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속에서 착실히 수련하며 ‘작은 꽃’이 20년간 피어나다

글/ 동북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올해 64세로, 1998년에 대법 수련을 시작한 제자입니다. 중공 악당이 규정한 가정 성분이 좋지 않아 할아버지는 지주였고 아버지도 그 신분을 이어받아 관리 대상이 됐으며, 아버지는 학교를 12년 다녔습니다. ‘문화대혁명’ 시절 우리 가족은 모두 멸시를 당했습니다. 위로는 오빠 세 명과 언니 두 명이 있고 저는 막내였습니다. 아버지는 자주 대대(大隊)에 불려가 비판 투쟁의 들러리를 서야 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밖에 나가면 늘 무시를 당했습니다. 학교에서는 회의만 열리면 아버지 이름을 지목하며 크고 작은 비판 투쟁이 이어졌습니다. 때로는 아버지가 일을 하러 불려가 실제로 일을 하면 그나마 괜찮았지만, 이유도 모른 채 불려가 매를 맞고 밧줄로 묶여 비판을 받는 경우도 있어 가족 모두가 늘 전전긍긍했습니다. 그 시절 저는 학교에 가기 싫었고 공부도 잘되지 않았습니다. 책은 많이 읽었지만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1998년에 대법 수련을 시작한 후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예전에는 말수도 적고 아는 것도 적었으며 이치를 말할 줄도 몰랐습니다. 지금은 누구를 만나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특히 둘째 아주버니의 아내인 둘째 형님은 예전에 제가 사람을 봐도 말이 없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서로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1. 우리 가정의 변화

먼저 우리 가정의 변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시 우리집은 여섯 식구로, 위로는 노인 두 분, 아래로는 딸 둘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형제가 셋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제가 대법을 수련하고 있었기에 주로 제가 돌보았고, 이후 두 노인은 우리집에서 모시게 됐습니다. 1999년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하자, 가족들은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을 보고 저에 대해 편견을 가지게 됐고, 특히 시아버지는 저를 곱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시아버지께 계속 잘해 드렸고, 화를 내셔도 저는 화내지 않고 계속 잘해드렸습니다. 시아버지는 제가 시어머니를 매우 세심하게 돌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어머니가 가끔 바지에 대변을 보셔도 저는 싫어하지 않고 깨끗이 씻어 드렸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우리는 평소에 慈悲(츠뻬이)한 마음과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해야 한다”(전법륜)는 가르침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이후 밖에서 누군가 시아버지께 진상 자료를 드렸고 시아버지는 그것을 읽으셨습니다. 저는 ‘9평 공산당’, ‘해체 당문화’ 등 모든 진상 자료를 시아버지께 보여 드렸습니다. 시아버지는 공산당은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해서 끝났다고 하셨고, 여러 차례의 정치 운동을 직접 겪은 분이라 모든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대법서적도 읽으셨습니다. 제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이후, 시부모님 두 분은 제가 노인들을 진심으로 잘 모신다고 느끼셨고 큰 행복을 느끼셨습니다.

그 시절 우리 가정은 정말로 사부님의 보호 속에서 가정환경이 변화됐습니다. 아주버니가 어머니께 “어머니도 수련해 보세요”라고 권했고, 그해 시어머니는 76세에 대법 수련을 시작하셨습니다. 글을 모르셔서 설법 녹음을 들으셨고 몇 달 뒤 약을 끊으셨으며 건강도 점점 좋아졌습니다. 우리 가족은 대법을 배우니 집안에 매우 평화롭고 조화로운 분위기가 깃든다고 느꼈습니다.

시아버지는 진상을 이해한 뒤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셨습니다. 어느 날 제가 외지에서 밥을 하고 있는데 시아버지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眞善忍), 정말 좋구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기뻤습니다. 시아버지는 94세까지 사셨고 2016년 6월 8일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마지막 순간까지도 대법이 좋다고 외우셨습니다. 큰 아주버니는 외출 중이라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돌아와 “아버지를 모시느라 정말 힘들었겠네요”라고 말하며 울면서 제게 절을 하셨습니다. 저는 “아주버님, 절하지 마세요. 아주버님은 언제나 제 아주버님이시고 이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으로 두 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는 아이들에게 자주 화를 냈고 큰딸은 많이 맞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잘 울었고 제가 때리면 무서워하며 “말 잘 들을게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아이를 때리니 남편도 저와 자주 다퉜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뒤로는 아이를 때리지 않았고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잘 대했습니다. 제 마음도 늘 즐거워졌습니다.

우리집은 가게를 운영했는데 손님들과도 한 번도 화낸 적이 없었고 그들에게 진상도 알렸습니다. 시누이도 함께 장사를 했는데 저는 돈이나 이익 문제로 한 번도 따지지 않고 늘 양보했습니다. 특히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 이후 제가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3일간 불법 구금됐다 돌아왔을 때, 시누이는 제가 또 잡혀갈까 봐, 부모님을 돌볼 사람이 없을까 걱정하며 심하게 화를 내고 듣기 힘든 말도 많이 했지만, 저는 화내지 않고 선의로 대했습니다. 시누이는 “뭐라고 해도 화를 안 내고 나한테 잘해주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따로 장사를 하게 됐는데 그녀의 몸이 안 좋을 때 제가 대소변을 받아내며 20일 넘게 돌보았습니다. 그녀는 은혜를 평생 갚을 수 없다고 했고 나중에는 대법 수련도 시작했습니다. 제가 시부모님과 시누이를 돌본 것을 통해 남편은 대법을 더욱 굳게 믿게 됐고 제가 집안일이나 다른 일을 할 때도 모두 지지해주었습니다. 가게에 일이 있어 제가 도와야 할 때도 제가 바쁘다고 하면 남편은 굳이 시키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저를 매우 잘 대해 주고 있으며 대법을 지지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에 장사도 잘되고 있습니다.

큰딸이 중학생이 됐을 때 남편은 고등학교에 못 갈까 봐 보충수업 학원을 알아봤고 몇 군데를 본 뒤 한 곳이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다니다가 선생님, 친구들과 갈등이 생겨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그럼 엄마랑 같이 하자. 너는 공부하고 엄마는 법공부하면서 함께 하자”고 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주간지를 보는데 딸도 함께 보다가 점점 빠져들었고 좋다고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아이를 돌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고 아이의 지혜가 점점 열리면서 성적이 급격히 향상됐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도 알려주었습니다. 보충수업을 받던 아이들은 합격하지 못했지만 제 딸은 제2고등학교에 합격했고, 다른 아이들은 기부금을 내고 입학했지만 제 딸은 우리집에 큰돈을 아껴 주었습니다. 이후에는 지역 이공대학에도 합격했습니다.

둘째 딸도 원래 성적이 아주 좋지는 않았고 중상 정도 성적이었지만 결국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모두 합격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대법의 불광이 비추어 우리 가정에 내려준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제 두 딸은 모두 가정을 이루었고 각자 아이도 있습니다. 먼저 큰딸의 아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아이는 대법과 인연이 있어 제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믿고 잘 따릅니다. 한번은 사위와 제가 아이를 데리고 시장에 갔다가 차에서 내릴 때, 아이가 차 문 뒤로 돌아가 뒷문 틈을 잡고 있었습니다. 제가 “탁” 하고 문을 닫는 바람에 아이의 손이 문에 끼어 크게 울었습니다. 사위는 병원에 가 보자고 했습니다. 차에 타서 가는 동안 저는 계속 ‘파룬따파하오’를 외웠는데 사위는 제가 왜 그렇게 외우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 아이는 울음을 그쳤고 손으로 음식을 찢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아졌습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마침 검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의사는 “아이 손이 차 문에 끼었을 때 문을 세게 닫았다면 뼈가 쉽게 부러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문을 꽤 세게 닫았지만 말하지 않았고 아이의 손은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이 아빠가 아이 엄마(제 큰딸)에게 “아직도 누군가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운다더라”고 말하자 큰딸은 “그걸 외워서 괜찮아진 거잖아!”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번은 제가 가부좌를 하고 발정념을 할 때 아이도 저를 따라 반가부좌를 했습니다. 그때 아이가 울어서 왜 그러냐고 물으니 다리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 아이는 다리에서 무언가를 잡아당겨 뺐다고 말했습니다. 아이 엄마는 원래 아이가 다리 통증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 이후로 다시는 아프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아이의 다리 통증에 대한 업력을 없애주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아이는 8살이 됐습니다. 한번은 제가 다른 아이들에게 소선대 탈퇴(삼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옆에서 아이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면 넘어져도 다치지 않아요”라고 따라 말했습니다. 또 한번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사람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말하자 아이는 “아니에요, 신이 만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엄마가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니?”라고 묻자 아이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라고 했습니다.

2. ‘작은 꽃’이 피어나다

1999년 ‘7·20’ 박해가 시작된 이후 대법제자들은 중생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진상 자료를 전달하는 일을 맡아 외지에서 수련생들이 가져온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2005년 이후에는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자료점을 세우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방 하나를 임대했는데 집주인은 외지인이어서 서로 만난 적도 없었습니다. 그곳은 작은 곁방으로 공간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생 A가 프린터 사용과 인터넷 접속을 가르쳐 주어 진상 자료 인쇄를 시작했습니다. 집과 가까워 아는 사람들에게 보일까 봐 늘 뒷문으로 다녔는데 뒷문은 작은 쪽문이었습니다. 저는 주로 밤에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겨울에는 매우 추워 난로를 피워야 했고 수도가 얼지 않게 하는 것도 신경 써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2년도 채 되지 않아 지냈는데 이후 집주인이 자주 전화를 해 와 수련생들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둘째 형님에게 200위안을 주고 그 집에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둘째 형님은 같은 마당에 살았고 그녀는 서쪽 세 칸, 우리는 동쪽 세 칸에 살아 이동이 편리했기 때문에 동의했습니다.

중공 악당이 ‘18차 당대회’를 열던 해, 추석을 앞둔 1~2일 전이었습니다. 제가 법공부를 적게 하고 연공도 충분히 하지 못한 채 속인 일에 바쁘다 보니 심성이 좋지 않았고 이익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 사악에게 틈을 주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7시쯤 현(縣) 특경대대 여러 명이 들이닥쳤는데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의 지시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제 집에 와서 저를 납치하고 사부님의 법상과 ‘전법륜’을 압수해 갔습니다. 한 경찰이 서쪽 방으로 가서 둘째 형님에게 “당신 작은 동서가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누구와 접촉하느냐”고 묻자 형님은 “큰 동서와 작은 동서는 사이가 안 좋아 말도 안 하고 왕래도 없어요. 저도 병이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캐묻지 못하자 경찰은 떠났습니다.

제가 구금돼 있을 때 경찰은 “이 책과 사부님 법상은 당신 집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책을 집어 들고 읽었고 법도 한 단락 읽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경찰은 저를 풀어주었고 저는 책과 사부님 법상을 그대로 들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것이 제 생명과도 같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경찰은 남편에게 1만 위안을 갈취했습니다. 그때 시아버지와 시누이는 얼마를 쓰더라도 저를 나오게 해야 한다고 말했고 가족 모두가 저를 지지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 역시 복을 받았습니다.

이 납치 사건을 통해 남편은 중공 악당의 사악함을 알게 됐고 대법제자들이 하는 일이 올바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후 저는 당당하게 자료점을 우리집으로 옮겨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 자료점의 수련생들에게 진상 자료를 공급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9평 공산당’을 만들었고 이후에는 대책자·소책자·전단 ‘명혜주보’, ‘당신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정견주간’, ‘명혜주간’ 등을 만들었습니다. 매년 달력을 제작하며 저는 인쇄를 맡아 매년 여러 상자의 종이를 사용했습니다.

그동안 수련생들이 납치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있어 약간의 소문만 있어도 자료점을 정리하라는 연락이 왔지만 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계속 일을 하며 자료를 인쇄했고 수련생들이 자료를 가져가는 데 한 번도 지장을 준 적이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사부님께서 도와주셨고 저는 모두 정념으로 넘겨왔습니다.

제 컴퓨터에서도 여러 차례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악당의 인터넷 봉쇄가 매우 심합니다. 한때 수련생들이 인터넷 접속이 어렵다며 제게 물었을 때 저는 “한번은 서버가 다섯 개나 있었는데 속도 표시에는 신호가 하나도 없었지만 내려받아야 할 것은 모두 내려받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번은 처음에는 접속이 안 돼 5~15분 기다리라는 안내가 떴지만 사이트가 열리며 필요한 자료를 모두 다운로드할 수 있었습니다. 대법은 정말로 신기합니다.

이 ‘작은 꽃’은 거의 20년 동안 피어 있으며 저는 줄곧 평온하게 수련의 큰길을 걸어왔습니다.

이 모든 세월 동안 사부님의 지도가 있었기에 오늘에 이를 수 있었고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수련생들의 도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정진하며 시간을 다그쳐야 합니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으며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사부님의 일깨움이 필요합니다. 인간 세상에는 대법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깊이 느낍니다. 앞으로의 수련에서 저는 사부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완수할 것입니다. 법 위에 서 있기만 하면 넘지 못할 고비는 없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법공부하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 해나가겠습니다.

이상은 저의 작은 수련 체험입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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