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최근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솽청(雙城)구 파룬궁수련자 자오시화(趙喜華)가 하얼빈시 다오리(道里)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3년 2개월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이는 2025년 8월 21일 자오시화를 포함한 20여 명의 파룬궁수련자가 납치돼 사법적 박해를 받은 사건 중 한 사례다.
자오시화는 1964년 10월 29일에 태어났으며 헤이룽장성 솽청시 창성(昌盛)거리 4위 3조에 거주했다. 그녀는 현숙하고 선량한 여성이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후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행동해 심신이 건강해졌다. 그녀는 신앙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과거 세뇌반, 완자(萬家) 노동수용소에 감금돼 고문 박해를 받았다.
1. 대규모 납치 사건에서 끌려가 불법 판결받아
2025년 8월 21일 하얼빈시 공안국은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해 아청(阿城)구와 솽청구의 파룬궁수련자 20여 명을 납치했으며, 그중 자오시화는 큰길에서 납치됐다. 사후 자오시화, 류푸진(劉富金), 리슈콴(李秀寬), 리옌원(李彥文)과 양전이(楊振義), 저우좐잉(周傳英) 부부 등 파룬궁수련자들은 불법적으로 형사 구류됐다. 이번 대규모 납치는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가 감독해 처리했고 하얼빈시 공안국 산하 여러 파출소 경찰이 납치에 가담했다.
2026년 3월 18일 저우좐잉은 다오리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고 불법적으로 7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2026년 3월 30일 류수전(劉淑珍), 스쭤성(石佐生), 천슈메이(陳秀梅), 리훙메이(李洪梅)는 하얼빈시 아청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다. 류푸진 역시 불법 재판을 받았다.
2026년 4월 23일 자오시화는 불법 감금된 지 8개월여 만에 하얼빈시 다오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으나 당일 결론이 나지 않았다.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자오시화는 하얼빈시 다오리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3년 2개월형을 선고받았다.
2. 과거 세뇌반과 완자 노동수용소에서 고문 박해를 받아
1) 세뇌반에서 고통받아
2001년 1월 17일 음력 12월 23일은 사람들이 모두 설을 준비하느라 바쁜 시기였다. 이날부터 솽청 중국공산당(중공) 악당 인원들은 많은 경찰력을 동원해 도시에서 농촌에 이르기까지 1천여 명의 파룬궁수련자를 대규모로 납치했다. 구치소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전체 시의 30여 개 향과 진에 세뇌반이 설립돼 세뇌 박해가 진행됐다.
그해 음력 12월 23일, 효심이 깊은 자오시화가 위독한 시어머니의 머리를 감겨드리고 있을 때, 솽청진의 류(劉) 씨 성을 가진 서기와 가도판사처 취보타오(曲波濤) 등 악당 인원들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쳐 “대화할 게 있으니 잠깐이면 돌아올 겁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결국 자오시화는 속아서 진(鎭)에서 운영하는 세뇌반으로 끌려갔고, 집에는 80대의 위독한 시어머니, 시력을 잃은 언니, 그리고 9살 난 딸이 돌봐줄 사람 없이 남겨졌다. 자오시화가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곳 사람들은 그녀에게 수련을 포기하고 3서(三書, 세 가지 수련 포기 각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자오시화가 쓰지 않자 옌산리(閆善利·남), 진장 위잔치(于占歧·남), 류위화(劉玉華·여), 저우다융(周大勇·남) 등 몇몇 악당 간부들이 그녀를 때리고 고문하며 괴롭혔다. ‘비행기 타기’(두 다리를 모으고 똑바로 서서 허리를 굽힌 채 머리를 책상 밑에 넣고 두 손을 뒤로 높이 치켜드는 고문)를 5~6시간 동안 시키고,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게 난방관에 매달아 놓았으며, 벌서기, 차가운 널빤지 의자에 앉히기, 잠 안 재우기 등을 가하며 자오시화를 꼬박 4개월 넘게 괴롭혔다.
그 기간 자오시화가 감금된 지 사흘 만에 그녀의 시어머니는 두려움과 걱정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취보타오는 뜻밖에도 자오시화가 집에 돌아가 상을 치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나중에 진장의 동의를 얻어 악당 인원 저우다융의 감시하에 자오시화는 집에 돌아가 시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다. 시어머니의 발인이 끝난 후 자오시화는 다시 세뇌반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세뇌반에서 발생한 더 많은 박해 사실은 ‘솽청시 세뇌반, 흉악무도하게 파룬궁수련자를 고문하고 시민을 기만하다’를 참조하길 바란다.
2) 완자 노동수용소에서 고문 박해 받아
자오시화는 파룬따파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고, 독방 감금, 매달기, 전기몽둥이 고문, ‘전구 튕기기’(안구 튕기기), ‘곡괭이질’(딱딱한 가죽구두를 신고 등을 찍고 허리를 걷어차기), 반복적인 구타 등 고문을 당했다.
2001년 12월 3일 아침, 자오시화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현수막을 걸 때 솽청시 공안국 순찰 경찰에게 납치돼 솽청 구치소로 이송돼 박해를 받았다. 자오시화는 자신에 대한 박해에 항의하며 단식했다. 그녀의 몸이 박해로 매우 나빠지자 왕(王) 씨 성을 가진 소장은 그녀가 안에서 죽을까 봐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일주일 후 구치소와 파출소 경찰이 자오시화의 집에 찾아와 신체검사를 시켜주겠다고 속여 그녀를 바로 구치소로 이송했다. 솽청 구치소에서 자오시화가 3개월 넘게 박해받은 후 구치소 소장, 여경 쉬지쩌(徐繼澤), 왕 씨 남자 경찰이 그녀를 직접 완자 노동수용소로 보냈다. 그녀는 신체검사에 불합격해 노동수용소에서는 수감을 거부했다. 솽청 구치소 소장, 솽청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공안국 인원들이 완자 노동수용소 소장과 의사에게 뇌물을 주고 나서야 자오시화를 수감했다.
2002년 3월 자오시화는 불법적으로 2년 강제노동을 선고받고 완자 노동수용소 12대대에 감금됐다. 첫날부터 자오시화는 사오자(邪悟者, 사악하게 깨달은 자)들에게 일주일간 감시를 받으며 파룬궁수련자와의 접촉, 대화, 서로 쳐다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일주일 후 자오시화는 반에 들어갔으나 여전히 강제 세뇌 전향과 벌서기(아침부터 밤 12시 전까지)를 당했으며, 그 기간 화장실에 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남경 야오푸창(姚福昌)은 전기몽둥이로 파룬궁수련자를 지졌다. 파룬궁수련자들이 화장실로 끌려가면 경찰은 몰래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렸으며, 밖의 다른 파룬궁수련자들은 볼 수 없었다.
2002년 가을 파룬궁수련자들은 7대대로 이송됐고 대대장은 장보(張波·여)였다. 세 명의 여경과 네 명의 남경이 20여 명의 파룬궁수련자를 감시했다. 경찰은 파룬궁수련자들에게 감방 규칙을 외우도록 강요했고 외우지 않으면 새벽 4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꼼짝도 하지 못하게 강요했으며, 몸을 곧게 펴고 발을 벌리지 못하게 한 채 한번 앉으면 한 달 내내 앉혀두었다. 경찰이 죄수복 착용을 강요할 때 자오시화가 입지 않자, 저우(周) 씨 여경은 그녀에게 앉기, 독방 감금, 매달기 등을 강요하며 자오시화를 괴롭혔다.
한번은 자오시화가 3서 작성을 거부하자 왕 씨 남경은 그녀를 독방에 가두고 양손 엄지손가락을 묶어 공중에 매달아 대(大)자 모양으로 벌려놓았다. 또한 전기몽둥이로 자오시화의 목, 얼굴, 온몸을 지졌다. 자오시화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기 힘든 고통을 겪었다.
박해받은 2년 동안 자오시화의 몸에는 옴이 가득 퍼져 온몸이 가려워 견딜 수 없었고 뼛속까지 고통스러워 눈을 감지 못한 채 18개월 동안 온전한 잠을 자지 못했으며 노역까지 강요당했다.
3. 납치 미수 후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떠돌아
2024년 12월 23일 하얼빈시 솽청구 청쉬(承旭) 파출소 경찰과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가 자오시화의 집에 들이닥쳤으나 그녀가 집에 없자 남편을 협박해 그녀가 어디 있는지 말하라고 했다. 경찰은 집 안의 휴대폰, 셋톱박스, 대법서적 등 개인 재산을 강탈했다. 당시 청쉬 파출소와 국보대대는 하얼빈시 쑹베이(松北)구 공안분국 베이징루 파출소에 연락해 자오시화 딸의 임대 주택을 찾아냈고, 마침 자오시화는 딸 쉬안자오징(宣昭晶)의 집에 있었다.
이 무리의 경찰은 강제로 집 안에 들어가려 했고 자오시화에게 형을 선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딸은 문 앞을 가로막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엄마를 잡아가는 건 절대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딸은 이치에 맞게 따지며 결사적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어린 아가씨가 결사적으로 막아 억지로 들어갈 방법이 없자 “이렇게 법 집행을 방해하면 당신에게 불리할 것입니다”라고 위협했다. 자오시화의 딸은 대학생으로 법을 잘 알고 있었기에 경찰이 법을 위반했음을 알고 있었다.
경찰은 달리 방법이 없자 폭력을 사용해 권총을 꺼내 자오시화 딸의 이마에 겨누었다. 자오시화의 딸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에게 호통쳤다. “쏘세요! 쏘세요! 오늘 우리 엄마를 건드리면 우리는 함께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겠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오시화를 잡아가지 못했다.
2024년 12월 28일 이 무리의 경찰은 쉬안자오징이 일하는 직장에 가서 소위 ‘법 집행’을 방해했다는 핑계로 그녀를 납치했고, 쉬안자오징은 하얼빈시 제2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이후 자오시화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떠돌아야 했고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2025년 8월 21일 자오시화는 다시 납치돼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의 모함을 받았고,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자오시화는 하얼빈시 다오리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3년 2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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