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3개월 시한부 선언한 80대 식물인간, 불은(佛恩)을 만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7년에 득법한 대법제자입니다. 두 차례 억울한 옥살이를 했는데, 첫 번째는 13년, 두 번째는 3년 반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악이 아무리 광기 어린 박해를 가해도 저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굳은 믿음을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사부님께서 제자를 자비로이 보호하고 애쓰심을 몸소 체험했고, 대법의 신기함을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제가 수련의 길에서 겪은 이야기입니다.

2015년 5월, 장쩌민 고소 물결이 시작되자 저는 월 3,000위안을 받던 가사도우미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수련생들과 함께 쑤장 준비에 나섰습니다. 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련생이 현지에서 일자리를 하나 구해줬는데, 뇌경색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노인을 돌보는 야간 간병일로 월급은 2,500위안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원래 어느 철도병원의 원장이었는데, 그때 이미 82세였고 뇌경색 수술 후 식물인간이 됐습니다. 의사는 가족에게 수술 후 길어야 3개월밖에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노인의 아버지는 장쉐량(張學良)의 부대에서 군수관(軍需官)을 지냈는데, 군대의 부패한 풍조를 견디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었습니다. 몇 년 만에 황무지를 많이 개간하고 일꾼들도 여럿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사악한 중국공산당(중공)이 정권을 찬탈한 후 땅을 빼앗긴 것은 물론, 노인의 아버지는 지주·토호로 몰려 공개 투쟁 대회에 끌려 나가야 했습니다. 반우파 운동과 문화대혁명 때에는 노인 본인도 아버지 문제로 연루돼 우파로 낙인찍히고, 고깔모자를 씌운 채 거리를 끌려 다니고 외양간에 갇히는 등 온갖 수모를 겪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 일을 맡고 싶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수련생들을 위해 쑤장 소장을 정리해야 했고 법공부와 연공도 해야 했는데, 밤에 야간 근무까지 하면 몸이 버텨내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련생이 거듭 말했습니다. “여기서 이런 자리 찾기가 쉽지 않아요. 한번 해보세요. 게다가 그 집에서도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하잖아요. 장쩌민 고소가 끝나면 시간이 여유로워지지 않겠어요?” 생각해보니 그 말도 맞았습니다. 그동안 중공의 박해로 경제적으로 늘 빠듯하게 살며 타향에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왔던 터라, 고향에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결국 수련생의 권유에 따라 일을 수락했지만, 며칠간 출근을 미뤘습니다. 그쪽 가족이 거듭 재촉하고서야 비로소 출근했습니다.

첫날부터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노인의 가족이 간단히 간병 요령과 주의사항만 알려주고는 환자를 전적으로 제게 맡겨버렸습니다.

노인이 지내는 방에는 침대가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노인 것이고 하나는 간병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장쩌민 고소장을 작성하느라 지쳐 있던 저는 간병인 침대에 잠깐 앉아 쉬려 했습니다. 그런데 엉덩이가 침대에 닿는 순간 노인이 갑자기 심하게 기침을 해대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황급히 가래 흡입기를 작동시켰습니다. 간병 경험이 없어서 우왕좌왕하다 보니 얼굴에서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노인이 가라앉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돌리고 다시 침대에 앉았는데, 방금 가라앉은 노인이 또 기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밤새 노인의 가래를 빼주고 정해진 시간마다 몸을 뒤집어주느라 한숨도 못 잤습니다. 이튿날 아침,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간단히 밥 한 끼 먹고 다시 수련생들의 고소장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너무 졸려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잠깐 눈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이튿날 밤 근무 시간이 또 다가왔습니다. 전날 밤 꼬박 새운 기억이 떠올라 솔직히 마음이 움츠러들었는데, 역시나 상황은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태가 나흘 동안 계속되자 저는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 바로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다섯째 날, 교대를 받고 노인이 아직 기침을 시작하기 전 잠깐 누워보려 했는데, 며칠간 쌓인 피로 탓에 침대 모서리에 닿자마자 그대로 잠들어버렸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두 시간마다 노인을 뒤집어 주도록 맞춰둔 알람이 울렸습니다. 깜짝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꼼짝도 않는 노인을 바라보며 ‘이를 어쩌나, 내가 자는 동안 가래가 막혀 돌아가신 게 아닐까. 안 그러면 두 시간 동안 기침 한 번 없을 리 없잖아’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노인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습니다. 깊이 잠들어 계신 것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이마를 탁 쳤습니다. 괜한 걱정을 한 것이었습니다. 놀라움이 가시자 마음 한편에 기쁨이 솟구쳤습니다. ‘두 시간이나 잠들었는데 노인이 기침 한 번 안 하셨잖아. 앞으로도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잠시 접었습니다. 여섯째 날도, 일곱째 날도 마찬가지였고, 노인의 몸 상태는 갑자기 180도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하신 일이었고, 노인의 병세가 호전된 것은 대법의 불광(佛光)이 두루 비추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고향에 안정적인 일자리가 생겼고, 더 이상 타향으로 일하러 나가지 않아도 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 그 가족이 밤새 기침하는 노인을 감당하지 못해 간병인을 구하기로 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간병을 맡은 이후 노인의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지자 가족들의 호감도 커져 저를 무척 잘 대해줬습니다.

지역 장쩌민 고소가 마무리되고 노인의 건강도 많이 호전됐습니다. 낮에는 법공부와 연공 외에 진상도 알릴 수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의 가족 모두에게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해줬습니다. 노인의 둘째 아들이 말했습니다. “우리집에서 맘껏 연공하셔도 돼요. 다만 잡혀가시면 안 됩니다.” 현지에서 꽤 알려진 셋째 아들은 “공산당이 우리 집안 두 세대를 망치고 땅까지 빼앗았으니 그야말로 토비(土匪, 도적떼)들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노인의 딸이 대신해서 노인을 탈당시켜줬고, 때때로 노인의 귀에 대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해드렸습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출근할 때는 대법서적과 연공용 MP3를 챙겨가서, 노인이 주무실 때 법공부도 하고 연공도 했습니다.

제가 그집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한 뒤로 노인의 몸 상태가 또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밤 사이에도 몇 차례 기침을 했는데, 이제는 밤새 기침 한 번 안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연공할 때면 노인은 대법의 에너지장 속에서 혈색이 더욱 좋아지고 고른 코골이 소리를 내며 주무셨는데, 그 편안한 표정은 꼭 포대기에 싸인 채 곤히 잠든 갓난아기 같았습니다.

예전에는 노인이 어디가 아프면 며칠씩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야 나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낮에 이상이 생겨도 제가 밤에 교대를 받아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나면 이튿날이면 나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들도 이를 알게 됐고, 특히 큰아들이 자주 말했습니다. “이 어르신은 이제 약도 주사도 필요 없어요. 당신이 출근만 하면 낫거든요. 약이나 주사보다 훨씬 빠르지 뭐에요.”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건 대법의 위력이에요. 우리 사부님께 감사드려야 해요.” 일찍이 중공의 박해를 받았다가 이제 대법 안에서 구원받은 이 가족을 보며 저는 진심으로 그들이 기뻤습니다. 진정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전법륜)였습니다.

어느덧 이듬해 봄이 됐습니다. 건강 상태가 늘 좋았던 노인이 갑자기 중병에 걸려 생명이 위독한 지경이 됐습니다. 호흡이 곤란해 매일 산소 공급에만 의존해야 했습니다. 노인의 딸도 성도(省都)에서 돌아와 장례 준비를 했고, 자녀들이 하루 종일 번갈아 가며 노인 곁을 지켰습니다. 저도 마음속으로 ‘이번에는 노인이 정말 천명(天命)을 다하셨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밤 자정이 가까워올 무렵, 노인의 딸이 아직도 노인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다가가 말했습니다. “어서 주무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제가 부를게요.” 그녀가 자리를 뜬 뒤 발정념 시간이 됐습니다. 발정념을 마치고, 밤 사이 노인 상태가 어떻게 될지 몰라 노인이 안정된 틈을 타 저도 잠깐 누웠습니다. 눈을 감자마자 눈앞에 뚜렷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60~70대로 보이는 노인 4명이 방문을 밀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셋은 검은 옷을 입었고, 나머지 하나는 흰 옷을 입었는데, 흰 옷의 사람은 검은 옷의 셋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컸습니다. 저는 침대에서 일어나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누구죠? 여기에 왜 왔죠?” 그들은 침대의 노인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분을 데리러 왔어요. 우리 곳으로 모셔 가려고요.” 저는 말했습니다. “가시오. 저분은 당신들 소관이 아닙니다. 대법의 소관이에요.” 그 4명은 아무 말도 없이 돌아서 나갔습니다. ‘훅’ 하고 잠에서 깨어 침대에 일어나 앉아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생한 현장감이 꿈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줬습니다. 3일 후, 노인은 신기하게도 회복했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제야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검은 옷과 흰 옷을 입은 그 사람들이 바로 지옥의 흑백무상(黑白無常)이 아니었을까요? 노인이 가족의 손으로 삼퇴를 했으니 신의 관할이 됐고, 하위 생명은 더 이상 노인을 데려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대법이 노인의 생명을 지켜준 것이었습니다.

2017년, 중공 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또다시 사악한 ‘노크 작전’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수련생 몇 명과 함께 집에서 납치돼 현지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가 14일 후 삼퇴 서명 8개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노인은 이미 가사도우미가 돌보고 있었고, 저는 마침 이 기회에 법공부를 열심히 해 자신을 추스르고 일은 나중에 다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날 오후, 집에서 법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언니, 계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노인의 딸과 가사도우미였습니다. 둘이 들어와 채 앉기도 전에 노인의 딸이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언니, 오늘 언니를 모시러 왔어요. 아버지가 위독하세요. 온몸이 부어서 며칠째 음식도 물도 못 드시고, 영양 수액과 산소에만 의지하고 계세요. 이대로 안 되실 것 같아서요.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언니가 아버지를 돌봐주셨으면 해서요. 예전에 아버지가 아플 때마다 언니가 출근만 하면 나으셨잖아요.” 그러면서 옆의 가사도우미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분이 언니 사시는 곳을 알아서 다행이지, 몰랐으면 파출소에 가서 알아볼 뻔했어요.” 가사도우미도 거들었습니다. “언니가 어르신을 그렇게 수월하게 돌보시는 거 보고 쉬울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언니가 가고 사흘째부터 어르신이 하루하루 나빠지기 시작하시더라고요. 낮에 밥하고 밤에 어르신도 돌보려니 몸이 도저히 감당이 안 돼요. 다시 와주세요.”

저는 그분들이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에 그토록 믿어주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더 하지 않고 그날 저녁 바로 대법서적과 MP3를 챙겨 노인의 집으로 갔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보고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습니다. “왔군요. 이제 영감이 좀 나아지겠네요.”

노인이 있는 방에 들어서니, 예전에 혈색이 좋았던 노인이 며칠 동안 음식과 물을 못 드신 탓에 양 볼이 쏙 들어가고 얼굴빛이 어두워진 채였습니다. 부은 팔과 다리 곳곳에는 주사를 쉽게 놓을 수 있도록 바늘이 꽂혀 있었습니다. 정상적으로라면 하루에 세 번 배변을 도와야 하고, 24시간 동안 소변 도뇨량이 5~7병(한 병 500ml)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24시간에 250ml밖에 나오지 않아 온몸이 부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노인은 제 목소리를 듣고 힘겹게 이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더니 이내 다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가슴이 찡했습니다. 중공이 대법제자를 박해할 뿐 아니라 중생까지 연루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노인의 딸이 물었습니다. “언니, 좋은 방법이 있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제게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그냥 아버님이 저와 함께 대법을 들으시게 해요. 아버님이 가시고 머무시는 건 운명에 달린 거예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래요, 언니 말대로 할게요.” 그리고 노인의 딸에게도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라고 일러줬습니다. 그렇게 해서 노인은 저와 함께 사부님의 광저우 법 강의 두 강을 들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제가 노인의 귀에 대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해드렸습니다. 노인은 그날 밤 아무 이상 없이 지냈습니다.

이튿날 아침, 소변 도뇨량이 다섯 병이 됐고 노인의 부기가 눈에 띄게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웃 방에 사는 셋째 아들이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와 다른 말도 꺼내기 전에 먼저 물었습니다. “아버지한테 파룬따파하오 염해드렸어요?” 제가 “네”라고 하자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습니다. “내일 당장 610 직원들한테 가서 말해야겠어요. 80이 넘은 노인이 ‘파룬따파하오’를 듣기만 해도 이렇게 중한 병이 낫는데, 도대체 무슨 사람을 더 잡아들이려는 거냐고요.”

일주일 후, 노인은 정상을 회복했습니다. 파룬따파는 이 80여 세 식물인간을 또 한 번 기사회생시킨 것입니다.

이후 사악이 계속 저를 박해해 저는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제가 떠나기 전, 노인의 셋째 아들과 딸이 인맥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분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사양했습니다. 제가 떠난 지 한 달여 후 노인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85세였습니다. 처음에 의사는 수술 후 길어야 3개월이라 했지만, 노인은 대법의 불광 아래 3년 넘게 사셨습니다.

이것은 제가 직접 겪은 실제 이야기입니다. 제자와 중생을 자비로이 구원해주시는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모든 중생이 이 만고에 다시없을 인연을 놓치지 말고 대법 안에서 구원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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