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주사와 전기충격 등 고문 겪은 탕산 량즈친, 억울하게 세상 떠나

[명혜망](허베이성 통신원) 허베이강철그룹 탕산강철공사(唐山鋼鐵公司) 퇴직 직원인 파룬궁수련자 량즈친(梁志芹)이 ‘진선인(眞·善·忍)’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중공(중국공산당)에게 여러 차례 박해를 받았다. 그녀는 2000년 탕산시 안캉(安康) 병원으로 납치돼 ‘시체 침대(死人床·사람을 십자로 묶어놓는 침대)’에 묶인 채 독 주사를 맞았고, 카이핑(開平) 노동수용소에서는 전기충격, 벌 서기, 수감자 구타, 겨울철 나무에 매달려 동상 입기 등 고문을 당해 여러 차례 생명이 위독했다. 결국 그녀는 2024년 12월 19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2000년 가을 독 주사, 전기충격 박해를 전후한 량즈친

량즈친은 허베이강철그룹 탕산강철공사 퇴직 직원으로 회사 노동조합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여러 질병으로 병가 중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불과 반년 만에 오랜 지병이 씻은 듯이 사라지며 활력을 되찾았다.

1999년 7월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후, 량즈친은 여러 차례 베이징 청원국을 찾아 파룬궁의 진상을 설명하고 중앙 각 부처에 편지를 써서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1999년 5월부터 7월 사이 댜오위타이(釣魚臺) 파출소가 여러 차례 괴롭혔고, 회사 노동조합 노간부처는 그녀를 1개월간 불법 감금했다. 99년 9월 21일 중난하이(中南海) 앞에서 청원서를 제출하다 납치됐으며, 22일 탕산 공안국 루베이(路北) 분국에 의해 탕산 제1구치소에 감금됐다.

2000년 가을, 량즈친 등 파룬궁수련자 다수가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탕산시 안캉병원으로 납치돼 독 주사를 맞았다. 당시 안캉병원 주임 야오수쥔(么淑君), 장(張)모 씨 등에게 약물을 주입당한 수련자는 사오리옌(邵麗燕), 우수샤(吳淑霞), 량즈친, 니잉친(倪英琴), 둥수구이(董樹桂), 마진화(馬晉華), 자오후이샤(趙惠霞), 장수쥐안(張淑娟), 모(某) 교사 등 10여 명이다. 그중 피해가 가장 심각했던 량즈친은 두 차례나 독 주사를 맞았다.

첫 주사 후 그녀는 즉시 혼수상태에 빠졌고 심부전 증상이 나타나 한밤중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그녀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한밤중에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깼습니다. 보니 마약 중독자 두 명이 저를 누르고 있었고 손발은 침대에 묶여 있었습니다. 같은 방의 정신질환자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발작했습니다. 당시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심장이 옥죄어와 터질 것 같았고 묶인 채 죽기 살기로 발버둥 쳤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죽음이 눈앞에 닥친 것 같았고, 너무 고통스러워 눈동자가 풀려 움직이지 않았으며 혀뿌리가 굳고 정신이 혼미했습니다.”

량즈친은 주사를 맞은 지 한 달 동안 세 번이나 갑자기 기절했다. 매번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 대소변을 지렸다. 의료진에 따르면 이는 사람이 죽기 직전의 상태로, 제때 응급처치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독 주사를 맞은 후 량즈친은 신체와 정신에 많은 이상 반응을 보였는데 심장 증상이 가장 뚜렷했다. 2000년부터 심장에서 등까지 불편하고 혈액순환이 안 되는 것처럼 사지가 차가웠으며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이런 상태가 반년 정도 지속됐는데, 밤에 잠을 잘 수 없었고 옷을 아무리 입거나 덮어도 소용없었으며, 1분 1초를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보냈다.

많은 파룬궁수련자가 독 주사를 맞은 후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렸다. 심장 불편, 가슴 통증, 혀뿌리 경직, 비틀거리는 보행, 정신적 긴장과 고통, 뇌 사고 및 행동 이상, 눈빛이 멍해짐, 기억력 감퇴, 심각한 심리 장애 등 말로 다 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직접적 책임자인 야오수쥔은 이후 제1구치소 부소장으로 전근 가서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했다.

량즈친은 2년의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고 카이핑 노동수용소로 이송됐다. 2000년 말 카이핑 노동수용소에서 량즈친은 전기봉으로 장시간 전기충격을 당했다. 당시 카이핑 노동수용소 경찰 왕젠중(王建忠)은 경찰 왕쉐리(王學禮)를 지휘해 수련자들을 모욕하고 량즈친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 그녀가 꿇지 않자 왕쉐리 등 남자 경찰 5~6명이 량즈친을 바닥에 누르고 전기봉 3개로 동시에 충격을 가했다. 그중 가장 악랄했던 왕쉐리는 수련자 다수를 기절시키거나 다치게 한 자다. 왕쉐리는 량즈친의 후두부와 목의 중추신경 급소를 향해 미친 듯이 전기충격을 가했다. 량즈친의 머리와 목에는 큰 혹이 생겼고 당시 반응이 둔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들은 며칠 연속 여경을 보내 량즈친과 대화하게 하며 중추신경이 감전된 후 뇌 반응을 관찰했다. 첸안(遷安)시 수련자 페이추이룽(裴翠榮)이 바로 카이핑 노동수용소 경찰에게 중추신경 전기충격을 당해 여러 차례 기절한 끝에 사망했다.

2001년 9월, 량즈친이 집에 돌아왔으나 독 주사와 중추신경 전기충격으로 인한 상해는 정상적인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처음에는 거스름돈을 자주 틀리게 주는 등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져 가족을 도와 장사를 할 수 없었다. 박해가 가장 심했던 부분만 조금 기억할 뿐 나머지 경험은 설명하기 어려워했다.

2003년 이후 량즈친은 심장, 간, 비장, 위, 장 등 각 장기에 통증을 느꼈고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등과 허리, 신장으로 퍼졌다. 때로는 통증으로 앉지도 눕지도 못해 24시간 눈을 붙이지 못했고, 심할 때는 호흡 곤란, 정신 혼미, 눈동자가 풀리는 증상이 나타났다. 뇌에 심각한 산소 결핍 상태가 나타나 지속적으로 구토했고 물조차 토해냈다. 체중은 65kg에서 30kg으로 줄었다. 박해 후유증으로 그녀는 줄곧 허약하고 야위었으며, 자주 현기증으로 쓰러져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체력 저하로 일상생활이 어려워 가족의 도움이나 가사 도우미에 의지해야 했다.

당시 탕산 안캉병원으로 납치된 수련자들은 독 주사 후 다양한 후유증을 앓았다. 탕산 압연공장 기술원 사오리옌은 안캉병원 박해로 정신이상이 됐고, 카이핑 수련자 니잉친은 박해 후 뇌졸중 증상으로 3년 가까이 생활 능력을 잃었다가 2009년 12월 8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량즈친은 결국 2024년 12월 19일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났다.

안캉병원은 명목상 형법을 위반한 정신질환자를 강제 수용 치료하는 병원이지만, 1999년 중공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이래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박해를 가중하는 도구로 이용됐다. 1999년 7월 중공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박해 초기 중공 내부 문서에는 수련자에 대해 “반드시 약물 치료 방법을 써야 한다”, “필요시 약물을 개입하고 의약 방식과 임상 실험 방침을 채택해 과학적 전향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신앙 포기를 거부하는 일부 수련자를 정신병자로 모함해 이곳으로 강제 이송해 전향을 실시했다. 소위 ‘정신 치료’는 실질적인 정신 박해였다. 중추신경 파괴 약물 주사, 한계를 초과하는 강도의 전기침 고문,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결박 및 구타, 철 의자 고문 등은 모두 국제사회가 인정한, 정신병 치료를 악용한 박해이자 의학 금기 사항이다. 그중 가장 널리 사용된 것이 독 주사이며, 피해자의 고통은 외부인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여서 많은 사람이 이로 인해 실제로 정신이상이 되거나 사망했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2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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