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부당한 감옥살이와 고문, 장란잉의 생명이 박해로 끝에 이르다

글/ 장시성 파룬궁수련자

[명혜망] 2026년 4월 22일 아침 8시경, 장시성 난창(南昌)시 파룬궁수련자 장란잉(江蘭英)은 15년이 넘는 중국공산당(중공)의 잔혹한 박해를 겪은 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향년 60세다.

江兰英遗照

장란잉 영정

장란잉은 평생 매우 운이 좋았는데 살아생전 우주 대법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1966년에 태어났고, 집이 가난해 어릴 때 몸이 좋지 않았어도 치료할 돈이 없었다. 1997년에 그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해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졌으며 활력이 넘쳤고, 그 이후로 병이 없어 온몸이 가벼워졌다.

1999년 중공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장란잉은 한 방울의 물 같은 은혜라도 샘물처럼 갚아야 함을 깊이 알았고,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생명을 구해준 은혜는 갚을 길이 없어 오직 사부님을 위해 공정한 말 한마디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세 차례 베이징에 가서 파룬따파가 정법(正法)임을 실증하다가 참혹하고 비인간적인 박해를 받았다. 그 후, 그녀는 합계 15년 2개월의 불법 강제노동과 부당한 감옥살이 박해를 겪었고, 그중 3년 넘게 단식 항의를 하며 절대 전향하지 않았다. 또한 장시성 노동개조 병원에 이송돼 2년 11개월 동안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해 체중이 원래 65kg에서 50여 kg으로 줄어들었다. 단식 항의 기간이 길고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이 참혹해 그녀의 전체 위장 기능이 심각하게 쇠약해졌다. 오랫동안 박해받고 단식하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해 위궤양이 생기고 병세가 악화돼 돌이킬 수 없게 됐으며, 생명이 위독해 여러 차례 응급처치를 했으나 효과가 없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다음은 20여 년간 장란잉이 중공의 잔혹한 박해를 받은 사실 중 일부다.

1. 불법 강제노동 1년, 비인간적인 고문 2년

1999년 11월, 장란잉은 법을 수호하고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러 베이징에 갔다가 불법적으로 1년의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그녀가 사악의 박해에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기한을 넘겨 불법 감금돼 고문을 당했다. 2000년 1월, 경찰은 온몸에 상처를 입은 장란잉을 장시성 여자 노동수용소로 납치해 계속 박해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5제곱미터도 안 되는 어두운 작은 방에 갇혀 3명의 마약 사범에게 감시를 받았는데, 평소 문과 창문이 굳게 닫혀 외부와 격리됐고,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것을 모두 그 안에서 해결했으며, 방안의 공기가 탁해 종일 햇빛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두 개를 붙인 침대에 온몸이 꽁꽁 묶인 채 손발을 한계까지 팽팽히 당겨진 뒤 다시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20일 넘게 침대에 고정됐다. 손발을 움직일 수 없어 대소변조차 마음대로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전향을 거부했기 때문에 1년 더 불법 감금됐다. 즉 2년 후에도 여전히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오히려 칭산루(靑山路) 파출소에 통보해 그녀를 무장경찰 세뇌반으로 납치해 강제 세뇌를 시켰다. 단식으로 항의했기 때문에 그녀는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했고, 코에 다시 고무관을 꽂아 음식물을 주입했는데 관을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계속 꽂아 두어, 란잉은 호흡조차 매우 어려웠고 식도도 찔려 피가 났다.

구치소에서 장란잉이 단식으로 항의하며 연공을 고집하자, 경찰은 형사범을 시켜 그녀를 잔혹하게 때리게 하고, 쇠몽둥이로 때렸으며, 발로 머리를 차서 벽에 부딪히게 하고, 발로 그녀의 두 발을 세게 밟았다. 란잉이 맞아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었지만 경찰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뼈에 사무치는 추운 겨울에 사람을 시켜 그녀의 몸에 소변을 붓게 했다. 경찰 류슈잉(劉秀英)은 심지어 대변을 부어도 된다고 소리쳤다. 경찰의 위협에 직면해 그녀는 단호하게 대법을 굳게 수련할 것이며 절대 전향하지 않겠다고 기탄없이 말했다.

2. 다시 5년 불법 형을 선고받고 3년 넘게 단식하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당해

2002년 7월 11일 심야 1시, 칭산루 탕산(塘山) 파출소 경찰이 갑자기 그녀의 집에 침입해 야만적으로 그녀를 끌고 가 둥후(東湖)구 공안 분국으로 보냈다. 그 기간 경찰 저우샹펑(周向峰)은 쇠몽둥이로 장란잉의 손과 팔을 맹렬히 때렸다. 장란잉의 연공을 막기 위해 경찰 리(李) 씨는 사각 의자를 장란잉의 두 다리 위에 올려놓은 다음 사람이 의자에 앉게 했다. 이렇게 교대로 이틀 밤낮 그녀를 고문하며 잠을 자지 못하게 해, 장란잉의 양발 엄지발가락이 심하게 다치고 발톱이 빠졌다. 이틀 후 그녀는 사쯔링(沙子嶺) 구치소로 이송됐다. 저우샹펑은 또 장란잉의 집에 가서 그녀의 노모를 위협하고 함부로 욕설을 퍼부으며 돈이 있으면 가볍게 판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후, 가족이 아무런 통지도 받지 못한 채 장란잉은 곧바로 불법적으로 5년형을 선고받았다.

장란잉은 장시성 노동개조 병원에 감금돼 잔혹한 고문을 당하자 단식으로 항의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그녀에게 3년 넘게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며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지,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당시 장란잉은 이미 피골이 상접했고,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 치료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지만, 병원 간부는 “이건 위에서 정한 거라 우리는 놓아줄 권한이 없습니다. 이번에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여기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장란잉은 줄곧 타협하지 않고 노동수용소에서 3년이 넘도록 단식으로 항의했는데, 그녀의 생명은 파룬따파에 대한 확고한 정신의 일념으로 계속 이어졌고, 중공 사악 깡패 집단은 장란잉에게 온갖 박해 수단을 다 썼으나 이 선량하고 강인한 대법제자는 한 번도 굴복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단식으로 사악의 박해를 저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공 깡패는 오히려 “너를 죽게 만들겠다!”라고 큰소리쳤다.

3. 장란잉 등 8명의 파룬궁수련자, 연환 족쇄 박해받아

더 심한 것은 한 번은 난창시 제3구치소에서 장란잉이 8명의 파룬궁수련자와 함께 연공하고 있을 때, 한 감옥경찰이 밥그릇을 들고 위층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당신들 뭐 하고 있어? 연공해?” 잠시 후 감옥경찰이 감방 문을 열었고, 그 경찰은 “가장 무거운 족쇄를 가져와서 그녀들을 함께 수갑 채워, 당신들은 자살해!”라고 말했다. 란잉은 “자살은 죄가 있다고 우리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그녀들 8명의 수련자는 함께 수갑이 채워지고 연환 족쇄가 채워졌다. 경찰 멍(孟) 씨는 모든 사람의 한 손을 족쇄의 빗장에 수갑 채워, 이 8명이 24시간 동안 허리를 굽히고만 있어야 했고 걸을 수 없었으며 잠을 잘 수 없어 생활을 전혀 스스로 돌볼 수 없게 했고, 그 고통은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경찰은 그녀들을 여전히 마음대로 때리고 욕하며 심지어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 족쇄 고리가 모두 살에 파고들어 그녀들은 천천히 이동할 수밖에 없었고, 한 사람이 화장실에 가면 다른 7명도 같이 가야 했다. 몹시 추운 한겨울에 모두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고, 졸리면 서로 기대어 잠깐 눈을 붙이는 수밖에 없었으며, 이렇게 시멘트 바닥에 이틀 밤낮을 앉아 있었다. 24kg의 무거운 족쇄를 계속 차고 있다가 1개월 후 그녀들을 내보낼 때가 되어서야 족쇄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사악한 무리가 어떻게 고문하든 장란잉은 모두 태연하게 대했다.

4. 다시 2년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다

2009년 4월 30일 오후 4시가 넘어서 장란잉과 다른 7명의 파룬궁수련자가 량메이화(梁美華)의 집에서 법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콰이쯔샹(筷子巷) 파출소의 10여 명 경찰이 침입해 가택수색을 하고 납치했다. 공안 시후(西湖) 분국 형사수사대에서 장란잉은 불법 심문을 받았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경찰 왕위안화(王元華)가 큰소리로 외쳤다. “호랑이 의자를 가져와!” 그런 다음 몇 명의 경찰이 심문용 책상을 가져왔는데, 위아래에 모두 수갑이 있었다. 왕위안화는 장란잉의 두 손과 두 발에 수갑을 채우고 폭행을 시작했다.

장란잉이 경찰 왕위안화의 조서 작성에 협조하지 않자, 왕위안화는 두 경찰에게 “고춧물을 가져와!”라고 말했다. 그들은 고춧가루를 분사하는 분사기 한 병을 가져왔다. 밤에 장란잉이 눈을 감지 못하게 하고 잠들면 뿌렸으며,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전기 충격기로 전기를 가했고, 장란잉은 전기에 감전돼 온몸이 떨렸고 분사액에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며 눈을 뜰 수 없었다. 이렇게 그녀는 심야까지 고문을 당했다.

경찰들은 장란잉에게서 어떠한 진술도 얻지 못하자 그녀를 다시 콰이쯔샹 파출소로 보냈고, 콰이쯔샹 파출소는 장란잉 등을 난창시 제1구치소로 직접 보내 계속 박해했다. 제1구치소에서 장란잉은 강제로 소금물을 주입당하는 박해를 받았다.

시후 분국은 몇몇 파룬궁수련자 가족의 금품을 갈취한 후 몇 명을 풀어줬지만, 장란잉의 가족이 뒤늦게 돈을 내지 않자 장란잉을 풀어주지 않았다. 장란잉이 구치소에 3개월 갇힌 후 경찰은 그녀를 장시성 여자 노동수용소로 직접 보내 계속 박해했다.

노동수용소에서 장란잉은 작은 방에 갇혔고, 노동수용소는 파룬궁수련자의 연공을 막기 위해 마약 사범을 사용해 그녀를 밀착 감시하게 했으며 연공하지 못하게 하고 다른 파룬궁수련자와 만나지 못하게 해 오랫동안 격리시켰다. 여자 노동수용소는 파룬궁수련자에게 노예 노동을 강요했고, 때로는 추가 노동 시간이 12~13시간에 달했다. 생산량을 채우지 못하면 기간을 연장했다. 장시성 여자 노동수용소에서는 밀착 감시하는 악인이 파룬궁수련자를 구타하는 사건이 자주 발생했는데 노동수용소는 이러한 악행을 방임하고 묵인했으며, 마약 사범들은 뒤에서 “파룬궁은 때리고 싶으면 때릴 수 있어”라고 말했다.

5. 3년 6개월 부당한 형을 선고받고 구타와 매달리는 고문을 당함

2015년 2월 24일 설 연휴 엿샛날, 장란잉과 다른 4명의 파룬궁수련자는 장수(樟樹)시 징러우(經樓)진 선링(神領) 지역으로 가서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진상을 모르는 마을 주민의 무고를 받고 징러우진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납치 과정에서 장수시 공안은 큰 적을 맞은 듯 3대의 경찰차에 철모를 쓴 특경이 가득 타고 기관단총을 든 채 겹겹이 포위했으며, 장란잉은 이춘(宜春)시 구치소로 이감돼 감금됐다. 7개월 가까이 불법 감금을 당한 후 장수시 법원은 장시성 이춘시 중급법원에 위탁해, 변호사와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은 상황에서 2015년 9월 10일 오전 장란잉 등 5명의 파룬궁수련자에게 비밀리에 선고를 내리고 법정에서 부당하게 판결했으며, 장란잉은 3년 6개월 부당한 형을 선고받았다. 장란잉 등 5명은 억울한 판결에 불복해 법정에서 항소를 제기했으나 이후 불법적으로 원심이 유지됐다. 2015년 12월 30일, 장란잉 등 5명은 장시성 여자 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받았다.

장시성 여자 감옥은 파룬궁수련자를 이른바 전향시킬 목적으로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박해에 모든 수단을 동원했고, 감옥경찰들은 살인범, 마약 밀매 및 마약 복용범, 사기범, 부패범, 성매매 알선범 등 형사 범죄자들을 부추겨 파룬궁수련자를 밀착 감시하고 관리하며 욕하고 때리고 박해하게 해, 파룬궁수련자들이 감옥에서 비인간적인 삶을 살게 했다. 장란잉은 독방에 갇혀 오랫동안 서 있는 벌을 받고 수면을 박탈당해, 두 다리가 오랫동안 서 있었기 때문에 심하게 붓고 변형됐다.

장란잉이 전향을 거부하자 지도원이자 감옥경찰 천웨(陳越)는 그녀에게 아침 6시 30분부터 밤 10시 30분까지 서 있게 하고 끊임없이 서 있는 시간을 늘려 9개월 넘게 벌을 세웠다. 한 번은 죄수 쩌우수메이(鄒淑梅)가 장란잉을 때려 얼굴에 멍이 들게 하자 감옥경찰 장링(張玲)이 보고 장란잉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쩌우수메이가 공을 내세우며 “제가 때렸습니다”라고 말했다. 장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란잉에게 그녀들은 모두 당신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말하고는 슬그머니 가버렸다. 류링윈(劉凌雲)은 전에 장란잉에게 “당신은 내가 당신을 상대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 장링이 말했는데 죽이지만 않으면 당신에게 어떤 방법을 써도 상관없다고 했어”라고 말했다.

그 후 여자 감옥 교육과 사무실에서 이른바 전향 작업을 했다. 첫 번째는 후루이화(胡睿華)가 직접 장란잉을 매달았는데 그녀의 두 손을 창문에 매달아 발뒤꿈치가 땅에서 떨어지게 했다. 두 번째는 천웨가 장란잉의 한 손을 창문에 묶어 매달고 다른 한 손은 등 뒤에서 창문에 묶어 매달았으며 두 발은 발끝만 땅에 닿게 매달아 24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장란잉이 졸지 못하게 뤄쉐메이(羅雪梅)는 풍유정(風油精)을 장란잉의 눈에 떨어뜨렸고 쩌우수메이는 장란잉이 신었던 양말을 벗겨 장란잉의 입에 쑤셔 넣었다. 장란잉은 수년간의 부당한 감옥 박해로 다리를 자유롭게 통제할 수 없었고, 이번에 출옥한 후에는 더더욱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느렸고 앉았다가 일어서려면 허리를 금방 펴지 못하고 물건을 짚고 천천히 일어나야 했다. 장란잉이 전향에 동의하지 않자 그녀들은 포기하지 않고 장란잉을 자지 못하게 했다.

장란잉은 이렇게 매달림을 당한 후 왼손을 오므릴 수 없게 됐다. 그녀가 감옥장 면담을 요구하자 감옥경찰 완민잉(萬敏英)은 “당신이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습니까?”라며 쩌우수메이에게 “앞으로 네가 그녀에게 밥을 줘라, 주는 대로 먹게 하고 그녀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해라”라고 지시했다. 쩌우수메이는 뜻을 알아채고 매일 반 냥의 밥과 약간의 국, 혹은 한 입의 반찬만 주었다. 1월 21일부터 2월 14일까지 남들은 설을 쇠는데 장란잉은 매일 배를 채울 수 없었다.

6. 또 2년 6개월 부당한 형을 선고받고 왼쪽 팔이 고문으로 불구 돼

2019년 7월 18일, 장란잉은 대법제자의 집을 방문하자마자, 그녀의 집에서 불법 가택수색을 하던 난창시 시후구 공안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직원에게 납치돼 난창시 제1구치소로 끌려가 불법 형사구류됐다.

2020년 6월 14일, 난창시 시후구 법원은 장란잉 등에게 원격 화상 재판을 불법 통지했으나, 장란잉 등은 자신의 신앙이 합법적이고 파룬궁 수련은 무죄라고 여겨 출석을 거부했다. 7월 7일 오전, 장란잉 등은 다시 강제로 화상 재판을 받았다. 불법 재판 당일 장란잉은 법원이 지정한 유죄 변호 지원 변호사를 거부하고 자신을 위해 법정에서 무죄 변호를 했으며, 장쩌민 집단의 잔혹한 파룬궁 박해는 불법적이고 양심과 도덕에 위배된다고 진술했다. 재판장은 그녀가 변호를 마치도록 허락하지 않고 서둘러 휴정을 선포했다. 10월 22일, 그녀는 시후구 법원으로부터 2년 6개월 형의 억울한 판결과 3만 위안 벌금을 갈취당했다. 장란잉은 불복해 난창시 중급법원에 항소했다. 지원 변호사가 그녀를 위해 무죄 변호를 했으나, 중급법원은 여전히 1심 법원의 억울한 판결을 유지했다.

2021년 7월 8일, 장란잉은 장시성 여자 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받았다. 처음에 장란잉은 3대대 2경구에 갇혔고, 이 대대의 지도원 류진펑(劉金鳳)은 형사범 팡링야(方玲亞), 쩡춘란(曾春蘭), 라이쑤화(賴素華) 등을 시켜 구속복으로 장란잉을 철침대에 고정해 묶어놓고 고문하게 했다. 17일부터 21일까지 5일 동안, 낮에는 장란잉을 구속복으로 묶어 노예 노동 생산 작업장에 매달아 놓았고, 밤에는 계속해서 구속복으로 사지를 극한까지 당겨 감방의 철침대에 고정해 묶었으며 온몸이 대(大)자 모양으로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해 그녀를 매우 고통스럽게 했다.

며칠이 지나 장란잉의 두 팔은 고문으로 붓고 아파서 축 늘어졌으며, 양 손바닥은 전혀 위로 올릴 수 없었고 양치질조차 손을 입가로 들어 올리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 장란잉은 세면이 허용되지 않았고, 밤에는 전문적으로 교대 근무하는 형사범의 감시가 있어 밤새 수면을 박탈당해 눈을 감지 못했다. 때마침 더운 여름이라 장란잉은 박해로 온몸에서 땀 냄새가 진동했고, 두 눈은 핏발이 서고 시력이 흐려졌다.

나중에 장란잉은 노예 노동을 강요받았는데, 작업장에 가든 식당에 가든 계단을 오르내릴 때 여전히 발에 구속복을 차고 걸어야 했고, 두 팔이 늘어진 채로 노예 노동을 강요받았다. 밀착 감시 형사범 양신룽(楊新榮), 야오링징(姚靈靜)은 자주 장란잉이 완성한 노예 노동 생산품 수량이 적다는 이유로 그녀를 괴롭히고 반찬을 주지 않거나 아주 적은 반찬만 줬다.

2개월 후, 장란잉의 왼쪽 팔은 여전히 붓고 아파서 축 늘어져 있었고 왼손의 다섯 손가락은 힘이 없어 어떤 것도 집어 올릴 수 없었다. 2021년 10월 20일 오전, 지도원 류진펑은 장란잉을 감옥 의무소로 데려가 검사를 받게 했는데, 의무소의 류(劉) 의사는 류진펑이 보는 앞에서 손으로 장란잉의 왼쪽 어깨와 팔을 꼼꼼히 만져보고는 “양쪽 어깨가 확연히 한쪽은 높고 한쪽은 낮으며, 왼쪽 어깨와 팔 사이에 큰 틈이 있는데 이는 전체 왼쪽 팔이 탈골됐음을 설명합니다”라고 말했다. 검사를 마친 후 류 의사는 류진펑에게 의무소의 의료 조건이 제한돼 함부로 처리할 수 없으며 반드시 즉시 외부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류진펑에게 앞으로 구속복을 채울 때 두 손을 머리 위로 묶어 매달면 안 되고, 두 팔을 평행으로 펴서 고정해 묶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팔에 문제가 생기기 쉽고 근육이 쉽게 괴사한다고 말했다.

2021년 11월, 장란잉이 구속복 고문을 당해 왼쪽 팔이 이미 불구가 되어 늘어진 상황에서, 후루이화는 여전히 장란잉이 있는 감구 대대의 책임자에게 장란잉에 대해 특별 강제 전향 작업을 진행하라고 말했다.

2021년 12월 15일, 감옥경찰 장환환(章歡歡)은 또 3명의 밀착 감시 형사범을 시켜 장란잉에게 미리 준비된 전향 3서(三書, 세 가지 수련 포기 각서)에 서명하고 지장을 찍으라고 강요했고 장란잉은 단호히 거절했다. 3명은 폭력으로 장란잉의 오른손을 강제로 끌어당겨 억지로 서명하고 지장을 찍게 했다. 고문으로 이미 몸이 허약해진 장란잉이 극력 저지하고 단호히 거부하자, 양신룽은 사악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보고 아예 장란잉의 팔을 뿌리치고 스스로 장란잉을 사칭해 3서에 서명하고 지장을 찍었다. 장란잉은 그녀들에게 이런 거짓 사칭 행위는 그녀 본인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며 그녀는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고 엄정히 고했다.

그 후, 장란잉이 자신의 신앙을 굳게 지키고 감옥경찰과 형사범들에게 진상 알리기를 견지하자, 지도원 류진펑은 밀착 감시 형사범 양신룽을 조종해 장란잉의 세면을 허락하지 않았고, 장란잉에게 매일 아침 출근부터 심야 11시까지 화장실 문 앞에서 벌을 서도록 강요했다.

장란잉은 장시성 여자 감옥에서 오랫동안 심각한 심신 파괴를 당해 한때 뼈만 남을 정도로 야위었고, 두 다리가 뻣뻣해졌으며 두 발이 심하게 충혈되고 부어올랐고, 온몸이 마비됐으며 두 눈이 흐려져 물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두 발은 이미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었고 왼쪽 팔은 늘어져 정상적으로 위로 올릴 수 없었다.

2022년 1월 18일, 장란잉은 마침내 또 한 번의 부당한 감옥살이를 끝내고 불구가 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능욕과 파괴, 차별에 시달린 장란잉은 이미 얼굴이 늙고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으며 두 눈이 흐릿하고 두 다리가 마비됐으며 왼쪽 팔이 불구가 되어 늘어져 정상적으로 손을 위로 들어 올릴 수 없었다. 그러나 신앙의 힘은 그녀가 또다시 대법 수련에 온 마음을 다해 몰입하게 했다.

그러나 란잉은 출옥 후 몸이 계속 좋지 않았고 때때로 구토했다. 2026년에 이르러 마침내 몸이 악화돼 건강을 회복할 수 없었고 2026년 4월 22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또 한 명의 선량한 사람이 중공의 잔혹한 박해 속에서 떠났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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