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으로 마음을 씻고 사부님을 도와 감로를 뿌리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많은 수련생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건강을 위한 목적으로 대법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았습니다. 부모님은 제 병을 뿌리 뽑기 위해 어린 저를 데리고 수시로 큰 병원과 작은 병원을 전전하셨고 심지어 황량한 산골 오지의 ‘신비한 점집’까지 찾아다니셨습니다. 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그분들은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돼 있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가냘픈 몸을 이끌고 고난 가득한 인생의 여정을 힘들게 걸어왔습니다. 그러다 대법을 만나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받고 나서야 몸이 건강해지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갖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두번째 생명을 주셨고 영생으로 통하는 밝은 신의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1. 소원을 품고 북으로 향하다

우리가 법을 얻은 기쁨과 생명이 불은(佛恩)에 잠긴 행복에 젖어 있을 때, 진선인(眞·善·忍)을 겨냥한 하늘을 뒤덮는 광기 어린 탄압이 몰래 막을 올렸습니다. 창생을 복되게 하고 만민을 구하는 대법이 마음대로 왜곡됐으며 사부님께서는 무고하게 모함을 당하셨고 선량한 대법제자들은 마구잡이로 납치됐습니다.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 한마디를 하고 사부님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수련생들은 속속 베이징으로 청원을 하러 떠났습니다. 청원의 길이 막히자 다들 천안문으로 가서 대법을 실증했습니다.

수련생들이 무리를 지어 가고 오면서 천안문에서 대법을 실증한 가슴 벅찬 거사들을 전해주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구해주셨는데 지금 대법이 어려움에 처했으니 제가 어찌 수수방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짐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베이징에 가서 정부에 대법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며 사부님은 가장 좋으신 분이고 결백하시다는 것을 알리겠다고 몰래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제 목숨이 위태로울 때 대법이 기적을 나타내 저를 구하고 새 생명을 준 기적을 직접 목격하셨기에 걱정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셨습니다. 떠나기 전 친척 집의 다섯 살도 안 된 아이가 우리집에 놀러 왔다가 뜬금없이 저를 보고 “풍선 파는 언니”라고 말했습니다. 이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밖으로 나가는 제자 한 명 한 명에게 금강불파(金剛不破)의 보호막을 씌워주셨던 것입니다.

안전을 위해 우리는 다른 도시를 거쳐 베이징으로 향했습니다. 한겨울 추위 속에 열차가 칠흑 같은 밤을 가르며 달릴 때 처음으로 혼자 먼 길을 떠난 제 마음에는 부모님에 대한 애틋함이 밀려와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나는 수련인이다. 사부님께서 억울한 누명을 쓰셨는데 제자가 나가서 말하지 않는다면 또 누가 나서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의 법을 외우며 정념(正念)을 굳건히 하고 계속 북으로 향했습니다.

중간 환승표였기에 우리는 베이징과 아주 가까운 작은 역에서 미리 내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7~8명의 동행 무리는 결국 중공(중국공산당) 악당들의 주의를 끌었고 차단과 검문을 당해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저는 화장실에 가느라 그들과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에 무심결에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밤 고향에서 수천 리 떨어진 낯선 도시를 홀로 걷게 됐습니다. 사방이 막막했습니다. 집에서 입고 먹는 걱정 없이 대접만 받던 저는 처음으로 무력함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에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한밤중이었는데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침 로비 등을 밝힌 작은 여관이 하나 있었습니다. 다행히 친절한 청년을 만나 작은 객실 하나를 배정받았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계속 북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표를 사서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무심코 본 TV 뉴스에서는 중국 고고학자들이 신장 사막 깊은 곳에서 고분 한 곳을 발굴했는데 미소 띤 어린 소녀 모습의 유골이 풍사 속에서 천 년 동안 미소 짓고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녀와의 인연은 알 수 없었지만 생명의 창상(滄桑)을 느꼈습니다. 인생은 이토록 짧고 덧없는 것인데 왜 마음이 가는 대로 하지 못하겠습니까? 저는 주저 없이 배낭을 메고 다시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설이 가까워지자 기차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가족과 단란하게 모이기 위해 고향으로 서둘러 돌아가고 있었고 마음속에 담긴 인생의 애환을 품은 채 각자의 인생 각본 속 역할을 충실히 연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수련인의 마음속에는 위대한 불법(佛法)이 담겨 있습니다. 막 이 생각이 들자 몸이 강력한 에너지장에 둘러싸인 느낌이 들었고 마음은 기쁨과 안정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부님께서 제 곁에 계시며 제가 결코 혼자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섣달그믐날 저녁 베이징에는 눈송이가 흩날렸습니다. 수정처럼 투명한 백설도 대법의 이 천고의 억울함을 씻어내는 것을 돕고 싶어 하는 듯했습니다. 베이징 곳곳에는 사복경찰이 깔렸고 장안가(長安街)는 초소로 가득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날 세상을 놀라게 한 ‘천안문 분신’ 조작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작은 여관을 찾아 묵었는데 주인은 대법제자들의 명단이 인쇄된 블랙리스트 책자를 들고 투숙객을 일일이 대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신분증이 없었기에 순찰경찰에게 발견돼 의심을 샀고 따로 심문을 받았습니다. 심문을 받던 중 그 경찰은 갑자기 급한 전화가 왔다며 먼저 가버렸고 여관 주인에게 저를 감시하라고 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저는 시험 삼아 밖으로 나갔는데 주인은 못 본 척했습니다. 낡은 주민 거주용 건물 복도에서 밤을 꼬박 새웠지만 무섭지도 춥지도 않았습니다. 날이 밝자 저는 천안문을 경유하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천안문은 이미 계엄 상태였습니다. 저는 수많은 대법제자가 생사를 내려놓고 몸으로 법을 수호했던 그곳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저는 성과 없이 끝난 이 험난했던 여정을 되새기며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반드시 더욱 정진해서 수련생들의 발걸음을 따라잡겠다고 말입니다. 갑자기 눈앞에 수천수만 장의 흑백 진상 전단지가 한 장 한 장 차례대로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이때 천하가 모두 내 집이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가족이라는 광활한 흉금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사부님께서 저를 격려하시며 낙담하지 말고 세간에서 중생을 구하는 것 역시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는 일임을 알려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2. 대법으로 마음을 씻으니 인간 세상에 꽃이 피다

몇 년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션윈(神韻) 프로그램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절에 자질이 부족하고 다소 우둔한 어린 스님이 있었는데 불법의 진리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신의 가지(加持) 아래 각고의 노력을 통해 신기한 무예를 닦게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떠올릴 때마다 저는 대법 안에서 성장해 온 제 자신의 경험이 생각납니다.

고등학교 졸업부터 대학 진학, 그리고 직장을 구하기까지 매 고비마다 저와 직접 관련이 없는 여러 속인 친척이 각기 다른 일로 우리집을 찾아왔고 제 일은 마치 실로 꿴 듯이 자연스럽게 연결됐습니다. 그들은 정보를 제공하거나 방향을 제시해줬고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순조롭게 풀렸습니다. 사부님의 배치는 이토록 정교하셨습니다. 저는 정상적으로 학업과 일을 하면서도 충분한 수련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법공부와 수련은 제가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는 가장 큰 보증이 됐습니다.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많은 동료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인간관계에 매달리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계약을 따내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저는 제 본분을 다하며 진심으로 고객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정성으로 대했습니다. 그러면 아주 쉽게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한 명의 고객이 선이 되고 그 선이 면이 되어 시장의 한 구역을 열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시간에는 언제나 고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팀장은 저를 부서의 복덩이라며 장수(將帥)의 재능이 있다고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대법의 위덕이며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주신 영광임을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각 부서 정예반을 조직했을 때 회의 기간 중 저는 막힘없이 제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본 업계와 많은 사회 인생 문제에 대해 독특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담론을 펼쳤습니다. 공산당 당문화(黨文化)와는 다른 신선한 견해들은 사회 경험이 많은 노련한 동료들로 하여금 저를 다시 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큰 안목과 사고력을 갖췄으며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들이 어찌 알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대법에서 기원했으며 대법이 저에게 부여한 지혜라는 것을 말입니다.

물론 집착심이 생겨 항로에서 벗어날 때도 있었습니다. 심성이 낮아지면 처한 환경도 덩달아 낮은 곳으로 떨어졌습니다. 속인처럼 인간관계의 냉혹함을 느끼고 인간 세상의 온갖 고충을 맛보며 마음은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오직 사부님께서 줄곧 묵묵히 보살펴 주시고 일깨움과 도움을 주셨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꿈속에서 제가 강철 벽을 가볍게 통과하는 것을 느꼈고 가부좌를 할 때는 제 자신이 웅장한 높은 산이 된 것 같았으며, 심지어 산의 세밀한 결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가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울타리를 벗어나 정념을 굳건히 하며 자신의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도록 끊임없이 격려해주셨습니다.

3. 중생구도를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사부님을 도와 감로를 뿌리다

1) 멀리서 찾아온 무료 묘목 전문가

저에게 먼 친척뻘 되는 외삼촌 한 분이 계시는데 고향 마을의 촌지부기입니다. 몇 년 전 주민들을 부유하게 하기 위해 각 가정에서 자금을 모아 수입 과일 묘목을 샀습니다. 그런데 재배 경험이 없다 보니 과일나무가 자라는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현지 농업기술자들은 이런 묘목에 경험이 없어 외지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방면으로 알아본 끝에 랴오닝성 쪽에서 이 과일나무 재배 경험이 풍부한 농업기술자 부부의 전화번호를 얻었습니다. 전화 한 통을 걸었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부부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과수 농가들에 재배 경험을 전수하며 각종 의문에 인내심 있게 답해 주었습니다. 일이 끝난 후 마을에서 큰 보답을 하려 했지만 부부는 손을 저으며 온화하게 말했습니다. 자신들은 파룬궁수련생이며 그저 할 수 있는 능력으로 고향 분들의 작은 문제를 해결해 드린 것뿐이니 보답은 필요 없다고 말입니다. 수년간 대법을 모함하는 중공 악당의 거짓말이 중국 곳곳에 퍼졌지만 선량한 민중은 대법제자들을 통해 진상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파룬따파는 정말 좋구나. 도대체 어떤 대법이기에 이런 좋은 사람들을 가르쳐 낼 수 있었을까!’라며 묵묵히 서로 전했습니다.

과일나무는 갈수록 잘 자랐고 매년 풍년이 들었습니다. 인근 지역 마을 주민들은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2) 중학교 시절 반장은 대학 졸업 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계법인에 취직해 자주 해외를 다녔습니다. 최근 일이 있어 고향에 돌아왔고 동창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술잔을 나누며 즐겁게 학창 시절 우정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저는 몇 번이나 화제를 돌려 진상을 알리려 했지만 기회가 없었습니다. 창밖에는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해 빗줄기가 굵어졌고 그녀의 남편이 차를 몰고 마중을 왔습니다. 반장은 아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로비로 향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만나기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반장, 잠깐만 기다려줘.”

내성적인 성격인 제가 한달음에 달려가 로비까지 쫓아갔습니다.

“무슨 일이니, 동창아?”

반장은 중학교 때처럼 여전히 온화하고 신중한 모습이었습니다.

“네가 해외에서 자주 근무한다고 들었어. 그리고 어머니 건강도 좀 안 좋으시다고 들었는데 중화 우수 전통문화를 표현한 아주 멋진 쇼를 추천하고 싶어. 에너지장이 엄청나다고 하니 꼭 어머니 모시고 함께 보러 가봐.”

“쇼라고? 이름이 뭔데?”

“션윈이야. 신선 신(神) 자에 운치 운(韻) 자를 써.”

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반장은 눈물을 흘리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고 꼭 보러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뒤따라온 동창들은 제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사람을 울릴 정도로 감동을 줬는지 의아해했습니다.

그것은 션윈이었습니다. 대법 사부님께서 직접 이끄시며 순선순미(純善純美)한 가무 형식으로 창생을 구원하는 션윈은 말겁(末劫)의 마지막 시기에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희망입니다. 예전에 대법이 중국에서 배포한 첫 번째 션윈 CD를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줄곧 ‘션윈은 내 집이고 나는 션윈의 일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어려움에 처하거나 겁이 나고 자격지심이 생길 때면 마음속에 늘 상황에 딱 맞는 션윈 음악 선율이 맴돌며 두려움 없이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저를 격려해주곤 했습니다.

3) “이렇게 좋으신 선생님과는 꼭 자주 연락해야 해”

동료 샤오팡(小芳)은 유행에 민감하고 꾸미기 좋아하는 현대적인 아가씨입니다. 퇴근 후에는 개인 상점을 운영하거나 위챗 비즈니스, 라이브 방송까지 하며 아주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함께 나들이를 갔을 때 저는 그녀에게 대법 진상과 제가 혜택을 입어 구원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놀라워했습니다. 수년 동안 아무도 그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너무나 안타까운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며 아주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선생님과는 꼭 자주 연락해야 해!”

저는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건 당연하지.”

이 귀엽고 선량한 아가씨는 이제 임시직에서 정규직 기술직으로 전환됐고 가정도 원만하고 행복합니다. 정말 대법을 선하게 대하는 일념이 하늘의 축복과 평안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습니다. 위대한 정법(正法) 시기에 태어나 운 좋게 대법에 제도돼 사부님의 제자가 된 지 어느덧 28년의 수련의 길, 28년의 생명 승화의 길이 흘렀습니다. 천진난만한 소년 시절을 지나 혈기 왕성한 청년을 거쳐 이제 여유롭고 이성적인 중년에 접어들었습니다. 사부님의 보살핌과 도움, 그리고 거듭된 기다림이 있었던 여정이었습니다. 제자는 보답할 길 없으니 오직 끝까지 진수(眞修)해 사부님께서 미소 지으시길 바랄 뿐입니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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