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숙선(宿善)
[명혜망] 1996년,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얻는 행운을 누렸다. 파룬따파 덕분에 나는 고통스러운 인생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았다. 그해 우리집 아이가 대학에 입학했다. 아이가 7살 때 남편이 세상을 떠났고 나는 도저히 아이 학비를 댈 수 없어 외지로 일하러 가야만 했다. 나는 베이징을 선택했고 그때 이런 다짐을 했다.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겠다.’
사람을 구하는 데 가릴 수 없어
우리 현은 국가 지정 빈곤 현으로, 나는 대부분의 기업 직원들처럼 구조조정(실직)을 당했다. 그때 매달 아이에게 생활비를 보내야 했고 내 생활비까지 더하면 하루빨리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취업 알선 업체를 찾아간 첫날, 마침 가사도우미를 구하는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우리 몇 명에게 이런저런 개인 사정을 묻더니 그냥 가버렸다. 곧 점심때가 될 것 같아 나는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얼마 걸어가지 않았는데 알선 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그 여자분이 당신을 선택했어요. 돌아오세요.”
돌아가 보니 그 여자는 알선 업체 직원과 계약서를 놓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갑을 쌍방의 권익, 특히 을의 권익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세세하게 따지고 있었다. 나중에는 알선 업체 직원을 밖으로 내몰다시피 해서 전화하러 나가게 만들더니 재빨리 전화번호를 써서 내 손에 쥐여줬다. 직원이 들어오자 “남편한테 전화가 왔는데 이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라는 핑계를 대고 그냥 가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걸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여자, 만만치 않은 사람이네! 알선 비용을 안 내려는 거잖아.’ 방금 본 그 장면만으로도 앞으로 이 여자가 쉬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다 다시 생각을 바꿨다. ‘어쩌면 이 사람이 인연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
그녀는 자기 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매일 두 사람의 아침과 저녁 두 끼만 준비하고 집 청소를 맡으면 되며 일주일에 하루 쉰다는 조건을 정했다. 그녀는 자신이 웨이웨이(가명)고 남편은 샤오위(가명)라고 소개하며 집 상황과 주의사항들을 설명해줬다. 나도 그때 그녀에게 말했다. “저는 살아있는 생선이나 닭은 손질할 수 없어요. 그리고 저는 제 나름의 생활 원칙이 있어요. 진실하고 선량하며 너그럽게 사는 것입니다.”
웨이웨이는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그녀가 물었다. “요리는 잘하세요?” 나는 말했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니 한번 해봐야 알겠죠. 입에 맞을지 봐야죠.”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었다. ‘이 몇 년간 아들과 나의 생활은 빠듯하다는 말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라 해본 요리가 별로 없는데, 잘하고 못하고를 어떻게 말하겠어.’
웨이웨이는 내게 돈을 미리 내달라며 장을 봐달라고 했고,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녀는 갖가지 요리를 골라 해달라고 했는데 나는 파룬따파에서 가르쳐준 대로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며 온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그녀가 원하는 요리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만들어냈고 웨이웨이는 한 번도 내 음식이 맛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웨이웨이는 친구들과 부모님을 자주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했고 그 덕에 나는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웨이웨이 어머니가 자주 오다 보니 우리는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한번은 웨이웨이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웨이웨이가 당신이 만든 음식이 맛있다며 친구들이랑 우리도 같이 먹으러 오잖아요.” 하지만 웨이웨이는 내 앞에서 직접 칭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됐는데 웨이웨이의 아버지는 다른 성에서 베이징으로 발령받아 온 관리였다. 까다롭고 고집스러운 성격이 그래서 나온 거구나 싶었다. 그녀는 종종 내 업무 범위 밖의 일도 시켰는데 나는 수련인이기 때문에 따지지 않았다.
웨이웨이의 남편 샤오위는 요즘 말로 하면 항상 ‘쿨’한 척하는 사람이었다. 그 집에 간 지 거의 한 달이 됐는데도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었고 우리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어느 날 저녁, 웨이웨이가 또 부모님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식사 후 샤오위가 장모님께 말했다. “어머님, 최근에 몇 번 운전하다가 그냥 의식을 잃어버렸어요. 아무것도 모르게 됐는데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웨이웨이 부모님이 다급하게 물었다. “병원은 가봤어?” 샤오위가 말했다. “여러 병원을 다녔는데 무슨 병인지 알 수 없다고 해요.” 나는 일을 하면서 끼어들었다. “파룬궁을 수련해보세요. 많은 분들이 수련 후 큰 병이 다 나았어요.” 그가 물었다. “어떻게 하는 건가요?” 나는 대략 설명해줬다. 이때 웨이웨이 어머니도 말씀하셨다. “전에 내 동료가 파룬궁을 수련하더니 몸이 정말 많이 좋아졌더라고.” 이미 밤이 너무 늦어서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샤오위는 매일 출근하기 전에 뭔가에 절을 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느 날 그가 문 앞에서 집 안쪽을 향해 또 절을 하는 것을 봤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저 동(銅) 두꺼비에게 절을 하는 거구나!’ 아무 생각 없이 이 말이 나왔다. “당신 병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요.” 말이 나오고 나서 나 자신도 놀랐다! 나는 평소에 말조심을 잘 한다고 자부했는데 이런 말이 어떻게 저절로 나왔을까? 그가 다급하게 물었다. “어딘가요?” 나는 말했다. “이건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어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말씀드릴게요.” 그 며칠 동안 그들은 퇴근이 매우 늦어서 이 이야기는 꺼내지 못했다.
예전에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했던 S 선생님은 베이징에서 회계 사무소를 열었다. 내가 베이징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들은 S 선생님이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업계는 경력이 쌓일수록 좋은 거야. 전공을 살리는 게 좋겠어.” 그는 내가 전에 배운 전공을 살리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내가 학교에서 가르칠 때는 마침 1992년 중국이 세계 경제와 통합되던 시기로 1993년에는 새로운 ‘기업회계기준’이 정식으로 시행됐다. 장부 기장 방법이 많이 바뀌었는데 통일된 교재가 없었다.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취업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직접 베이징으로 새 교재를 구하러 갔다. 시급 우수 수업 인증서를 받기도 했지만 사회에서는 연줄이 없으면 안 되고 큰 선물을 가져가지 않으면 근무지를 옮길 수 없었다.
이미 이 업계를 떠난 지 거의 10년이 됐고 회계 자격증도 만료됐으며, 당시에는 컴퓨터가 아직 보급되지 않아 전산 회계도 없었다. S 선생님은 내가 회계 분식을 몹시 꺼린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말해줬다. “대행 회계 중에는 분식 없이 할 수 있는 곳도 있어.” 그리고 전산 회계 소프트웨어 부분은 자기 사무소에서 잠시 배우면 된다고 했다. 나는 다시 회계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결심하고 매주 쉬는 날에 그의 사무소로 가서 전산 회계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고향 친구 아이가 대학에 합격해 잔치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축하해주러 가고 싶었다. 쉬는 날에 베이징역으로 가서 줄을 서서 일주일 후 귀향하는 기차표를 샀다. 속으로 이렇게 계산했다. ‘야간 기차를 타면 출근에 지장이 없을 거야. 웨이웨이가 허락한다면 하루 교대 휴가를 쓰고 돌아와서 보충하면 고향에서 하루 더 있을 수 있겠지.’
다음 날 웨이웨이에게 기차표를 샀다고 말했다. 그녀는 바로 화를 냈다. “누가 허락했어요? 이틀은커녕 하루도 안 돼요!” 나는 어리둥절했다. “제 휴가일이 있는데 어떻게 하루도 안 된다는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시어머니가 수술을 받으셔서 퇴원하시면 여기로 모셔와야 해요.” 내가 말했다. “표도 다 샀는데 하루도 안 된다는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안 돼요!”
그때 이런 생각들이 순식간에 스쳤다. ‘나는 매일 저녁 당신 전화를 받고 당신이 시키는 대로 장을 봐서 밖에서 기다리다가 들어가서 밥을 해. 비바람을 맞으며 두 시간 이상 밖에서 기다린 적도 있고 세 끼를 해달라며 할 일도 잔뜩 늘어났지. 당신은 정말 모시기 어려운 사람이야! 게다가 시어머니는 전에 당신이랑 같이 살지도 않았잖아. 모셔와야 한다면서 사전에 말 한마디도 없이 내 쉬는 날도 없애고, 전산 회계 배우는 건 어떻게 하라고? 나는 당신한테 팔린 몸도 아닌데, 그냥 그만두겠어!’ 그러다 반성했다. ‘날마다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하면서 사람이 바로 여기 있는데, 이게 사람을 가려서 구하는 게 아닌가? 좋아! 다른 곳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이 집 식구를 구하자!’ 지금 말하면 정말 신기한 일인데, 이 많은 생각들이 순식간에 떠오른 것이었고 이 모든 말들은 마음속 활동이었지 밖으로 나온 말이 아니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웨이웨이에게 말했다. “그러면 저는 돌아가지 않겠어요. 기차역에 가서 표를 환불하고 올게요.” 그때는 아직 인터넷 예매가 없던 시절이었고 명절에 귀향하려면 오랜 시간 줄을 서서 표를 사야 했다. 퇴근 후 버스를 타고 두 시간 이상 왕복해서 기차역에 가서 표를 환불했다. 버스에 앉아서 이 몇 년간 친구들이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지 생각하면서 이번에 가서 그녀들을 만나고 싶었다. 아쉽게도 이미 일이 이렇게 됐으니 나중에 기회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웨이웨이의 시어머니가 퇴원해서 오셨다. 사실 웨이웨이는 나한테 시어머니 시중을 들게 하려는 것이었다. 시어머니가 오신 이후 웨이웨이는 이전보다 더 집에 있는 시간이 줄었고 집에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개흉 대수술을 받으신 데다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의 혼자 생활하기 어려우셨고 일어나는 것도 내가 도와드려야 했다.
나는 쉬는 날이 없어졌고 동료의 사무소에 배우러 갈 수도 없게 됐다. 단순히 배움과 자격증 취득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번듯하고 수입이 좋은 직장 기회를 포기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수련인이고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을 할 때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라고 가르쳐주셨다.
시어머니의 발을 처음 씻겨드릴 때 나는 정말 마음이 많이 어려웠다. 아들이 어릴 때 발을 씻겨준 것 외에는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련인은 상대방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법! ‘어르신의 몸이 이렇게 약하신데 어떻게 해야 하지?’ 한참 생각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발을 씻겨드린 적이 없으니 이번에 어머니 발을 씻겨드리는 셈 치자.’ 그렇게 생각하니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나는 매일 정성껏 어르신을 돌보면서 인내심을 갖고 마음을 다독여드렸고 아울러 파룬따파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소개해드렸다. 고학력 지식인이신 어르신은 성품이 선량하셔서 내가 하는 말을 다 받아들이셨다.
어느 날 샤오위가 내게 말했다. “누님, 전에 제 병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 안다고 하셨잖아요. 말씀해주실 수 있어요?” 나는 말했다. “당신이 물어봤으니 말씀드릴게요. 하지만 저는 누구한테나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아요. 거리의 가게들을 보면 거의 집집마다 모시고 있는데 저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요. 당신 집에 온 지도 꽤 됐고 우리도 인연이 있으니 드리는 말씀이에요. 믿고 안 믿고는 당신이 결정하세요. 이건 제가 파룬따파 수련을 통해 얻은 얕은 깨달음입니다. 제가 보기에 당신 병의 근원은 바로 그 두꺼비에게 절을 한 것이에요. 그건 좋은 물건이 아니에요.” 샤오위는 어느 어느 산에서 500위안을 주고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재물을 조금 얻었을 수도 있겠지만 당신이 절을 하면 그것이 당신 몸의 정기를 빨아들이는 거예요. 그게 바로 당신이 병에 걸린 근원이에요. 오늘 말씀드렸으니 믿고 안 믿고는 당신이 결정하고 어떻게 할지도 당신이 결정하세요.” 나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샤오위가 나를 보고 말했다. “누님, 그거 베란다에 내놨어요. 처리해주세요.” 그가 이 문제를 이렇게 빨리 인식하고 이미 그 동(銅) 두꺼비를 치워버렸을 줄은 전혀 몰랐다. ‘이 생명은 구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샤오위의 어머니와 상의한 후 고물 수거하는 분을 불렀다. 나는 그 분에게 말했다. “이것을 바로 녹여버려 주세요. 안 그러면 누구한테 가든 해를 끼칩니다.”
며칠 후 샤오위와 웨이웨이가 먼저 나서서 나한테 파룬궁을 배우겠다고 했다. 첫 수련에서 샤오위는 1~4번째 공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해냈고, 5번째 공법은 단가부좌밖에 안 됐지만 동작은 다 배웠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연공했다. 이때 샤오위의 어머니는 이미 나와 함께 사부님의 설법 동영상을 두 번 봤다. 샤오위는 직장에서 어머니를 위해 사부님 설법 동영상 DVD를 복사해 오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중국공산당(중공)의 당·단·대 조직에서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했다. 한 달여 후 샤오위의 어머니가 건강을 거의 회복하고 집으로 돌아가실 때는 이미 ‘전법륜(轉法輪)’을 두 번 이상 읽으신 상태였고 소중한 대법서적을 가지고 떠나셨다. 알고 보니 어르신은 대법을 얻으러 오셨던 것이다!
웨이웨이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임금도 올려주고 집 열쇠도 나한테 맡겨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해줬다. 웨이웨이의 부모님을 포함해 그 집 식구 모두가 중공의 당·단·대 조직에서 삼퇴했다. 내가 그 집을 떠날 때 웨이웨이는 몹시 슬피 울었다.
샤오위의 병은 나았다. 몇 년 후 샤오위의 어머니께 다시 여쭤보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샤오위 병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았어요. 완전히 나았어요.” 그들은 모두 파룬따파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대법 사부님의 드넓은 자비이며 파룬따파의 위덕이다.
유일한 선진 근로자
나의 또 다른 일자리는 함께 사는 좋은 언니가 인터넷으로 찾아줬다. 그녀는 이 일이 나한테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채용 광고에 적힌 급여는 같은 업계보다 3배나 높았고 각종 대우도 아주 잘 나와 있어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녀들의 격려 덕분에 나는 한번 지원해보자는 생각으로 응시했다.
면접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500대 기업 면접에서 나온다는 문서 작성도 요구받았고 아주 특이한 질문들도 있었다. ‘회사 대우가 이렇게 좋으니 나는 아마 안 뽑히겠지’라는 생각에 대답할 때 거리낌 없이 비굴하지도 오만하지도 않게 답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사흘 후 전화가 왔다. “합격하셨습니다!” 함께 사는 이들이 모두 기뻐했고 동시에 내가 이 일자리를 구한 것을 믿기 어렵다고들 했다.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사부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때 나는 아이의 대학 학비를 대고 있어 경제적 압박이 매우 컸다.
일하면서 여러 번 큰 도전에 부딪혔는데 나는 대법을 수련하며 키운 선(善)으로 풀어나갔다. 나는 업무 외 시간에 동료들에게 파룬따파 수련의 아름다움을 자주 이야기해줬다. 매일 즐겁게 지내며 ‘상대방을 위한다’는 업무 태도를 동료와 고객 앞에 보여줬고 그들도 나를 통해 대법 수련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많은 동료와 고객들이 삼퇴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규모가 크지 않아 매장 세 곳 합쳐도 100명이 안 됐다. 그해 회사에서 직원들과 교외 나들이 겸 송년회를 열기로 했다. 나는 먼저 매니저에게 말했다. “동료들은 다 젊고 놀기 좋아하니 저는 가지 않고 집을 보겠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사흘 후 동료들이 상품을 들고 돌아왔다. 내가 회사의 유일한 선진 근로자로 뽑혔던 것이다.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송년회 선진 선발은 경쟁이 매우 치열해서 업무 실적, 업무 능력, 회사 각종 규정 준수 등 여러 기준으로 평가를 했다고 한다. 서로 얼굴이 빨개질 만큼 다투고 서로의 단점을 들추며 경쟁했는데 최종적으로 선발된 것은 나 한 사람뿐이었다. 동료들 모두 승복하며 그해 유일한 선진 근로자 영예를 나한테 줬다.
회사 입구에 선진 근로자로서 내 큰 사진이 걸렸다. 고객들이 나를 보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신이 그 선진 근로자시죠?” 나는 이 모든 것이 대법을 수련한 후 대법의 요구에 따라 실천하고 매사에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남을 선하게 대한 것이 사장과 동료들에게 인정받은 것임을 안다.
대법서적을 잃었다가 되찾은 기적
우리 회사에서 고용한 청소 아주머니가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는 대법 진상을 알려주고 삼퇴를 도와드렸다. 아주머니도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으셨는데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 이혼할 지경이고 몸도 항상 아프다고 했다. 나는 내가 배운 대법 법리로 아주머니를 위로하고 인도했다. 내 설득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머니는 나한테 연공을 배우기 시작했고, 나는 파룬따파 주요 경전인 ‘전법륜’을 가져다드렸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이 책을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두지 마세요.” 아주머니는 진지하게 그러겠다고 했다.
아주머니의 근무는 매주 토, 일 이틀뿐이었다. 어느 날 출근하자마자 내게 말씀하셨다. “그 책이 없어졌어요.”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아주머니가 말했다. “남편이 버렸다고 해요.” 나는 믿기지 않았다. “혹시 숨겨놓은 거 아닐까요? 빌린 책이고 매우 귀중한 책이라고 잘 설명해서 꼭 찾아달라고 하세요!” 다음 날 아주머니가 말했다. “물어봤는데 버렸대요.” 다음 주에 출근해서도 여전히 찾지 못했다고 했다. 이 책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아주머니도 알기에 많이 안타까워하셨다.
2주가 지나도 책은 여전히 없었고 나는 마음이 싸늘해졌다. ‘저 사람이 무지한 상태에서 대법에 그 큰 죄를 지었으니 어떻게 감당하려나!’ 그 며칠 동안 얼마나 마음이 괴로웠는지, 마치 천 근짜리 무거운 돌이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포기하지 않았고 책이 진짜 버려졌다는 것을 끝까지 믿지 않았다.
3주째가 됐을 때 아주머니가 나를 보자마자 기쁘게 말씀하셨다. “찾았어요! 찾았어요!” 나는 매우 감격해서 말했다. “정말 다행이에요! 숨겨놨던 거죠? 버린 게 아니었죠?”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진짜 버렸어요!” 나는 말했다. “그럼 어떻게 된 거예요? 빨리 말해봐요.”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남편이 정말 쓰레기더미에 버렸는데, 제 두 살 좀 넘은 외손자가 알록달록한 책을 보고 주워왔고, 사위한테 종이 비행기 접어달라고 해서 사위가 치워뒀던 거예요.”
내가 물었다. “책 커버를 다시 싸셨어요?”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아니요.” 보니 내가 전에 흰 종이로 싸놓은 커버 그대로였는데 매우 깨끗해서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았다! 아이가 어떻게 알록달록하다고 했을까? 이후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두 살 좀 넘은 아이는 마음이 순수해서 자연히 천목(天目)이 열려 있어 파룬(法輪)을 봤던 게 아닐까. 사부님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기뻐서 아주머니를 점심 식사에 초대하고 자세히 여쭤봤다. “사위분이 어떻게 책을 치워두셨던 건가요? 왜 이제야 알게 된 거예요?”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사위가 이 책이 좋다는 걸 알고 치워뒀대요. 요 며칠 제가 계속 뭔가를 찾는 것을 보고 뭘 찾느냐고 물어봐서 그제야 그 책을 찾는다고 했더니 책을 꺼내줬어요. 진상 호신부(護身符)도 하나 있다면서 저한테 보여줬는데 제가 갖고 싶다고 했더니 안 줬어요.” 나는 거듭 말했다. “사위분이 정말 감사해요! 정말 너무 감사해요! 저도 식사를 한 번 대접하고 싶네요. 사위분을 좀 알고 싶어요.” 나는 아주머니에게 사위의 이름과 직업을 물어봤다.
아주머니가 사위의 이름과 직업을 알려줬고 나는 또 직장과 주소를 물었다가 깜짝 놀랐다. “아, 어떻게 이럴 수가!” 알고 보니 아주머니의 사위 A는 나와 함께 살던 아는 동생과 같은 직장 동료였고, 그 동생이 그에게 진상을 알려줬기에 그가 진상을 알고 대법서적을 지켜준 것이었다.
그 동생은 내가 베이징에 온 이후 알게 된 수련생으로 나와 함께 방을 임대해 살고 있었다. 거의 일어나기 불가능한 확률의 사건이었다.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몇 사람이 파룬따파의 성스러운 인연으로 모두 이어져 있었고, 소중한 대법서적이 잃었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5/30/51043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5/30/510434.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