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글/ 중국 허베이성 대법제자 (본인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자비로우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996년 5월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여성 대법제자로 올해 73세입니다. 29년간의 수련 과정에서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제자를 보살펴주시고 가지(加持)해주셔서, 제자는 험난한 고비들을 하나하나 넘어오며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하는 신성한 사명을 이행하고 있습니다. 아래에 저의 수련 체험 일부를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하며, 저의 체험을 통해 박해를 두려워하는 수련생들에게 조금이나마 귀감과 격려가 돼, 하루빨리 두려워하는 마음을 제거하고 함께 대법제자의 신성한 사명을 완수하며, 사부님을 안심시켜 드리는 대법제자가 되기를 더욱 희망합니다.
1. 사부님께서 목숨을 여러 번 구해주시다
여러 해 전 어느 날, 저는 큰 상가 근처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한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제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저는 바로 귀인을 찾고 싶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숙명통(宿命通) 공능이 열려 있었는데, 인류에게 큰 재난이 닥칠 것을 알고는 몹시 두려워하며 그를 구해줄 귀인을 찾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그럼 오늘 제가 바로 당신의 귀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큰 재난이 닥쳤을 때 오직 대법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고 알려주자 그는 아주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그 길을 지나갈 때 몸에서 금빛으로 반짝이는 불광(佛光)이 났어요. 사실 아주머니의 사부님께서 아주머니의 목숨을 여러 번 구해주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제가 늘 죽었다 살았다, 죽었다가 다시 살곤 했는데, 그것도 우리 사부님께서 구해주신 건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렇습니다. 바로 아주머니의 사부님께서 구해주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태어난 후 매일 병을 앓았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배가 부푸는 병에 걸렸다고 하셨습니다. 얼굴은 누렇게 떴고 바짝 말라서, 저를 들쳐 업고 병원에 가는 게 일이었고,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습니다. 병원비 때문에 부모님은 먹고 입는 것도 제대로 못 하셨고, 설을 쇠기 위한 돈조차 없었습니다. 가장 심각했던 적이 두 번 있었는데, 한번은 저를 이미 땅바닥에 내려놓고 시신을 쌀 짚자리까지 준비해 둔 채 숨이 끊어지기만 기다렸다가 버리려 했습니다. 그때 죽은 아이를 버리면 1위안을 벌 수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 1위안을 벌려고 저희 어머니에게 제가 언제 죽는지 계속 물었다고 합니다. 그때 무당도 찾아갔는데 저를 보더니 움직일 수 있게 됐고 다시 좋아졌습니다. 두 번째는 또다시 죽기 직전에 부모님이 저를 안고 현(縣)에 있는 유명한 의사에게 데려갔습니다. 의사는 저를 보더니 놀라서 말했습니다. “어이쿠, 애가 이 지경이 되도록 왜 이제야 왔습니까? 이 아이는 가망이 없겠네요. 이렇게 합시다. 죽은 말이라도 살려봐야 하니 배에 주사 한 대 놓고 약 가루를 좀 싸줄 테니 돌아가서 먹여보세요. 귀에 핏줄이 서는 게 보이면 한 번 오고, 그런 증상이 없으면 오지 마세요.” 약 가루를 먹은 후 정말 귀에 핏줄이 서는 것이 보여서 다시 한번 다녀왔더니 제가 나았습니다.
셋째 이모는 저에게 늘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릴 때 엄마를 참 많이 고생시켰어. 1년 내내 병을 앓아서 집안이 다 거덜 나고, 옷도 못 입고 보자기 조각을 걸치고 다녔지. 설에도 고기 한번 못 먹었단다. 너는 커서 꼭 엄마에게 효도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미안한 일이야!” 저는 가끔 ‘우리 가족은 다 건강한데 왜 나만 이럴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먹는 것까지 저를 챙겨주셨습니다. 저는 이것도 안 먹고, 저것도 안 먹었습니다. 1962년 어려웠던 시절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구마 줄기 같은 것을 먹었지만 어머니는 제 몸이 약하다고 어떻게든 좁쌀을 구해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제가 20세쯤 공장에 출근하기 시작했을 때 또 혈붕(血崩)이라는 병에 걸려 생리 때마다 하혈을 심하게 했습니다. 한번은 헤모글로빈 수치가 2.5g까지 떨어졌습니다. 정상 수치는 11~15g이고, 10g 미만이면 빈혈인데, 저는 또 하마터면 죽을 뻔했습니다. 1,400ml의 피를 수혈받았는데 열 명이 넘는 사람의 피를 받았습니다. 하혈이 심해서 저는 현에 있는 병원들을 돌아가며 입원했습니다. 제가 회복된 후 의사가 말했습니다. “그때는 차마 볼 수가 없었어요. 당신을 봤을 때 무서워서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당신이 살아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몸이 줄곧 좋지 않았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자라서 몸도 마르고 왜소했습니다. 수련 후에야 비로소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일찍부터 제자를 보살피시고 제 목숨을 구해주셔서 오늘의 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2. 다행히 대법을 얻다
저는 몸이 좋지 않아 기공도 적잖이 배웠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동료가 저에게 ‘대법은 좋고, 대법을 배우면 신이 될 수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저는 심지어 농담으로 “와, 내가 신으로 수련 성취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니”라고 말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저도 연공하러 갔고, 시험 삼아 해보자는 마음으로 대법 서적을 보면서 사부님 설법 녹화 영상을 봤습니다. 저는 사부님 설법을 듣는 것이 특히 좋았고 이 대법이 어쩌면 이렇게 좋은지 감탄했습니다! 그때는 그저 기쁘기만 했고 갓 법을 얻었을 때의 그 즐거운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근처 대학 캠퍼스에 있는 연공 장소에 가서 연공했는데, 남학생 두 명이 공법을 가르쳐줬습니다. 캠퍼스에는 꽃이 피어 있고 환경이 매우 좋아서 제 기분도 무척 좋았습니다. 나중에 법을 배우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서 우리 공장 구역에도 연공 장소가 생겼습니다. 수련생들은 아침에 함께 연공하고, 만나면 자신이 혜택을 본 신기한 일들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저는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하자마자 이전에 배우던 기공과는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듣는 것도 좋고 배우는 것도 좋았는데, 사부님께서도 제 병업을 밖으로 밀어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전에 아무리 아파도 열이 나지 않았습니다. 직장 병원에는 열이 나지 않으면 병가를 내주지 않는 규정이 있어서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열이 나지 않아 병가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연공을 시작하자마자 열이 났습니다. 난생처음 열나는 기분을 알게 됐는데 뼈마디까지 쑤셨습니다. 당시 저는 법공부를 중요시했고 오성(悟性)도 괜찮은 편이어서 ‘이것은 사부님께서 내보내주시는 병업이니 좋은 일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정말 금방 나았습니다. 그때 메스껍기도 해서 메슥거리면 바로 토했지만 밥 먹는 데는 지장이 없었고, 괜찮아지면 금방 좋아졌습니다. 반년 후, 제 몸은 병 없이 가벼운 상태가 됐습니다.
저는 기뻐하며 여기저기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렸습니다. 우리 공장 구역에 한 동료가 있었는데, 연공 후에 열이 나자 그는 연공 전에는 열이 안 났는데 왜 연공을 하니 열이 나느냐며, 배우지 않겠다고 해서 대법과 인연이 스쳐 지나가 버렸습니다. 참 안타까웠습니다. 지금 그를 만나면 저는 “오빠, 저 보세요. 제가 연공하고 몸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라고 말합니다. 어떤 동료는 농담으로 “당신 좀 봐, 공장에서 돈 쓸 때는 병이 나더니, 지금은 자기가 돈 쓰니까 병이 없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오빠, 맞아요. 공장에서 돈 쓸 땐 제가 병이 났죠. 지금은 왜 나았을까요? 저는 대법을 배워서 나았어요.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저는 일찍 죽었을 거예요. 오빠도 배우세요. 대법을 배우면 오빠도 좋아질 거예요.”
3.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하다
1999년 7·20 사악한 박해가 시작된 후, 대법제자들이 계속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했습니다. 생사를 내려놓은 수련생들의 감동적이고 눈물겨운 거사는 사악을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저는 수련생들이 기쁘고 감동적이었으며, ‘사부님의 제자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대법제자들은 모두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하고, 사부님께서 세간을 행하시는 것을 도와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깨달았지만 감히 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매우 조급했고, 먹지도 자지도 못했으며, 조급함에 울기만 했습니다. 사부님께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습니다.
당시 제 가정 형편은 마치 저 없이는 안 될 것처럼, 집안일을 첫자리에 놓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래선 안 돼! 이렇게 좋으신 사부님, 이렇게 좋은 대법, 사부님께서 억울한 누명을 쓰시고 대법이 모함을 당했는데, 작은 가정 때문에 대법제자가 사부님께서 세간을 행하시는 것을 돕는 데 영향을 받아서는 안 돼!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하는 것은 내게 가장 영광스러운 일인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저는 어느 날 갈지 궁리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집안의 돈을 관리하지 않아서 돈을 조금씩 모았습니다.
가정 외에 오빠도 제게는 압력이었는데, 오빠 중 한 명이 공장 간부였기 때문입니다. 공장에서는 친척 중에 파룬궁을 연공하는 사람이 있는데 만약 베이징에 가면 직위를 해제한다고 했습니다. 가족들도 모두 “너 절대 가면 안 된다. 네가 가면 네 오빠 간부직에서 쫓겨나”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선택의 기로에 섰지만 역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역시 사부님이 중요하고 법이 중요했기에 저는 반드시 가야 했습니다.
2000년 섣달그믐 아침, 저는 수련생 한 명과 함께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집을 나서는 순간, 저는 기뻐서 울음이 터졌습니다. 사부님을 위해,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할 수 있게 됐으니 마음에 품었던 소원 하나를 이룰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다른 수련생들도 만났습니다. 기차에 오르니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당시 상황이 매우 공포스러워서 기차에 탈 때도 검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마음이 바르고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셔서 우리는 순조롭게 베이징에 도착했습니다.
기차에서 내리니 인근 현(縣)에서 온 수련생들도 만났습니다. 천안문을 지날 때 시골에서 온 부부 수련생이 납치되는 것을 봤습니다. 설날에 무엇 하러 왔겠습니까, 파룬궁수련생인 줄 아는 것입니다. 저는 추위를 타서 낡은 솜옷을 입고 있었는데 시골에서 온 사람처럼 보여서 저 역시 꽤 걱정이 됐습니다. 두렵기는 했지만 법을 실증하러 올 수 있었다는 마음에 기뻤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이 연락을 도와줘서 저녁에는 우리가 머물 숙소를 구했습니다. 그때는 지치고 추웠으며 열까지 났습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해 잠시 쉬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한 수련생이 이곳은 안전하지 않으니 다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버스를 타면 검문에 걸릴 수 있어서 걷거나 작은 삼륜차를 타야 했습니다. 우리는 춥고 지쳤지만 만약 다른 일이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장 신성한 일을 하고 있었기에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견뎌냈습니다. 섣달그믐 한밤중에 우리는 베이징 근처의 작은 길을 걸으며, 정말이지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홍음-마음고생)를 겪었지만, 사부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무척 기뻤습니다.
한 장소에 도착해 잠깐 누웠다가 아침이 돼 다시 일어나 천안문으로 갈 준비를 했습니다. 자발적으로 협력하던 수련생이 어떤 수련생에게 현수막이 없는 것을 보고는 제 현수막을 그 수련생에게 주고 저에게 전단 배포를 맡겼는데, 전단 배포는 현수막을 치켜드는 것보다 위험했습니다. 저는 ‘내게 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차를 타고 갔는데 마음이 좀 두려웠지만 두려워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천안문 앞의 인파가 가장 많은 정류장에서 우리는 내렸습니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 사람이 매우 많았습니다. 수련생들이 현수막을 펼치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높은 곳에서 전단을 들고 인파를 향해 뿌렸습니다. 뿌릴 때 아주 신기하게도 전단이 사방에 흩날렸습니다. 경찰이 전단을 주우러 왔지만 저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저는 몸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현수막을 든 수련생은 경찰에게 납치됐습니다. 저는 ‘천안문에 아직 대법제자들이 있으니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법을 실증하고 이 일을 잘해내야겠다는 일념으로 천안문 광장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런 공포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천안문 광장에는 곳곳에 대법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쪽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우리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달라!”라고 외치면 저쪽에서도 또 외쳤습니다. 그 소리는 하늘과 땅을 울렸습니다. 그 벅찬 감동은 인간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형용할 수 없었고, 저는 감동해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대법제자가 현수막을 펼치면 저도 다가가 함께 들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우리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달라!”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대법제자들은 서로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응집력이 대단했고, 전체가 아주 잘 협력했습니다. 모르는 몇몇 산둥 대법제자들이 몇 미터나 되는 아주 큰 현수막을 펼치려고 하기에 저는 얼른 달려가서 함께 잡고 빨리 펼치려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했고 결국 경찰에 납치됐습니다.
섣달그믐에 베이징에 온 수련생들은 정말 많았습니다. 천안문 광장에는 사복 경찰이 곳곳에 깔려 있었고, 납치된 수련생들은 버스에 실려 속속 천안문을 빠져나갔습니다. 대법제자들을 가득 태운 버스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그 장면은 너무나 비장했습니다. 차 안에서 어떤 수련생이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천목(天目)이 열린 수련생이 사부님께서 외국인과 말씀하시는 것을 봤고, 사부님께서 천안문 광장 위에서 대법제자들을 보고 계신 것을 봤으며, 대법제자들을 태운 경찰차가 가다가 고장 났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 사부님 이야기를 하면서, 사부님께서 검소하게 생활하시고 자녀에게 비싼 신발 대신 2위안짜리 신발을 사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경찰들은 모두 반박하지 않고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밤 12시부터는 더 이상 체포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람들을 가둘 곳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곳으로 끌려갔는데 아주 많은 수련생이 있었습니다. 다 함께 ‘논어’와 ‘홍음’을 외우고, “파룬따파하오”라고 외쳤습니다. 경찰이 수련생들을 떼어놓으려고 하자 수련생들은 팔짱을 끼고 서로 허리를 껴안으며 경찰이 수련생을 따로 데려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자 경찰은 우리 등을 밟고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수련생들의 정념정행에 큰 충격을 받았고 감동의 눈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저는 많은 수련생과 함께 한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은 밤에도 이불을 주지 않았고, 나중에 다 떨어진 이불을 줬다가 다시 빼앗아 갔습니다. 문과 창문을 열어놓고 창문에는 물을 뿌려 얼어붙게 했습니다. 모두 아침마다 법을 외우고 ‘파룬따파하오’라고 외치며 진상을 알렸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이렇게 법을 외우는 것도 못 하게 하고는, 무장 경찰 한 소대를 보내 대법제자들을 떼어놓고 함께 있지 못하게 했습니다. 며칠 후, 어떤 사람은 등록하고 집으로 돌아갔고, 어떤 사람은 다른 곳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또한 “이 활동(법 암기 등)은 누가 조직했나?”라고 물었습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한 어린 소녀가 “저요”라고 말했고, 그들은 그 소녀를 끌고 갔습니다. 처음에는 사람과 사람이 맞닿을 정도로 비좁았던 방에 나중에는 사람이 점점 줄어 5~6명만 남았습니다. 우리는 이름도 주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집에서 저를 사방으로 찾으러 다녔고 파출소에 가서 제 이름을 대며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며칠 후 저는 수련생과 함께 현지로 다시 이송됐습니다.
저는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나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대법제자가 잡혀가 박해를 받다가 난(難) 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수련하지 않겠다고 말한 뒤, 감옥 문을 나설 때 사부님을 뵈었다고 합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때문에 애가 타셔서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이 대법제자는 그 모습을 보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가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십니다. 저는 잘하지 못할 때마다 사부님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중생을 구하는 일에 사부님께서는 그토록 조급해하십니다. 사부님의 ‘호주 수련생을 위한 설법’ 녹화 영상을 볼 때면 저는 울곤 하는데,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구하기 위해 온갖 애를 쓰셨습니다. 대법제자가 잘하지 못하면 사부님께서는 애태우십니다. 저는 ‘반드시 잘해서 사부님께 보답하고, 사부님을 안심시켜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박해가 시작된 후부터 저는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아직 출근하고 있어서, 작업실에서도 알리고, 가는 곳마다 알렸습니다. 당시 환경은 매우 열악했는데 공안국에서 내려와 조사하고, 직장에서 압박하고, 집에서도 압박했습니다. 게다가 오빠 일까지 겹쳐 압력이 상당히 컸지만 저는 꿋꿋이 진상을 알렸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자신이 아직 잘 수련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법을 수호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건 틀린 생각이에요. 법을 수호하는 데 잘 수련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당신이 잘 수련할 때쯤이면 이 단계는 이미 지나갔을 거예요. 잘 수련하지 못했으면 천천히 수련하면 되죠. 사부님께서 모함을 당하시고 대법이 모욕당하고 있는데, 대법제자는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수련하지 못했으면 수련하면 되는 거고, 이 단계는 놓쳐서는 안 되며 마땅히 가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심성이 높지 않아 수련생에게 말할 때도 화를 좀 냈는데, ‘이렇게 큰일에 잘 수련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야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베이징에서 돌아왔을 때 공안국과 파출소 사람들은 우리에게 베이징에 가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했고, 3천 위안을 예치하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가는 사람은 이 3천 위안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가지 않은 사람은 돈을 돌려받았습니다. 제가 다시 베이징에 법을 수호하러 가자 그 돈은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베이징에 가는 것이 3천 위안을 받는 것보다 더 기쁘지 않은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시(市)에서 세뇌반을 열려고 하는데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지 않으면 세뇌반으로 보냈습니다. 제가 쓰고 제출했더니 그들은 “이게 보증서를 쓴 겁니까? 이건 결심을 쓴 거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좋은 대법인데 무슨 보증서를 쓰라는 건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세뇌반으로 납치됐습니다. 그곳은 시내에서 꽤 외진 곳에 있는 빈집이었는데, 경찰과 각 기관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있었고, 밤에 잘 때는 경찰이 복도에서 보초를 섰습니다. 남편이 이번에는 잘 대처해줬습니다. 그가 저를 찾아와 별일 아니라고 말하고는 저를 직장에서 데리고 나왔습니다. 수련생들은 그 안에서 좋은 일을 했는데 청소를 하고, 무슨 일이든 솔선해서 했으며, 그들에게 진상도 알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고 구원받았습니다. 세뇌반 책임자가 감동해서 “대법은 좋습니다. 여러분은 노력해서 잘 배우고 잘 연공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4. 정념을 지키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다
처음에는 진상 자료가 없어서 저는 손으로 써서 풀로 붙였습니다. A4 용지를 반으로 잘라 흰 종이에 붉은색 정체자(正體字)로 쓰곤 했는데, 꽤 예쁘게 썼습니다. 인부들이 도로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저는 수련생과 함께 여기저기 붙이고 다니며 가는 길에 말할 수 있으면 말하고, 붙일 수 있으면 붙였습니다. 때로는 동행이 있었고 때로는 혼자였습니다. 한번은 제가 큰길에 스티커를 붙이러 갔는데 그곳은 오가는 사람이 많아서 저는 ‘사람이 좀 적을 때 일찍 가서 붙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막 붙이고 있는데 흙 비탈 저쪽에서 한 남자가 “야!”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가 뛰자 그도 뒤에서 쫓아왔습니다. 한참을 달려 작은 숲속까지 도망쳤는데 더 이상 뛸 힘이 없었습니다. 그가 저를 따라잡고는 “왜 도망가요?”라고 물었고, 저는 “왜 저를 쫓아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저를 붙잡으려던 게 아니라 색마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감히 저를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너무 뛰어서 입에 흰 거품이 생겼는데 집에 돌아올 때까지 하루 종일 입에서 거품이 났습니다.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체육관 주변은 온통 경찰이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그 근처에서 진상을 알리는데, 옆에서 일하던 한 젊은이가 아주 좋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제가 그에게 진상을 알리자 그도 탈퇴했고, 제가 다른 사람에게 권할 때는 그가 옆에서 돕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길을 건너면서 저를 향해 웃어 보이기도 했는데, 실은 경찰에게 신고하러 간 것이었습니다. 제가 막 떠나려는데 경찰이 제 앞에 와서 저를 근처 파출소로 납치했습니다. 저는 평소 ‘명혜주간’을 매우 꼼꼼히 봅니다. 병업 고비이든, 박해에 관한 교류이든, 아니면 다른 방면의 교류이든, 아주 잘한 부분은 제가 여러 번 읽어보며 머릿속에 기억해둡니다. 저는 붙잡힌 후 박해받을 때 수련생들이 어떻게 헤쳐 나왔는지, 어떻게 대법을 실증했는지를 떠올리며 저도 그것을 참고했습니다. 저는 진상을 알렸는데 경찰을 만나면 알리고 일반인을 만나도 알렸습니다. 아무도 없을 때는 앉아서 정념을 발했고 사람이 오면 알렸습니다. 경찰이 “저 사람 좀 봐, 저 사람 좀 봐.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저를 머물게 한 방은 철판으로 공간이 나뉘어 있었는데, 그들이 밖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 있어서 저는 밖으로 나가 그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들이 “너무 피곤해. 온종일 순찰하라고 하니 힘들어 죽겠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들 그거 알아요? 이건 다 악당이 한 짓이에요. 저 장쩌민 두꺼비가 사회를 잘 이끌었다면, 우리 사회가 평안했다면 당신들이 순찰할 필요가 있었겠어요? 안 그런가요? 그럼 우리 모두 편안하고 안정적이어서 얼마나 좋았겠어요. 당신들도 이렇게 피곤할 필요 없잖아요. 이건 나쁜 사람이 많으니까 당신들을 순찰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 이건 다 악당이 한 짓이고 좋은 일은 안 해서 우리 인민들을 힘들게 하는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입 닥쳐!”라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모르잖아요. 내가 말 안 하면 당신들이 알겠어요? 이게 그런 거 아닌가요? 당신들은 몰라서 내가 알려줘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거 아니에요.” 그들이 다시 사람을 데려오면 저는 또 말을 걸어 악당의 사악함을 알리고 진상을 알렸습니다. 한 여경이 “저 사람 참 담이 크네. 감히 공산당을 말하다니”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니, 공산당이 저지른 그 악행들을 말도 못 하나요? 누가 악행을 저지르든 우린 생각해봐야죠. 악행을 저질렀는데 말도 못 해요? 말 안 하면 당신들이 모르잖아요. 누가 좋고 누가 나쁜지 당신들은 분명히 가려야 해요. 선과 악을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고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더 이상 이곳에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저를 밖으로 끌어내려 했습니다. 저는 가지 않으려고 버텼습니다. 그들은 제 옷소매를 잡아당겨 찢어지게 하고는 저를 아무도 없는 방에 밀어 넣었습니다. 저는 소리쳤습니다. “이렇게 하지 마세요. 당신들에게 안 좋습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바로 사람을 구하고 중생을 구하고 계십니다. 당신들은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파룬따파하오’를 염해야 평안을 보우받을 수 있어요. 우리 사부님께서는 당신들의 지난 잘못을 보지 않으십니다. 당신들이 역사에서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우리 사부님께서는 보지 않으시고, 오직 지금 당신들이 대법을 대하는 태도만 보십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바로 당신들을 구하십니다.” 저는 말을 잘하지는 못해서 그들을 어떻게 하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제 자신이 감동해서 울었습니다. 저는 울면서 계속 말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어찌할 수 없어서 우리 주민센터와 지역사회 담당자 여러 명을 불렀습니다. 그들이 저를 설득하러 왔습니다. 저는 “여러분 오셨네요. 저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어요. 저는 좋은 사람인데 그들이 저를 이곳에 잡아왔어요”라고 말하며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가버렸습니다. 저녁 10시쯤, 경찰이 저를 구치소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한참을 실랑이한 끝에 저를 그곳으로 보냈습니다. 구치소에 가서도 저는 여전히 알렸습니다. 법에 부합하게 할 때 사부님께서는 모두 보살펴주십니다. 구치소에서는 일만 있으면 파출소 경찰을 불렀고 자꾸 부르니 그들도 귀찮아했습니다. 며칠 후 저는 풀려났는데 파출소에서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안에 있을 때 저는 감방 동료에게 “내가 언제 나갈지 몰라요”라고 말했습니다. 감방 동료가 “무슨 재주가 있어서? 구류됐으면서 며칠 만에 나가려고?”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며칠 안 걸려서 나갈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며칠 지나지 않아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나가기 직전에 또 다른 대법제자 한 분이 갇혀 들어왔는데, 그녀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요. 우리에겐 사부님이 계시잖아요. 반드시 법 위에서 당당하게 헤쳐나가야 해요. 일이 없으면 법을 외우고, 진상을 알리고, 정념을 발해야 해요. 우리는 잘해서 사부님을 안심시켜 드리고 기쁘게 해드려야 해요.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하고 계세요. 사람의 길을 가지 마세요.” 그녀는 알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나올 때쯤 그녀의 상태는 괜찮았습니다. 제가 떠날 때 감방 사람들은 “저 사람 아직 나갈 때가 안 됐는데 정말 가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경찰들과 엮이면서 이 파출소 경찰들은 모두 저를 알게 됐고, 길에서 마주치면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한번은 집 근처에서 한 대학생에게 진상을 알리고 나서 그에게 소책자 주는 것을 잊었습니다. 저는 그 대학생을 쫓아갔지만 따라잡지 못했는데, 저를 아는 경찰이 저를 따라잡았습니다. 경찰이 차를 몰고 와서 저에게 “뭐 하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사람 구하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사람을 구한다고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저는 “그럼요. 당연히 사람을 구하죠. 당신은 뭐 하러 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디에 간다고 했습니다. 저는 “젊은이, 이 아주머니를 만났으니 구원받아야지. 아주머니가 당신 당·단·대 탈퇴해서 평안을 지켜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샤오량(小亮)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말했습니다. “탈퇴해야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어요. 대법은 바로 불법(佛法)이라 누구든 들으면 구원받고 평안해져요. 듣지 않으면 도태된답니다.” 그는 동의하고는 “안전 조심하세요”라고 말하고 차를 몰고 갔습니다.
이 파출소 경찰들은 대부분 진상을 인정했습니다. 단지 한두 명의 경찰만이 진상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길에서 저를 봐도 저와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한 수련생과 풀을 들고 진상을 알리며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습니다. 누군가 밀고했습니다. 경찰차가 우리 앞에 ‘끽’ 하고 멈춰 섰습니다. 경찰이 내리더니 “또 이 사람이네”라고 말했습니다. “뭐 하는 거예요?”라고 묻기에 저는 “사람 구하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수련생의 주머니를 뒤져 소책자 몇 권을 찾아냈습니다. 저는 “그거 다 제 거예요. 저 사람과는 상관없어요. 저 사람한테 말하지 말고 저한테 말하세요. 제가 그냥 같이 산책하자고 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하는 사이 그 두 경찰은 수련생을 차에 밀어 넣었습니다. 저는 “아니, 왜 저 사람을 차에 태워요!”라고 말했습니다. 두 경찰이 저와 수련생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 손에 풀이 가득 묻어있는 것도 잊고 한 손으로 경찰 한 명씩 잡고 ‘휙’ 하고 뿌리쳤는데, 두 사람이 꽤 멀리 밀려났습니다. 이것이 신통(神通)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경찰이 다가와서 “아이쿠, 왜 내 온몸에 풀이 묻었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것 봐요. 날 건드리지 말라니까요. 내 손에 있던 풀이 다 당신한테 묻었잖아요.” 저는 수련생을 차에서 끌어내며 말했습니다. “당신 일이 아니에요. 집에 가세요.” 저는 경찰에게 “저 사람 일 아니에요. 소책자는 제 거예요. 저 사람 집에 가게 하고 무슨 일이든 저한테 말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두려워하지 않고 협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법에 따라 하고 수련생을 위하며, 일체를 그를 위해 제가 책임지려 했기 때문입니다. 수련생이 떠날 때 매우 미안해하며 저와 함께 가려고 돌아보기에 저는 “당신 일이 아니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경찰에게 “일이 있으면 저한테 말하세요. 이건 제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가세요, 우리가 집까지 태워다 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태워줄 필요 없어요. 저 혼자 걸어갈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그럼 가세요”라고 했습니다. 제자가 법에 따라 행하자 사부님께서 제자를 구해주신 것입니다.
저는 잘하는 수련생들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단지 수련생 여러분께 박해에 직면했을 때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박해를 받는다면 박해에 맞서야 하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해야 합니다. 첫째는 사악에 협조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경문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다’에서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한 대법제자로서 무엇 때문에 박해를 감당할 때 사악한 자를 두려워하는가? 관건은 집착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소극적으로 감당하지 말고 시시각각 정념(正念)으로 악인을 정시(正視)하라. 어떤 환경이든지 사악의 요구, 명령과 지시에 협조하지 말라. 여러분이 모두 이렇게 한다면 환경은 이렇지 않을 것이다.” 둘째는 어디에 있든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입니다.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고, 정념을 발하고, 법을 외우는, 이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박해가 발생할 때마다 저는 사부님의 이 법 구절 “어떤 환경이든지 사악의 요구, 명령과 지시에 협조하지 말라”에 따라 행했고, 명혜망에 실린 수련생들의 박해 반대 경험을 참고했습니다. 그 수련생들도 사부님의 제자이고 저도 사부님의 제자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으면 저도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수련해 없애야 하는데 아무것도 감히 하지 못한다면 무엇을 수련하겠습니까?
(계속, 명혜망 제22회 중국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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