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산둥성 통신원) 산둥성 자오저우시(膠州) 파룬궁수련자 류자오훙(劉兆宏)은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2025년 5월 19일 납치돼, 5월 20일 자오시(膠西) 구치소에 감금됐다. 5개월 후인 2025년 10월, 류자오훙은 불법적인 재판에서 4년형을 선고받았다. 현재 그는 지난(濟南) 남자 감옥에 불법 감금돼 있다.
류자오훙은 1958년 7월 16일생으로, 산둥성 칭다오시(靑島) 자오저우 수리국 기숙사 3호에 거주한다. 그는 산둥성 칭다오시 자오저우 수리국 직원(운전사)으로, 1996년 7월경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B형 간염, 류마티스성 관절염, 심장병, 편두통, 직장 출혈 등 여러 질병을 앓고 있었다. 파룬궁수련 전에는 늘 여러 약을 복용했는데, 먹을 때만 잠시 가벼워졌으며, 약을 먹지 않으면 몹시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다가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후, 모든 병이 사라져, 더는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지 않아도 됐다. 회사에 많은 의료비를 절감해주었다.
건강해진 류자오훙은 마음도 편안해져 자연 맡은 업무를 충실히 해, 매년 우수 운전기사로 평가받았다.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류자오훙은 정신병원, 세뇌반 등에 감금돼 박해를 당했다. 그는 2003년 납치돼 모함을 당하고, 불법적인 재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뒤 웨이베이(濰北) 감옥에서 박해당했다. 아래는 류자오훙이 이전에 박해당한 주요 사실이다.
2개월 이상 불법 감금돼
1999년 11월 19일 밤, 류자오훙은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러 기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갔다. 1999년 11월 20일 아침 7시경, 천안문 광장에서 납치됐다. 1999년 11월 21일 새벽 4시경, 류자오훙은 자오저우시 푸안(阜安) 파출소 경찰에 의해 경찰차로 자오저우로 끌려와 15일간 불법 행정 구류 처분을 받았다.
구류 기간이 끝난 후, 자오저우시 수리국 수자원판공실 부주임(대리 주임) 딩수펀(丁淑芬)은 그를 구류소에서 데리고 나와 곧장 자오저우시 청원국 수용소로 보냈고, 류자오훙은 그곳에서 2개월여간 더 감금당했다. 당시 수용소장은 가오량이(高粱怡)였다.
정신병원에서 박해당하다
2000년 5월 13일, 류자오훙은 베이징 천안문 광장을 찾아가 경찰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는 사람에게 마음을 닦아 선을 행하고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친다’는 그의 심정을 계속 알렸다. 2000년 5월 17일 저녁 6시경, 류자오훙은 수리국 수자원과에서 보낸 차에 실려 베이징에서 끌려왔고, 곧장 자오저우시 정신병원(나중에 심리재활센터로 변경)으로 보내졌다. 수리국 수자원 대리 주임 딩수펀이 서명했다. 류자오훙은 그곳에 3개월 넘게 불법 감금당했다.
그곳에서 류자오훙은 강제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야 했다. 그가 약을 먹지 않으면 강제로 먹였고, 전기 침도 찔렀다. 그의 신체는 심각한 파괴를 당했고 정신적 고문을 당했다.
세뇌반에서 박해당하다
2000년 8월 18일경, 자오저우시 정법위원회 부서기 쉬파톈(徐法田)은 정신병원에서 류자오훙과 다른 파룬궁수련자 3명을 자오저우시 장자툰(張家屯) 세뇌반으로 데려가 박해했다.
2000년 10월 1일경, 류자오훙은 소속 수리국 기율검사 서기 위안차이즈(袁彩芝)에게 속아 집에서 자오저우시 장자툰 세뇌반으로 끌려가, 1개월 넘게 ‘전향’ 박해를 당한 뒤 다시 수리국으로 끌려갔다. 류자오훙은 총 4개월가량 감금당했다.
5년간 억울한 옥살이
2003년 5월 12일 저녁 8시경, 류자오훙은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는 제보에 따라 자오시(膠西) 파출소로 납치됐다. 그곳에서 류자오훙은 폭행과 고문, 심문을 당했다.
경찰은 불법 가택수색을 해 그의 컴퓨터를 빼앗고 류자오훙의 소형 밴을 오랜 기간 압류했다. 차를 류자오훙의 가족에게 돌려주었을 때는 이미 운행할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된 상태였다.
류자오훙은 자오저우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당국은 소식이 알려지지 않도록 류자오훙을 독방에 가둬 외부와 격리했다.
류자오훙은 구치소에서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 경찰은 그의 손과 발에 수갑과 족쇄를 채웠다. 경찰은 그를 불법 심문할 때마다 고문 도구로 잔혹하게 폭행하며 파룬따파 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류자오훙은 자오저우시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장: 자오위타오(趙玉濤), 재판관: 천민(陳敏), 대리 재판관: 자오롄칭(趙連靑).
형사 구류증, 기소장, 판결서 어디에도 류자오훙 본인의 서명은 없었으며, 모두 위조된 것이었다. 류자오훙은 웨이베이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당했다.
웨이베이 감옥에서 류자오훙은 “나는 죄가 없다”고 항변하며 줄곧 저항했고, 어떠한 노동도 거부했다. 그로 인해 여러 차례 전기 고문과 독방 감금을 당했으며, 신체와 정신에 극심한 상처를 입었다.
2008년 5월 13일, 류자오훙은 감옥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감옥장 천젠(陳健), 정치위원 리광우(李光武), 감옥 행정과장 왕진우(王金武), 대대 지도원 류리쉐(劉立學), 관리 교육계장 장중민(蔣忠敏), 중대장 마광리(馬廣禮)였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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