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자혜(紫慧)
[명혜망] 저는 1997년 6월 28일에 기쁘게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얻었으며, 이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보호 아래 저는 수련생들과 함께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을 전제로 다양한 방식으로 진상을 알리며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사람을 구하고 있습니다.
1. 법을 얻고 법을 널리 알리다
법을 얻기 전 저는 심한 비염과 위염을 앓고 있어 잠을 잘 때 똑바로 누울 수 없었습니다. 똑바로 누우면 코로 숨을 쉴 수 없어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했고 식사할 때도 딱딱한 음식을 먹으면 속이 불편했습니다. 수련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염과 위염이 모두 완치됐고 대법의 신비함을 진정으로 목격하게 됐습니다.
법을 얻은 이후 저희 집에 법공부팀을 꾸렸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광장에 가서 연공을 하고 저녁 식사 후에는 모두들 저희 집에 모여 법공부를 했습니다. 적을 때는 열 명 남짓이었고 많을 때는 20~30명에 달했습니다. 저는 비디오 재생기를 사고 나중에는 VCD, DVD도 구입해 수련생들에게 사부님의 설법 영상과 공법 교육 영상을 상영해 주었습니다. 농촌 수련생들이 낮에 찾아올 때도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보여주어 헛걸음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여름에는 날씨가 더워 선풍기를 사서 수련생들이 더위를 식히도록 했습니다.
낮에는 때로 수련생들과 함께 각 향진(鄕鎭)으로 가서 법을 홍보하며 인연 있는 사람들이 수련의 길에 들어서도록 이끌었습니다. 외지에 나가 법회에 참가하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기도 했는데, 자전거로 왕복 40여 리를 달려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신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를 진정으로 체득했습니다.
2. 여러 가지 형식으로 진상을 알리다
1999년 ‘7·20’, 장쩌민(江澤民)의 사악한 집단은 중국공산당(중공) 악당의 권력을 이용해 대법과 대법제자들에 대한 전면적인 모함과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가정과 사회, 가족, 친지, 친구로부터 겹겹이 밀려오는 압박은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지만 저는 사부님을 굳게 믿고 대법이 가장 바르다는 것을 확신하며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법공부팀 수련생들과 상의했습니다. 나서서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해야 했습니다. ‘7·20’ 당일 밤 우리 열몇 명의 수련생은 택시를 타고 성도로 갔습니다. 다음 날 새벽 장갑차들이 줄지어 서 있고 많은 경찰이 우리 수련생들을 에워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말할 기회조차 없었고 일부 경찰은 수련생들을 구타하며 한 명씩 차에 끌어 올려 우리를 모두 체육관으로 데려갔습니다. 저녁이 되자 현지 정부는 우리를 당 학교로 끌고 가 사부님과 대법을 모욕하는 TV 프로그램을 보게 했습니다. 그때부터 주민센터와 파출소가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 찾아와 소란을 피우고 보증서를 쓰라 하며 대법서적을 내놓으라 했습니다. 우리는 단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악한 세력이 대법과 사부님을 모함하고 대법제자들을 탄압·박해하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 우리는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쓰며 색연필로도 적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복사용지에 전단을 인쇄했고 우리는 나가서 집집마다 배포했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는 진상 표어를 스프레이로 쓰고 스티커를 붙이며 현수막을 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 뒤로는 밤이 되면 남편(수련생)이 자전거에 저를 태우고 20~30리 떨어진 농촌으로 가서 자료를 배포하고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현수막은 모두 나무 높은 곳에 달았고 산길이 험해 돌아올 때면 늘 한밤중이었습니다. 그해 섣달 그믐날 밤에는 남편과 함께 10여 미터 길이의 현수막을 걸었는데, 도로에서 눈에 잘 띄는 곳이었고 현(縣) 정부와도 멀지 않은 위치였습니다.
또 진상 편지를 우편으로 보내는 일을 일년 내내 견지했습니다. 딸에게 학교 가는 길에 우표와 봉투를 사오게 했습니다. 한번은 딸이 편지를 부치러 가다가 차에 부딪힐 뻔했지만 사부님의 보호로 놀라기만 하고 무사했습니다. 또 한번은 꿈속에서 사부님께서 일깨워 주셨는데, 제가 보낸 진상 편지가 아주 크게 보였습니다. 마치 학생 책상 두 개만큼이나 컸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제자를 격려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3. 전화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다
정법 노정이 빨라짐에 따라 우리도 사부님의 정법 노정을 따라갔으며, 우리 지역에서도 전화로 진상을 알리는 항목을 시작했습니다. 2011년 어느 날 외지 수련생이 전화기 여러 대를 가져와 우리 집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기술을 아는 수련생 두 명을 불렀고 협조 수련생과 함께 안전 문제를 상의했습니다. 우리는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었기에 반드시 문제없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이후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방법을 배웠고, 통화 시간에 따라 번호를 추출해 수련생들의 휴대폰에 넣어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했습니다. 나이가 많은 수련생들은 배우는 속도가 느렸지만 저는 인내심을 갖고 반복해서 가르쳤으며 때로는 하루 종일 바쁘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음성 전화만 걸고 번호를 추출해야 했지만 나중에는 전화가 두세 대로 늘어 한 대는 음성 안내를 하고 다른 한 대는 삼퇴를 권했습니다. 저는 수련생과 함께 나가 삼퇴를 권했으며 전체 협력이 매우 잘 이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2~3명 권유하는 데 그쳤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하루 7~8명에서 열 명 남짓으로 늘었고 나중에는 매일 20여 명에게 권유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몇 번은 수련생과 협력했는데, 그녀가 전화로 삼퇴를 권하면 저는 옆에서 정념을 발하며 이름을 기록했고, 반나절 만에 70~80명을, 많을 때는 90명 이상을 권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삼퇴 명단을 보며 이 많은 중생들이 구원받을 수 있게 됐음을 느꼈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우리 곁에 계시며 모든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진심으로 체감했습니다. 우리가 자주 가던 숲에는 많을 때 8~9명, 적을 때 6~7명의 수련생이 함께했으며 에너지장이 매우 강했습니다. 정오 12시 정념을 발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매일 삼퇴 명단은 100명이 넘었고 저는 그것을 가져와 남편 수련생과 함께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전화카드 실명제가 시행될 때까지 이 방식을 유지했으며, 이후에는 직접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며 사람을 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4. 진상 지폐로 진상을 전하다
저는 진상 지폐를 사용한 지 10여 년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1위안, 5위안, 10위안 지폐에 손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탈당하면 평안을 보장받는다’는 문구를 적었습니다. 이후 원자 도장이 생기면서 지폐에 도장을 찍어 사용했습니다. 잔돈이 부족할 때는 수련생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서 교환한 뒤 도장을 찍은 진상 지폐를 사용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진상 지폐 항목을 인정해 주셨기에 우리는 대량으로 진상 지폐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매일 채소를 사고 옷을 사고 신발을 사고 심지어 난방비를 낼 때도 진상 지폐를 사용했으며, 단 한 장도 진상이 담기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점원들도 이 돈이 정말 좋다고 말했고 때로는 그들에게 삼퇴를 권하기도 했습니다. 진상 지폐를 사용하는 일은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이 몇 년 동안 저는 어느 정육점에 꾸준히 진상 지폐를 보내왔는데, 한 번에 3~4천 위안씩 보냈고 필요할 때마다 다시 보내주었습니다. 그들이 진상을 알게 된 후 그 가게의 장사는 매우 잘됐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고물상에 보내주었는데 한 번에 수만 위안을 보냈으며 여러 해 동안 꾸준히 진상 지폐를 보내주었습니다.
또 자주 은행에 가서 잔돈을 교환했는데, 사부님의 도움으로 매번 매우 순조로웠고 직원들도 모두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번은 성도에 있는 딸 집에 갔다가 3만 위안을 가지고 딸과 함께 여러 은행을 돌며 잔돈으로 교환했습니다. 한 은행에 들어가 보니 안에 사람이 매우 많았는데, 직원에게 잔돈이 있는지 물으며 조금 바꾸고 싶다고 했습니다. 직원이 어떤 종류로 필요한지 물어 5위안, 10위안, 20위안이면 다 된다고 했더니, 잠시 기다리라 하며 확인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확인 후 잔돈이 있다며 저를 바로 불러 친절하게 계수기로 한번 세어 주었습니다. 안에서 업무를 보던 사람들은 “어째서 저 사람을 먼저 해주는 건가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순조로운 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제자를 도와 이루어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자는 그저 돌아다니고 입을 조금 움직였을 뿐이며, 사부님과 법을 믿기만 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 한번은 외지 수련생이 저에게 진상 지폐를 보내왔는데, 당시 함께 세어보던 우리 몇 사람 모두 틀린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계산해 보니 총액이 6천 위안이나 더 많았습니다. 며칠 후 저는 그것을 수련생에게 돌려주었고, 그 수련생은 돈이 부족한 줄도 몰랐습니다! 그녀는 “역시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이라 조금도 착오가 없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또 수련생과 함께 차를 타고 각 향진을 돌며 수련생들에게 진상 지폐를 전달했는데, 한 바퀴 돌면 5~6만 위안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는 일년 내내 100~180만 위안어치의 진상 지폐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제자가 한 모든 일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정념정행하며 안정적으로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막대한 부담을 감당하시며 우리를 위해 남겨 주신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제자는 더욱 정진하여 자신을 잘 수련하고 수련생들과 협력하며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세 가지 일을 잘 해내겠습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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