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일본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제가 최근 매체 업무를 하며 수련 속에서 체득한 몇 가지 깨달음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나누려 합니다.
1.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원망 없이 협력하기
제가 속한 항목 팀의 책임자는 다소 강한 성격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그녀와 협력하는 과정에서 이미 많은 인간적인 집착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사장님이 저를 또 다른 항목에 배치했는데 그곳의 책임자는 이전보다 더 강한 성향의 분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동안 수련을 통해 길러온 관용과 인내가 통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불만을 하나 누르면 또 다른 불만이 올라왔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끊임없이 인간의 마음을 억누르며 속으로 화를 참아가며 맞추려 애썼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반복될까?’ 생각하던 중 사부님께서 수련생을 통해 저를 도와주시며 지적해 주셨습니다. 제가 ‘안으로 찾기’에 있어서 깊이가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스스로 이룬 줄 알았던 ‘마음의 동요 없음’은 사실 단지 일반인의 인내와 관대함일 뿐, 사람 마음의 뿌리를 제대로 찾아 제거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강한 의지로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나쁜 생각이 조금이라도 올라오면 바로 붙잡고 물었습니다. ‘왜 이 순간 마음이 움직였을까?’ ‘내가 진정으로 내려놓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정말 법에 부합하는가?’
이렇게 하나의 질문이 또 다른 질문을 이끌며 저는 계속해서 안으로 깊숙히 파고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많은 집착이 ‘사(私)’와 ‘정(情)’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점차 분명히 볼 수 있게 됐고 그것들을 통제하는 힘도 생겼습니다. 수련이 깊어지면서 자비심이 생겼고 책임자를 바라볼 때 마치 아이를 대하듯 마음에 선한 감정이 가득 차서 오직 그녀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아직 부족했습니다. 어느 날 그 책임자가 또다시 제게 거친 말을 했을 때 저는 속이 상하고 괴로웠습니다.
‘사부님, 제가 자비심까지 길렀는데 왜 이런 상황이 또 나타나는 걸까요? 아직도 저에게 수련할 부분이 남아 있습니까?’
그때 한 수련생이 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지적했는데 왜 불쾌한가요? 그건 여전히 ‘지적받는 것’을 나쁜 일로 여기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때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좋다’와 ‘나쁘다’에 대한 제 인식이 아직도 일반인의 기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수련자는 정법의 이치에 따라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인류사회의 이치는 우주의 이치와 반대이다. 사람이 난(難)이 있고 고통이 있는 것은 사람에게 업을 갚게 하여 행복한 미래가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수련하는 사람은 바른 이치(正理)에 따라 수련해야 한다. 고생을 겪고 난을 당하는 것은 업력을 제거하고 죄를 없애 버리며 인체를 정화(淨化)하고 사상경지를 제고하며 층차를 승화시키는 아주 좋은 기회로서, 이는 대단히 좋은 일이며 이것이 바른 법리(正法理)이다.”(정진요지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2. 관용을 배우고 타인을 위하다
‘협력자’의 역할 외에도 저는 매체 업무 속에서 ‘교열’ 역할도 맡게 됐습니다. 기사를 검토하다 보면 기자들의 부족한 점이 쉽게 보입니다. 어떤 기자는 글은 빨리 쓰지만 세부적인 오류가 많고, 어떤 기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귀찮은 일은 다음 단계로 넘겨버리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왜 저 수련생은 빨리 심성을 제고하지 못할까?’ 하며 불평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깨달았습니다. 수련생은 저를 비추는 거울이며 사부님께서 그런 모습을 보게 하신 것은 저 자신을 수련하라는 뜻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 세심하고 더 전문적으로 임하려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급함, 성급함, 불평하는 마음을 하나씩 내려놓았습니다. 그때 깊이 느꼈습니다. 아무리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해도 그것을 핑계 삼아 고쳐야 할 인간의 집착을 덮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 마음들은 도리어 사악한 생각이 자라나는 뿌리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어느 날 한 기사를 검토하다 보니 볼수록 문제가 많았습니다. 원고와 영상 내용도 여러 부분이 맞지 않았습니다. 이런 기사를 그대로 웹사이트에 보내면 편집자가 처음부터 다시 듣고 정리해야 하니 큰 수고가 따릅니다. 저는 속으로 ‘이 기자는 왜 이렇게 불성실할까? 기본적인 일도 남에게 넘기다니’ 하며 불만이 쌓였고 수정 의견을 쓰는 어조도 점점 날카로워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저장’ 버튼을 누르려던 바로 그 순간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묻어 있었고 “죄송해요, 아직 기사 업데이트를 못 했어요. 지금 바로 수정할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단번에 깨달았습니다. 그녀가 불성실했던 게 아니라 단지 너무 바빴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문득 며칠 전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작은 실수 하나로 책임자에게 심하게 비판을 받았을 때 너무 억울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뒤바뀌어 제가 바로 그 책임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전엔 책임자가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가 같은 처지에 놓이니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제 사고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감정을 만들어냈는지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습니다.
그 결과를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기자가 잘못을 하거나 제 생각과 다를 때 저는 먼저 불만과 불평을 품고 그다음엔 상대를 낮춰보고 비판했습니다. 만약 상대가 반박이라도 하면 ‘잘못해 놓고 변명까지 하네’라며 화를 내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즉 제 관념이 건드려진 순간부터 이어지는 일련의 반응은 모두 악념과 마성(魔性)이었던 것입니다.
이 잘못된 사고 구조 전체를 알아차린 순간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진지함’과 ‘품질 관리’라 여겼던 그 마음이 사실은 수많은 악념을 키워내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제 머릿속에는 계속 사상업력(思想業力)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또한 수련생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면 그에게 제 덕을 넘겨주고 대신 그의 업력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수련의 방향과 정반대입니다.
사고 구조를 해체하고 한 단계씩 안으로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이런 잘못된 구조를 결코 발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천 년 동안 사람의 뼛속에 스며든 관념이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서 오히려 자신이 옳다고 착각하고 ‘나는 기사를 위해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이라며 합리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수련인의 사고 구조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사부님께서는 하늘의 왕이 지닌 마음가짐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홍대(洪大)한 관용(寬容)이고, 생명에 대한 慈悲(츠뻬이)이며, 일체를 모두 선의(善意)로 이해할 수 있는 상태이다. 인간의 말로 하면 다른 사람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각지 설법2-2002년 보스턴 법회 설법)
세속의 사람은 자신의 관념에 집착하고 늘 우위를 차지하려 들기 때문에 결코 선의로 타인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저는 구(舊) 사고 구조, 즉 악념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버리고 무슨 일을 만나든 관념에 집착하지 않으며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선의로 타인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것을 배웠습니다.
3. 법을 잘 배우고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을 잊지 않기
수련해 온 세월 동안 저는 ‘대도(大道)는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다’라는 진리를 깊이 체험했습니다. 현재 제 한정된 층차 속에서 깨달은 바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로 ‘법에 동화되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자’입니다. 그리고 그 근본 중의 근본은 무엇보다 법을 잘 배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올해 션윈 공연 시즌이 시작되기 전 저는 한동안 매일 《전법륜(轉法輪)》을 세 강씩 공부했습니다. 책을 펼치기만 해도 온몸을 휘감는 강대한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곧 깨달았습니다. 세 강을 빠르게 보려다 보니 눈으로만 훑고 마음으로 깊이 새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부끄럽게도 그전에도 여러 번 외우려다 중간에 그만둔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한 수련생과 약속해 매일 서로 진행 상황을 보고하기로 했습니다. 그 수련생은 빠르게 외웠고 저는 느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 단락 한 단락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외우기 시작한 지 며칠 뒤 어느 날 밤 가부좌할 때 가슴 한가운데서 무언가가 위로 솟구쳐 이마 앞쪽까지 올라오더니 천목(天目) 통로를 뚫고 나가는 느낌이 아주 뚜렷하게 들렸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수련하는 편인데 그렇게 생생하게 느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순간 사부님께서 ‘법을 잘 배워라’고 격려해주시는 듯했습니다.
어느 날 《논어》를 공부하다가 첫 문장 “대법은 창세주의 지혜이다”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온몸이 전율했습니다. 수없이 읽고 외웠던 문장이었지만 그날은 마치 처음으로 그 의미를 깨닫는 듯했습니다.
대법이란 창세주께서 자신의 지혜를 우리에게 전해주신 것이었습니다. 광대한 우주를 창조한 지고무상의 지혜, 무한하고 전능한 지혜였습니다. 저는 너무나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지혜를 두고 왜 나는 법을 잘 배우지 못했을까? 어떤 문제인들 창세주의 지혜 속에 해답이 없겠는가?’ 하고 스스로를 반성했습니다.
수련은 겉보기에는 점점 단순해지는 것 같지만 결코 점점 쉬워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연 시즌 중에는 보도 업무가 급격히 많아졌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너무 피곤해 “왜 이렇게 힘들까요? 대법을 수련하면 복이 있다는데, 왜 이렇게 고생이 많죠?”라며 푸념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수련생은 소업(消業) 증상이 심해지면 마음이 흔들리며 “제가 잘못된 걸까요? 왜 또 몸이 아프죠?” 하고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법을 배우면서 깨달았습니다. 수련이란 편안함을 추구하는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큰 고통 속에서도 마음을 흔들지 않아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어느 날 법공부하다가 문득 깨달았는데 저를 동요시키려던 잡념들이 너무나 하찮게 느껴졌습니다. 그것들은 낮고 미약해서 더 이상 저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저는 진정한 대법 수련이란 사심을 버리고 진심으로 중생을 구하는 것임을 더욱 깊이 느꼈습니다.
션윈쭤핀(神韻作品) 중 왕보천(王寶釧)을 연기한 배우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감독이 한 장면을 다시 찍자고 한 이유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감독은 “당신이 감동하지 않으면 관객도 감동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 후 음악을 반복해 들으며 감정을 느끼려 노력했고 혼자 리허설을 하다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션윈 예술가들이 ‘진실함’을 그렇게까지 추구하는 모습에 저는 깊이 감동했습니다. 진심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련인은 ‘정(情)’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션윈 배우들은 관객을 구하기 위해 그 ‘정’을 집착이 아닌 자비의 감정으로 승화시키고 있었습니다. 만약 자신을 보호하거나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진정성은 흐려지고 관객을 감동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진(眞)’의 정신은 저의 뉴스 보도 작업에도 큰 깨우침이 됐습니다. 저는 늘 되돌아봅니다.
‘내가 보도하는 사건이 진실한가? 수치는 정확한가? 인용은 공정한가? 무엇보다 내 마음은 순수한가?’
보도란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거나 이름을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관객이 진상을 접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조금이라도 자기를 실증하려는 마음이나 공을 탐하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법에 맞지 않습니다.
위대한 사부님, 위대한 법은 지금 대우주가 전례 없는 장엄한 일을 완성하도록 이끌고 계십니다. 그 속에서 먼지와 같은 저 또한 이 시대에 태어나 사부님께 선택받은 것은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이 은혜에 보답하려면 오직 더 잘 수련하는 길뿐입니다.
올해 션윈 공연 시즌 동안 수많은 보도를 접하며 저는 션윈을 보고 감동한 관객들의 깨달음에 함께 눈물짓고 그들이 구원된 것을 마음 깊이 기뻐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뉴스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션윈처럼 해야 한다.’
철저히 자신을 단속하고 괴로움을 참고 정진하며 수련생들과 빈틈없이 협력하고 진심과 성의를 다해 언제나 관객의 감정을 먼저 생각해야만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상은 수련 중 느낀 체험입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수련생 여러분이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2025년 일본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0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0/24/50170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0/24/501702.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