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대법의 아름다움을 증명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농촌 대법제자로, 학식이 높지 않아 그렇게 많은 법리를 깨닫지 못했고, 다른 수련생들처럼 감동적인 사연도 없습니다. 하지만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기에 사부님 말씀에 따라 확고하게 흔들리지 않고 수련하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佛光普照, 禮義圓明)”(전법륜)를 체득했습니다.

1. 병업 과정의 수련생과 함께 정진하다

제가 막 법을 얻었을 때 저희 마을에서도 몇 사람이 대법을 배웠지만, 중국공산당(중공)의 박해가 시작되자 모두 수련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마을에 저 혼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게 돼서 단체 수련 환경이 없는 것의 어려움을 알게 됐습니다.

나중에 저는 도시로 이사해 현지의 법공부 팀에 참여하게 된 것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몇몇 수련생이 서로 격려하며 함께 제고했고, 매일 법광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저희 팀에는 여든이 넘은 한 노년 수련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어릴 때부터 글을 몰랐지만 대법을 배운 후 《전법륜(轉法輪)》의 글자를 모두 읽을 수 있게 됐고,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병업 가상이 나타나자 가족들은 그녀가 혼자 외출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녀도 혹시 넘어져 대법에 손실을 끼칠까 염려하며 법공부 팀에 나오는 것을 두려워해 집에서 혼자 법공부를 했습니다. 노년 수련생의 다른 가족 중 수련하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그 노년 수련생은 사부님의 각지 설법 중 어떤 것은 읽기 어려워했고, 명혜망의 수련생 교류 글을 혼자 보는 것도 몹시 힘들어해 병업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저와 노년 수련생은 같은 주거단지에 살았는데, 저는 사부님께서 공동으로 제고하라고 알려주셨으니 마땅히 노년 수련생에게도 단체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녀가 나오지 않아 제가 그녀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저는 매주 최대한 몇 차례 오전에 시간을 내어 노년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를 했습니다. 처음 찾아갔을 때 노년 수련생의 귀가 조금 어두워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해 아들이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아들은 야간 근무로 낮에 휴식이 필요해 제가 방문한 횟수가 많아지자 별로 기뻐하지 않았고 문 여는 것을 꺼려해 때로는 오랫동안 문을 두드려야 했습니다. 제가 노년 수련생에게 아들의 휴식에 방해가 되는지 묻자 그녀는 “괜찮아요, 애가 야간 근무를 마치고 그렇게 일찍 자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노년 수련생이 제가 오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여전히 좀 난감했고, 수련인이 남을 고려해야 하니 늘 이래서는 장기적인 방책이 아니었습니다. 법공부 팀에 가서 상의하니 수련생들은 저에게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말고 수련생을 돕는 것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 정말 방법이 없다면 노년 수련생의 방에 무선 초인종을 설치해 그녀가 들을 수 있게 해 함께 법공부를 해도 아들의 휴식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제가 그 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사부님께서 신묘하게 난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노년 수련생의 딸이 이사를 와서 어머니를 돌보게 됐는데, 딸은 어머니의 수련을 지지하며 저의 방문을 환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상 알리기를 하고도 매주 이틀 노년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노년 수련생은 이미 병업의 고통으로 인해 수면과 식사를 제대로 못 했고 온몸에 기운이 없어 연공을 견지할 수 없었으며, 혼자 책을 보는 것이 어려워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수만 있었습니다. 저는 노년 수련생의 집에 가서 함께 각지 설법을 배우며 제가 읽을 때 그녀가 책을 보도록 했고, 그녀가 따라올 수 있고 잘 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읽었습니다. 너무 크게 읽어 다른 사람의 휴식에 방해가 될까 봐 노년 수련생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 과정은 저의 인내심을 매우 시험했는데, 때로는 노년 수련생이 따라오지 못하고 행을 잘못 찾아 다시 읽어야 했고, 하루에 몇 페이지를 읽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조급해하는 것도 사람의 마음이니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딸은 “아주머님이 오실 때마다 저희 어머니가 기운을 차리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대법제자의 사심 없는 노력은 주위 환경을 은연중에 변화시켜 노년 수련생의 아들도 점차 저에게 인사를 했고 며느리도 늘 감사를 표했습니다. 어느 날 법공부 시간에 노년 수련생은 “나를 데리고 법공부를 해도 큰 덕을 쌓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얼른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우리는 이걸 추구하지 않아요. 사부님께서 우리한테 서로를 구하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손잡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야 해요.” 노년 수련생은 웃었습니다.

2. 어려움을 피하려는 정서를 극복하고 명혜망 접속법을 배우다

약 10여 년 전에 여동생(수련생)이 저에게 “언니는 컴퓨터를 한 대 사야 해. 그렇지 않으면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 명단을 발표할 수가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저희 집이 농촌이고 당시 농촌에 컴퓨터가 있는 집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수련하지 않는 남편에게 컴퓨터 사는 문제를 상의하자 뜻밖에도 남편이 동의해 주었습니다. 남편이 아주 절약하는 사람이고 집의 땅이 몹시 적었고, 남편의 일용직 임금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으므로 몇천 위안 하는 컴퓨터는 저희 집에서는 몹시 큰 지출이었습니다. 남편이 동의했다는 것이 아주 놀라웠습니다. 여동생이 다른 수련생을 통해 사용한 지 얼마 안 된 컴퓨터를 저에게 사다 주었는데, 비용이 그렇게 비싸지 않았고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사부님의 배치였습니다.

컴퓨터를 접해 보지 못한 사람은 모두 체감하겠지만 컴퓨터를 배우는 것은 몹시 어려웠습니다. 첫째로 어떻게 조작하는지 기억하지 못했고, 둘째로 잘못 클릭해 고장 나면 고칠 줄 아는 사람이 없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여동생은 컴퓨터를 놓고 가버렸고, 저는 컴퓨터에 대해 전혀 모르고 마우스 잡는 법조차 몰라 컴퓨터를 쓰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도시로 들어와 딸의 집에서 살면서 다른 수련생과 접촉할 수 있게 되어서야 조작법을 자세히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수련생이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었지만 설명을 들을수록 더 기억하지 못해 나중에는 제가 어디 어디를 클릭해야 하는지 메모지에 적었습니다. 수련생이 조작할 때는 이해가 되었지만 수련생이 가버리면 또 할 수 없어 다시 물어봐야 했습니다. 당시 수련생은 몹시 바빠 한번 오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반복되자 때때로 자신감을 잃고 자신이 너무 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법공부를 하면서 컴퓨터도 대법제자의 법기(法器)이고, 저에게 전능하신 사부님과 대법의 도움이 있으며, 저에게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실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시간이 나면 컴퓨터를 켜고 스스로 연습을 했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적어 두었다가 수련생이 오면 물어보았습니다. 점차적으로 저는 명혜망에 접속할 수 있게 됐고, 명혜 기사를 다운로드할 수 있었으며, 몇몇 수련생에게 명혜 교류 음성 파일도 제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또한 타자 치는 법을 배웠고, 삼퇴 명단도 발표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번은 수련생이 80여 개의 삼퇴 명단을 가져와서 좀 난감했습니다. 당시는 인터넷 봉쇄를 뚫기가 몹시 어려웠고, 제가 타자를 아주 느리게 쳐서 몇 자 치면 연결이 끊겨 다시 쳐야 했습니다. 80여 개의 명단을 짧은 몇 분 안에 다 칠 수 없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련생이 저에게 메모장 사용법과 복사, 붙여넣기를 가르쳐 주어서 제가 먼저 메모장에 명단을 다 친 후에 탈당 웹사이트에 붙여넣기해 난제를 해결했습니다. 저는 아주 빨리 배울 수 있었고 수련생은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며 저를 칭찬했습니다.

사악한 당의 인터넷 봉쇄가 비교적 심했던 몇 달 동안 주위의 여러 수련생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었지만, 저는 20여 년 된 낡은 컴퓨터는 영성이 있어 한 번도 봉쇄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모두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지혜를 열어주신 덕분임을 알았고 덕분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리며 저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준 몇몇 수련생에게도 감사드립니다.

3. 대법 책 보수

저희 집이 농촌이라 화로가 있었으므로 수련생들이 다 읽은 낡은 교류 글을 모두 저에게 가져와서 처리했습니다. 정법(正法) 노정이 끊임없이 진행됨에 따라 사부님께서도 연이어 몇 권의 대법 책을 출판하셨습니다. 현지 자료점 수련생이 다른 수련생들을 위해 정교한 대법 책을 제작했고, 이전에 발표되었지만 제본되지 않은 대법 경문들은 끊임없이 처리를 위해 저에게 보내졌습니다. 그중에는 비교적 낡고 파손된 대법 책도 있었고, 단독으로 된 각지 설법도 있었습니다. 저는 농촌에서 자라 농촌 수련생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는데, 당시 제 주위에 수련생이 없어 사부님께서 새로운 경문을 발표하실 때마다 제가 자전거를 타고 아주 먼 길을 가서 가져와야 했습니다. 동북의 농촌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농촌에 눈을 치우는 사람이 없어 바닥이 거울처럼 미끄러웠지만, 당시 저는 법을 얻을 수만 있다면 두렵지 않았고, 매번 사부님의 보호가 있어 놀랄 일도 다칠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중한 경문이 이제 필요 없다고 하니 저는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제가 글씨가 정말 흐릿해 볼 수 없는 것만 꼼꼼히 골라 처리한 후, 나머지를 깨끗이 닦고 풀로 조금씩 붙이고 다시 한 장 한 장 잘 맞춰 마지막으로 표지를 붙이니 수리한 대법 책들도 모두 아주 좋았습니다. 나중에 수련생을 통해 타지의 농촌 수련생에게 전달하자 현지 수련생이 마침 책이 부족했다며 거듭 감사를 표했습니다.

삼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꽃이 저희 집에서 세 번 피었을 때,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저를 격려하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수련생과 함께 정진하여 손잡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10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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