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내가 태어날 때 어머니는 난산이라 ‘어른을 살릴지 아이를 살릴지’ 선택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우여곡절 끝에 결국 모녀가 무사했다. 어머니는 나를 처음 본 순간 원래 알던 사이인 듯 매우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고 회상하셨다.
태어난 후 나는 다른 공간의 얕은 기억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대략적으로 천상의 어느 세계의 왕과 중생이 나를 선택해 세상에 내려가 사명을 완수하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세계의 한 생명으로서 몇몇 신들과 함께 그 세계를 수호했다. 마지막 관건적인 순간에 왕과 중생은 내가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여겨 나를 세상에 파견했고, 다른 몇몇 신들은 나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다. 그들이 준비가 됐으니 내려가도 된다고 한 후에야 나는 세상에 내려왔다. 당시 우주의 정보를 사용했고 사람의 언어가 아니었기에 지금은 기억이 매우 흐릿해졌다. 사명의 내용은 이미 기억할 수 없지만 나는 반드시 이를 완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으로 눈을 뜨고 인간 세상을 보았을 때 내가 발한 첫 일념은 이러했다. ‘아, 이곳이 인간 세상이구나. 여기가 바로 내가 사명을 완수해야 할 곳이구나.’ 나는 인간 세상이 험악하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육안으로 보기에 사방이 온통 잿빛이었고 공간에 두꺼운 먼지가 가득한 것 같았다. 인간 세상의 친척들은 일상생활에서 사람의 시시비비를 자주 논했는데, 나는 그 매우 좋지 않은 장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무지 속에서 업을 짓는 것이었다.
태어난 지 두 달 후, 한번은 참지 못하고 “엄마”라고 불렀다가 가족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나는 인간 세상의 이치로 볼 때 이 시기의 아이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의 이치를 어겼다는 생각에 마음이 괴롭고 후회스러웠으며, 이후로는 사람 앞에서 초범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려 인내했다.
태어난 지 10개월쯤 됐을 때 나는 사부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부님이 누구인지, 어디서 찾아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 역시 점차 속인처럼 변해갔다. 먹고 노는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았으며 어른들에 대한 불만도 생겼다. 그 후 유치원에서 자주 병치레를 했는데, 대략 이 무렵 어머니가 몰래 나에게 사부님의 설법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아주 일부분만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알게 된 것은 그대로 실천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병이 더 심해졌다. 부모님이 의원에 데려가 링거를 맞히고 약을 먹여도 소용이 없었으며, 1년 내내 감기, 발열, 기침, 목 통증, 구토, 코피 등 병을 달고 살았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내 병을 고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에게 파룬궁을 연공시키려는 어머니의 생각에 동의하셨다.
우리집은 농촌이라 부모님은 수련생들과 거의 연락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매일 저녁 스탠드를 켜고 나와 함께 그 아래 엎드려 조그만 전자책 단말기를 보셨는데, 그 안에는 보서(寶書) ‘전법륜(轉法輪)’이 들어있었다. 당시 나는 글자를 잘 몰라 처음에는 어머니가 작은 소리로 읽어주셨고, 나중에는 어머니가 한 단락 읽고 내가 한 단락을 읽었으며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어머니가 알려주셨다. 시간이 흘러 아는 글자가 많아지자 내가 읽고 어머니가 들으셨다. 한동안 지난 후 나는 ‘전법륜’을 통독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독서와 글자 인지 면에서 매우 뛰어났고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도 이를 다 알았다. 5~6학년 학생들이 종종 교과서를 가져와 자신들도 읽기 힘든 본문을 나에게 읽게 했는데 나는 거의 다 읽어냈다. 당시 내 나이는 대략 7~8세였다.
처음 연공을 시작할 때 30분 동안의 포룬(抱輪)과 가부좌는 참아내기 매우 힘들었다. 첫날 연공을 시작했을 때 어머니는 나 혼자 포룬을 하게 하시고 아버지와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셨다. 나는 팔을 들고 손을 덜덜 떨었지만 부모님이 보고 계셨기에 감히 한 번도 내리지 못했다. 이렇게 나는 처음부터 포룬을 30분 동안 했다. 가부좌를 할 때는 처음부터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으나 다리가 몹시 아팠고, 두 다리를 안쪽으로 강하게 오므리지 않으면 미끄러져 풀려버렸다. 어머니는 5분 동안 가부좌를 하게 하셨고, 나중에는 점차 10분, 15분, 30분으로 늘려가셨다. 이후 나 혼자 30분간 가부좌를 하면서 다리가 끊어질 듯 아플 때가 잦았지만, 어머니의 격려와 내 인내심으로 단 한 번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앉아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방학 때 부모님이 나를 데리고 여행을 가셨다. 하루는 바다에서 놀았는데 나는 수영을 못해 튜브를 끼고 있었다. 해변은 물이 너무 얕은 것 같아 깊은 곳으로 향했다. 어떤 젊은 여성이 튜브 위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나도 그녀를 따라 튜브 위에 앉으며 어머니에게 나를 보라고 했다. 스스로 새로운 튜브 사용법을 터득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앉은 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멀리서 하늘을 뒤덮을 만큼 거대한 파도가 밀려왔고, 멀리 있는 어른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보였다. 나는 파도에 휩쓸려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곧바로 바다 밑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바닷속에서 나는 고통 없이 무척 행복하다고 느꼈고, 주변은 따뜻하고 평온했다. 물결이 반짝이는 맑고 투명한 바닷물이 보였고 무척 아름다웠다. 갑자기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나를 위로 밀어 올렸고, 그 익숙하면서도 거부감이 드는 고통스럽고 무거운 느낌이 다시 돌아왔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사부님께서 나를 구해주셨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왜 ‘구해’주셨는지는 알지 못했다. 튜브에 밀려 해수면으로 떠오르고 나서야 눈부신 햇빛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었고 사지의 감각이 완전히 돌아왔다. 나는 그제야 바닷속에서 내내 눈을 감고 있었으니 바닷물을 볼 수 없었을 테고, 귀와 코, 입안에 바닷물이 잔뜩 들어가 도저히 편안할 리가 없었으며, 바닷물은 더러워서 방금 본 것과 완전히 달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방금 영혼이 육체를 이탈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때서야 나는 왜 사부님께서 나를 ‘구해’주셨는지 명백히 알게 됐다. 모래사장으로 돌아온 나는 귀, 코, 입에 바닷물을 잔뜩 마신 것 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부모님은 이미 모래사장에서 짐을 챙기며 돌아가자고 하셨는데, 그분들은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전혀 모르셨다.
타지에서 대학을 다닐 때 동기들은 모두 속인이었고, 겨울방학과 여름방학에 집에 돌아갈 때만 법공부와 연공 환경이 있었다. 집을 떠날 때 나는 ‘전법륜’을 책가방에 넣고 버스 표를 검사하거나 보안 검색을 통과할 때 정념을 유지하며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워 학교까지 책을 무사히 가져갔다. 집을 갓 떠났을 때는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계속 ‘전법륜’을 가방에 넣고 수업 가는 곳마다 메고 다녔다. 나중에 학우들이나 기숙사 점검 아주머니가 내 물건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감히 책을 침대에 숨겨두었다. 점심 수업이 끝나고 밥을 먹는 시간이 마침 12시였는데, 나를 끌고 가 함께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학우가 있어 나는 대화를 나누지 않는 틈을 타 마음속으로 발정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종종 혼자 밥을 먹고 빨리 식사를 마쳤으며, 때로는 12시 전에 기숙사로 서둘러 돌아와 침대 커튼을 치고 결가부좌를 튼 채 잠시 책을 보았다. 이 짧은 시간 동안 결가부좌는 내 체력을 크게 회복시키고 피로를 풀어주었으며, 조용히 책을 집어 들면 온 세상이 고요해진 듯했고 책 속의 글자 하나하나가 모두 금이었다. 가끔 깊은 밤 고요할 때 두려운 마음을 돌파하고(이웃 침대 친구가 가끔 갑자기 내 쪽으로 넘어와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기숙사 침대에 앉아 가부좌를 하면 거대한 에너지장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은 고향에서 납치돼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당하셨고 당일 풀려나셨다. 압박을 느낀 어머니는 가족 외의 수련생들과 접촉하며 도움을 구하기 시작하셨고, 나는 방학에 집에 돌아온 후 처음으로 단체 법공부에 참여했으며 처음으로 사부님 법상(法像)과 설법 전집을 모셔왔다. 수련생들의 법 읽는 소리가 우레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비록 손에 꼽을 정도의 노년 여성 수련생 몇 분에 불과했지만, 나는 더없이 운이 좋고 너무나 신성하다고 느꼈다. 사부님 법상이 당당하게 모셔져 있고, 다들 ‘전법륜’을 읽으며 수련인들의 공통된 화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예전 내 삶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 20년을 헛살았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는 이것이 아마 다들 자주 말하는 수련을 처음 시작할 때와 같은 느낌일 것이며, 내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감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매우 빠르게 향상했다. 한번은 아버지가 나를 모질게 꾸짖으셨는데, 나는 화가 나서 아버지가 틀렸다고 여겨 반박하며 말다툼을 했다. 하지만 나는 즉시 이것이 내가 넘어야 할 고비이고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관념을 바꾸는 과정에서 나는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맛보았다.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법을 외웠고, 비록 내심으로는 여전히 ‘내가 맞아, 내가 맞아, 내가 맞아’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계속 노력해 ‘내가 틀렸어, 내가 틀렸어, 내가 틀렸어’로 바꾸려 했다. 나는 기필코 이 생각을 바꾸려 했고, 반드시 이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한동안 버틴 후 마음은 여전히 무척 괴로웠지만, 내가 정말로 틀렸고 아버지를 대하는 내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오후 다시 이 일이 언급되었을 때 나는 거의 울면서 아버지에게 내가 잘못했고 말다툼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버지는 웃으셨고 조금도 화를 내지 않으셨다.
어렸을 때 나는 천목(天目)을 추구했는데, 추구할수록 더 없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리 해도 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이 일을 잊었다. 지금은 추구하는 마음이 없어졌지만, 사부님께서는 오히려 나에게 다른 공간의 정경을 보게 해주셨다. 나는 자주 자신감이 부족해 스스로 세 가지 일을 모두 잘하지 못한다고 여겼으나, 사부님께서는 거듭거듭 나를 일깨우고 격려하시며 포기하지 않게 하셨다.
한번은 어머니와 스티커를 붙이러 나가야 했는데 두려운 마음이 생겨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또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몹시 갈등했고, 어머니는 먼저 집에서 발정념을 하자고 제안하셨다. 발정념을 마치자 온몸이 에너지로 감싸인 듯 정념이 생겼다. 어렴풋이 다른 공간의 음악 소리가 들렸는데 웅장하고 거대하며 기세가 넘쳤다. 마치 천상 내 세계의 중생들이 천국악단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두 줄로 마주 서서 나팔을 불고 북을 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으며, 그 선율은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것이었다. 나는 천상의 내 세계 중생들이 모두 나를 지지하고 내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러 가는 것을 축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도 나를 보호하고 계셨다. 나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아까 밖에는 비가 내렸으나 어머니와 내가 집을 나설 때 마침 비가 그쳤다.
한 장소에 도착하니 사방에 물이 고여있어 발 디딜 곳조차 없었는데, 그곳은 또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이었다. 나는 물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으나 어머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으셨고, 반면에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버렸다. 나중에 나는 눈 질끈 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고작 신발 젖는 것뿐이지 않은가. 나는 수련인인데 설마 신발이 젖어 감기에 걸릴까 봐 두려워한단 말인가?’ 나는 당당하게 평지를 걷듯 걸어가 어머니를 따라잡았다. 길을 가는 내내 신발이 젖어있어 불편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고 할 일은 다 하며 교란받지 않았다. 스티커를 다 붙이고 우리가 돌아갈 무렵, 나는 갑자기 내 신발이 이미 다 말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흠뻑 젖은 신발이 그렇게 빨리 마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는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하시고 격려해주신 것이었다.
한번은 부처님 한 분을 보았는데 나와 아주 멀리, 거리가 거의 하나의 점처럼 보일 정도로 멀었지만 이목구비는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부처님의 온몸에서 한량없는 금빛이 뿜어져 나왔고, 매우 강력하고 자비로우며 평온한 장이 나를 감쌌다. 더없이 따스했고 내 생각은 아주 조금만 남은 채 온갖 좋지 않은 생각들이 남김없이 사라져 내면에는 오직 평화로움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그 끝없이 드넓은 금빛 속에서 빠져나와 속인 속으로 돌아왔고 다시 각종 집착과 부족한 생각들이 올라왔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주신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신이란 사람의 사상에 얽매이지 않고 전지전능한 존재이며, 내가 속인의 사상에 갇혀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했다. 아울러 속인 속의 가정을 나의 진정한 집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속인 속에서 가족이라는 이유로 마땅히 어떠해야 한다고 여기거나 이에 심하게 집착해 상처를 받음으로써 내 귀향길에 스스로 장애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속인 속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 착실히 수련해 천국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곳이야말로 나의 진짜 집이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어느 노년 여성 수련생이 심각한 병업 고비를 겪으며 일상생활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게 됐다. 어머니는 소식을 접하고 그곳에 가서 그녀와 법공부를 하기로 결정하셨다. 노년 수련생은 임시로 딸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찾아가시자 노년 수련생의 딸은 대법에 대한 배척과 대법제자에 대한 불친절함을 드러내며 대법제자들이 자기 집에 더 이상 오지 않기를 바랐다. 어머니는 집에 오신 후 나와 상의하셨다. 나는 이런 수련생이 있다는 것을 처음 들었는데, 이 일을 내가 알게 된 이상 이것이 시험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최대한 수련인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려 했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못 가게 하는 것은 교란이고 엄마에 대한 시험이에요. 이건 가장 간단한 시험인데, 만약 단지 그 사람이 가지 말라고 한마디 했다거나 엄마에게 태도가 나쁘다는 이유로 가지 않는다면 그건 의지가 확고하지 못한 것 아닌가요? 그 사람도 수련생에 대해 반감이 드는 부분을 말했다잖아요. 말로만 수련인이라면서 정작 필요할 때는 다들 멀리 피하고 번거로운 일이 생기면 해결하러 가지 않아 속인만도 못한 모습을 보인다고요. 우리는 남이 어찌하든 우리 자신을 잘해야 해요. 그녀가 뭐라 하든 엄마는 가셔야 해요. 설마 문 앞까지 갔는데 문을 안 열어주겠어요? 엄마는 이렇게만 생각하세요. ‘나는 반드시 노년 수련생을 도울 것이다. 나는 기필코 그녀 곁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함께 할 것이다. 나는 법공부와 연공이 반드시 그 수련생을 좋아지게 할 것이라 믿으며, 어떤 일이나 가상이 나타나든 절대 마음이 움직여서는 안 된다’라고요.” 나중에 어머니는 굳은 의지로 다음 날 이어서 노년 수련생을 도우러 가기로 하셨다. 내가 어머니에게 내 견해를 말할 때 끊임없이 지혜가 솟아남을 느꼈고, 사부님께서 나를 가지하시며 내 입을 빌려 어머니를 일깨워주고 계심을 알았다.
다음 날, 어머니는 노년 수련생의 법공부와 연공을 도우러 가셨고 나는 집에서 법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도왔다. 저녁에 돌아오신 어머니는 대략적인 상황을 나에게 들려주셨다. 나는 내일 어머니와 함께 가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무척 기뻐하셨는데, 알고 보니 어머니는 내가 먼저 자발적으로 가겠다고 나서기를 내내 기다리셨고 내게 억지로 시켜서는 안 된다고 여기셨던 것이다. 수련생 집으로 갈 때 나는 가는 길 내내 발정념을 했다. 문을 들어서자 집 여주인이 우리에게 슬리퍼를 내주었다. 나는 슬리퍼를 신고 고개를 숙인 채 어머니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몰랐지만 어머니가 사전에 단지 따라와서 함께 법공부와 연공만 하면 된다고 일러두셨다. 노년 수련생의 발음이 어눌해서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고, 나와 어머니가 ‘전법륜’을 읽으면 그녀가 들었다. 거실의 사람들은 TV를 보며 큰 소리로 떠들었고 주방에서는 밥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것이 교란이니 동요되어선 안 된다고 여기며, 어머니와 함께 안방에서 전심전력으로 노년 수련생 곁을 지키며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함께 했다. 나는 평소 법공부 팀에서 하던 것과 똑같을 뿐인데 이것이 과연 통할지, 효과가 있을지 의문도 들었지만 이런 생각에 흔들리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머니가 노년 수련생을 도와 심성 문제를 찾으실 때 나는 조용히 들으며 곁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요컨대 나는 내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느꼈다. 교류 중에 노년 수련생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어린아이까지 시간을 내어 자신을 도우러 왔으니 자기도 정말 책을 잘 읽고 연공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일부러 시간을 낸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학교 방학이라 마침 시간이 있었을 뿐인데 그녀가 그렇게 말해 몹시 놀랐다. 그녀의 가족들은 점차 내가 매우 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러는 나를 보러 오기도 했으며 나처럼 대학에 다니는 여학생은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나중에 그 집 여주인이자 노년 수련생의 딸이 방에 들어와 어머니에게 아주 정중하게 성씨가 어떻게 되시는지 물었고, 어머니와 온화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점차 이 가족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고 이것은 틀림없이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주고 계신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어른들과 비교하면 스스로가 무척 쓸모없고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할 줄 모른다고 여겼지만, 어른들의 눈에 비친 나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저 여기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작용을 일으키고 사람을 변화시키며 속인과 대조를 이루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것보다 훨씬 나은지도 몰랐다.
2년 전 한 노년 남성 수련생이 내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학생이 타지에서 학교에 다니며 속인이라는 큰 염색항아리 속에서도 꾸준히 법공부를 하고 심성을 향상시킬 줄 아니 참으로 대단하네요.” 당시 나는 이것이 겉치레로 듣기 좋게 하는 말일 뿐이라 환희심을 일으켜선 안 된다고 여겼고, 이런 말을 너무 많이 들으면 수련이 나태해지고 자신에 대한 기준을 낮추게 되지 않을까 여겨 대체로 의심하는 태도를 보였다. 지금 보니 그의 말이 어느 정도는 맞았을지도 모른다. 대학 시절 나는 확실히 한때 책을 읽고 발정념을 하며 연공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유지하기 힘든 상태에 놓였었고 진상 알리기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기에, 나는 늘 스스로 가망이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사실 사부님께서는 진작부터 나를 일깨워주셨다. 내가 했던 모든 일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자포자기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나는 과거의 많은 일들이 나 자신이 잘 대처하지 못한 것이며, 나와 수련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지 못한 것임을 발견했다. 예전에 나는 항상 환경을 탓하고, 누군가가 내게 귀찮은 일을 만들었다며, 순탄한 수련의 길을 깔아주지 않고 더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주지 않았다며 원망했다. 이제 나는 안다. 나는 수련인이고 내가 수련하는 길은 나를 중심으로 깔려 있으며 맞닥뜨리는 모든 문제는 다 내 심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임을. 사람의 시선으로 볼 때 나는 아이이고 번거로움과 시련을 만드는 이들은 어른이겠지만, 사실 수련에 어찌 나이의 많고 적음을 따지겠는가? 예전에 수련생 두 분이 내게 “넌 무척 순수하구나”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무척 의아했다. 이제 나는 이해한다. 어릴 때부터 법공부를 했기에 내게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접하지 못한 아이들과 완전히 다른 어떤 생각들이 있었고 그것이 바로 내 강점이었던 것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 늘 속인 속에서 능력 있고 대단해 보이는 것을 추구했는데, 이런 것들은 사실 수련에서 담담하게 보거나 심지어 버려야 할 것들이었다. 내가 마음을 내려놓고 고요히 법공부를 하며 심성을 향상시켰을 때 나는 내 능력이 속인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런 한편 그 능력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법이 내게 부여한 것이며 법이 내 지혜를 열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어떤 일들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 자신조차도 불가사의하고 무척 신기하게 느껴진다.
수련의 길에는 신기한 일들이 아직도 많지만 지면의 제약상 몇 가지만 들었다. 층차가 제한되어 있어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5/23/5031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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