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선과(善果)
[명혜망] 수련자들 사이에서 우리는 때때로 ‘당문화’라는 말을 듣는다. 교류 중에 다른 사람의 ‘당문화’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당문화’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때로는 마치 하나의 ‘모자’처럼 쓰이게 된다. 이 모자는 자칫 맹렬하게 비판하는 도구가 되거나 표면적인 딱지로 흘러가기 쉽다. 사실 대법제자는 이미 법을 얻은 만큼 마음속이 어떻게 중국공산당(중공)과 같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미 ‘문화’라고 불리는 이상 문화적 관점에서 그 내막을 좀 더 이해한다면 그 거품들을 더 쉽게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과 기름은 원래부터 서로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투쟁 문화의 핵심은 ‘적아(敵我) 구분’이다. 중공은 정치를 ‘적아 모순’으로 바라보며 이른바 ‘투쟁 철학’을 말한다. 사회적 모순을 정치화하고 이념적 견해차를 위협으로 간주하며 당이 모든 것을 영도한다고 말한다. 중공은 내부에 이견이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수직화된 의사결정 구조를 사용하고 정치운동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며 조직망(당 지부)을 통해 하층까지 파고들어 개인의 생활에까지 침투한다. 반면 우리 수련인은 이런 것들을 말하지 않으니 이것만으로도 이미 우리와 중공의 거리는 멀리 벌어진 것이다. 물론 ‘적아 구분’의 방식에 머물러 있을 때에는 조건반사처럼 ‘비이성적 방어’ 반응이 나타난다. 즉 다른 의견을 들었을 때 잠재의식이 먼저 그것을 ‘공격’으로 정의해, 듣고 이해하는 상태가 아니라 빠르게 반격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해외 화교’라는 말의 내포가 크게 변했는데 그 안의 서로 다른 집단들은 언어 습관, 문화적 가치관, 정치·사회적 견해, 계층적 배경과 이민 동기 면에서 차이가 매우 크다. 그 배경에는 중국의 40년에 가까운 급격한 사회 변동, 교육과 미디어 환경의 차이, 그리고 시기별 이민자의 사회계층적 출신 등의 원인이 포함된다. 핵심적인 차이 가운데 하나는 최근 20년간의 중국 신이민자들이 ‘먼저 결론을 내리는’ 습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훈련을 통해 형성된 인지 방식이다. 중국의 최근 20년간의 교육과 사회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빠르게 판단하고 빠르게 내뱉으며 빠르게 편을 고르는 훈련을 받았다. 과정은 말하지 않고 결과만 말하며 세부 내용은 말하지 않고 입장만 말하며 논리와 사실 추론은 말하지 않고 결론만 말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학교와 교사와 시험 모두 사고하는 과정을 장려하지 않고 ‘표준 답안’과 ‘정치적 올바름’을 암기하도록 강조한다. 토론식 교육이 적고 토론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았으며 독립적 사고를 장려하지 않고 정보 출처를 독점한다. 이러한 환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쟁심이 강하고 감정의 농도가 짙어지도록 만든다. 특히 신세대 중국인 이민자들은 고속 발전 시기의 중국에서 성장했고 중공의 20년에 가까운 민족주의와 강국 서사의 영향을 받아 국가 이미지와 국제 정치에 극도로 민감하며 정치적 태도가 초기 이민자들과 현저히 다르다. ‘무신론’과 ‘정글의 법칙’에서 주입된 가치관이 선입견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반면 해외 환경, 특히 북미, 대만, 동남아 화교 커뮤니티에서는 초기 이민자 대부분이 지식인 전문직 종사자 혹은 정치적 이유로 떠난 사람들로 냉전과 계엄령 또는 개혁 초기를 겪으며 성장했다. 가정과 교육에서 전통 유교 가치관(가족 위계 절제)을 더 강조하는 동시에 해외에서 점차 자유 민주 법치와 다문화적 관념을 흡수하며 정보 출처도 다양하다. 대만 홍콩과 초기 중국 이민자들은 정치 다원화와 사회 운동, 그리고 미디어 자유화를 경험했기에 정치 의제에 대한 토론 방식이 더 개방적이다. 동남아 화교는 대부분 100년 이상의 이민 역사를 갖고 있으며 식민 지배와 화교 배척 및 반공의 역사를 겪으며 독특한 ‘현지화된 화교’ 정체성을 형성했고 중국 본토 문화와의 거리가 더 크다. 오랫동안 다민족 사회에서 살아온 까닭에 사고방식이 더 실용적이고 상업을 중시하며 커뮤니티 네트워크와 민족 집단의 안정감을 강조한다.
투쟁 문화는 언어에 스며들어 이분법적 사고를 강화한다. 옳고 그름, 아군과 적군, 지지와 반대, 올바른 입장과 잘못된 입장처럼 말이다. 투쟁 문화는 ‘편 고르기’를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언어 면에서 먼저 입장을 표명한 뒤 토론하고 먼저 입장을 드러낸 후 이유를 말하며, 상대방이 ‘우리 편’인지 먼저 판단한 후 ‘대책’을 생각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대책’의 ‘대(對)’는 대부분 ‘맞받아치기’와 ‘해결’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존중’, ‘경청’,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이것은 언어를 ‘교류’가 아닌 ‘선언’처럼 만들고 ‘서로 주고받는 교류’가 아닌 ‘일방적 출력/주입’이 되게 한다.
해외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존중하고 소통하며 이해하고 토론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감대에 이르지 못해도 괜찮으며 토론과 사고에는 모두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토론과 사고의 출발점과 목적은 경쟁이 아니고 발언권 쟁탈도 아니며 더욱이 입장을 세우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사람과 일에 대해 즉각 ‘결론을 내리고 정의를 내리는’ 신이민자를 만났을 때 기존 이민자들은 종종 상대방의 ‘토론을 거부하는’, ‘독단적인’,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에 의해 마음이 식어버리고 반면 본토 신이민자들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통 문화의 ‘수용’과 ‘중용’ 개념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수용’을 ‘겉으로만 친절한 척하는 것’(가식적인 친절, 건성으로 대함)과 혼동하는 것 같기도 하며,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은 당문화가 전통적인 미덕을 오명화한 것을 반영한다. 즉 겸손하게 양보하는 것을 나약함으로 보고 중용을 처세에 능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진심 어린 포용’과 ‘전략적 겉치레’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심지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과 ‘역지사지’의 내포를 담고 있다.
요컨대 관련 문화 현상을 명확히 파악해 ‘당문화’를 더 잘 인식하고 자신과 ‘당문화’ 사이의 거리를 벌리며 나아가 이성과 언행 습관에서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 마치 기름과 물이 분리되는 것과 같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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