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진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정진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5년 전 겨울, 눈이 크게 내리고 날씨는 유독 추웠습니다. 부모님이 진상자료를 배포하시다 납치돼 우리의 원래 평온하던 수련환경이 무너졌고, 이로 인해 저는 3~4년을 침체 속에서 지냈습니다. 어떤 제자도 뒤처지기를 원치 않으시는 사부님의 자비로, 사부님의 일깨움과 수련생들의 이끌어줌 속에서 저는 이제 다시 대법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래에 이 몇 년간의 경험을 써서 수련생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5년 전 그날 저는 근무 중이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진상자료를 배포하시다 파출소로 납치됐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곧장 집으로 달려갔지만 땅에는 눈이 두껍게 쌓여 미끄러웠고 오랫동안 차 한 대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몇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정도였고 날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사부님 법상과 대법서적, 대법자료가 모두 약탈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날 밤 부모님은 구치소로 끌려가셨습니다. 6개월 반 후 아버지가 박해로 돌아가셨다는 통지를 받았고, 공안국은 강제로 시신을 부검했습니다. 한 달 후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셨지만 이미 뼈만 앙상하게 남고 머리는 온통 백발이 돼 있었습니다. 두 달이 더 지나 어머니가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된 뒤 정신적으로 이상 증세를 보이셨고, 저는 어머니를 모시고 여러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집안에 연이어 닥친 변고와 1년이 넘는 악질 경찰과의 교섭, 게다가 집에 대법서적이 없어 오랫동안 법공부를 하지 못하면서 저는 극도로 막막하고 침울해졌습니다.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버렸고, 사람 마음이 올라와 견디기 힘들 때면 휴대폰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덕분에 어머니께서는 다시 법공부를 하고 법을 외우기 시작하시며 점차 정념을 되찾으셨고, 신체와 정신 모두 정상으로 회복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집도 서서히 예전의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여전히 무뎌진 상태였고 법공부도 연공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일상생활에서는 아직 대법으로 자신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박해로 돌아가신 지 얼마 후, 직장 상급자가 저를 불러 면담했습니다. 그는 제 업무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저를 부과장으로 승진시키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승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많은 사람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직장에서 승진하려면 정치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박해받은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심지어 나조차 구조 과정에서 관련 부서에 협박을 받은 적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순조롭게 승진할 수 있을까? 차라리 승진하지 않는다면 우리집 일을 아무도 모를 텐데, 정치심사에서 문제가 생기면 온 직장이 다 알게 되고 그러면 내가 어떻게 계속 이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저는 대법이 가장 바른 것임을 알았고, 부모님께서 하신 일 역시 옳은 일임을 알았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뒤 마음을 다잡고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순조롭게 승진하면 더 좋고, 승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제 운명에 없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사람 세상의 직업은 단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일 뿐이며, 어떤 일이든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저는 정말 순조롭게 승진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살펴주신 결과임을 깊이 알았습니다. 지금 악당의 통치하에서 사회 풍조는 이미 바르지 않으며, 직장 내 간부 자리는 돈으로 사야 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떠한 사람의 수단도 쓰지 않았습니다. 동료들도 제가 이렇게 빠르게 승진한 것에 매우 놀랐지만,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주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부과장으로 승진한 뒤 기존 과장의 자리도 조정됐습니다. 새로 온 과장은 우리 부서 업무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새 과장이 더 빨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과장의 대부분 업무를 분담하고 수시로 소통하며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과장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직원들도 직속 상관의 교체로 인해 점점 게을러지기 시작했고 갖은 이유를 대며 업무를 회피했습니다. 처음에는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더니 점차 ‘이 업무는 당신만 잘 안다’는 이유로 원래 제 업무가 아닌 일들까지 모두 제가 맡게 됐습니다. 몇 달 후에는 다른 사람들은 오후 4~5시면 퇴근하는데 저는 거의 매일 저녁 7~8시가 돼서야 퇴근했습니다. 업무가 많을 때는 혼자 밤 11~12시까지 야근했고, 병행 업무가 내려오면 다른 부서는 10여 명이 협력해 처리하는 일을 우리 부서는 결국 저 혼자 독립적으로 완수하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과 전체 업무의 70% 이상을 제가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우 불공평해 보였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제가 어리석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법이 이미 제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제나 대법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선량한 사람이 되려 했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득실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자 몸과 마음 모두 피로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럴수록 법공부와 연공, 세 가지 일을 할 시간은 더욱 없어졌습니다. 이런 상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묵묵히 견디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부님께서는 제가 오랫동안 사람 세상의 생활과 일 속에서 무뎌져 있는 것을 보시고 여러 차례 꿈속에서 일깨워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끄러움 때문에 감히 사부님을 마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피하려 했고, 심지어 꿈속에서 사부님께서 깨우쳐주신 장면조차 감히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장기간 고압적인 업무 환경 속에 있다 보니 정신과 육체 모두 지칠 대로 지쳐버렸습니다. 어느 시기부터 저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사람 세상의 돈과 권력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명리를 위해서인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본래 그런 것들을 그토록 중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여전히 일에 그렇게 단단히 얽매여 있었던 것일까요? 어머니도 여러 차례 저와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시며 정념을 되찾고 어서 대법으로 돌아오라고 권하셨습니다. 수련생들도 저에게 돌아와 함께 법공부하자고 했습니다.

마침내 저는 결심했습니다.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그날 저는 사부님 법상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 단단히 모아 합장해 사부님께 청을 드렸습니다. ‘제자가 대법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사부님, 제자에게 돌아와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세 가지 일을 할 시간을 주십시오. 제자는 사람 세상의 명리(名利)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의 직위를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비록 평범한 직원이 된다 해도 수련할 시간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후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제가 바로 사직서를 제출하려던 순간, 겉보기에는 우연처럼 보이는 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직장에서 저를 다른 부서의 책임자로 발령한 것입니다. 그 부서는 업무량이 훨씬 적었고 근무 시간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매일 아침 연공할 수 있고, 매일 법공부를 할 수 있으며, 매주 어머니와 함께 나가 진상자료를 배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번 보직 이동의 전 과정을 돌이켜보면 지금까지도 믿기 어려울 정도이며, 사부님의 전능하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시에 올바른 결정을 내렸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저를 다시 바른 궤도로 돌아오게 해주신 사부님의 자비에 더욱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제자는 반드시 정진해 착실히 수련하고,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발걸음을 따라잡아 세 가지 일을 잘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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