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우리 현(縣)은 가난한 산간 지역으로, 사람들은 순박하고 솔직하며 거주지가 분산돼 있고 교통도 불편하다. 1994년, 한 대학생이 사부님께서 지난에서 개최하신 설법반에 참가했고, 그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복음을 우리 현으로 가져왔다.
처음에는 그녀 혼자만 수련하다가 삼촌에게 전했다. 삼촌은 당시 심각한 뇌종양을 앓아 이미 두 차례 개두수술을 받았지만 병세는 오히려 더 악화됐다. 의사는 “세 번째 수술은 불가능하고, 이제는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했다. 삼촌은 절망 속에서 파룬궁을 수련했고 뇌종양이 기적처럼 나았다. 이 일은 우리 지역의 큰 뉴스가 됐다. 삼촌의 이웃과 친척, 친구들이 모두 파룬궁을 배우러 찾아왔다.
1. 대법을 널리 전하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질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라는 말이 하나가 열을 부르고 열이 백을 불러 우리 지역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대법제자들은 법을 알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붉은 천에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써서 3미터 길이의 현수막을 만들었다. 젊은 수련생들이 이를 높이 들고, 나머지 수련생들은 뒤를 따르며 마을마다 돌아다녔다. 우리 행렬에는 몇 살짜리 어린 수련생도 있었고, 80세가 넘은 고령의 수련생도 있었다.
마을마다 도착할 때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질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우리는 자원봉사로 공법을 가르치고 비용은 일절 받지 않는다고 했다.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널찍한 곳을 찾아 멈추고 공법을 가르쳤다. 사람들은 기쁘게 찾아와 이것저것 물었고, 어떤 이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뛰쳐나와 구경하기도 했으며, 어떤 이는 창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어 바라봤다. 우리는 그들과 열정적으로 소통하며 공법을 적극 소개했다.
더 먼 곳의 사람들도 파룬따파를 알 수 있도록 우리는 큰 장터에 나가 단체 연공을 했다. 그때는 농촌이 아직 매우 가난해서 자전거도 드물었고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었으며, 장을 보러 갈 때도 모두 걸어서 다녔다. 첫 번째 단체 연공에 족히 100명이 넘게 참가했는데, 그 광경이 정말 장관이었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발길을 멈추고 바라봤다. 파룬궁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소개해 주었고,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정성껏 공법을 가르쳐 주었다.
가장 먼 큰 장터는 우리 지역에서 90여 리나 떨어진 곳이었다. 우리는 새벽 2시에 출발해 오전 9시쯤 장터에 도착했고, 10시에 단체 연공을 시작했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배우는 사람이 생겼다. 법을 알리는 일이 끝난 후 우리는 다시 집을 향해 걸었다. 길이 워낙 멀다 보니 많은 고령 수련생들이 지쳐서 걷기가 힘들어졌고, 우리는 서로 부축하고 격려하며 함께 걸었다.
그때는 먹을 것을 살 돈도 없었기에 집에서 고구마나 오이 같은 것을 가져와 고령 수련생들에게 나눠 주고, 나 자신은 배를 곯았다. 한 젊은 수련생은 한 고령 수련생이 너무 힘겹게 걷는 것을 보고 등에 업고 걸었다. 다른 수련생들이 이를 보고는 돌아가며 그 고령 수련생을 업어 드렸다. 집에 도착한 후 어떤 수련생들은 발에 물집이 잔뜩 생긴 것을 발견했다.
다음 날에는 또 다른 곳에 나가 법을 알려야 했다. 수련생들은 아무리 고생해도 힘든 줄 몰랐다. 오직 그곳 사람들 모두가 대법을 얻길 바랐다. 수련생들은 늘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단 한 사람이라도 법을 얻는다면 헛걸음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우리가 처음 찾아갔을 때 한두 명밖에 수련하지 않던 곳들에도 나중에는 우리 지역처럼 법이 널리 전해졌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파룬따파는 전 현의 도시와 농촌, 크고 작은 마을 구석구석까지 전해져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1999년 7월 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전까지, 우리 지역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이미 수만 명에 달했고, 우리 현은 우리 성에서 파룬궁수련생이 가장 많은 현이 됐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박해를 시작하며 파룬따파를 비방했다. 세상 사람들이 속고 있는 것을 목격하며 대법제자들은 밥도 넘어가지 않고 잠도 이루지 못했다. 수련생들은 잇달아 베이징으로 올라가 청원을 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알리고, 사부님의 명예를 회복하고 대법의 명예를 되찾아 달라고 요청했다. 1999년 12월 어느 날에는 29명이 같은 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가서 법을 수호했다. 그 시기 동안 우리 지역 대법제자들은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베이징으로 향했으며, 감동적인 사연이 매우 많았다.
2. 대법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다
예전에 사람들이 한가로이 나누는 이야기는 누구네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싸웠다느니, 누구네 부부 사이가 안 좋다느니, 누구네 물건을 도둑맞았다느니, 누구네 노인이 위독하다느니 하는 속 썩이는 얘기들뿐이었다. 어디서는 경계 문제로 싸움이 나서 사람을 죽였다느니, 집안 갈등으로 자살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종종 들렸다.
이후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온통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에 관한 것이 됐다. 누구네 며느리가 대법을 배우고 나서 좋은 사람이 됐다느니, 누구네 부부가 사이가 좋아졌다느니, 누가 무슨 병을 파룬궁을 수련해서 나았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대화 속에서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파룬따파가 사회와 가정에 가져다준 아름다움과 행복에 감탄했으며, 선한 사람과 선한 일이 넘쳐났다.
한 마을 간부는 대법제자를 만나 이렇게 칭찬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다 대법을 배운다면 이 마을 간부 자리가 참 편해지겠네요.” 예전에는 마을에 공량(公糧) 돈을 오랫동안 내지 않는 집들이 몇 있어서, 그 집들에 돈을 받으러 갈 때마다 머리가 아팠다. 그들이 대법을 배운 후에는 스스로 공량 돈을 가져왔고, 어떤 이는 전에 내지 않은 돈까지 보충해서 냈다.
예전에는 겨울이 되면 마을 간부가 사람을 보내 길에 쌓인 눈을 치우게 했는데, 돈을 조금만 주면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는 대법제자들이 자발적으로 눈 치우는 일을 맡아 마을에서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마을 간부는 감탄했다. “이것이 대법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복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우리 마을 위원회가 전력으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대법을 수련하고부터 모두가 낮에 일할 때 활력이 넘쳤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일찍 법공부 장소에 나와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했으며, 단 1분도 늦고 싶어 하지 않았다. 연공이 끝난 후에는 서로 수련 심득 체험을 나눴다. 오늘은 어떤 이가 누군가 자신을 욕했지만 화내지도 않고 맞받아치지도 않았더니 마음이 매우 기뻤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음 날에는 또 다른 이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사부님이 자신을 보호해 주셨다는 이야기를 했다. 매일 기쁘고 행복한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매일 법공부 장소를 떠나기 아쉬워했고, 모두가 파룬따파의 법광 속에 흠뻑 젖어 있었다.
3. 오로지 다른 사람을 위하는 약국
우리 현에 부부가 있었는데, 현 소재지에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2014년 봄, 그들은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수련 이후 그들은 엄격하게 대법의 ‘진선인(眞·善·忍)’ 기준으로 스스로를 요구하며, 약 가격을 전국 통일 기준보다 낮게 책정하고 모든 것을 환자를 위해 생각했다.
2017년, 심각한 폐렴으로 병원에서 20일을 입원해 1만 위안 이상을 썼지만 낫지 못한 환자가 있었다. 잠을 잘 때도 똑바로 눕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야만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숨이 막혀 왔다. 약국에 약을 사러 왔을 때, 수련생이 그에게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했다. 단돈 5위안의 약을 샀을 뿐인데 병이 나았다. 환자는 매우 놀라며 파룬따파의 신기하고 놀라운 힘을 알게 됐고, 대법제자인 약사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위해 생각하는 높은 경지도 알게 됐다.
이 현 소재지에 위암 수술을 받은 환자가 있었다. 2014년 시 병원 검사에서 위암이 발견됐는데 이미 말기였고 암세포가 이미 전이된 상태였다. 그때 그의 나이가 56세였다. 온 가족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암세포가 이미 전이돼 수술을 하든 안 하든 살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하루라도 더 살게 해 주고 싶어 시 병원에서 외지 전문의를 초청해 수술을 받았다. 집안의 모든 저축을 털었고 빚까지 졌다.
수술을 마친 후에도 이 사람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시 병원에서 우리 현 병원으로 전원됐다. 퇴원할 때 전문의가 가족에게 말했다. “길어야 1년을 넘기지 못합니다.” 같은 병실에 입원했던 위암 수술 환자 5명 중 이 사람이 가장 위중했다고 했다. (나머지 네 명은 이미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 사람은 오랫동안 식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변도 보지 못했다.
2016년 여름 어느 날, 그는 가족에게 부탁해 수련생의 약국(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갔다. 환자가 사정을 설명하자 남자 수련생은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진상을 알려 주며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해 줬다. 수련생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의학적으로는 이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단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바로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는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이 아홉 글자를 진심으로 외워서 의사에게 사형 선고를 받은 수많은 환자들이 나았습니다.”
환자가 안심할 수 있도록 수련생은 약을 처방해 줬지만 약값은 받지 않았다. 이 위암 환자는 깊이 감동받아 연신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웠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법제자가 운영하는 약국은 정말 다른 약국과 달라요.” 이 위암 환자는 집에 돌아간 후 아침저녁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다. 지금 그는 70세에 가까워졌지만 건강한 사람과 다름없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2019년 가을, 그는 수술을 받았던 병원에 재검사를 받으러 갔다. 의사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6년이 됐는데 아직 살아 계세요? 게다가 이렇게 건강하시다니! 어느 병원에서 치료받으셨나요? 무슨 약을 드셨나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아무 약도 먹지 않았습니다. 저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워서 나았습니다.” 그의 아내도 거들었다. “남편이 밤마다 중얼중얼거리기에 뭘 중얼거리냐고 물었더니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운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효과가 있었어요. 지금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됐어요.” 의사는 매우 놀라워했다.
2017년 11월 말, 한 대법제자의 자녀가 약국에 어머니 약을 사러 왔다. (어머니는 몇 달째 뇌졸중을 앓고 있었다.) 그 아이가 하소연했다. “이틀이라도 대신 간호해 줄 좋은 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 정말 너무 지쳐서 못 하겠어요!” 그 말을 들은 이 부부 수련생은 자신들이 수련인으로서 사부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타적이고 사심 없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신다. 2017년 12월 초, 그들은 그 아이의 어머니를 자기 집으로 모셔 와 친자매처럼 밤낮없이 돌봐 드렸다. 기저귀를 갈아 드리고, 젖은 바지를 갈아 드리고, 부축해서 걸음 연습을 시켜 드렸다. 한 달 가까이 정성껏 돌본 끝에 그 아이의 어머니는 빠르게 회복됐다. 12월 말, 집으로 보내 드렸고 아이와 가족 모두 매우 감동했다.
4.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다
어느 마을의 도로 양쪽에는 수로가 있었는데 몇 년간 아무도 청소하지 않아 쓰레기 도랑이 돼 버렸다. 흙과 분뇨가 가득 쌓여 있었다. 여름에 비가 오면 도로로 흘러내렸고, 비가 좀 많이 오면 주민들의 마당까지 흘러들었다. 마을 간부가 6,000위안을 내놓으며 청소할 사람을 구했지만 아무도 하려 하지 않았다.
이를 본 그 마을의 대법제자들이 악취 나는 도랑을 청소하기로 했다. 2000년 여름부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5명뿐이었다. 이후 다른 마을 수련생들도 소식을 듣고 합류해 모두 8명이 됐다. 2명은 남자 수련생이었고 나머지는 여자 수련생이었으며, 모두 나이가 많은 분들이었다. 각자의 가정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모두 새벽 2시에 일어나 일을 시작해 날이 밝으면 집으로 돌아가 집안일을 했다. 매일 이렇게 반복했다.
말은 쉬워도 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 도랑은 폭이 1미터, 깊이는 1미터가 넘었고 총 길이가 1리나 됐다. 사람이 도랑 안에 서면 머리만 간신히 내밀 수 있을 정도였다. 평지는 그나마 힘이 들더라도 할 만했지만, 다리 아래 부분은 허리를 굽히고 기어 들어가 진흙과 모래를 파내야 했다. 아무리 힘들고 고되어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힘차게 일했다.
반 달 동안 일한 끝에 드디어 다 팠다. 마을 이장이 큰 차를 불러 쓰레기를 실어 나르게 했고, 대법제자들은 또 노면을 깨끗이 청소했다. 이 일이 마을 전체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마을 간부가 말했다. “돈을 줘도 하려는 사람이 없었는데, 파룬궁수련생들은 자원봉사로 모두를 위해 일하다니, 대법제자들은 다 좋은 사람이고 파룬따파는 정말 좋습니다. 위에서 사람이 내려와 당신들을 괴롭히려 하면 제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겠습니다.”
이 마을에서 몇 차례 화재가 발생했을 때 대법제자들은 여러 번 산에 올라가 불을 껐다. 마을에서 산에 올라가 불을 끄는 사람들에게 돈을 지급했는데, 어떤 이는 잠깐 가서 이름만 올리고 돈을 받으려 했지 실제로는 불을 끄지 않았다. 대법제자들은 실제로 불을 꺼서 모두의 피해를 줄이는 데 힘썼지만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정말 고상합니다.”
이 마을에 또 한 대법제자가 있었다. 한번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다가 집에서 얼마 나오지 않은 곳에서 길바닥에 100위안짜리 지폐가 있는 것을 봤다. 내려서 집어 들었더니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이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와 세어 보니 모두 870위안이었다. 그녀는 큰길에 서서 잃어버린 사람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에서 몇 사람이 걸어 나오며 “못 찾겠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그녀가 앞으로 나아가 물었다. “뭘 잃어버리셨어요?” 한 사람이 “돈을 잃어버렸어요”라고 했다. 그녀가 “얼마나 잃어버리셨어요?”라고 묻자 그들이 잃어버린 금액과 지폐의 종류를 말했는데 대법제자가 주운 것과 딱 맞아떨어졌다. 그녀는 돈을 돌려줬다. 잃어버린 사람이 100위안짜리 한 장을 꺼내 사례로 주려 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자신이 파룬궁수련생이라고 알려 줬더니 그들은 매우 감동해 연신 말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5. 한때는 싸움 고수, 지금은 대법 수련자
A 수련생은 예전에 원근에서 이름난 싸움 고수였다. 1992년, 한 사람이 그와 싸우다 사력을 다해 주먹으로 그의 눈을 향해 후려쳤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그는 당시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안경 렌즈가 산산조각 나면서 눈에 박혔다. 지역 병원과 탕산의 병원에서도 입원을 거부당해 결국 톈진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그 눈은 끝내 살리지 못했다.
1999년, 그는 기쁘게 파룬따파를 얻었다. 싸움을 좋아하는 나쁜 습관을 고치고 대법의 진선인 기준으로 스스로를 요구하며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 수년 동안 법을 실증하는 일이 필요할 때면 개인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섰다. 한번은 두 수련생이 중공에 납치됐는데 마침 큰 눈이 내려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그는 자전거를 끌고 하루 종일 걸어가 수련생들과 함께 납치된 수련생들을 위해 정념을 발했다. 돌아왔을 때는 솜바지 가랑이가 꽁꽁 얼어 있었다.
그는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자주 사람을 태우고도 돈을 받지 않았다. 한번은 A 수련생이 도중에 차를 기다리다 지친 젊은 남자를 만났다. 그는 50여 리를 달려 그를 집까지 데려다 주면서도 돈을 받지 않았다. 오직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해 주기 위해서였다. 2004년에는 한 여성이 차를 세웠다. 급한 일이 있다고 하기에 그는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 줬다. 30여 리 길을 달리면서도 돈을 받지 않고, 가는 내내 진상을 알려 줬다.
그에게는 생활 능력이 없는 지적장애를 가진 형이 있었다. 예전에는 그의 어머니가 돌봤는데 2013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어떤 이가 A 수련생에게 형을 양로원에 보내라고 했지만,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대법제자인데 그럴 수 없다. 그곳에 보내면 형이 며칠도 안 돼 고생하다 죽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돌보기로 했다. 일하러 나갈 때는 형을 부축해 아래로 내려주고, 돌아오면 다시 부축해 올려줬다. 때로는 밖에서 일하다가 자신이 밥 먹을 시간도 되었지만 형을 챙기기 위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형이 스스로 생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더러운 것을 마다하지 않고 매일 대소변을 치웠으며, 겨울에는 불을 때 온돌을 따뜻하게 했다. 자신의 헌신으로 형의 고통을 덜어 주려 했다.
그는 꼬박 10년을 형을 돌봤고, 끝내 형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을 간부와 친척들은 모두 이 한때의 싸움 고수가 이제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는 대법 수련자로 변한 것을 칭찬했다.
6. “아직 못 돌린 게 얼마나 남았어요? 제가 대신 돌릴게요.”
이곳 중생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겹겹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1년 3개월의 시간 동안 ‘9평 공산당’(한글판: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책자를 한 차례 배포했다. 2008년 중공 악당이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도처에 검문소가 설치됐다. 현 소재지에는 특수 복장을 한 사람들이 줄을 지어 길거리를 순찰하기도 했다. 당시 9평 책자를 현 소재지 서쪽까지 배포하는 중이었는데, 9평 책자를 실은 차량이 여러 검문소와 현 소재지 순찰대를 통과해야 했다. 계속 갈 것인가, 멈출 것인가? 운전을 맡은 수련생은 정념이 매우 강해 이렇게 말했다. “9평은 중공 악당을 해체하는 예리한 칼입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날 밤, 그는 9평 책자를 제시간에 배포 장소까지 전달했다.
이웃한 어느 현은 대법제자가 적었다. 우리 수련생들은 매년 그 현에서 진상 자료를 한 차례씩 배포했다. 2022년 10월 어느 날 밤 9시가 넘어 이웃 현의 한 마을에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갔다. 한 수련생이 골목으로 들어가 바깥쪽 집에 진상 자료를 넣고 있을 때, 안쪽 집에서 중년 남자가 문을 닫으러 나왔다. 그는 수련생에게 물었다. “뭐 하는 분이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수련생이 말했다. “여러분에게 책을 갖다 드리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좋은 것이고, 진상을 알면 복을 받습니다.” 중년 남자는 수련생의 손을 붙잡고 휴대폰을 꺼내며 “어디 가서 이야기 좀 합시다”라고 했다. 신고 전화를 걸려고 한 것이다. 수련생이 말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해서는 안 돼요!” 그들은 15분간 서로 팽팽히 맞섰고, 중년 남자는 끝내 전화를 걸지 않았다.
이때 마작을 마치고 돌아오던 두 남자가 지나다가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뭐 하는 거예요?” 중년 남자가 말했다. “파룬궁에서 자료 돌리는 사람이에요.” 한 남자가 말했다. “이건 국가적인 일이니 우리는 상관 안 합니다.” 두 사람은 그냥 가 버렸다.
수련생은 중년 남자에게 진상을 알려 줬다. “외지 지역에 역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세요. 병원에 빈 병상도 없고 화장장도 줄을 서야 한다고 합니다.” 그 남자가 말했다. “그럼 약이나 좀 가져다 줘요. 가짜 약이라도 제가 받아 두겠어요.” 수련생이 말했다. “이 책이 당신들에게 약보다 더 효과가 있습니다. 신불(神佛)을 믿기만 하면 위험한 순간에 보호를 받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까 갔던 두 남자가 다시 돌아왔다. 수련생이 하는 말을 두 사람 모두 들었던 것이다. 한 사람이 말했다. “책이 아직 남았나요? 저희 두 명 몫으로 두 권 주세요. 집에 가서 읽어 볼게요.” 이때 신고하려 했던 그 사람도 손을 놓더니 휴대폰을 집어넣고는 수련생에게 연신 미안해하며 말했다. “처음에 좀 오해가 있었네요. 나중에 또 만납시다. 아직 못 돌린 게 얼마나 남았어요? 제가 대신 돌릴게요. 이 대보살님, 감사합니다.” 수련생은 그들이 진상을 알고 구원받게 돼 기뻤다.
파룬따파는 우리 현에 이미 깊이 뿌리를 내렸다. 중공 악당이 아무리 거짓말로 비방해도 파룬따파는 좋다는 사람들의 굳은 믿음을 흔들 수 없다. 지금 간부든 민중이든 모두가 한결같이 말한다. “파룬궁수련생들은 다 좋은 사람들입니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5/28/5104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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