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 이수이현 파룬궁수련자 장슈창, 4년 억울한 옥살이 마치고 출소

[명혜망](산둥성 통신원) 산둥성 린이(臨沂)시 이수이(沂水)현 파룬궁수련자 장슈창(張修强)이 4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2026년 2월 8일 산둥성 감옥에서 출소해 집으로 돌아왔다.

장슈창(약 51세)은 산둥성 쥐(莒)현 궈좡(果莊)향 칭룽위(靑龍峪)촌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체질이 허약했다. 1996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한 후 활력이 넘치고 건강을 되찾아 약을 한 알도 먹을 필요가 없게 됐다. 이수이현 중바이(中百) 빌딩 동료들은 그가 딴사람이 됐다며 업무에 성실하다고 입을 모았고, 그는 쥐현 상업기술상을 받기도 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시작한 후 장슈창은 수차례 납치와 가택수색을 당했고 세뇌반, 파출소, 구류소, 노동수용소, 감옥에 불법 감금돼 온갖 모욕과 고초를 겪었다.

다음은 장슈창이 중공에게 당한 박해 사실을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직장 관계자들에게 납치 및 감금당해

2001년 여름 이수이현 중바이 빌딩 간부들은 폭력을 휘두르며 장슈창에게 신앙 포기를 강요했다. 악당 왕샤오양(王曉陽)은 장슈창의 얼굴을 정면으로 가격해 코와 입에서 피가 나게 했고, 다른 공범 양루이(楊蕊)는 장슈창을 빌딩 5층으로 끌고 가 컵으로 머리를 내리치려 위협하며 ‘3서(三書, 세 가지 수련 포기 각서)’ 작성을 강요했다. 장슈창이 단호히 거부하자 양루이와 리타오(李濤) 등 악인은 강제로 그의 손을 끌어 지장을 찍게 했다.

육체적 고문으로도 장슈창을 굴복시키지 못하자 악인들은 정신적으로 그의 의지를 꺾으려 했다. 그들은 장슈창에게 파룬궁을 비방하는 영상을 보라고 강요했는데, 장슈창이 보지 않자 리타오는 목을 조르며 억지로 보게 했고 직장의 다른 이들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박해에 가담해 그를 감시했다.

악인 리성(李生)은 섣달그믐날 밤 장슈창에게 억지로 담배를 피우게 하고 중바이 빌딩 보안과 내에 가두어 모욕했다. 악인들의 비인간적인 모욕과 구타로 장슈창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에 이르렀다. 리보(李波)는 켕기는 것이 있는지 “너 정신분열증 앓은 적 있지?”라고 묻기도 했다. 나중에 악인들은 책임을 질까 두려워 장슈창에게 5천 위안을 갈취한 후에야 부모님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파룬궁수련자들이 진상을 알려 현금 4300위안을 돌려받았다.

2001년 4월 직장 악인 리훙웨이(李洪偉)는 장슈창이 베이징에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 그를 이수이현 구치소로 납치해 한 달간 불법 구금했다. 그 후 다시 세뇌반으로 끌고 가 40일간 박해했고, 이어서 직장 보안과에 불법 감금했다가 다시 구류소로 보내 15일간 불법 구금했다.

1년 6개월간 불법 강제노동

2009년 4월 3일 오후, 장슈창은 이수이현 이하(沂河) 산장 주변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악의적인 신고로 경찰에게 납치됐다. 이수이현 구치소에 한 달간 불법 구금됐을 당시 심한 구타를 당했다.

이후 장슈창은 1년 6개월의 강제노동 처분을 받고 산둥 장추(章丘) 제2 노동수용소 8대대로 끌려가 박해받았다. 수용소에 있는 동안 장슈창은 ‘진선인(眞·善·忍)’ 신앙 포기를 거부해 온갖 모욕을 당했다. 장기간 벽을 보고 서 있게 하는 벌을 받았고 오랫동안 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으며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고문으로 혈압이 200까지 치솟았고 나중에는 피를 토해 한때 생명이 위독한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장슈창은 노동수용소에서 540일간 감금돼 박해받았다.

징역 4년 불법 선고

2021년 6월 20일 오후, 장슈창은 야오뎬쯔(姚店子)진 밍징(明景) 단지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밍징 단지 보안과장의 악의적인 신고를 당했다. 당일 야오뎬쯔 파출소 경찰에게 불법 가택수색을 당해 대법서적 7권을 강탈당했고 파출소에서 하루 밤낮을 불법 구금됐다. 이튿날 차이산(柴山) 구류소로 끌려가 15일간 불법 구류됐다가 7월 6일 귀가했다.

2022년 2월 8일, 장슈창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스티커를 붙였다가 신고당했다. 당일 오후 이수이 정양(正陽)로 둥가오(東皋) 공원 남문 노간부 낙원 내에서 이수이현 특경에게 납치돼 중심가 파출소로 끌려갔다. 이튿날 이수이 사건처리센터로 이송됐고, 전염병을 핑계로 2월 10일 멍인(蒙陰)현 구치소에 불법 구금돼 21일간 격리됐다.

2022년 2월 15일 이수이 검찰원은 영상으로 장슈창을 불법 심문하며 죄를 인정하라고 강요했으나 장슈창은 거부했다. 3월 3일 장슈창은 이수이 구치소로 이송됐다.

2022년 5월 11일 장슈창은 이난(沂南)현 검찰원에 의해 불법 기소됐다. 5월 25일 이난현 법원에서 영상으로 불법 재판을 받았고, 6월 21일 이난현 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6월 23일 장슈창은 린이시 중급법원에 항소했으나, 린이 중급법원은 2022년 8월 4일 다시 불법 재판을 열었고 8월 23일 원심을 유지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장슈창은 이수이 구치소에서 약 13개월간 구금된 후 2023년 3월 29일 산둥성 감옥 입감대로 이송됐다. 사흘 뒤인 4월 1일 11감구로 옮겨졌다. 장슈창은 전향하지 않고 죄를 인정하지 않아 줄곧 엄중 관리 박해를 받았으며, 매일 야간 근무와 작은 의자에 앉아 있기 등을 강요받았다.

장슈창은 구치소에서 14개월, 감옥에서 34개월간 불법 구금된 끝에 2026년 2월 8일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이 겪은 박해

2001년 장슈창이 고향인 쥐현 칭룽위촌에 돌아가 결혼하려 하자 마을 간부들은 그가 전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5천 위안을 갈취했다. 중공 박해자들은 오랫동안 아내의 호적 등록을 해주지 않았으며 이를 빌미로 아내에게 낙태를 강요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07년 장슈창의 아이가 이미 다섯 살이 됐음에도 쥐현 칭룽위촌 간부들은 아이의 호적을 올려주지 않고 온갖 트집을 잡아 아이의 취학을 어렵게 했다.

2007년 2월 15일 장슈창의 부모는 마을 간부들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 두 노인은 반년 동안 집을 떠나야 했다. 장슈창 역시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고, 집 안팎에는 풀이 사람 키 절반만큼 자라나 지극히 처량한 모습이었다.

2008년 3월 10일 저녁 8시, 향 정부에서 보낸 일당이 몽둥이를 들고 장슈창의 집을 습격해 불법 가택수색을 했다. 장슈창이 집에 없자 악당들은 그의 아버지를 파출소로 끌고 가 모함하며 붉은 천으로 머리를 가린 채 번갈아 가며 폭행하고 구두로 걷어찼다. 구금 기간 밥도 주지 않았다.

장슈창의 어머니는 아들이 오랫동안 박해받는 것을 늘 걱정했다. 2009년 장슈창이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자 어머니는 거대한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중병으로 자리에 누웠다. 사악한 무리는 가족 면회도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 걱정에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며 늘 눈물로 지냈고 악인들의 비웃음까지 견뎌야 했다. 어머니는 9개월간 병상에 누워 있다가 2010년 12월 9일 비통해하며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2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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