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닝 여자감옥서 겪은 장촨원의 고난: 잠 안 재우기, 굶주림, 엄격한 통제

[명혜망](랴오닝성 통신원) 푸순(撫順)시 칭위안(淸原)현 난커우쳰(南口前)진의 58세 파룬궁수련자 장촨원(張傳文)은 2022년 12월 4일 농촌에서 파룬궁(法輪功) 진상 달력을 배포하다가 마을 주민의 무고로 난커우쳰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5일 뒤, 그녀는 부당하게 형사 구류돼 푸순시 구치소에 감금됐고, 이후 왕화(望花)구 검찰원에 모함당했다.

2023년 3월 24일, 왕화구 검찰원과 법원은 비밀리에 재판을 열고 부당하게 그녀에게 3년6개월형을 선고했다. 이후 그녀는 랴오닝 여자감옥으로 이송돼 그곳에서 장기간 학대와 박해를 받았다.

1. 랴오닝 여자감옥에 이송된 후 받은 박해

2023년 7월 26일, 장촨원은 랴오닝 여자감옥으로 압송됐다. 그녀는 먼저 입감대(入監隊)에 5일간 감금됐고, 이후 ‘강제 전향’으로 악명 높은 12감구로 옮겨졌다.

감옥경찰 우밍자(吳明佳)는 그녀를 위협했다.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아? 이곳에 오면 전향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 또 다그쳐 물었다. “난 공산당을 대표해. 넌 당을 사랑해?” 장촨원이 대답했다. “저는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합니다.”

이른바 ‘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장촨원은 형사범들에게 종일 감시를 받았고, 낮에도 밤에도 잠을 자지 못한 채 눈만 감으면 밀치고 호통치는 이른바 ‘매 길들이기(잠 안 재우기)’ 고문을 당했다. 매끼 극히 적은 음식만 주어 배를 채우지 못하게 했고, 매일 체벌을 가했다. 장촨원은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쇠약해져 감옥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상에서 몇 명의 인원이 그녀의 입을 누르고 네 개의 앞니를 생으로 뽑아버렸다. 감옥경찰 우밍자는 소리쳤다. “널 다룰 방법은 많아. 언제까지 버티는지 보겠어!”

12감구에서 3개월간 고문받은 이후, 장촨원은 5감구 9소대로 옮겨져 대장 안신레이(安鑫磊), 부대장 왕줘(王琸, 30세 미만)의 관리를 받았다. 해당 감구의 모든 수감자는 강제노동을 강요받았다. 장촨원이 노동을 거부하자, 감옥경찰은 그녀를 종일 서 있게 하고 이유를 따져 물었다. 장촨원이 말했다. “저는 죄수가 아니며 죄가 없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전향 거부’를 상징하는 붉은 명찰을 달고 엄격한 통제 상태에 들어갔다. 물건을 사지 못하게 했고, 설날에 지급되는 음식도 주지 않았다. 엄격한 통제는 2년 남짓 지속됐다.

2. 박해자의 응보와 태도 변화

그 기간에 부대장 왕줘는 한동안 출근하지 않았다. 감방 죄수는 장촨원에게 왕줘가 임신 후 병원에 검사하러 갔으나 태아의 심장 박동이 없어 아이를 지웠다고 알려주었다. 죄수가 말했다. “그녀가 당신을 박해해서 응보를 받은 겁니다. 하늘이 어찌 용서하겠습니까.”

이 기간에 왕줘는 장촨원 가족이 보낸 선을 권하는 편지를 받고 장촨원에 대한 박해를 눈에 띄게 자제했다.

3. 출소 임박 전의 협박과 가족의 마중 방해

2026년 4월 17일 오후, 왕줘의 후임인 대장 자오양(趙洋)은 장촨원의 형기가 곧 만료되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물었다. “집에 가면 또 연마할 건가?” 그러면서 파룬궁을 비방하는 말들을 쏟아냈다. 장촨원이 대답했다. “파룬궁은 사이비 종교가 아닙니다.” 자오양은 즉시 전기봉을 들고 그녀를 위협했고, 감옥경찰 룽옌(榮妍)도 협박했다. “당신이 관리에 복종하지 않으면 현지 파출소에서 다시 당신을 데려가게 할 거야.”

출소 며칠 전, 감옥은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장촨원이 출소할 때 입을 옷을 우편으로 보내라고 요구하며, 가족이 마중 나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장촨원을 현지 정부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은 이치에 맞게 강력히 따지며 직접 차를 몰고 마중 나가겠다고 고집했고, 옷도 보내지 않았다. 가족은 이후 감옥관리국 전화번호를 알아내 상황을 문의했고, 상대방은 찔리는 듯 반문했다. “어떻게 우리 전화번호를 알았습니까?” 그러면서 “상황을 모릅니다”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6월 4일, 즉 그녀가 출소하기 하루 전날 밤, 가족이 보낸 옷을 받지 못한 감옥경찰 룽옌은 장촨원에게 감옥에서 준비한 옷을 입도록 강요하며 속였다. “당신 가족은 당신을 신경 쓰지도 않고 데리러 오지도 않을 거야.” 장촨원은 그 속셈을 간파하고 가족이 마중 올 때 입을 옷을 고집했다. 이후 몇 명의 감옥 간부들이 그녀를 찾아와 면담하며, 이것이 ‘새로운 규정’이라며 모든 사람을 반드시 현지 사법소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4. 강제 이송과 가족의 무사 마중

6월 5일 아침 6시가 채 되기 전, 감옥경찰은 장촨원을 불러냈다. 감옥경찰 위야쿤(于亞坤)은 그녀에게 종이 한 장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는데, 내용은 ‘돌아가는 모든 비용은 본인이 부담한다’는 것이었다. 장촨원이 거절했다. “제 가족이 저를 데리러 오는데 당신들이 막고서 억지로 저를 보내려 하는 겁니다. 저는 무죄이니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녀에게 강제로 서명하게 할 수 없자, 감옥경찰은 가족이 정문에서 기다릴까 봐 정문으로 가지 못하고 쪽문으로 그녀를 차에 밀어 넣었다.

8시가 안 돼서 그들은 장촨원을 현지 정부로 보냈다. 사법소 직원이 그녀에게 지장을 찍고 서명하라고 요구했지만 그녀는 모두 거절했다. 이때 이미 여러 명의 가족이 정부 청사 마당으로 달려왔고, 언니들이 그녀를 끌고 신속히 그곳을 떠나 무사히 집으로 데려왔다.

5. 수련 전후의 거대한 변화와 장기 박해 배경

만주족인 장촨원은 칭위안현 난커우쳰진에 거주한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 그녀는 심각한 관절염, 장염, 피부병을 앓았고 머리에서 진물이 흘러 장기간 약을 먹어도 호전되지 않았다. 1997년 파룬궁을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몸은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했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에게 요구하며 흡연, 음주, 마작 등 악습을 끊어 가정 역시 화목해졌다.

그러나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 전 우두머리 장쩌민(江澤民)은 파룬궁 수련자 수가 급증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질투해 파룬궁에 대한 전면적인 박해를 일으켰다. 장촨원은 신앙을 고수하고 민중에게 꾸준히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납치, 감금됐으며 부당하게 강제노동을 두 차례, 부당한 징역형을 세 차례 선고받았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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