회 그곳에 가는 동시에 나 스스로 대량으로 법공부하고 대법 일을 많이 했다. 대략 네 번 정도 갔을 때 나는 완전히 우울증에서 벗어났다. 노년 수련생은 낮에도 법공부 팀이 있었고 사람을 구하는 일로 매우 바빴기에 그 이후로는 더 이상 가지 않았다.

이 맹렬한 고난을 지나오며 법공부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련 형식인 단체 법공부는 정말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 속에 담긴 더 깊은 오묘함은 우둔한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사부님 말씀대로 해야 한다. 단체 법공부는 매우 중요하며 아직 법공부 팀에 참여할 조건이 안 되는 수련생도 자주 수련생과 교류해야 한다. 문제가 있으면 사부님께 일깨움과 가지를 구하고 수련생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서로 도울 수 있다.

4. 시험과 중생구도

1999년 7월 19일 우리 시의 수련생들은 모두 시정부 밖에 와서 청원하며 정부가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박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7월 20일 우리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기 시작했지만 도중에 저지당해 돌아왔고 한 파출소로 끌려가 이름과 주소를 등록한 이후 집으로 돌아왔다.

7월 21일 우리 세 명의 수련생은 택시를 타고 성 정부로 갔으나 도중에 가로막혀 집으로 돌아왔다. 7월 22일부터 직장에서는 전 직원에게 사악한 박해 정책을 전달했고 상사가 나를 불러 면담했다. 집안 친척들은 심지어 타지에서 달려와 수련을 포기하라고 설득했다. 당시에는 누가 권해도 소용없었고 파룬궁은 좋은 것이며 반드시 수련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은 매우 두려웠다. 당시 회의가 두려웠고 매번 회의에서 파룬궁을 언급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내 공간장에 두려운 요소가 너무 많았을 수도 있고 내가 직장에서 법을 늦게 얻어 평소 남에게 만만하게 보이는 유형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무실 주임이 나를 찾아와 언론 기관에서 나를 인터뷰하려 한다고 했다. 나는 즉시 엄정하고 큰 소리로 ‘나는 인터뷰를 거절합니다’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두려운 마음도 없었고 결과도 생각하지 않았으며 단지 파룬궁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나는 혼자 수련하는 단계에 들어섰고 일반적으로 수련생과 접촉하지 않았다. 주변 동료 중 일부가 상사의 안배로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부님의 새로운 경문이 나올 때는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다.

2001년 7월 사부님의 안배하에 나는 다른 직장의 수련생을 알게 됐고 정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사부님의 경문 ‘정법시기 대법제자’를 읽은 이후 나는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엡손 프린터 한 대를 사 와서 먼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인쇄했고 이어서 밖으로 나가 붙였다. 기억에 어느 날 점심 무렵 무더운 날씨였다. 나는 전봇대를 하나 점찍어 두었는데 멀지 않은 곳에 사람이 있어서 아무도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마침 화물차 한 대가 다가와 중간에 멈춰 섰고 나는 얼른 스티커를 꺼내 전봇대에 붙였다. 성공이었다. 이것이 처음이었고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한번은 자전거 바구니에서 누가 두고 간 진상 편지를 보았다. 나는 컴퓨터로 한 글자 한 글자 타이핑했는데 대략 여섯 페이지 정도였다. 편집을 마친 이후 프린터로 출력해 나가서 배포했다.

2003년부터 수련생이 매주 진상 자료를 전해주었지만 많지는 않았다. 당시 박해 형세는 매우 심각했다. 나는 출근해야 했고 주말에는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했기에 안정적으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출퇴근길에 매일 한두 부부터 시작했다. 당시 내 생각은 부지런함으로 부족함을 보완하며 끈기 있게 견지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자주 ‘대법제자가 안 하면 누가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어느 날 ‘풍우천지행(風雨天地行)’ CD 한 장을 받았는데 CD가 사람을 구하는 효과가 좋다고 느꼈다. 나는 전자상가에 가서 CD 복사기 한 대를 사왔고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결국 사부님의 가지하에 CD를 구워냈다. 나의 깨달음은 당신에게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사부님의 가지를 얻게 돼 결과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이다. 이제 좋게 됐다. 이 CD 내용은 아주 좋아서 계속 배포할 수 있었다.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 배포할 수 있고 원하는 만큼 배포할 수 있었다. CD 굽기 항목은 이렇게 시작돼 줄곧 이어졌다. 진상 CD에서부터 ‘9평 공산당’, 인터넷 봉쇄 돌파 소형 CD, 션윈 공연 CD까지, CD에 소개서를 인쇄해 넣는 것부터 CD 라벨 스티커, 그리고 직접 CD에 인쇄하는 방식까지, VCD에서 DVD로, 지퍼백에서 CD 봉투, 정교한 CD 케이스까지 줄곧 이 길을 걸어왔다. 동시에 나는 복사 기능이 있는 복합기도 한 대 사서 수련생에게 받은 소책자를 내가 직접 복사해 필요한 만큼 인쇄했다. 스스로 자료를 만들고 스스로 배포하는 것이 좋다고 느꼈다. 자료점 수련생의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나의 요구도 충족시켰다. 나는 내 방법을 적극 추천했고 두 명의 수련생도 CD 복사기를 사서 스스로 굽고 배포했다.

2008년 정식으로 명혜망에 소형 자료점 설립을 알렸고 사부님의 가지와 보호하에 줄곧 안정적으로 운영됐다. 나는 주로 내게 필요한 자료를 공급하면서 동시에 주변의 몇몇 수련생에게 명혜주간과 자료를 인쇄해주었다. 많을 때는 6명의 수련생에게 공급했다. 운영 방식은 나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소모품 구매, 기기 구매, 시스템 설치, 시스템 유지보수를 도맡았고 프린터에 문제가 생기면 수리점에 가서 고쳤다. 돌이켜보니 내 손을 거쳐 간 프린터가 대략 19대였다. 많을 때는 우리집에 4대의 프린터가 있었다. 자금도 나 혼자 해결했다. 나는 협조인과 연락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처음에는 누가 협조인인지도 몰랐다. 한 수련생이 발정념 등 전체적인 협력이 필요한 공지를 전달해주곤 했다. 자료를 만들면 그중 두세 명의 수련생에게 보내주었고 그러면 그들이 다시 연락을 취했다. 10여 년 동안 전화를 하지 않아 어떤 수련생은 이름도 모르지만 우리는 줄곧 이렇게 협력하며 대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해왔다.

어느 날 나는 꿈을 꾸었다. 내가 한 교실에 들어갔는데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내가 온 것을 보고 무척 기뻐하며 두 번째 줄 빈자리가 내 자리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첫 번째 줄에 빈자리가 하나 있고 거기에 많은 선이 연결된 컴퓨터 한 대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사람이 내가 온 것을 보고 그 컴퓨터를 내 자리로 가져다주었다. 꿈에서 깬 이후 나는 새로운 항목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수련생이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 명단을 많이 가져와서 인터넷에 올려달라고 했다. 원래 나는 주변에서 나와 연락하는 사람들의 삼퇴 명단만 올렸었다. 갑자기 명단이 많이 늘어났지만 대법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이 일이 내게 맡겨진 이상 잘해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매번 명단을 받으면 지체 없이 인터넷에 올렸다. 삼퇴 인원이 나 때문에 늦어져서는 안 됐기에 매번 반복해서 확인한 이후에야 전송했다. 이렇게 몇 년을 했다.

그 이후 명단을 전달하던 수련생에게 병업 고비 가상이 나타났다. 그래서 나를 더 이상 거치지 않게 됐는데 아무도 내게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더 편리한 방법이 생겼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하나의 정체(整體, 공동체)이고 대법 항목은 누가 하든 다 똑같으니 가장 최적의 방안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그러면 나는 다른 항목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몇 년 전 수련생이 말하기를 많은 자료점에서 진상 자료를 만들지 않고 주로 대면해서 진상을 알린다고 했다. 내가 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서도 확실히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 귀에 들어왔으니 어찌해야 하는가? 진상 자료는 무조건 배포해야 한다. 필요가 없다면 명혜망에서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보완해야겠다. 원래 나는 이 지역에서 자료를 배포하지 않았었다.

5년 전부터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나가서 배포하기 시작했다. 나갈 때는 휴대폰을 챙기지 않고 스쿠터 번호판이 보이지 않게 가렸다. 매일 다른 아파트 단지로 가서 한 단지당 한 라인만 배포했는데 하루에 1~2개 라인을 배포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매일 나갔다. 주말에는 자료를 만들어 다른 곳에 가서 배포했다. 자료 배포는 이미 내 일상생활의 일부가 됐다. 나가기 전에 발정념을 했고 길에서도 발정념을 하거나 파룬따파하오를 외우며 정신을 집중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자주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가지해주십시오. 제자는 나가야 합니다. 나가서 배포하기만 하면 누군가는 구원받을 희망이 생깁니다.’ 게다가 요즘 자료에는 모두 전통문화 내용이 들어 있다. 나는 명혜망에서 더 이상 필요 없다고 공지할 때까지 줄곧 자료를 배포할 것이다.

명혜망에서 휴대폰으로 진상을 알리는 교류 글을 막 보았을 때 나는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이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으니 이 항목의 효과가 아주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땅히 해야 했다. 나는 인터넷에서 관련 기술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중고 휴대폰 시장에 가서 추천 브랜드 휴대폰을 사고 이어폰도 샀으며 수리점에 가서 마이크도 떼어냈다. 이어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설정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나는 제자가 이런 소망만 품었을 뿐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도와주시고 나를 앞으로 밀어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완성된 첫 번째 기기를 수련생이 몇 년 동안 줄곧 사용했다. 그다음은 MMS 단체 발송, 그리고 자동 발신까지 모두 사부님의 가지하에 성공시켰고 이를 수련생들에게 보급했다. 이와 동시에 나는 수련생들을 위해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주고 음성을 업데이트해주었으며 전화번호를 추가하고 삼퇴 명단을 수집해 인터넷에 올려야 했다. 한동안 우리 지역의 휴대폰이 다 내게 온 것 같았다. 가끔 큰 보따리로 가져오면 반나절 내내 작업해야 했다. 내게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내게 맡겨졌다면 이는 나의 책임이니 잘해내자.’ 이 휴대폰 항목은 줄곧 계속하다가 2018년 휴대폰 유심칩을 구하기 어려워져서야 중단했다.

2001년 가을, 한번은 수련생이 자료점에 돈이 필요하니 내게 좀 낼 수 있는지 물었다. 어떤 수련생은 자료 배포를 아주 잘해서 보따리째 배포하지만 돈을 내지 못해 매우 안타까워한다고 했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1만 위안(약 200만 원)을 내놓았다. 당시 대법제자로서 돈이 있으면 돈을 내고 힘이 있으면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매년 자료점을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적게는 1~2만 위안, 많게는 4~5만 위안을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지금까지 내고 있다. 한번은 수련생이 내게 당신이 낸 돈으로 농촌에 4개의 자료점을 세웠다고 말했다. 나는 이 돈이 사람을 구하는 작용을 일으켰다는 사실에 무척 안도했다. 나는 내 돈을 자유롭게 지배할 권리가 있고 집안의 큰 지출도 내 몫이 아니었다. 나는 이번 생의 내 생활 방식에도 이유가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마땅히 이 일을 해야 하고 이것이 대법이 내게 부여한 책임이니 잘하지 못하면 안 된다. 자료점에서 필요로 하는 한 나는 줄곧 이 일을 계속할 것이며 우리가 법정인간의 그 순간을 맞이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5. 휴대폰에 대한 집착을 버리다

명혜망에서 휴대폰에 집착하는 것에 대한 해로움에 대해 여러 차례 교류가 있었고 나 역시 휴대폰이 마굴이자 도청 장치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실천하는 과정에서 늘 반복됐다. 짧은 영상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이 방면에서 노년 수련생들이 좀 더 낫다고 생각하며 젊은 수련생에게 있어서 휴대폰은 고층차를 향한 우리의 수련에 객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진정으로 큰 고비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 몇 년 전 실버폰, 학생폰도 사보았지만 직장 업무 단체방 때문에 반드시 위챗을 써야 했다. 스마트폰을 들었을 때 몸 안의 마성은 마치 며칠 동안 휴대폰을 보지 못한 것을 보상받으려는 듯 보복적으로 작용했다. 며칠을 밤낮없이 보았고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여러 번이었다. 매번 뼈저리게 후회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또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크게 넘어졌다. 양다리와 팔에서 피가 났고 왼쪽 가슴이 아파서 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누울 때 팔로 지탱해야만 일어날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이것이 휴대폰을 봐서 사악에게 틈을 주어 박해당한 것임을 인식했다. 인정하지 않았고 출근과 집안일을 조금도 미루지 않았다. 아침에는 힘겹게 일어나 연공을 했고 아플수록 더 연공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동작이 가장 해야 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사부님의 가지하에 3일 만에 거의 다 나았다.

나는 안으로 찾아보았다. 왜 내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을까? 주로 주의식(主意識)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중독시킨 그 짧은 영상들을 분석해보니 그것들은 쓰레기 중의 쓰레기였다. 내가 그것을 보려 한 것은 주로 색욕심이 불러온 것이었고 보고 난 이후 색욕심이 한층 더 강화됐다. 어떻게 해야 할까? 속인에서 수련을 시작하려면 가장 먼저 색욕을 버려야 한다. 비록 층층이 일부를 버리기는 했지만 지금은 반드시 그것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

속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나는 이 휴대폰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 심성으로는 우선 물리적으로 격리해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휴대폰을 집으로 가지고 올라가지 않았고 직장에도 들고 가지 않았으며 결국 자동차 안에 두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나는 뜻밖에도 인터넷에서 위챗은 되지만 브라우저가 없고 아무것도 설치할 수 없는 학생폰 모델 하나를 찾아냈다. 이 폰은 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주었다. 지금 이 폰을 쓰니 생활이 훨씬 단순해진 것을 느낀다. 위챗에서 불필요한 공식 계정은 팔로우하지 않았고 추천 구독 기능도 껐다. 게다가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가급적 위챗을 쓰지 않는다. 나는 법공부와 명혜망을 보는 데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하고 다운로드해 둔 에포크타임스 문화 채널의 ‘천고의 영웅 인물’, ‘고대 수련 이야기’ 등도 본다. 마침내 이 거대한 마굴에서 멀어졌다.

6. 근본 집착을 버리다

나의 근본 집착은 무엇일까? 전체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았다. 어떤 재난이 와도 좋은 사람과 무관하고 수련인과 무관하다는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을 때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수련했으니 재난은 나와 무관하며 재난을 피할 수 있고 지구에 남을 수 있어서 기뻤다. 법공부하며 성명쌍수(性命雙修) 내용을 배울 때는 속으로 ‘이 대법은 정말 좋구나. 젊어질 수 있겠어’라며 기뻐했다. 사실 이것이 바로 인체에 신경 쓰고 개인적인 해탈을 추구하는 나의 근본 집착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아득히 먼 천체에서 왔고 중생의 부탁을 짊어지고 있다는 이 막중한 책임감이 내 의식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최근 2년간 사부님의 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인류사회는 왜 미혹(迷)의 사회인가’를 보고 나서야 나는 내가 아득히 먼 천체에서 왔고 천국 중생을 대표해 인체에 들어와 수련하며, 인체는 단지 내가 이곳에 오기 위해 반드시 입어야 하는 옷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인체로 수련하며 내 천국의 중생을 구해야 한다. 동시에 나는 인체의 주재자이고 내 안에도 무수한 중생이 있으니 나는 그들 또한 구해야 하며 수련을 통해 그들이 신우주의 요구에 부합하게 해야 한다. 나와 인체의 관계를 깨닫고 나서야 나는 집착을 내려놓고 중생을 구해야 할 내 책임을 깊이 새기게 됐다.

지난 27년의 수련 길을 돌아보면 사부님께서 겪으신 헌신은 우둔한 내가 알 수 없는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린다. 제자는 예전에 걸어왔던 길을 소중히 여기고 앞으로의 수련 길을 착실하게 잘 걸어 사부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서약을 저버리지 않겠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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