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박해에 저항하는 중에 안으로 찾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2026년 2월 초, 저는 평소처럼 집을 나서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습니다. 점심 무렵, 저는 몇 사람에게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유한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4~5명의 사복 경찰을 만났습니다. 그중 한 여경이 기록기를 들고 아무런 신분증도 제시하지 않은 채 강제로 제게 수갑을 채우더니, 이리저리 끌고 당기며 저를 납치했습니다. 저는 “왜 날 붙잡는 건가요?”라고 따졌습니다. 그들은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서 그래?”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는 법을 어기지 않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탈당을 권하지 않았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강제로 저를 차에 밀어 넣고 현(縣) 공안국으로 끌고 가 억지로 노란 조끼를 입혔습니다. 저는 “저는 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며 벗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또 강제로 슬리퍼를 신기려 했지만 제가 협조하지 않자, 저를 바닥에 넘어뜨려 누르고는 슬리퍼를 신겼습니다. 그런 다음 저를 심문실로 끌고 가 쇠창살로 둘러싸인 의자 안에 밀어 넣었습니다.

경찰 두 명이 불법으로 저를 심문했는데 한 명은 질문하고 한 명은 타자를 쳤습니다. 경찰이 “A를 압니까?(A 수련생도 당시 납치됐습니다)”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는 좋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좋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이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삼퇴 같은 건 내게 말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해야 할 말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들에게 이로운 것은 말하고 이롭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경찰은 저를 납치한 후 집으로 가서 제 남편도 납치하고 저희 집을 불법으로 가택수색했습니다. 남편은 그들이 가져온 진상 소책자 한 뭉치를 바닥에 던져놓고 사진 찍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 그들은 저희 집에서 빼앗은 물건들을 다른 방 바닥에 늘어놓고는, 저를 거칠게 밀고 당겨 그 물건들 곁으로 끌고 가 사진을 찍으려 했습니다. 제가 협조하지 않자 그들은 억지로 사진을 찍으며 우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습니다.

이후 그들은 상급 부서인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에 전화해 “어떻게 처리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국보 책임자는 “15일 동안 구류해”라고 지시했습니다. 저는 A와 남편의 마음이 불안한 것을 보고 속으로 사부님께 그 두 사람을 풀어달라고, 저 혼자서 무엇이든 감당하겠다고 간청했습니다(나중에 이것이 박해를 승인하는 것이라 잘못됐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 아래 그들은 당일 풀려났습니다.

경찰은 제게 손도장을 찍으라고 하며 열 손가락을 다 굴려 찍게 했지만, 저는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어떤 자는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어떤 자는 목을 누르고, 어떤 자는 주먹으로 제 등을 때렸습니다. 저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맞았고 오른팔이 심하게 비틀려 오랫동안 팔을 들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그만 때리세요. 당신들에게 좋지 않습니다. 머리 삼척 위에 신령이 계십니다”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업보를 받는 게 두렵지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관할 파출소 소장은 제가 협조하지 않는 것을 보고 길길이 날뛰며 “계속 쓰지 않으면(파룬궁을 수련하지 않겠다는 등)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폭로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는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는다’라고 인쇄한 종이를 제 가슴에 붙이고 사진을 찍으며 저를 모욕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병원으로 보내 신체검사를 받게 했습니다. 제가 여전히 협조하지 않자 그들은 저를 휠체어에 묶은 채 밀고 다니며 각종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검사 결과 제 몸은 모두 정상이었고 혈중 지질만 약간 높게 나왔습니다. 국보 경찰은 “파룬궁수련생들은 몸이 정말 좋군. 아무 병도 없고 그저 고지혈증이 조금 있는 건 살이 쪄서 그런 거니까. 앞으로 나도 파룬궁을 수련해야겠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녁 8시, 경찰은 저를 불법적으로 구류소에 보냈습니다. 나이가 많은 경찰 하나와 젊은 경찰 하나가 당직을 서고 있었는데 그들은 제게 서명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저는 서명할 수 없다고 말하고 그 두 사람에게 각각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텅 빈 방으로 끌려갔습니다(당시 구류소에 여성은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방 네 모서리에 있는 감시 카메라에서는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고 조명은 차갑고 스산했습니다. 저는 음산하고 끔찍하며 외롭고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눈물을 머금고 저의 어디가 잘못됐는지, 어디를 잘하지 못했는지 안으로 찾았으며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었습니다. 제가 사부님께 일깨움을 청하자 사부님의 법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몸이 감옥에 갇혔다고 슬퍼하지 말라 정념정행하면 법이 있도다 조용히 생각해 보니 집착한 일 얼마이더냐 사람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홍음2-슬퍼하지 말라).

저는 제게 사람 마음이 없었다면 이곳에서 박해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안으로 찾을 줄 몰랐기에 또 사부님께 일깨움을 청해야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게 더 많은 법을 떠올리게 해주셨습니다. 매일 밤낮없이 법을 외우고 정념을 발하며 틈틈이 잠깐씩 눈을 붙였습니다. 점차 저의 정념은 갈수록 강대해졌고 머리도 더욱 맑아졌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찾기 시작하며 이전의 일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먼저 집에서 길러진 먹을 것을 탐하고 잠을 탐하는 안일한 마음을 찾았습니다. 깊은 감옥에 갇힌 이런 환경이야말로 이 마음을 없앨 좋은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자신에게 엄격하게 요구해 매일 밥을 한 끼만 먹고 잠도 아주 적게 잤습니다. 그렇게 하니 제게는 법을 외우고 정념을 발할 수 있는 시간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밤에 너무 졸릴 때는 세면대 옆으로 가 찬물을 조금 손에 받아 얼굴을 씻어냈고, 그러면 곧바로 정신이 맑아졌습니다. 때로는 조금 많이 먹으면 눕자마자 잠들어 버렸기에 억지로 밥을 많이 먹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런 행동을 당직 경찰들이 모두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위험해질까 봐 걱정했고, 소장은 사흘이 멀다 하고 직접 와서 제게 밥을 많이 먹으라고 권하며 요구사항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법공부 환경과 정념을 발할 환경을 개척할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먼저 “TV를 켜지 마세요. 제 심장이 견디기 힘들고 머리가 불편합니다”라고 제안했습니다. 소장은 동의하고 TV를 껐습니다. 저는 또 “제 몸이 큰 상처를 입어 온몸이 아픕니다. 설날에 집에도 못 가니 밥도 넘어가지 않아요. 밤에 정상적으로 누울 수도 없고, 자주 앉아 있을 수도 없어서 벽을 향해 옆으로 누워야만 합니다(법을 외우기 편하게). 저는 눕고 싶을 때 눕고 앉고 싶을 때 앉겠습니다”라고 요구했습니다. 소장은 이것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갑자기 제 귀에서 ‘윙윙’ 소리가 났고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대법제자는 바로 법공부, 발정념, 진상 알리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자 경찰이 와서 다른 방으로 가서 TV를 보며 학습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저는 “몸이 안 좋아서 갈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듣지 않고 억지로 저를 데려가려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제게 진상을 알릴 기회를 안배해 주십사 간청했습니다.

그들이 저를 부축하려 하자 저는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혼자 벽을 짚고 비틀비틀 걸어갔습니다. 경찰이 말했습니다. “당신 연공하지 않소? 걷는 게 왜 그래? 몸이 좋다고 하지 않았소?” 저는 “제가 집에 있을 때는 몸이 아주 좋았습니다. 당신들도 제 검사 보고서에서 아무 병도 없다는 걸 보지 않았나요? 지금 이런 상태는 경찰에게 맞아서 그런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믿지 않자 저는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감방으로 가보니, 방 안에는 10여 명의 남자 수감자가 TV를 보며 학습하고 있었습니다. 한 남자 수감자가 “‘천안문 분신’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천안문 분신’은 가짜이며 파룬궁을 모함하고 해치기 위한 것입니다. 분신자 왕진둥(王進東)의 두 다리 사이에 있던 휘발유가 든 페트병이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어린 류쓰잉(劉思影)이 기도를 절개하고도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만들어 낸 사기극이며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한 구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이 “누가 당신을 박해했다고 그래?”라고 했습니다. 저는 “내가 이 나이에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들이 저를 때린 상처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을 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옷을 걷어 올려 그들에게 상처를 보여주고, 손을 들어 올려 손목을 보여주었습니다. 손목은 아주 두껍게 부어올라 팔까지 부어 있었고 피부색은 누렇게 변해 있었습니다. 경찰은 제가 말을 멈추지 않는 것을 보고 급히 말을 자르며 못하게 하더니 “당신 빨리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저를 데리고 돌아갔고 다시는 제게 학습에 참가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돌아온 후 저는 법을 외우고, 정념을 발하며,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수련생들이 저를 도와 정념을 발해주길 바랐고 일찍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념을 발하는 것이 이기적이어서는 안 되며, 중생의 입장에 서서 중생구도를 위해 정념을 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용당해 박해에 가담한 공안, 검찰, 법원 관련자들의 배후에 있는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고, 사악이 중생을 이용해 대법에 죄를 짓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그들이 진상을 깨닫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기를 바랐습니다. 이렇게 발하는 정념은 위력이 훨씬 강해짐을 느꼈고, 대법의 자비롭고 평화로운 에너지장이 제 주위를 감싸고 있음도 느꼈습니다.

저는 또 제게 이익에 집착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찾았습니다. 내내 집터 보상금으로 받은 수만 위안의 돈을 걱정하며, 사악에게 빼앗길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저는 법 속에서 생각을 바로잡으며 ‘이 돈은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내려주신 것이니 그 누구도 손댈 수 없으며, 손대는 자는 죄를 짓는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주관하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꿈에 수련생이 우리집에 와서 장(醬, jiàng)을 담그는 것을 보았는데, 저는 “담그지 마세요, 다시는 고집부리지(犟, jiàng)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꿈을 통해 제게 지기 싫어하고 강압적인 당문화(黨文化) 성격을 없애라고 일깨워 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수련생이나 친척, 친구들과 지낼 때도 자주 매우 강압적으로 행동하고 억지를 부렸는데, 이 방면에서 얼마나 많은 업을 지었는지 모릅니다.

설 연휴 기간, 구류소에서는 1인당 한 그릇씩 만두를 주었습니다. 만두를 보자 저는 ‘만약 밖이었다면 온 가족이 모이고 자녀들도 곁에 있어, 풍성한 음식을 함께 나누며 배불리 먹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저는 곧바로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식탐의 욕망과 자식에 대한 정이 드러난 것이며 바로 이 속인의 마음을 없애야 할 때다. 이깟 고통이 대수인가.’ 사부님의 법이 떠오르자 마음이 단번에 환해졌고 더 이상 고통스럽게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구류소로 보내질 때 국보 대장은 가면서 불쾌한 기색으로 “당신을 보름 동안 구류하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눈빛은 매우 사악했고 표정은 흉악하고 무서웠습니다. 그 후로 제 머릿속에는 늘 그의 흉악한 얼굴이 떠올라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저는 그 역시 사악에게 이용당해 대법제자에게 죄를 짓게 된 것이고, 사악이 이 생명을 파멸시키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정념을 발해 그를 구해야 하며, 그를 조종해 대법제자에게 죄를 짓게 하는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해야 했습니다. 제가 몇 차례 정념을 발하고 나자, 국보 대장의 흉악한 얼굴이 사라졌습니다.

불법 구류 만료일이 3~4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 경찰이 “이제 3~4일이면 기간이 끝나니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시오. 집에 전화해서 그때 당신을 데리러 오라고 하겠소”라고 말했습니다. 소장이 “잠깐, 변동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당신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다’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만기 후 저는 무조건적이고 순조롭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며칠 동안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주신 일깨움과 가지를 떠올려보면, 제자는 어떤 언어로도 사존을 향한 감사를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제자는 오직 더욱 정진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해 사부님께서 조금이라도 덜 염려하시고 조금 더 위안을 얻으시게 할 뿐입니다.

제자가 사존께 삼가 절을 올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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