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찾으니 참 좋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8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입니다. 20여 년 수련해 오면서 가장 크게 느낀 체험은 안으로 찾는 것이 정말 좋다는 것입니다. 수련 중에 안으로 찾으면 승화가 빠릅니다. 끊임없이 안으로 찾는 과정은 곧 끊임없이 집착을 제거하고, 끊임없이 승화하는 과정이며, 이렇게 하면 수련의 길을 갈수록 더욱 명백해지고, 갈수록 성숙해집니다.

저는 올해 만 70세이고 남편은 저보다 두 살 많습니다. 그는 먼저 군대에서 16년간 복무한 뒤 전역해 지방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했는데, 퇴직 후 적응하지 못해 마음이 매우 공허했습니다. 몸도 좋지 않아 두 차례 수술을 받았고 성격도 좋지 않았는데, 최근 몇 년간은 특히 죽음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슨 건강기구나 치료기기든 광고에서 좋다고만 하면 사려 했고, 인터넷에 있는 온갖 약, 마시는 것, 붙이는 것, 씻는 것 등을 모두 사려 했습니다. 의료보험 카드에 돈이 있는데도 쓰지 않고, 굳이 인터넷에서 그 사람을 속이는 ‘조전비방(祖傳秘方, 대대로 내려오는 비방)’을 사려 했습니다.

한번은 1700여 위안짜리 치료기를 막 사더니, 이튿날 또 5700여 위안짜리 티베트 약을 샀습니다. 제가 이 일을 딸에게 알렸습니다. 딸과 사위가 와서 그를 설득하자 그는 크게 화를 내며 마구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는 제가 딸에게 말했다고 고함을 치며 심지어 저를 때려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딸은 “상관하지 마세요! 최악의 경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우리가 돈을 좀 더 쓰면 되지, 지금처럼 사람 마음을 불편하게 할 필요는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제가 아들에게 말하자 아들은 “아버지가 걸린 게 바로 그 병이니 방법이 없잖아요? 돈이 부족하면 저한테 말씀하세요”라고 했습니다.

더욱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두 번이나 사기를 당해 공안에게 발각돼 제지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일들은 제 수련에 심각한 영향을 주어 법공부를 해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연공(煉功)을 해도 입정(入靜)하지 못했고, 늘 ‘어떻게 그와 얘기해야 할까’만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을 꺼내기만 하면 그는 “내 일에 왜 늘 참견이야!”라고 소리쳤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져 영향이 좋지 않을까 봐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 고통과 번뇌는 정말이지 심장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듯한 괴로움이었습니다.

저는 일이 우연한 것이 아니며 반드시 제가 수련해야 할 부분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처음에는 사람의 기점에 서서 안으로 찾았기에 늘 그가 잘못했고 저는 잘못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너무 이기적이고 자기만 알지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 ‘나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사람을 대하며, 다투지도 떠들지도 않고 좋은 말로 타이르면서 먹고 마시는 것까지 챙겨줬는데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어느 날, 법공부를 하다가 다음 구절을 읽게 됐습니다. “제자들이여! 세간의 모든 것을 버림은 재가제자로 말하면 집착을 점차적으로 버리는 것이나, 출가제자에 대해 말한다면 반드시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며 출가의 표준이다.”(정진요지-출가제자의 원칙)

모든 것을 버린다! 그 순간 ‘모든 것을 버린다(捨盡)’는 이 글자가 제 대뇌에서 온몸을 관통해 내려가 마치 모든 세포가 환호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제야 꿈에서 깨어난 듯,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대법제자가 수련에서 반드시 도달해야 할 기준임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인이 세속의 모든 것을 다 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요! 사람의 관념을 다 버리지 못하고 신(神)이 되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법의 기점에 서서 안으로 찾아보니, 그가 가정을 돌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자신의 집(천국)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법제자는 인간 세상에 잠시 머무는 존재로, 먹고 쓰는 것이 충분하면 그만입니다. 잘못은 바로 저에게 있었습니다. 사람 마음이 너무 무거워 스스로 번뇌를 자초하고 집착을 잔뜩 쌓아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1. 명예욕

돈을 쓸 때 늘 명분과 이익을 얻으려 했습니다. 예를 들어 노인의 장례를 치를 때, 제가 돈을 더 쓰려고 한 건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2. 질투심과 원망심

늘 남편이 만족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저만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아들딸 두 자녀를 키워 성인이 되게 하고 가정을 이루게 했습니다. 그에게는 조금도 신경 쓰게 하지 않았는데, 평생 제 덕을 보고 제 복을 누리면서 늙어서까지 이렇게 저를 괴롭힌다고 여겼습니다.

3. 쟁투심

남편이 양심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의 부모 형제들까지 제가 잘 챙겨줬으니 당연히 저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아니었으면 남편이 그렇게 좋은 직장으로 전직할 수 있었겠으며, 퇴직금이 7~8천 위안이나 될 수 있었겠습니까? 평소 그가 하지 않는 일은 제가 했고 그가 먹지 않는 것은 제가 먹었습니다. 그가 수술했을 때, 저는 50여 일 동안 침대에서 자보지도 못했고, 낮에는 그를 돌보느라 쉴 틈이 없었습니다. 밤에 그가 잠들면 병상 옆에 머리를 기대고 몇 분 눈을 붙이는 것이 휴식의 전부였습니다. 당시 그는 크게 감동해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런 보답’을 하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고 참을 수 없으니 다퉜습니다. 그에게 급여 카드를 내놓으라고 했지만 남편은 당연히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택배원이 보는 앞에서 결제하지 못하게 강하게 막아, 7천여 위안의 약을 강제로 환불했습니다. 그 일로 남편의 체면을 크게 구겼습니다.

4. 자아에 대한 집착

늘 가정에 대한 저의 기여도는 크고 그의 기여는 적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말할 때도 조심하지 않고 “이건 내가 한 거야”, “이건 내 노력 덕분이야”라고 말하며 그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집착들의 뿌리를 깊이 파고들어 가 보니, 그 뒤에는 사부님을 공경하지 않고 법(法)을 공경하지 않는 심각한 문제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수련의 길은 모두 사부님께서 체계적으로 안배해주신 것이고, 제가 만난 난(難)은 사부님께서 저의 심성을 높이고 업력을 전환시키기 위해 배치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사부님의 안배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사부님 말씀을 듣지 않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이 이치를 깨달았을 때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으며, 자책감과 부끄러움이 몰려왔습니다.

진정으로 이런 사람 마음을 내려놓자 그 홀가분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신묘했습니다. 다시 남편이 돈을 쓰는 것을 보아도, 자기가 번 급여를 자기가 쓰는 것이니 당연한 일로 느껴졌고 더는 마음이 번거롭지 않았습니다. 저의 법공부와 연공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남편은 20여 년간 하루같이 저의 수련을 지지해주었고, 붉은 공포(중공의 탄압) 속에서도 압력을 견디며 제가 하는 일을 지지해주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큰 보답을 받았으면서 또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당연히 남편에게 감사해야 했습니다.

말하자면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며칠 전 남편이 요즘 기억력이 많이 떨어진다며, 스스로 급여 카드를 저에게 맡겨 관리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는 제가 안으로 찾은 데 대해 사부님께서 주신 격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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