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비바람 속에서 당신의 결말을 선택하라
글/ 종봉(從封)
[명혜망] 창궁 아래에서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다. 사람의 생명은 지극히 소중한데, 왜냐하면 사람은 시비를 명확히 가리고 양심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은 또한 지극히 연약해서 천재지변과 인재(人災) 앞에서는 종종 견뎌내지 못한다.
중국 전통문화는 줄곧 ‘경외(敬畏)’라는 두 글자를 강조해 왔다. 신성함에 대해, 신앙에 대해, 선량함에 대한 일념의 차이가 종종 한 사람, 심지어 한 가문의 최종 운명을 결정짓는다. 역사는 거울이 되어, 하나하나의 진실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경외하는 자는 살고 오만방자한 자는 망한다.
최씨 가문의 비극
북위(北魏) 시기, 조야를 뒤흔드는 권력을 가진 중신 최호(崔浩)가 있었다. 그는 재주가 넘치고 음양술수에 정통해 스스로 한나라 장량(張良)을 자처했다. 그는 여러 차례 태무제(太武帝)를 도와 계책을 내고 군웅을 무찔러 북위가 북방의 패자가 되게 했다. 그러나 이토록 지모가 뛰어난 공신이 불교를 극력 배척했다. 최호의 거듭된 진언에 태무제는 사원을 불태우고 불상을 파괴하라고 명령했고, 이는 민중의 원성을 샀다.
최호와 반대로 그의 아내와 사촌 동생 최모(崔模)는 모두 불법(佛法)을 지극히 존중했다. 한번은 최호가 아내가 불경을 외우는 것을 보고 크게 화를 내며 불경을 빼앗아 불태웠고, 심지어 그 재를 화장실에 버렸다. 사촌 동생 최모는 막을 힘이 없어 가슴 아파하며 그 오물 무더기를 향해 절할 수밖에 없었는데, 최호는 이를 보고 오히려 동생이 황당하고 우매하다고 크게 비웃었다.
그러나 역사의 청산은 신속하고 잔혹하게 다가왔다.
몇 년 후, 최호는 황제의 노여움을 사 족쇄를 차고 형장으로 압송됐다. 형장으로 가는 길에 과거 높은 자리에 있던 최호는 분노한 호위병들에게 머리에 오줌을 맞는 수모를 겪으며 울부짖어야 했고, 결국 온 가문이 멸문당하는 화를 입었다.
하지만 이 멸문지화의 가문 참극 속에서 오직 최호에게 ‘황당하다’고 조롱받았던, 불법을 경앙해 묵묵히 절했던 동생 최모만이 기적적으로 사형을 면하고 목숨을 보전했다.
왜 천리는 신앙에 대한 짓밟음을 용납하지 못하는가?
많은 사람이 묻는다. 불가는 자비와 관용을 말하지 않는가? 왜 신앙을 파괴하고 수련자를 해치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는가? 설마 부처님의 속마음이 사실 매우 좁단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전통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불법은 우주의 진리이자 질서다. 우주에는 원칙과 마지노선이 있다. 수련인을 해치고 신성한 신앙을 헐뜯는 것은 바로 선악의 마지노선에 도전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한 아이가 고집스럽게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해치려는 것과 같다. 어머니의 마음이 아무리 관대해도 인간의 법률은 절대 그의 죄를 사면할 수 없으며 반드시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 사람이 땅에서 악을 행하면 천리가 창궁에서 저울질한다. 이른바 ‘응보’란 우주의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 작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천 년 후의 경고: 자오춘보의 비극
세월이 흘러 1천여 년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21세기인 오늘날, 이와 유사한 역사적 비극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가?
1999년 특정 신앙을 겨냥한 탄압 정책이 전면적으로 전개된 이후, 일부 지방 관리들은 눈앞의 권위를 위해 기꺼이 체제의 살육 도구가 됐다. 전 헤이룽장성 치타이허시 공안국 국장 자오춘보(趙春波)도 그중 한 명이다.
그가 지휘하며 재직하던 기간, 대다수 무고한 파룬궁수련자가 가택수색과 납치를 당했다. 2010년, 현지의 한 여성 파룬궁수련자 류수링(劉術玲)이 노동수용소에서 잔혹하게 박해당해 목숨을 잃었는데, 피해자의 목에는 한 바퀴의 검은 어혈이 남아 있었다. 현지 공안의 1인자로서 자오춘보는 선량한 민중을 겨냥한 이러한 만행에 대해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박해해 얻은 권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9년 11월 22일, 자오춘보는 집에서 추락해 사망하며 지극히 참혹한 방식으로 자신의 일생을 끝마쳤다.
맺음말: 생명의 귀천은 모두 자신의 일념에 달려 있다
역사상의 최호는 장량을 자처하며 지위가 높고 권력이 막강했지만 맹목적으로 불교를 반대하다 멸문당하고 온갖 수모를 겪는 신세가 됐다. 당대의 자오춘보 역시 막강한 권력을 쥐었으나 무고한 사람을 박해한 탓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막다른 길로 걸어갔다. 그들의 이야기는 모든 현대인에게 엄숙한 질문을 던진다. 이익의 유혹과 정치적 억압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양심을 대해야 하는가?
생명은 품행으로 인해 만인 위에 군림할 만큼 고귀해질 수도 있고, 악을 행해 비천하고 고통스러워질 수도 있다. 파룬궁수련자는 종종 선량함과 진상을 전파하는 사자(使者)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비록 당신이 그들의 신앙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반드시 선량함에 대한 경외심을 간직하길 바란다.
진리를 견지하는 파룬궁수련자들을 선하게 대하는 것은 사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퇴로를 남겨두는 것이다. 유언비어를 믿고 맹종하는 것은 재앙이며, 시비를 명확히 가리는 것은 복이다. 모든 사람의 미래가 선한 일념 속에서 진정한 평안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10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6/10/51100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6/10/511004.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