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희 몇 명은 한 법공부 장소 및 연공장의 대법제자들입니다. 줄곧 하나의 소원이 있었는데 공동으로 단체 환경을 지키고 대법에 동화하며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정법(正法) 수련의 길을 확고부동하게 바르게 걸어온 과정과 체득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싶었습니다.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이 소중한 순간이 마침내 이뤄졌습니다. 법에 부합되지 않는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단체 법공부와 연공 속에서 공동으로 정진하며 대법에 동화하다
저는 롄화(蓮華, 가명)이며 현재 80세입니다. 1999년 7월 저와 셋째 올케 등 몇몇 수련생은 G 수련생 집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당시 외부에서 어렴풋이 ‘이제 연공을 못 하게 한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런 작은 바람에도 G의 남편은 마음이 불안해져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하는 것을 원치 않게 됐습니다. 셋째 올케는 아주 확고한 대법제자였고 셋째 오빠도 온후하고 성실하며 아주 확고하고 착실히 수련하는 대법제자였습니다. 셋째 올케가 자기 집에서 법공부를 하자고 제안했고 셋째 오빠도 적극 지지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법공부 장소가 설립됐습니다.
셋째 올케네 집은 아주 평범한 농촌 집으로 방이 네 칸이고 각 방이 겨우 6~7제곱미터에 불과하지만 꽤 넓은 마당이 있었습니다. 겉보기에 보잘것없는 농가지만 저희가 공동으로 수련하는 ‘사원’이 돼 매일 많게는 14명 적게는 4~5명이 모입니다. 이곳에서 저희는 26년 정법 수련 과정을 지켜보며 대법 수련인의 소중하고 비범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써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광대한 우주 속에 대법 사부님께서 인간 세상에 대법을 널리 전하신 자비와 위덕을 기록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셋째 올케 집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7시 발정념을 마치자마자 단정하게 차려입고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왔습니다. 여름에는 마당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셋째 오빠가 방에서 마당으로 전선을 끌어왔고 사람들은 불빛 아래서 ‘전법륜(轉法輪)’을 손에 들고 한 사람씩 한 단락씩 진지하게 돌아가며 읽었습니다. 글자를 잘못 읽는 수련생이 있으면 다들 제때 지적해 발음을 바로잡아주었고 잘못 읽은 수련생은 즉시 고쳐서 다시 정확한 발음으로 읽었습니다.
C 수련생은 뇌졸중 증상이 있어 법을 읽는 속도가 느렸고 틀린 글자가 좀 많았지만 다들 참을성 있게 법을 읽는 것을 들었습니다. 글자를 잘못 읽으면 정확한 발음으로 읽도록 다들 도와주었습니다. 바르지 못한 신체 상태 때문에 때때로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침을 흘렸는데 수련생들은 그런 모습이 보이면 얼른 화장지를 건네주어 깨끗이 닦게 해 침으로 소중한 대법 서적을 더럽히지 않게 했습니다. C는 얻기 힘든 단체 법공부와 단체 연공에 적극적으로 참가했고 신체도 변화하며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남편도 수련생이었지만 놀기를 좋아하고 정진하지 않다가 구세력에게 빈틈을 찔려 병업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자녀들은 모두 효심이 깊어 제가 혼자 고향 집에 사는 것을 원치 않아 저를 도시로 데려갔고, 자신들 집에서 여생을 편안히 보내게 하려 했습니다. 그 기간에 왼쪽 다리가 아파서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착한 며느리가 그것을 보고 손자를 시켜 병원에 가도록 권하게 했습니다. “병원에 가지 않을 거다”라고 말하자 손자는 “할머니 제가 업고서라도 모시고 갈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속으로 ‘손자가 키도 크고 덩치도 커서 정말 억지로 업고 가려면 갈 수도 있겠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고향 수련생들이 생각나서 L 수련생과 셋째 올케에게 전화해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했습니다. 셋째 올케는 “돌아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안정됐고 의지할 곳이 생겼습니다.
자식들을 설득해 남편의 사십구재를 지내는 기회를 이용해 고향에 남았습니다. 셋째 오빠 부부는 저를 자신들 집으로 데려가 지내게 했고 그렇게 40일을 머물렀습니다. 아침 식사는 셋째 올케 집에서 했고 점심과 저녁은 우리집에 돌아가 직접 해 먹었습니다. 속으로 ‘끼니마다 수련생 집에서 먹으며 폐를 끼칠 수는 없어. 아들 며느리 온 식구가 모두 셋째 올케 집에서 밥을 먹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셋째 오빠 부부는 만두, 찐빵, 고기튀김 등 특식을 만들 때마다 제 몫을 남겨두었습니다.
당시는 한창 추운 겨울이었는데 이 40일 동안 셋째 오빠는 자정 발정념을 마친 후 우리집으로 걸어가 타고 있는 연탄난로에 연탄을 충분히 채워 제가 낮에 집에 돌아갔을 때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셋째 오빠 부부의 행동은 제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직 진정하게 수련하는 대법제자만이 이렇게 해낼 수 있구나!’
이 법공부 장소가 막 설립됐을 때 셋째 오빠 부부는 겨울에 동쪽 방 온돌 옆에 연탄난로를 피웠고 수련생들은 방 한 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습니다. 온돌이 작았으므로 셋째 오빠 부부는 요와 이불을 얼음장같이 차가운 넓은 서쪽 방으로 옮겼습니다. 그렇게 공간을 비워 수련생들이 따뜻한 온돌에 모여 앉아 법공부할 수 있게 했습니다. 셋째 오빠는 항상 온돌 앞 벽에 붙은 수납장 위에 앉았고 때로는 작은 의자를 가져다 온돌 구석에 앉았습니다. 나중에 법공부하는 수련생이 점점 많아지자 셋째 오빠 부부는 넓은 서쪽 방에도 연탄난로를 피웠습니다. 그곳에는 온돌 하나에 침대 하나가 더해져 공간이 넓어졌고, 사람들은 서쪽 넓은 방에서 법공부와 연공 및 발정념을 했습니다. 매일 자정 발정념을 마칠 때까지 계속한 후에야 자리를 떠나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셋째 오빠 부부는 겨우 밭 몇 마지기 농사를 지어 얻는 수입에 의존했고 먹고 입는 것을 아끼며 살았습니다. 셋째 올케가 동쪽 방에 난로를 피우고 서쪽 방에도 난로를 피우는 것을 보자,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는 난로 하나 피우는 것도 아까워할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셋째 오빠 부부도 넉넉하지 않은데 수련생들에게 따뜻한 법공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사심 없이 헌신하고 있으니 우리가 돈을 좀 모아 셋째 올케에게 연탄을 사주자. 누가 얼마를 내든 제한하지 말자’라고 생각하고 몇몇 수련생과 상의했습니다. 수련생들이 모두 제 제안에 동의했고 저희는 돈을 모아 연탄 장수에게서 연탄 500kg을 사서 셋째 올케 집으로 배달하게 했습니다. 셋째 오빠 부부는 수련생들이 돈을 내는 것을 단호히 거절했고 연탄값과 같은 액수의 돈을 대법 진상 자료를 만드는 데로 돌려 중생을 구하는 데 쓰게 했습니다.
셋째 올케 집에 법공부하러 오는 수련생 대부분이 마을 수련생이었고 세 명만 다른 마을 사람이었지만 모두 멀지 않아 약 1km 정도 거리였습니다. 일 년 내내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꾸준히 단체 법공부 장소에 모였습니다. 저는 단체 법공부와 단체 연공이 사부님께서 남겨주신 공동으로 정진하는 수련 형식이며 소중하고 얻기 힘든 수련 환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밖에 태풍이 불었지만 여전히 집을 나서 법공부 장소로 향했습니다. 태풍이 50kg 조금 넘는 제 몸을 휘감아 똑바로 서 있기 힘들었지만 농가의 벽에 바짝 붙어 간신히 몸을 이동시키며 가까스로 법공부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날 비록 도착한 수련생이 평소보다 몇 명 적었지만 저희는 흔들림 없이 1시간 동안 전법륜을 공부하고 다섯 가지 공법을 모두 연마했으며, 발정념 시간을 늘려 자정 발정념까지 마치고 나서야 자리를 떠났습니다. 가끔 폭설이 내리는 날이면 한 걸음 뗄 때마다 미끄러지며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면서도 꾸준히 법공부 장소에 왔습니다. 다들 이 단체 수련 환경을 아주 소중히 여겼습니다.
수련생들이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하며 법공부 장소에 모여 있다 보니 화장실에 가는 난제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주로 소변보는 일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셋째 오빠 부부는 요강을 준비했고 사람들은 요강에 소변을 보았습니다. 수련생들이 자발적으로 화장지를 가져와 함께 쓰도록 했지만 문제는 매일 소변이 한 통씩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셋째 오빠는 지게로 오수를 져서 마을 남쪽의 물웅덩이(말라서 물이 없었음)에 가져다 버렸습니다. 나중에 셋째 오빠가 구세력의 교란을 받아 온돌에 눕게 되자 요강을 비우는 책임이 셋째 올케에게로 넘어갔습니다. 매일 아침 셋째 올케는 요강을 들고 40~50미터를 걸어가 탁한 소변을 남쪽 웅덩이에 쏟아부었습니다.
수련생들이 매일 앉는 침대보를 셋째 올케는 자주 빨고 갈아주었으며 소파 덮개도 깨끗이 빨았습니다. 셋째 올케의 얼굴에는 항상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어 있었고 자비롭고 상서로운 기운이 배어 있었습니다.
저의 깨달음은 26년의 정법 수련의 길을 걸어오며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대법이 세상에 널리 전해진 것에 감사드리며, 사부님께서 저와 수련생들에게 이 소중하고 정진하는 단체 법공부 장소와 연공장을 안배해주신 것에 감사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또한 저희가 비바람 속에서도 굳건히 손을 맞잡고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해준 셋째 오빠 부부의 이타적인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2. 27년을 하루같이 매일 법공부 장소에 오다
저는 샹화(祥花, 가명)로 올해 74세이며 1998년에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수련 전에 몸이 몹시 좋지 않아 위장병으로 자주 배가 아팠고 심한 치루와 어지럼증 등이 있어 온종일 편할 때가 없었는데 약을 먹고 의사를 찾아가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온 가족이 근심에 잠겨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남편은 마을 당 지부 서기였습니다. 1998년 어느 날 파룬궁이 몸을 건강하게 하는 데 기적적인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듣고 제게 파룬궁을 배우는 곳이 어디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알아보니 저희 마을에만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40명이 넘었고 법공부 장소도 있었습니다.
저는 법공부 장소인 셋째 오빠 집에 와서 수련생들이 돌아가며 책을 읽는 것을 보았지만 글자를 몰랐으므로 그저 책을 보며 남들이 읽는 것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연공장에 와서 법공부했고 혹독한 추위나 무더위, 비바람에도 거른 적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낮에 두 차례, 저녁에는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26년을 하루같이 매일 와서 법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섣달그믐날에는 예외가 있었습니다. 과거 섣달그믐날 밤에 저희는 모두 자전거를 타고 나가 대법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길에는 사람도 차도 거의 없었습니다. 밤새 이동하며 현수막을 걸었는데 얼마나 멀리 나갔는지 몰랐으며 펄럭이는 대법 현수막을 바라보면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해 설날은 정말 알차고 즐겁게 보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저희 대법제자들은 법공부 장소에 모여 단체로 션윈(神韻)을 보았습니다. 션윈은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화려한 색채를 보여주며 의미심장한 함의를 전달했고, 션윈의 순수하고 바르며 순선(純善)하고 순미(純美)함은 자리에 앉은 모든 수련생을 감동하게 해 탄성을 지르고 흐느끼며 눈물을 훔치고 기뻐했습니다.
법공부 후 사부님께서는 아주 빨리 제 신체를 정화해주셨고 신체는 병이 없이 가벼운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또 몇 차례 병업 가상이 나타났을 때 아무리 괴로워도 꾹 참고 법공부 장소에 왔습니다. 수련생들은 법에서 교류하고 격려해 사부님과 법을 굳게 믿도록 해주었고 자신을 사부님께 맡기게 했으며 아울러 안으로 찾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아주 빨리 병업 고비를 넘겼습니다.
법공부 장소에서도 때때로 갈등이 있었는데 이는 저희에게 서로 제고할 좋은 기회였습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을 만나 아주 반가워 저는 다정하게 그녀의 배를 가리키며 “살쪄서 배가 이렇게 불렀네요”라고 농담했습니다. 뜻밖에도 그 수련생은 금세 기분이 상해 “당신은 배가 없어요?!”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수련생이 그렇게 기분 나빠하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생각을 바꿔 다시 생각했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안으로 찾아야 해. 만났을 때 그렇게 기뻐한 건 수련생한테 너무 정(情)이 깊었기 때문이야.’ 저는 또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 쟁투심, 억울함 등을 찾아냈고 그런 사람 마음을 향해 “나는 너희들을 원치 않는다. 모두 구세력이 강요한 것이니 죽어버려!”라고 말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다음 날 만났을 때는 마치 전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음속에 작은 장벽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수구(修口)할 줄 알게 돼 다시는 수련생과 함부로 농담하지 않았고 법에 부합하지 않는 말은 하지 않았으며 쓸데없는 헛소리도 되도록 하지 않았고 제 입을 잘 단속했으며 주의식(主意識)을 강하게 유지했습니다. 수련생이 제게 듣기 싫은 말을 해도 그냥 웃어넘겼고 옳고 그름을 다투지 않았습니다.
법공부 장소에 와서 법공부한 지 1년이 됐을 때 스스로 전법륜을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막 읽기 시작했을 때는 마음속으로 약간 두려웠고 모르는 글자도 한두 개 있었지만 수련생들이 참을성 있게 가르쳐 주어 나중에는 유창하게 전법륜을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른 수련생이 법을 읽는 것을 듣기만 하던 제가 지금 유창하게 법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기적입니다!
농촌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일하면 몹시 피곤해 안일한 마음이 생기기 아주 쉽습니다. 법공부 장소에 오지 않으면 집에서 잠들기 아주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법공부 장소에 옵니다. 저희는 저녁 7시 25분부터 8시 25분까지 1시간 동안 법공부하고, 그런 다음 1시간 반 동안 동공(動功)을 연마하며, 9시 55분부터 1시간 동안 발정념을 하고, 이어서 1시간 동안 정공(靜功)을 연마한 다음에 이어서 자정 발정념을 합니다. 그런 다음 다들 집으로 돌아갑니다.
저희 법공부 장소의 수련생들이 모두 농촌 사람들이라 농사일이 많고 농번기에 오는 사람이 적지만 이 법공부 장소가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고 저는 매일 올 수 있는 소수의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집주인 부부 수련생은 누가 언제 오든 여태껏 한 번도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인 적 없이 항상 싱글벙글했습니다. 다들 이곳에서 서로 교류하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제고할 수 있었으므로 기꺼이 오고 싶어 했습니다.
저희 지역 사람들은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고 저희의 법공부와 연공은 공개적이었습니다. 마을의 일반인들은 저희가 법공부 장소에 가는 것을 보면 모두 밝게 웃으며 “출근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일반인 중에도 “만약 나한테 뭔가를 믿으라고 한다면 파룬궁을 믿겠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999년 중공 악당이 대법을 박해한 초기에 제가 시청에 가서 정법을 실증하다 2~3일간 불법 감금됐지만 남편은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고 여전히 대법을 아주 지지했습니다. 마을의 촌 간부들도 모두 대법 진상을 알았습니다. 파출소 경찰이 와서 소란을 피울 때마다 촌 간부들은 어떻게든 대법제자들을 보호하려 했고 능력껏 막아주었습니다. 때때로 도저히 막을 수 없으면 둘러대며 구실을 찾아 정보를 누설했으므로 사악한 세력이 대법제자 집에 찾아갔을 때 대법제자들은 모두 집에 없었습니다.
사악한 세력이 파룬따파를 미친 듯이 박해하는 가운데서도 저희 법공부 장소는 계속 평온하게 오늘까지 걸어왔습니다.
3. 단체 법공부와 단체 연공을 견지하는 것이 대법에 동화하는 것
저는 룽롄(溶蓮, 가명)이고 올해 62세이며 1997년에 법을 얻은 농촌 여성 대법제자입니다. 당시 마을에는 꽤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연마하고 있었고 연공장도 두 곳이 있었습니다. 곧바로 단체 연공에 참가했고 수련생들은 모두 법광(法光)을 듬뿍 받으며 무한한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1999년 장쩌민 집단이 까닭 없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저는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한마디 했다는 이유로 현지 청원사무실에 끌려가 7일간 감금됐습니다. 그로 인해 단체 연공 환경을 잃었고 혼자 집에서 법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일한 마음이 생겨 자주 밖으로 나가 마작을 구경했습니다. 하루 이틀… 그렇게 점차 수련하려는 생각이 약해져 법공부도 하지 않고 연공도 하지 않으며 완전히 속인 속에 섞여버렸습니다. 신체에 많은 병업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당뇨병, 다리와 발의 부기, 온몸의 통증이 있었고 특히 자궁근종이 아주 심해 아파서 앉지도 못하고 쉴 때는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의사는 자궁근종을 반드시 수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겁이 나서 계속 울었습니다. 첫째는 집에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제가 수술을 특히 무서워했기 때문입니다. 또 친척 의사를 찾아가 수술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치료할 수는 없는지 여러 번 물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수술해야 하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돈을 준비하고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 만난 두 수련생이 상황을 알게 됐고 계속 파룬궁 연마를 권했습니다. “안 돼요 안 돼. 저 지금 약 먹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수련생은 “문제없어요. 일단 연마해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안 돼요. 연마를 한다면 반드시 진지하게 연마해야 하고 약을 먹으면 안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기로 결정한 무렵 어느 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집 안방 바닥에 우물(실제로는 없음)이 하나 있었는데 제가 뒤로 넘어져 우물에 빠지면서 두 손으로 우물가를 꽉 잡았고 두 다리도 우물가에 걸쳤습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 솥을 닦고 있던 어머니를 향해 “어머니 빨리 저 좀 살려주세요! 어머니 저 좀 구해주세요!”라고 소리쳤습니다. 계속 큰 소리로 외쳤지만 어머니는 전혀 듣지 못한 듯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깨어났습니다. 이상한 건 다음 날 밤에도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입니다. 속인이 저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3일 후 연공장 문 앞을 지나갈 때 갑자기 ‘연공인에게는 병이 없다’라는 말이 머릿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마음이 몹시 들떠 즉시 셋째 오빠 부부의 연공장에 가서 연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꽤 많은 수련생이 가자고 권했을 때 한 번도 승낙하지 않았기에 혼자 가기가 민망했습니다. 그래서 자주 연공장에 가는 A 수련생과 함께 가기로 약속했지만 저녁 약속 시간이 되어도 A는 지체하며 오지 않았습니다. 아주 조급해하며 속으로 ‘내가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걸 어떻게 남에게 의지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혼자 갔습니다. 온몸의 통증을 참으며 두 손으로 대법 서적을 받쳐 들고 비틀거리며 연공장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연공장에 도착하자 집주인 수련생은 아주 열정적으로 맞이했고 제가 누렇게 뜨고 바짝 마른 것을 보더니 추울까 봐 부축해 온돌에 오르게 하고는 작은 이불 하나를 덮어주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도 모두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저는 따뜻함을 느꼈고 오랜 이별 끝에 다시 만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 무려 11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했던 것입니다. A도 뒤이어 도착했습니다. 민망해 올 수 없다던 사람의 마음도 자취를 감췄고 아주 자연스럽게 전체 법공부와 연공에 녹아들어 매일 가서 법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단체 법공부와 연공에 참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 신체에는 천지개벽할 만한 변화가 생겨 자궁근종, 당뇨병, 온몸의 통증 등이 모두 일소됐고 병 없이 가벼운 오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몸이 편안해지자 안일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밤 단체 자정 발정념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혼자 집에서 법공부하고 연공해도 똑같은데 굳이 이렇게 멀리(우리집은 연공장에서 1km 떨어져 있음) 올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이 막 떠오르자마자 사부님의 법이 머릿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진정으로 대법을 수련하나니 오로지 이것만이 큰 일이로세 대법에 동화하나니 언젠가는 기필코 성취하리라”[홍음(洪吟)-법을 얻다(得法)].
이 단락의 법을 아직 외우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연공장에 가서 단체 법공부 연공을 하는 것이 대법에 동화하는 것임을 즉시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 비바람이 불든 매서운 추위와 무더위가 닥치든 꾸준히 연공장에 갔습니다. 단체 법공부와 단체 연공은 자비로우시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남겨주신 형식입니다.
먼저 사부님의 일깨움과 가지(加持)에 감사드립니다. 연공장 집주인 부부 수련생의 이타적인 헌신에 감사드리고 저를 포기하지 않은 수련생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단체 법공부와 단체 연공에 참가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법공부가 마음에 와닿고 심성(心性) 제고가 빠르며 신체 변화가 크고 안일함을 닦아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들 서로 돕고 서로 일깨워주어 쉽게 극단으로 치우치거나 삿되게 깨닫지 않게 되는데, 이 역시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길을 바르게 걷는 것입니다.
4. 당당하게 법공부 장소에 가고 함께 나가 박해에 맞서며 중생을 구도하다
저는 진화(錦華, 가명)이고 1997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이며 올해 70세입니다. 병 때문에 수련의 길에 들어섰고 단 하룻밤 대법 서적을 보았을 뿐인데 온몸이 병투성이였던 제가 다음 날에는 온몸이 가볍게 변해 완전히 새사람이 됐습니다. 진심으로 ‘대법은 정말 신기해! 사부님께서는 정말 위대하셔! 반드시 이 법을 배울 거야!’라고 감탄했습니다. 대법의 기적적인 치료 효과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이 작은 마을에도 기쁜 소식이 들려왔고 인연 있는 사람들이 속속 찾아와 입도하고 법을 얻었습니다. 하나의 법공부 장소로는 모두 수용할 수 없어 또 하나의 법공부 장소를 만들었습니다. 저녁에 야외에서 연공했는데 모기가 몸을 물어도 움직이지 않았고 때로는 연공을 마친 후 피를 배불리 먹은 모기들이 땅에 가득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수련인마다 모두 행복에 잠겨 있었습니다.
1999년 장(江) 마두(魔頭)가 소인배의 질투심으로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를 일으켰습니다. 연공장 가족은 악당을 두려워해 자기 집에서 연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 연공장이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 긴박한 순간에 셋째 오빠 부부 수련생이 자기 집에서 법공부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후 이 법공부 장소는 비바람 속에서도 오늘날까지 줄곧 지켜왔습니다.
박해가 발생한 후 저와 몇몇 수련생은 베이징에 가서 사부님과 대법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다 현지 파출소로 끌려가 박해당했습니다. 가족은 두려워하며 다시는 연공장에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연공을 하지 않아 신체에 또 병업이 나타났는데 당시 타지에서 장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왔습니다. ‘사부님, 사부님이 그립습니다. 연공하고 싶습니다.’ 그 생각은 생명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이었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반드시 법공부 장소에 가서 연공할 거야!’
처음에는 남편에게 나가서 바구니를 엮고 온다고 거짓말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그것이 잘못됐고 수련인이 거짓말해서는 안 되며 수련하는 대법이 가장 바른 것이니 당당하게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음 날 남편이 “저녁에 어디 가서 뭐 했어?”라고 물었습니다. 사실대로 “연공하러 갔어”라고 대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당당하게 연공장에 갔습니다.
박해가 막 시작됐을 때 저희 법공부 장소 수련생들은 박해에 맞서기 시작했습니다. 자체 제작한 대법 현수막과 스티커를 가지고 나가서 걸고 붙였습니다. 2인 1조가 되거나 3명이 무리를 지어 나이 든 사람은 걷고 젊은 사람은 자전거를 타며 저희 지역부터 인근까지 대법 현수막을 가득 걸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대법 현수막을 편리하게 걸 도구가 없어 악인이 대법 현수막을 훼손하지 못하게 하려고 2인 1조로 협력해 튼튼한 사람은 쪼그려 앉고 약한 사람은 튼튼한 사람 어깨 위에 서서 인간 사다리를 만들어 대법 현수막을 높이 걸었습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 ‘우리 사부님은 결백하시다’ 등 글자가 인쇄된 대법 현수막이 공중에서 펄럭이는 것을 보았을 때 땀과 감격의 눈물이 뒤섞여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고생스러운 줄 몰랐고 아무리 피곤해도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나중에 편리한 교통수단이 생겨 시내 수련생들의 인솔하에 차를 몰고 수십 리를 가서 주변 모든 마을에 들러 집집마다 대법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이어서 집집마다 다니며 삼퇴를 권하고 장 마두를 고소하는 서명 운동을 벌여 인연 있는 많은 사람을 삼퇴하게 했고 장쩌민 고소 서명부에 자신들의 이름을 쓰게 해 그들로 하여금 정의를 선택하고 정확하고 아름다운 위치를 잡게 했습니다.
매번 새해가 다가올 때마다 저희 법공부 장소 수련생들은 대법 진상 탁상달력과 복(福) 자를 챙겨 큰 장날에 가서 배포했고 진상을 아는 세인들은 모두 앞다투어 탁상달력과 복 자를 달라고 했습니다. 장날마다 감동적인 사례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진상 탁상달력 한 권을 막 집에서 나온 한 남성에게 주었는데 뜻밖에도 그는 손을 저으며 “안 받아요 안 받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의 맞은편에서 젊은 청년이 걸어오더니 “제가 받을게요. 파룬따파를 믿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제가 청년에게 “아우님 삼퇴는 했어요?”라고 묻자 그는 “진작에 탈퇴했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탁상달력을 들고 그 남성을 따라 남성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저희는 이 법공부 장소 속에서 심신에 혜택을 얻었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촉진하며 비바람 속에서도 오늘까지 걸어왔습니다. 저희를 가장 감동하게 한 것은 집주인 부부 수련생의 이타적인 헌신과 끈기로 26년간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고 심지어 섣달그믐날에도 모두 함께 모여 션윈 공연을 볼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중공의 사악한 박해와 고압하에서 실로 얻기 힘든 일이기에 저희는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이 법공부 장소를 아주 소중히 여기고 부부 수련생이 거대한 헌신과 감당으로 제공해준 이 소중한 환경을 소중히 여깁니다. 저희는 더욱 정진하고 변함없이 세 가지 일을 잘해 사부님을 따라 진정한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5. 단체 법공부에 참가해 끊임없이 혜택을 얻다
저는 징슈(淨秀, 가명)이고 올해 76세이며 1997년에 법을 얻은 이래 줄곧 단체 법공부에 참가했습니다.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미친 듯이 박해하던 시절에도 저희 법공부 장소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마을 수련생은 10여 명이었고 주변 인근 수련생까지 합치면 최대 20여 명에 달했습니다. 평소 매일 꾸준히 오는 수련생이 10여 명이었는데 저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겨울에는 농사일이 적어 저녁 7시쯤에 법공부를 시작했고 농번기가 되면 때때로 늦게 8~9시에 오기도 했습니다. 저희는 먼저 법공부하고 연공했으며 단체로 자정 발정념을 마친 후에야 각자 집으로 돌아갔는데 일 년 내내 그랬습니다. 어떤 젊은 수련생은 일이 바빠 집에 늦게 와도 꾸준히 참석했는데 때로는 법공부를 마친 후에 도착해 연공하기도 했고 때로는 한 강(講)을 거의 다 배웠을 무렵에 들어와 조용히 끝까지 따라 배우기도 했지만 다들 싫어하지 않았고 원망은 더더욱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집주인 수련생은 더욱 싱글벙글 웃으며 수련생들을 맞이했고 입버릇처럼 “올 수 있으면 된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이 너그럽고 이타적인 자세 때문에 저희는 모두 기꺼이 오고 싶어 했습니다.
물론 박해가 가장 심각했을 때 외부와 가정에서 오는 압박과 교란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남편은 두려운 마음 때문에 한때 제가 법공부하러 가는 것을 가로막았고 법공부 장소에 가려고 하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으며 안색을 붉히고 화를 냈지만 동요하지 않고 꾸준히 갔습니다. 단체 법공부와 연공 환경을 떠나는 순간 속인의 자잘한 일에 교란받고 자신에 대한 요구를 늦출 것이며 안일한 마음이 뒤따라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체 법공부 때는 에너지 마당이 커서 몸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 마당 속에서는 불편함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번은 소업 상태에 처해 약간 반신불수 증상이 있었고 단체로 제2장 공법 파룬좡파(法輪樁法)를 연마하다 갑자기 주저앉으며 기절했습니다. 수련생들 중 어떤 이는 서둘러 저를 부둥켜안았고 어떤 이는 서둘러 발정념을 했습니다. 집주인 수련생은 서둘러 사부님께 향을 올리며 저를 구해주실 것을 간청했습니다. 수련생들은 모두 사부님을 굳게 믿고 대법을 굳게 믿었으며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수련생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수련생들의 정념 가지 아래 자비로우시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깨어날 때까지 전체 과정은 약 20여 분이 걸렸고 매 분마다 모든 수련생이 정념을 시험받고 있었습니다. 깨어난 후 아무 이상도 없었습니다. 깨어난 것을 보고 어떤 수련생은 사부님 법상(法像) 앞에 무릎을 꿇고 생명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렸고, 어떤 이는 두 손을 모으고 사부님의 거대한 자비에 감사드렸습니다. 저도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렸습니다.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정말 그 결과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뒷덜미가 서늘해지는데 반신불수 증상이 불과 20분 만에 나아진 것, 이것이 바로 전체의 힘이었습니다!
저의 체험은 이렇습니다. 사부님께서 남겨주신 단체 법공부 연공 형식은 정말 좋습니다. 단체 법공부 환경에서 사람의 마음을 단련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제고할 수 있습니다. 모든 수련생이 가능한 한 모든 교란을 극복하고 단체 법공부 연공에 참가하기를 바랍니다.
맺음말
이 글을 엮으면서 마음속으로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첫째는 주제가 너무 크다는 느낌이었고 둘째는 각기 다른 수련생들의 원고 내용이 비록 ‘공동으로 단체 법공부 연공 환경을 지킨다’에 중점을 두었지만 여전히 편중된 부분이 있고 표현 능력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몇몇 수련생의 원고를 받아 모두 읽고 난 후 눈물이 멈추지 않아 소리 내어 울었고 두세 번이나 울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눈물은 또 한 번 소리 없이 흘러내립니다. 이 법공부 장소 대법 수련인 한 명 한 명의 소박함, 끈기, 안으로 자신을 닦음, 이타적이고 사심 없이 남을 위하는 마음, 어려움 속에서도 굳세게 전진하는 모습에 감동했고 진상을 아는 중생(가족, 마을 사람, 촌 간부, 장터 중생 등)들이 깨어나는 것이 기뻤습니다. 수련생들은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을 남기며 아주 착실하게 수련해 오늘날의 새벽까지 걸어왔습니다. 수련생들은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며 뜻을 잃지 않고 확고하게 수련했고 대법은 신기하고 끝없는 법력을 드러냈습니다.
이 법공부 장소의 수련생에서 주변 수련생들까지, 중국의 무수한 수련생을 떠올려보면 중공 악당의 박해와 고압적인 환경하에서도 대법 수련인들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손잡고 동행했고 마음을 닦고 집착을 제거하며 고생을 낙으로 삼았습니다. 대법 속에서 단련되고 층층이 씻겨 내려가며 갈수록 순수해져 진정한 자신을 되찾았습니다. 자비롭게 구원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사부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저희의 더없는 영광입니다. 정법 수련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유한한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공동으로 협력해 앞으로의 수련의 길을 잘 걸어가며 더 많은 중생을 구하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6년 7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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