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후풍’의 고통 속에서 대법을 배우자 하늘에서 기쁨이 내려오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40여 년 전, 저는 활력이 넘치던 젊은 여성에서 한 달 만에 고질병을 앓는 환자가 됐습니다. 제 삶은 더 이상 햇빛이 들지 않았고 활력도 잃었으며, 매일 절망적인 병통의 고문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10여 년 후, 우연한 기회에 제 인생은 다시 햇빛으로 가득 찼고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무엇이 제 인생에 이렇게 큰 반전을 가져왔을까요?
저는 올해 69세로 대법 안에서 수련하며 이미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고, 수많은 신기한 일들을 겪었습니다. 아래에 제가 처음 대법을 얻었을 때 일어난 몇 가지 신기한 일을 나누고자 합니다.
인생의 반전
50년대 말, 저는 중국의 어느 외지고 가난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기억 속에 어릴 적 집안은 비록 가난했지만 병에 걸리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가끔 감기에 걸려 열이 나도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갈 필요 없이 조금 견디면 나았습니다. 어른이 된 후 저는 동년배들이 부러워하는 직장과 가정을 가졌습니다. 수출입 무역 회사에서 일하는 남편은 저를 세심하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었습니다. 그는 연해 도시로 자주 출장을 가면서 외진 우리 마을에는 없는 물건들을 사다 주었고, 동료들은 이를 보고 몹시 부러워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모든 일이 순조롭고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저에게 귀여운 딸이 생겼습니다. 딸의 탄생은 제 삶에 기쁨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제 인생에 반전을 일으켰습니다.
산후조리를 하던 중 어느 날, 저와 딸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하루 종일 끊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어나 앉아 손님들을 대접했습니다. 하지만 손님들이 돌아간 후 허리가 부러질 듯이 피곤해 온돌방 바닥에 무기력하게 쓰러졌습니다. 그 이후로 다시 앉으려 해도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방에 놓인 상자를 손으로 잡아야만 겨우 앉을 수 있었고, 등에 무언가를 기대야만 아주 잠시 앉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그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기만을 바랐습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며칠 지나지 않아 더 심각한 병을 얻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잠을 자는데 식은땀이 많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했으며, 더위와 답답함에 숨이 막혀 잠에서 깼습니다. 더위를 식히려고 손발을 이불 밖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손발에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번쩍 깼습니다. 깨어나 보니 손가락 끝과 발바닥에서부터 뼛속으로 찬 기운이 파고드는 것 같았습니다. 서둘러 손발을 이불 속으로 넣었지만, 이불 속에 넣고 나서도 여전히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그 이후로 손발은 두 번 다시 따뜻해지지 않았고, 저는 산후풍이라는 병까지 얻게 됐습니다. 어르신들 말씀에 산후조리 때 얻은 병은 낫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줄곧 건강했던 저는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방에 누워 끊임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눈까지 망가져서 늘 눈앞에 바람이 부는 것 같았고 눈이 뻑뻑했습니다.
그해 제 나이는 겨우 20대였기에 앞으로의 인생을 이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산후조리 기간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고 몸속의 그 찬 기운을 단번에 몰아내고 싶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한 달이 지난 후에도 저는 계속해서 사방으로 의사를 찾고 약을 구했으며, 곳곳으로 민간요법을 알아보고 약도 많이 먹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병이 호전되기는커녕 약을 너무 많이 먹어 모유가 줄었고, 체형은 부어서 비대해졌습니다. 결혼 전과는 딴판이 된 제 모습과 젖을 달라고 우는 딸을 보며, 저는 온종일 우울하고 기운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난방이 되지 않았습니다. 겨울 아침에 일어나면 손이 닿는 곳마다 차가워서 저는 장갑을 끼고 밥을 지어야 했습니다. 여름에도 신발에 솜 깔창을 깔아야 했고, 한여름 밤에 잘 때도 솜이불을 덮고 몸을 꽁꽁 싸매야 했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일어나도 다리와 발은 여전히 차가웠고, 늘 발바닥에서부터 뼈마디로 찬 기운이 파고드는 것 같았으며, 팔다리가 항상 시큰거리고 아팠습니다.
10년 후,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환경은 단독주택보다 조금 나아졌지만, 제 몸은 이미 간단한 집안일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었습니다. 비질할 때 허리를 숙일 수 없었고, 빨래할 때는 대야를 밥상 위에 올려놓고 해야 했습니다. 앉을 때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야 했고, 의자가 없으면 팔로 몸을 지탱해야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는 허리가 뻣뻣하고 아파서 한참이 지나서야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사지에 힘이 없었고, 저녁을 먹고 나면 깨끗이 치우기도 전에 이미 기진맥진해 서둘러 침대에 누워 쉬어야 했습니다. 가끔 가족들과 TV를 조금이라도 보면 눈이 너무 뻑뻑해서 안약을 넣어야만 겨우 진정됐습니다. 저는 매일 겉보기에는 병 같지 않은 이 병들에 시달리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체념한 채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습니다.
운이 트이다
저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현 곡물 환승 비축창고에서 일했습니다. 겨울에는 곡물을 거둬들이지만 여름에는 별로 할 일이 없어서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휴가를 주었습니다. 한가해진 동생은 기공을 찾아 배우려 했고, 그의 동창이 그에게 파룬궁을 추천했습니다. 그렇게 동생은 파룬궁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어느 날, 동생은 저를 만나 파룬궁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파룬궁이 얼마나 좋은지, 연마하면 어떻게 사람이 젊어지는지, 어떻게 질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며 얼마나 기적적인 효과가 있는지 말했습니다. 당시 파룬궁이 무엇인지 기공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저는 전혀 개념이 없었지만, 동생이 좋다고 하니 가서 보고 좋으면 배우고 별로면 안 배우면 그만이지 손해 볼 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단순한 한 가지 생각이 제 인생에 전환점을 가져왔습니다.
기억하기로 1997년 12월 22일 저녁 6시가 넘었을 때였습니다. 저는 동생이 알려준 주소대로 어느 아주 평범한 단독주택 마당을 찾아갔습니다. 제가 문을 두드리자 인자한 얼굴을 한 60세 전후의 아저씨가 저를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방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 앉아 온 정신을 집중해 비디오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온돌방 구석에 끼어 앉아 팔로 몸을 지탱한 채 사람들과 함께 비디오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TV에서 강의하는 분을 보았을 때 몹시 낯이 익었지만 어디서 봤는지 얼핏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생각나지 않아서 그만 생각하기로 하고 계속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9강의 강의를 다 보고 나니 말씀이 너무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제가 평생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파룬궁이 정말 좋구나, 내가 너무 늦게 배웠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는 허리가 아프지 않고 손발도 시리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등받이 의자에 앉지 않아도 더 이상 팔로 몸을 지탱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허리가 나았고 손발도 찬 기운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더욱 생각지도 못한 일은 한번은 집에서 TV를 볼 때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눈이 뻑뻑해졌습니다. 당시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안약을 집어 들고 눈에 넣었습니다. 안약을 넣자마자 눈이 화끈거리며 아팠는데, 안약이 아니라 마치 고춧물을 넣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때 ‘내가 파룬궁을 배워서 눈이 나은 건가? 안약을 넣을 필요가 없어진 걸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제 눈은 곧바로 화끈거리며 아프던 것이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TV를 봐도 눈이 뻑뻑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놀랍고 기뻐 어쩔 줄 몰랐습니다. 허리도 낫고! 눈도 낫고! 손발도 찬 기운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10여 년 만에 치마도 입을 수 있게 됐고, 산후조리 때 얻은 병들이 모두 소리 소문 없이 나았으며, 저도 정상인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사실 산후풍은 약으로 고칠 수 없고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입니다. 그런데 제가 파룬궁을 접한 후 겨우 며칠 만에 이런 고질병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씻은 듯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런 초범적이고 신기한 일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느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대법을 배우기 전에는 산후풍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 단골손님이 됐고, 지역의 크고 작은 병원과 개인 진료소 등 안 가본 곳이 없었습니다. 한약과 양약을 끊임없이 먹다 보니 체형이 변해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 저와 자주 만나지 않았던 지인들은 저를 보면 한참을 알아보고 나서야 겨우 인사를 건네곤 했습니다.
대법을 배운 후 체형이 점차 회복됐고 사람은 갈수록 젊어졌습니다. 동료들은 “언니, 어떻게 이렇게 젊어졌어요? 체형이 마치 아가씨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저는 이미 7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겨우 50대처럼 보입니다.
선념이 가져온 신기함
파룬궁 수련을 하기 전 한번은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자궁에 근종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의사는 시간을 내서 수술을 받으라고 권했습니다.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았기에 당시 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연공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아랫배가 조금 아프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아파졌고 곧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 아랫배가 또 한바탕 심하게 아팠는데, 볼일을 마치고 나니 배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제가 일어나서 무심코 변기를 들여다보니 변기 안에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더 큰 살덩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문득 예전에 의사가 말했던 그 자궁근종이 저절로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고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친정 오빠는 농촌에 살고 있었습니다. 설이 다가올 무렵, 여동생이 차를 빌려 오빠를 보러 가자며 저에게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개인 차가 없어서 차를 쓰려면 직장에서 빌려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연공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마침 심한 감기 증상이 나타났고, 기침과 열이 나고 뼈까지 쑤셔서 침대에 누워 꾸벅꾸벅 졸기만 했습니다. 차를 한 번 빌리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제 모습을 본 여동생이 “모레 셋째 오빠 보러 가야 하는데, 언니가 이렇게 아파서 갈 수 있겠어?”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나 내일이면 나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다음 날 정말로 나았습니다.
우리집이 아파트로 이사한 이후 바닥에서 물이 샌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연공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윗집 화장실 욕조 쪽에서 우리집 욕조 가장자리로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오랜 시간에 한 방울씩 떨어지더니 나중에는 계속해서 떨어졌고 갈수록 더 빨리 떨어져서, 천장을 넓게 적셨고 범위도 끊임없이 넓어졌습니다. 물방울이 욕조 가장자리에 떨어져 사방으로 물이 튀자 저는 대야를 찾아 받쳐놓았습니다. 이를 본 남편이 “내가 위층에 올라가서 원인을 찾아보라고 할게. 안 되면 물을 쓰지 못하게 해야겠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24시간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만 물이 공급됐기에 집집마다 욕조에 물을 받아두고 변기 물을 내리거나 빨래할 때 썼습니다. 저는 남편이 윗집에 가려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윗집에 찾아가지 말아요. 당신이 물을 쓰지 못하게 하는데, 만약 우리집이 아래층으로 물이 새서 아래층 사람이 우리더러 물을 쓰지 못하게 하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다 똑같지 않나요? 우리는 그냥 대야로 좀 받쳐두면 돼요.” 제가 이렇게 말하자 남편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떨어지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 보였고 점점 더 느려지더니 마지막에는 아예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다시는 물이 새지 않았습니다. 타인을 배려한 저의 이 한 가지 생각이 이웃 간의 갈등을 피하게 해주었습니다.
시어머니에게는 4녀 3남으로 일곱 자녀가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셨고 시아버지가 계실 때는 재산 분쟁이 없었습니다. 2년 후 시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시며 몇만 위안을 남기셨습니다. 맏이인 큰시누이가 유산 분배를 주관했습니다. 돈을 나눌 때 큰시누이는 자신은 한 푼도 받지 않고 시아버지가 남긴 돈을 다른 동생들에게 똑같이 나누어주었습니다. 남편은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평소에 노인에게 가장 잘했으니 마땅히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면전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집에 돌아와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큰시누이를 찾아가 따지겠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큰시누이의 이름을 부르며 만약 다시 오면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고 지금부터 인연을 끊고 아는 체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평소 부모님께 잘한 건 당연한 일이고 마땅히 해야 할 효도예요. 아버님이 평소 아끼고 절약해서 돈을 남기셨으니 망정이지, 만약 돈을 남기지 않으시고 빚이라도 있으셨다면 당신은 돈을 나누어 받기는커녕 다 같이 돈을 모아 아버지 빚을 갚아야 했을 거예요.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안 낼 거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아버님이 당신을 키워주셨고, 당신은 돈 한 푼 안 들이고 아버님을 보내드렸으니 그것으로 만족하세요. 큰언니가 모두에게 돈을 나누어주고 자신은 한 푼도 가지지 않았는데, 제가 보기엔 큰언니가 잘못한 게 전혀 없어요.” 제 말을 들은 남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큰시누이를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처음 대법을 배울 때 있었던 몇 가지 신기한 일입니다. 대법을 배운 이후로 제 몸은 건강해졌고 도덕성도 향상됐으며, 일을 대할 때 너그럽고 도량이 넓어졌으며 더 이상 개인의 득실을 따지지 않게 됐습니다. 수많은 이웃 간, 친족 간의 사소한 일 속에서 저는 모두 대법의 법리로 타인을 위하는 입장에서 대했고, 이로 인해 불필요한 이웃 간의 분쟁과 가정 안의 갈등을 많이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대법의 위력이자 ‘진선인(眞·善·忍)’의 힘입니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5/29/5103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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