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 거리에서 이어진 27년간의 평화적인 견지

글/ 린자(林嘉, 캐나다)

[명혜망] 그것은 1999년의 한 평화 청원이었다. 베이징 푸유가(府右街)에서 수만 명의 사람이 조용하고 질서 있게 서 있었고, 떠날 때 바닥에 종이 조각 하나 남기지 않았다. 27년 이후, 이 장면이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다시 나타났다. 2026년 4월 21일, 몬트리올의 일부 파룬궁수련자가 다시 중국 영사관 앞에 모여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 3개 국어로 전 세계에 신념과 견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图1~2:二零二六年四月二十一日,在四・二五上访二十七周年之际,蒙特利尔部分法轮功学员在中领馆前集会。

2026년 4월 21일 ‘4·25’ 청원 27주년을 맞아 몬트리올 일부 파룬궁수련자가 중국 영사관 앞에서 박해 반대 집회를 하는 모습

1999년 4월 25일 1만 명이 넘는 파룬궁수련자가 베이징 국가청원국으로 가서 평화적으로 청원했는데, 이 사건은 국제 사회로부터 ‘중국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크고 이성적인 권리수호 행동’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중국공산당(중공) 장쩌민(江澤民) 집단에 의해 ‘중난하이(中南海) 포위 공격’으로 왜곡돼 훗날 파룬궁을 박해하는 구실로 이용됐다.

27년간 전 세계 파룬궁수련자는 평화롭고 이성적인 정신을 유지하며 중공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박해를 반대해 왔다. 매년 ‘4·25’ 전후로 몬트리올 파룬궁수련자들은 중국 영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연다.

파룬궁수련자, 캐나다 정부에 중공의 모든 초국가적 탄압 행위 제지 촉구

파룬궁수련자는 각각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로 발언하며 1999년 4월 25일 1만 명이 넘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파룬궁수련자가 선의와 신뢰를 품고 베이징에 가서 청원한 일을 회고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4·25’ 청원은 전 세계에 파룬궁수련자의 크게 선하고 크게 참는 흉금을 보여줬으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 속에서 나타난 평화로우며 이성적인 수련 소양을 보여줘 중국 대지에 우뚝 솟은 도덕 기념비로 불립니다.”

“이후 몇 달 동안, 이 합법적인 요구는 전례 없는 대규모 탄압을 받았습니다. 희망찬 시민의 의사 표현이 27년째 이어지는 잔혹한 박해로 변했습니다.”

“27년간 중공은 파룬궁수련자를 납치하고 고문하고 살해했으며 심지어 장기적출까지 저질렀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심각한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중공은 해외 정부나 언론에 침투해 파룬궁 박해를 해외로 수출하려 시도했습니다.”

그들은 호소했다. “캐나다 정부가 중공의 파룬궁 박해를 공개적으로 규탄하고 명확하며 원칙 있는 입장을 취할 것을 촉구합니다. 또한 캐나다 정부가 캐나다 영토 내에서 벌어지는 중공의 모든 초국가적 탄압 행위를 제지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들은 또한 중국 영사관 직원들에게 호소했다. “마음속의 선념(善念)을 지키고 장쩌민이 남긴 정치적 죄악의 누명을 쓰지 마십시오. 중공에 환상을 품지 말고 중공과 선을 그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만드십시오.”

왜 ‘초국가적 탄압’이라는 겉보기에는 ‘먼 곳’의 일인 듯한 사건이 실제로는 모든 캐나다인과 관련이 있을까? 현장 발언자는 초국가적 탄압의 본질이 캐나다 주권에 대한 침해라고 지적했다.

외국 정부가 캐나다 영토에서 지역 주민을 위협하거나 공갈하거나 심지어 불법적으로 ‘경찰서’를 개설해 관할하려 할 때, 이는 사실상 캐나다 영토 내에서 외국의 법률을 집행하는 것이다.

만약 한 국가가 캐나다의 법률 시스템을 우회해 직접 몬트리올이나 토론토 거리에서 ‘법 집행’을 할 수 있다면, 캐나다의 주권은 유명무실해진다. 이런 행위는 오늘날 특정 신앙 단체를 겨냥하지만 내일은 해당 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어느 캐나다 시민을 겨냥할 수도 있다.

초국가적 탄압은 또한 커뮤니티의 신뢰와 사회적 결속력을 파괴하고 해외의 법치 사회에 폭력과 조직범죄를 유입시키며 민주 선거에 간섭하게 된다.

회고: ‘4·25’ 청원을 목격한 시민이 중국의 희망을 보다

집회에서 산시(山西)성 출신 파룬궁수련자 왕 씨는 회고했다. 1999년 ‘4·25’ 사건 발생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의 아버지가 그녀를 보자마자 엄지를 치켜세우며 흥분해서 말했다. “베이징에서 파룬궁을 봤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어.”

알고 보니 그는 베이징에 어머니를 뵈러 갔는데 어머니 집이 푸유가 근처였다. 그가 산책하러 나갔을 때 파룬궁수련자의 청원 대열을 보았다. 그는 왕 씨에게 말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어봤는데 남녀노소 모두 그렇게 조용하고 질서 있고 규칙을 잘 지키더군. 그 장면은 정말 대단했어.”

그는 당시 마음속으로 ‘이 사람들이 다 잡혀갈 수도 있겠다. 어쩌면 정부의 탱크나 기관총이 들이닥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베이징 토박이들은 비록 청원할 권리가 있더라도 중공 정부가 절대 서민에게 자유를 주지 않을 것임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의외로 느낀 것은 저녁이 되자 사건이 원만히 해결됐고, 그토록 많던 인파가 조용히 한순간에 흩어진 것이었다. 베이징에 있는 동생과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동생이 말했다. “6·4 학살(천안문 사태)을 겪은 이후 베이징 사람들은 낙담했지만, 파룬궁수련자들의 청원을 본 이후 이 국가에 다시 희망이 생겼다고 느꼈어. 만약 중국인들이 모두 파룬궁수련자 같다면 중국에 희망이 있을 거야.”

몬트리올 시민, 파룬궁 지지

당일 집회 현장에서 지나가던 몬트리올 시민들은 파룬궁수련자 집회의 평화롭고 바른 기운이 넘치는 장면에 감동해 많은 사람이 파룬궁수련자에게 지지를 표명했다.

图3~5:民众在征签信上签名,支持法轮功学员反迫害。

박해 반대 서명서에 서명하며 파룬궁 박해를 반대하는 시민들

중국 영사관 옆 직업학교에 다니는 미아와 친구는 모두 중공의 파룬궁 박해를 반대하는 서명서에 서명했다. 그녀가 말했다. “이렇게 평화로운 항의는 저에게 큰 아름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각자 현수막을 들고 조용히 서서 전단지를 건네며 저희가 듣도 보도 못한 박해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진정 존중받을 만한 방식으로 항의를 표현하셨습니다. 저는 더 많은 사람이 이 일에 관심을 갖고 서명해 여러분을 지지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또 다른 학생 스티브는 작년에도 서명했다며, 당시 자신에게 서명을 부탁했던 파룬궁수련자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저는 항상 여러분을 지지합니다. 사람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박해를 알리시다니 여러분은 정말 훌륭합니다. 사람들은 마땅히 이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박해는 반드시 제지돼야 합니다.”

시민 존은 처음으로 파룬궁이 겪고 있는 박해에 대해 알게 됐다. 그는 즉시 서명서에 서명하고 말했다. “저는 박해에 반대합니다. 중국에서 일어나는 박해는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여러분을 지지합니다.”

시민 드렌트는 파룬궁수련자의 활동을 보고 놀랍고 반가워하며 즉시 서명서에 서명했다. 그는 파룬궁수련자가 ‘진선인’을 믿어 중공의 잔혹한 박해, 심지어 장기적출까지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서명할 때 말했다. “저는 여러분을 100% 지지합니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23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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