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산둥 웨이하이(威海) 지역에는 수년 동안 줄곧 한 무리 사람들이 수련생을 돕고 제고시키겠다는 기치 아래 여기저기서 수련생 법공부를 조직했으며, 그 목적은 다른 공간 생명과 소통해 진상을 알리고 선해(善解)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주 강사’가 있고 ‘보조 강사’가 있으며 비이성적으로 헛소리해 정체(整體)에 대한 교란이 매우 크다. 구체적 표현은 다음과 같다.
법공부는 보통 ‘도항(導航)’부터 시작한다.
그들의 관점은 지금은 정법시기라 대법제자는 사부님을 도와 다른 공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그들이 깨달은 이른바 ‘높은 인식’을 명혜망에 투고해 전 세계의 대법제자가 혜택을 얻도록 하자고 제안하면, 이 사람들은 명혜망에는 다른 공간의 생명과 소통해 진상을 알리고 선해하는 방면의 문장은 발표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명혜망의 교류문장은 모두 집착심을 버리는 개인 수련에 치중한 것이며 명혜망은 미래의 사람들이 보도록 남겨둔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의 속뜻은 자신이 깨달은 경지가 높아 명혜망의 가이드라인을 초월했다는 것이다.
아래에서 우리는 사존께서 명혜망 방면에 관해 깨우쳐주신 법을 학습해 본다.
“법 공부를 많이 하고, 명혜망에 수련생들이 올린 문장들을 좀 보라. 정말로 매우 좋고 정말로 매우 성숙하였으며 일부 문장은 정말 잘 썼는데, 당신들은 도대체 어디에 차이가 있는지 대조해 보아야 한다.”(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제자: 명혜망이 난법을 제지하는 문장을 연속 발표했지만, 어떤 대륙 수련생은 여전히 청성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부: 그렇다. 사악에 통제되어 명혜망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여러분은 내가 왜 명혜망에 소식을 발표하는지 아는가? 바로 여러분에게 그것이 믿을만하다고 알려주는 것이며, 대법제자가 교류하는 플랫폼이다. 각도를 바꿔 말하면, 사부도 보고 있기에, 너무 큰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각지 설법12-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
“그럼 대법제자로서는, 속인이 어떻게 인식하든지 당신들은 반드시 명혜망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명혜망을 올바로 인식하지 않으면, 그는 문제가 있는데, 꼭 그렇다. 그는 직접 대법제자 주체의 수련 정황을 반영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대법제자가 서로 교류하는 중에서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작용을 일으켰다. 이는 다른 매체가 해낼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이런 각도에서 보도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명혜망의 특수성이다.”(각지 설법10-명혜망10주년법회 설법)
법을 통해 우리는 사부님께서 명혜망에 대해 긍정적으로 확신하시고 시종일관 지켜보시며, 중대 문제에서 명혜망이 인도 작용을 한다고 명시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명혜망 수련생들이 매우 강한 변별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설명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 길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 다른 방식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깨닫고 행동했을까? 예를 들어 컴퓨터나 프린터가 고장 났을 때 그들은 이 두 단락 법을 인용한다.
“사람에게 배후 요소가 없다면 당신이 그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면 그는 무엇을 한다. 당신은 수련인이며 당신은 능력이 있다. 당신은 신의 길을 걷고 있는 생명이며 그는 속인이고, 그는 힘이 없다. 그러므로 눈을 늘 사람의 표면에 두지 말라. 그런 배후의 요소를 해결해야만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형세를 변하게 할 수 있으며, 비로소 사람에게 변화가 생기게 할 수 있다.”(각지 설법11-20년 설법)
“우리 대법제자가 감당한 고통, 감당한 마난(魔難)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단지 개인수련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이는 고층생명이, 수련생에게 업력이 있음과 제고해야 한다는 이유로, 저층(低層)의 부패된 생명을 이용하여 박해를 진행한 것으로서, 대법을 검증하는 요소가 있는데 실은 정법을 놓고 말한다면 모두 파괴이다.”[도항(導航)=미국 서부법회 설법]
대법제자는 발정념으로 자신을 청리하고 다른 공간의 교란을 청리한다. 그러나 그들은 원래 설비가 고장 나는 것은 배후 요소가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며 먼저 이 요소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그들은 ‘참여하는 생명’에게 만약 구원받으러 왔다면 어서 빨리 대법에 동화할 것이며 신우주는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우니 중생을 구하는 일을 교란하지 말라고 한다. 만약 나의 수련을 돕거나 나를 검증하러 왔다면 그것은 허용되지 않으며, 나에게는 사부님의 안배가 있으니 강제적으로 가해지는 것은 다 필요 없다고 말하고, 만약 대법에 동화하지 않는다면 뿌리 뽑아버리겠다고 한다.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비가 즉시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평소 집안의 생활용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이렇게 진상을 알려주고 소통하며 선해한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쓰는 물건은 거의 고장 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들은 당사자가 다른 공간의 생명에게 진상을 알려주는 습관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생명들이 이런 형식으로 진상 듣고 구원받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거주하는 단지의 이웃에 대응하는 다른 공간 생명에게도 진상을 알려주어야 하며, 밖에 나가서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려줄 때도 세인에 대응하는 다른 공간의 생명과 채권자 등에게도 진상을 알려주고 선해해야 한다고 한다. 속세의 아픈 친척이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실 때 ‘금종자(金種子), 연꽃(蓮花), 희망(希望)’ 등을 넣어주고, 또한 친척 배후의 요소와 소통하며 선해해야 한다. 요컨대 ‘다른 공간의 생명과 소통하면서 진상을 알려주고 선해하는’ 것이 크고 작은 그들 정법 수련의 일에 시시각각, 방방곡곡 관통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올바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법의 내포를 몰래 바꾸는 이런 행위는 법공부를 통해 법을 얻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공산사령(共産邪靈)의 교란을 받으며 법을 공경하지 않고 주제넘게 ‘스스로 대단하다(妄自尊大)’고 여기는 체현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
우리가 두 가지 방면에서 법으로 이 사악한 깨달음의 이론 체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타파하도록 하자.
1. 문제와 갈등에 부딪혔을 때 수련인은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가?
사부님께서 법 중에서 끊임없이 안으로 찾으라고 강조하셨다.
“모순에 부딪히면 내가 맞든 틀리든 자신을 돌아본다. 이 일에서 내가 어떤 잘못한 점이 없는가? 정말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모두 이처럼 생각하는데 첫 일념이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를 생각한다. 누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정한 대법 수련자가 아니다. 이는 수련의 법보(法寶)이며, 이는 우리 대법제자 수련의 특징이다. 어떠한 문제에 부딪혔더라도 첫 생각에 우선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바, 이것을 “안으로 찾는다.”고 한다.”(각지 설법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모두 자신한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그러므로 사람마다 어떤 번거로운 일에 봉착했을 때면, 모두 우선 내가 무얼 잘못한 것이 아닌가? 하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항상 이런 이치를 말하는데, 바로 우주 중의 일체는 모두 평온한 것이다. 당신 자신이 잘못을 저질러 틀어짐이 생기고, 다른 사람과 틀어지고, 주위의 일체가 모두 잘 되어 가지 않는 것 같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긴장이 생겼다. 이때 스스로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고, 당신이 자신의 잘못된 곳을 바로잡아주면 일체가 평온해지고 또 꼬인 것이 풀어짐을 발견할 것이다.”(스위스법회 설법)
법을 통해 우리는 수련인이 부딪히는 어떤 문제와 번거로운 일이든지 자신의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안으로 찾아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 이 한 점은 개인 수련에서든 정법 수련의 단계에서든 응당 해야 하고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린터나 컴퓨터가 고장 났을 때 첫 번째 해야 하는 생각은 다른 공간 생명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선해하거나 뿌리 뽑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안으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사례의 상황은 눈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진실이라고 할 수 없으며, 더구나 더 많은 경우 다른 공간 상황은 수련하는 사람에게 알려진 바가 매우 적은데, 당신이 의념으로 소통하는 대상이 도대체 무엇인가? 당신은 자신이 법 위에 있지 않아 다른 공간의 사악이 이런 형식으로 당신을 인도하고 당신의 이 사악한 깨달음의 이론 체계를 강화하며 당신을 조종해 곳곳에서 수련생들을 교란하도록 하는 가능성을 또 어떻게 배제할 수 있겠는가?
2. 빈번하게 다른 공간의 생명과 소통하며 진상을 알려주고 선해하는 것이 세간에서 수련 중인 대법제자가 응당 해야 할 일인가?
“그럼 이 한 차례 중생에 대한 박해 속에서 우리들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바로 알려야 하는 동시에 자신을 잘 수련하고, 정념(正念) 속에서 사악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북미순회 설법)
“대법제자로서 현재의 상황에서 반드시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똑바로 알려야 하고, 사악을 폭로해야 하며, 이로써 대법(大法)을 수호해야 한다. 개인의 제고와 원만은 바로 이 과정 중에 있다.”(정진요지2-건의)
“대법제자는 현재 세 가지 일을 해야 한다. 하나는 진상을 알리는 일이고, 하나는 바로 발정념이다. ― 발정념은 자신의 신체와 신체의 외부 형세에 대해 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포함한다. 또 하나는 바로 자신의 수련과 법 공부를 잘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일은 모두 지극히 중요하다. 진상을 알리는 목적을 여러분은 이미 똑똑히 알고 있다. 바로 이번의 사악한 박해를 폭로하여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알도록 하고, 우주 중생들로 하여금 알도록 하는 것이다. 당신들이 여기에서 말하면 당신들의 층층의 수련된 신체 역시 층층의 부동한 천체에서 말한다.”(각지 설법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법 중에서 알 수 있듯이 대법제자가 정법수련 중에서 겨냥해 진상을 알려주고 구하는 집단은 주로 세인이다. 층층의 중생은 모두 사존 설법을 듣고 있으며 대법제자가 잘 수련한 신체도 층층의 천체 생명에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 당신 사람 이 층면의 의념으로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다른 공간의 생명과 소통하며 진상을 알려줄 필요가 있겠는가? 어쩌면 그들이 알고 있는 진상이 대법제자가 미혹된 사회 중에서 사람의 이 일면으로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분명할지도 모른다.
선해로 말하자면 그것은 더욱이 수련 중인 사람이 아무렇게나 단지 두세 마디 말로 감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사부님께서 제자를 도와 우리가 생생세세 맺은 원한을 선해하실 수 있으시다. 자신이 수련해 이룰 수 없다면 무엇이든 논할 수 없는데, 하물며 세인과 다른 공간 생명을 도와 무엇인가를 선해할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
사오(邪悟)했거나 자심생마(自心生魔)한 자는 새로운 것을 내세우고 독특하게 내보이며 스스로 비범하다고 자처한다. 주의식(主意識)이 강하지 않고 쉽게 팽창하는 특징이 있는데, 이것은 공교롭게도 일종의 인식이 낮고 오성(悟性)이 나쁜 전형적인 표현이며 매우 유치하고 가소로운 것이다. 개인 생명은 광활한 우주 중에서 한낱 창해일속(滄海一粟)이며 미세먼지처럼 미미한데, 이성적 사람은 영원히 감사하고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수련을 대하며 거만하게 굴거나 하늘의 공로를 탐하지 않는다.
사오했거나 난법한 자에게 시장을 만들어 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오자의 몸에는 온통 구세력의 기제와 판(盤)이 가득하며 매우 사악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오자는 매우 위선적으로 표현하며 ‘어조가 간곡’해 마치 진정으로 수련생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단지 자신의 이 일련의 삿된 이론을 위한 시장을 찾으려는 것이지 법 중에서 수련해 나온 ‘타인을 위하는’ 모습의 발현이 아니다.
공산사령이 사람 속이는 변화는 다양하지만 궁극적 목적은 사람을 파괴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오자의 수법은 끊임없이 바뀌지만, 결과는 천변만화의 근본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즉, 수련자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들의 입으로 인용하는 것도 사부님의 법이고, 표면적으로 하는 말은 일련의 그럴듯한 이야기로서 들어보면 일리가 있는 것 같아, 법리가 분명하지 않고 착실한 수련의 기초가 부족하고 다른 공간에 집착하는 수련생은 쉽게 미혹되고 이끌리며 심지어 추종하게 된다. 하지만 그 말 속 숨겨진 내포는 생각지도 못한 채 모두 사악한 요소여서, 그것을 들으면 좋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것과 같아 단 한마디라도 귀담아서 들으면 자신의 수련에 매우 나쁜 영향을 끼친다.
동시에 그들과 법에서 과도하게 교류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교류해도 그들에게는 항상 단장취의(斷章取義)하고 스스로 논리가 통하는 일련의 이론이 있음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들과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왕래도 하지 말아야 한다. 단체 법공부는 ‘전법륜(轉法輪)’ 위주로 법을 많이 배우고 교류를 적게 해야 하며, 이렇게 해야 문제 있는 사람이 들어오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아래에 사부님 한 단락 법을 이 교류에 참여한 사오자에게 보낸다. 참여한 사람들이 즉시 깨닫고 진정으로 법에서 법을 인식하며, 착실하게 자신을 잘 수련하고, 전력을 다해 사람을 구하고, 동시에 난법이 초래한 나쁜 영향을 반드시 만회하기를 희망한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생명에 진정으로 책임지는 것이다.
“누구도 대법 환경 속에서 파동을 일으킬 수 없는바, 이는 난법(亂法)이다! 누가 했는가? 그럼 그 사람이 만회하라! 시간이 많지 않다!”(관건 시각에 사람의 마음을 본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이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11/50239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1/11/502397.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