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7·20’ 이전부터 수련해온 대법제자로서 이 수년간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에서, 어떤 마음은 비교적 쉽게 발견해 버리기도 쉬웠지만 어떤 마음은 이미 자연스럽게 굳어져 전혀 의식조차 못 하다 보니 버리기가 훨씬 어려웠다.
1. 갑작스러운 심성 고비
몇 년 전, 수련생들이 내게 말해주기를 A 수련생이 내가 수련을 잘 못 하고 있고 수련인답지 않다고 퍼뜨리고 다닌다고 했다. 심지어 그녀의 수련하지 않는 가족들 앞에서 내가 잘못한 일들을 하나하나 늘어놓으며, 나와 그녀 사이,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법에 맞지 않았던 7~8년간의 온갖 허물들을 전부 들춰냈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괴로웠고 마음속은 오만가지 감정으로 뒤섞였다. ‘내가 아무리 천 가지 잘못이 있더라도 왜 나한테 직접 말하지 않는 걸까? 이렇게 일반인들 사이에서 떠벌리면 사람들이 대법을 어떻게 알아보겠어?’ 사실 나는 대법에 누를 끼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체면을 덮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안으로 찾지 못하고 그녀가 한 말들을 분석하기에 급급했다. 변명하고 싶었지만 말이 안 됐다. 그녀는 말솜씨가 좋아 나로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그냥 참으려 했지만 정말 참기가 어려웠고 마음속 분함이 가라앉질 않았다. ‘우리는 가까이 살면서 수년간 사귀어왔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친했는데, 거의 매일 만났는데, 왜 면전에서 말하지 않고 뒤에서 말하는 걸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나는 사람 마음으로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고 전혀 자신을 찾지 않았다.
2. 뼈를 도려내듯 집착을 버리다
다른 사람을 보면서 자신을 돌이켜보니 사실 나도 때로는 뒤에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한 적이 있었다. 나 역시 입을 잘 수련해야 했다. 하지만 이 일은 그처럼 얄팍한 한 가지 마음에만 관련된 게 아니었다. 딱히 좋은 방법이 없다 싶어 그냥 법공부나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법공부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자꾸 A를 떠올리며 ‘그녀가 이래서 나쁘고 저래서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의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았다. 이쪽을 누르면 저쪽이 솟아오르듯 도무지 잡히질 않았다. 정말 뼈를 도려내는 것 같았다. 이것이 내 쟁투심, 질투심, 남을 못마땅해하는 마음이 장난을 치고 있는 것임을 알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나를 향상시키기 위해 온 것이다 싶었다. 나는 수련인으로서 용감하게 자신을 직시하고 분석해서 집착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법공부를 좋아한다는 좋은 습관이 있다. 일이 끝나면 바로 법을 집어 들고 공부한다. ‘이번 일은 내 어떤 마음을 겨냥한 것일까?’ 나에게는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이 있다. 이 일은 나를 너무 창피하게 만들었고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앞으로 그녀의 가족들을 어떻게 볼까? 수련생들을 어떻게 볼까? 거기다 명리(名利, 명예와 이익)를 추구하는 마음도 뒤섞여 있었다. 아, 이 ‘명(名)’이 뭐가 맛있다고 뭐가 볼 것이 있다고 내가 이것을 가지려 하는가? 버리자.
계속 찾아보니 나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지적받기 싫어하고 듣기 싫어하는 강한 마음도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사람이 됐을까? 면전에서 지적받으면 자신을 변명할 구실을 찾고 마음이 건드려지는 고통을 덜 수 있는데, 그게 어디 대법을 위하고 중생을 위하는 마음이었겠는가! 자신은 수련을 잘 하고 있다고 느끼며 자기가 맞다고 해명하고 자기 편에서 고집하며 자신의 집착을 직면하고 버리려 하지 않는 것, 이래서야 되겠는가? 버려야 한다. 업력으로 이루어진 이것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이 지적받기 싫어하는 마음이 한번은 없어지는 것 같다가도 또 나타나곤 했다. 왜 이렇게 버리기가 어려운 걸까? 법공부를 통해 찾아보니 아마도 전생에 내가 그녀에게 그렇게 대했을 것이고 이번에 빚을 갚으러 온 것이리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내가 잘 못 했고 지적받기도 싫다는 것이다. 이 지적받기 싫어하는 마음속 깊은 곳에는 또 억울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숨어 있었다. 언제나 잘 하려 하고 늘 남들에게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 하며 억울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이것이 일반인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수련인가?
마침내 이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았을 때 나는 한순간 홀가분해졌다.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게 됐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하면 되고 잘못한 것은 고치면 되며 잘못하지 않은 것은 계속 잘 해나가면 된다. 나는 만감이 교차하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부님, 사부님께서 제 곁에 계시는군요. 언제나 제자를 지켜봐 주시는군요. 제 마음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은 사부님이세요!’
A와 교류해서 오해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사부님의 가족이다. 구세력이 좋아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A는 내가 손님을 대접할 때 있었던 몇 가지 소홀한 점들도 지적해 주었는데, 나는 묵묵히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이 부족한 점들을 반드시 고쳐야겠다고 다짐했다.
3. 근본 집착을 버리고 다시 정진하다
그 일이 지난 지 수년이 됐고 마음속에 더 이상 파문이 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최근 어느 날 문득 그 일이 떠올랐고 마음속에 여전히 은근한 아픔이 느껴졌다. 어떤 마음이 아픈 것일까? 문득 최근에 읽은 수련생들의 교류 글들에서 많은 이들이 근본 집착을 버리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혹시 그것이 아닐까? 나의 근본 집착? 찾아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1997년에 대법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나는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그해 고3 졸업반을 담당하고 있었다. 여름방학에 수업이 한창 진행되던 중에 내 아이가 병이 났다. 어쩔 수 없이 병원에서 곁에서 간호를 해야 했다. 그때 내 반 학생, 즉 담임선생님의 여동생이 다른 학생들과 함께 서명을 모아 교장에게 제출해 나를 고3에서 내려오게 했다. 그 담임선생님의 남편이 마침 내 수업을 이어받았다. 그 부부는 평소에 나와 사이가 꽤 좋았고 우리집에 자주 와서 놀고 텔레비전도 봤다. 그런데 뒤에서 이런 짓을 할 줄은 몰랐다. 당시 나는 너무 괴로웠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나는 대법을 만나게 됐다. 그때 이런 생각이 스쳤다. ‘대법은 정토(淨土)이니, 여기서는 더 이상 이런 불쾌한 일이 생기지 않겠지.’
나와 A도 수년간 사귀어온 사이다. 나는 1997년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우리는 자매처럼 친해서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을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 마음과 정(情)이 우리 사귐 속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진정한 지기이자 벗을 찾았다고 느꼈다. 많은 때 나는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았다. 내 집착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내가 수련을 잘 못 하다 보니 내 집착을 없애고 근본 집착을 버리게 하기 위해 그녀가 열심히 연기해 보여준 것인데, 나는 고마움을 느끼지도 깨닫지도 못한 채 밖을 향해 보며 거부하고 반발하고 심지어 괴로워하면서 수련생 사이에 간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예리한 안목과 날카로운 통찰력, 정법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갖고 있어서 나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정념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것이야말로 추구해도 얻기 어려운 얼마나 큰 좋은 일인가!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녀를 오해했다. ‘수련생이여, 미안해요! 정말로 미안해요! 고마워요! 근본 집착을 찾도록 도와주어서 고마워요. 이것을 드러내고 해체하겠습니다.’
자신을 돌이켜보니 내게 그토록 많은 잘못이 생긴 것은 또한 좋지 않은 사고 습관에서 비롯됐다. 나는 학생 신분으로 대학에 들어갔다가 졸업 후 다시 학생들 곁으로 돌아와 사회와의 접촉이 거의 없었다. 내 생각 속에는 지식인의 ‘고지식함’ 같은 것이 있었다. 뭐든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하는 것이다. 악당 문화도 매우 강해서 자기중심적이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인정과 처세에 얽매여 있고, 귀찮음을 싫어하고 손해를 보는 것을 두려워하며 자잘한 것에 너무 신경을 쓴다. 처세 방식이 사람들이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도 많았고 소위 지식인의 고상함이라는 것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자아를 수호하는 것이고 ‘사(私)’의 표현이다. 앞으로의 수련에서 이것을 단호히 버리고 법 속에서 바로잡아 진정으로 떳떳하게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이타를 이루어내겠다.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나는 정말 느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님을. 마음 깊이 사부님의 힘든 안배에 감사를 드린다.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반드시 정진하여 법 속에서 사람 마음과 사람 생각, 사람의 정을 버리겠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가지(加持)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이 글은 현재 제가 있는 수련 층차에서의 작은 인식일 뿐이며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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