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반(反)박해가 27년째로 접어들면서 중국 개별 지역에서 또다시 가짜 경문 소문이 돌고 있다. 가짜 경문을 만드는 사람과 그 수법이 매번 매우 졸렬함에도 불구하고, 매번 소수의 사람이 그에 동요되곤 한다. 이러한 상황을 보며 수련의 기본기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전통문화 속의 ‘사람 됨됨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에 대해 이번 기회에 조금 복습해 보는 것이 누락을 메우는 한 가지 방편이 되리라 생각한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중화 5천 년 문화에서는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라고 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선을 쌓는 것인가? 명나라 원료범(袁了凡)은 아들에게 주는 가훈에서 열 가지 선행 이야기를 썼다. 그러고 나서 말하기를, 만약 세밀히 따져본다면 “선행에는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으며, 곧은 것이 있고 굽은 것이 있으며, 음(陰)적인 것이 있고 양(陽)적인 것이 있으며, 옳은 것이 있고 그른 것이 있으며, 치우친 것이 있고 바른 것이 있으며, 절반인 것이 있고 원만한 것이 있으며, 큰 것이 있고 작은 것이 있으며, 어려운 것이 있고 쉬운 것이 있다. 이것들은 각각 도리가 있으니 마땅히 자세히 변별해야 한다. 만약 선한 일을 하면서도 그 속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선을 행한다고 자부하겠지만, 그것이 사실은 죄업을 짓는 것임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했다.
원료범은 ‘적선지방(積善之方)’이라는 가훈에서 현대에도 많은 실례를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을 기술했다. 몇몇 선비들은 자신들이 어찌 선악을 명확히 모르겠으며 더구나 선악을 뒤바꾸겠느냐고 여겼으나, 그들과 대화하던 다른 한쪽(한 승려)은 명확히 지적했다. 세상 사람(선비를 포함해)들은 세속적인 관점에 가려져 있기에 당연하다는 듯이 선악을 판단하며, 도리어 하늘의 선악 응보가 틀렸다고 원망한다고 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에 대해 이 가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출발점과 목적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이 선이고, (출발점과 목적이) 자신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이 악이다. 한 사람이 행한 선한 일이 타인에게 이익을 주는 것은 공(公)이며, 공은 곧 진짜(眞)다. 오직 자신이 얻을 이익만 생각하는 것은 사(私)이며, 사는 곧 가짜(假)다. 양심에서 우러나온 선행은 진짜지만, 그저 관례대로 하는 시늉만 내는 것은 가짜다. 보답을 구하지 않고 행하는 선행은 진짜지만, 그렇지 않으면 가짜다.”
단곡(端曲, 바름과 굽음)에 관해 글에서는, 옛 성현들은 차라리 뜻이 높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혹은 자기 분수를 지키며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을 높이 샀다고 했다. 이런 사람이라야 책임감이 있고 하는 일이 있어 가르쳐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이 높이 사는 것은 유들유들한 사람, 혹은 겉으로 보기에 성실하지만 실제로는 원칙을 상실한 ‘호인(공자가 말한 향원[鄕愿])’이다.
그러므로 공덕을 쌓으려면 “반드시 마음이 움직이는 미세한 곳에서부터 자신의 마음을 묵묵히 깨끗이 씻어내야 하며, 악(순수하지 못하고 바르지 못한 것)한 일념이 자신의 마음을 오염시키게 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세상을 구제하려는 마음뿐이면 곧은 것(直)이고, 만약 세속에 아부하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굽은 것(曲)이다. 오로지 사람을 사랑하는(자비로 남을 위하는) 마음뿐이면 곧은 것이고, 만약 세상 사람에 대해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이 털끝만큼이라도 있다면 굽은 것이다. 오로지 타인을 공경하는 마음뿐이면 곧은 것이고, 만약 사람을 희롱하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굽은 것이다. 이것들을 모두 세밀히 분별해야 한다.”
“무엇을 음양(陰陽)이라 하는가? 무릇 한 사람이 선한 일을 하여 남들이 아는 것을 양선(陽善)이라 하고, 선한 일을 하되 남들이 모르는 것을 음덕(陰德)이라 한다. 음덕이 있는 사람은 하늘이 자연히 알고 보답해 줄 것이다. 양선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를 알고 칭찬하므로 세상의 명성을 누리게 된다. 좋은 명성을 누리는 것도 복이긴 하지만, 명성이라는 것은 천지가 꺼리는바, 천지는 명성을 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문제를 찾으려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에는 수신(修身)함에 있어 모두 성현을 표준으로 삼았는데, 하물며 수련인은 더욱 법(法)을 스승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가짜 경문, 색다른 것을 내세워 과시함(標新立異), 요란함, 파벌 짓기, 끊임없는 쟁투, 자기 고견 고집, 밖으로 밀어내기, 습관적으로 속인 차원에서 자신이 수련 중 만난 사람과 일을 대하는 것, 이런 행위들은 외부의 교란을 제외하고라도, 속인 차원이나 수련 차원에서 모두 선악을 모르고 선을 닦아야 함을 알지 못하는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가?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셨다. “연공인은 확실하고 확실하게 말한다. “속인은 속인이 추구하는 것이 있지만, 우리는 추구하지 않고, 속인에게 있는 것을 우리는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우리에게 있는 것은 속인이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또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心性(씬씽)이란 무엇인가? 心性(씬씽)은 德(더)[德(더)는 일종 물질이다]를 포괄하고, 참음(忍)을 포괄하며, 깨달음(悟)을 포괄하고, 버림(捨)을 포괄하는데, 속인 중의 각종 욕망과 각종 집착심을 버리는 것이며, 또한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하는 등등 여러 방면의 것을 포괄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장기간 정진하지 않는 수련생의 비율이 비교적 높고, 정법수련의 시간을 대부분 속인의 속세 일에 낭비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사상 관념이 사람 중에 머물러 있으며, 다른 사람이 과거에 성숙하지 못했을 때 범했던 잘못을 똑같이 범하고 있다. 이런 지역에서 박해의 압력이 좀 더 크고 혼란스러운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관념을 내려놓는 사람이 많아지고 수련해 올라가는 사람이 많아져야만, 외부의 사악을 제거할 수 있고 심지어 악이 스스로 멸망하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 문제에 부딪히면 끊임없이 논쟁하고, 자아를 강조하며, 남을 부정하고, 문제가 있으면 남에게 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만약 장기간 사람의 상태를 바꾸지 않는다면 매우 쉽게 박해를 초래할 수 있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고 속인 중의 선악을 진정으로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세속에서 좋은 사람이 되는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노력하여 자신에게 법의 요구에 도달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이야말로 수련인이다. 물론 수련은 각자의 개인적 선택이며 수심(修心)은 강요할 수 없으므로, 여기서는 그저 얕은 토론이자 선의의 일깨움이며 참고용일 뿐이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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