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河北)성 대법제자
[명혜망] 20여 년의 수련 여정은 모진 비바람과 크고 작은 고비의 연속이었지만, 사부님의 보호 아래 우리는 사부님과 대법을 믿는 정념정행으로 오늘날까지 걸어왔습니다. 어떤 고비를 만나더라도 저는 정념을 굳건히 하고, 진선인(眞·善·忍)의 법리로 가늠하며 올바른 수련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대법을 얻고 대법을 수호하다
1998년 2월, 저는 병을 없애고 건강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법공부를 하면서 저는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이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이며, 진선인의 법리에 따라 수련하고 자신의 도덕, 경지, 층차를 높여 최종적으로 정과를 얻어 원만하게 되는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갈등 속에서 안으로 자신을 찾고 명(名), 리(利), 정(情)을 담담하게 여기면서 동시에 업력을 없앨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대법을 얻은 후 곧 저희 집 주변 사람들도 파룬따파가 좋다는 말을 듣고 잇따라 10여 명이 연공을 시작해 자연스럽게 하나의 연공장을 형성했습니다. 우리는 새벽 3시에 동공(動功)을 하고 정오에 법공부를 했으며, 저녁 식사 후에는 정공(靜功)을 했는데 모두 매우 정진했습니다.
1999년 4월 24일 저녁, 톈진(天津)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려다 납치돼 구타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공안은 수련생들이 베이징 최고 지도자를 찾아가 석방을 요구하게 했습니다. 저희 수련생 5명은 이웃 마을 수련생과 함께 밤새 기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는데, 이것이 바로 ‘4·25’ 만인(萬人) 청원이었습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질서 정연했고, 인파는 많았지만 혼란은 없었으며 함부로 돌아다니거나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마침 근처에 찐빵 파는 사람이 있어 우리 모두 두 개씩 사 먹고, 근처 건설 현장에 가서 수돗물을 마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서서 책을 읽었고, 어떤 이들은 연공했으며, 또 어떤 이들은 가부좌했습니다. 그 장면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정오 무렵, 중앙 지도자는 몇 명을 대표로 불러 해결 방안을 협의하게 했고, 저녁 무렵 대표들이 나와 제기한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대법제자들은 모두 돌아갔습니다. 떠난 후 현장은 깨끗했고 휴지 조각 하나 남아 있지 않았으며, 심지어 경찰들이 버린 담배꽁초까지 깨끗이 치워졌습니다.
돌아온 후에도 우리는 늘 하던 대로 연공하고 법공부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장쩌민(江澤民) 악당 집단은 파룬궁의 명성이 이처럼 좋고, 파룬궁 사부님의 위망이 이처럼 높은 것을 보고 극도로 질투했습니다. ‘7·20’ 이후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명예를 더럽히고, 경제를 차단하며, 육체를 소멸한다”는 사악한 수단을 동원했으며 석 달 안에 없애라는 명령까지 내렸습니다. 우리 연공장은 즉시 충격을 받았고 마을 간부는 연공을 금지했습니다. 우리 몇몇 수련생은 상의한 끝에 대법을 수호하고 공정함을 되찾기 위해 베이징으로 가 정부에 진상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당시 우리 지역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버스나 기차는 모두 상부의 지시를 받아 우리를 막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걸어서 수십 리 길을 걸었고, 한 승합차 운전자를 우연히 만나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우리를 외진 곳으로 데려다줬고 거기서 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베이징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천안문까지 걸어갔습니다. 이미 밤이었는데 천안문 거리에는 세 걸음마다 초소, 다섯 걸음마다 경찰이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경찰에게 강제로 차에 실려 체육관으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수련생들이 있었는데, 어떤 이는 대법을 외웠고 어떤 이는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우리도 곧 그들 속에 섞여 《홍음(洪吟)》과 《논어(論語)》를 함께 외웠으며 마음에 잡념이 전혀 없었습니다.
잠시 후 경찰은 각자 지역으로 돌아가라고 했고, 시·구 차량이 와서 수련생들을 태워갔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강제로 끌려 차에 올랐습니다. 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는데 경찰은 사람을 때리고, 밀치고, 발로 차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많은 수련생들이 “사람을 때리지 마라!”라고 크게 외치며 “우리 사부님께서는 결백하시다! 파룬궁은 결백하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라고 소리쳤습니다. 하늘을 뒤흔드는 외침 속에서 저와 수련생들도 강제로 차에 태워져 우리 지역의 한 광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수련생들이 앉아 있었는데, 어떤 이들은 옷이 경찰에게 찢겨 있었으나 모두 굳건하게 《홍음-무존》의 구절을 반복해서 외우고 있었습니다.
“살아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 허망한 생각 다 떨쳐버리면
부처 수련 어렵지 않도다”. 우리는 정연하게 줄을 지어 땅바닥에 앉았고, 주위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서 있었으며, 허리에는 수류탄까지 찬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혀 두려움이 없었고 마음에는 오직 한 생각, 대법을 수호하고 사부님을 따르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정오 무렵 현지 차량이 우리를 데려와 이름을 일일이 기록했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현지 악당 조직이 박해하는 ‘중점 인물’이 됐습니다.
사부님 보호 속에서 정념으로 고비를 넘다
어느 날, 저는 같은 마을 수련생 세 명과 함께 20km 밖의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소재지에 가서 발정념하고 진상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우리는 길을 걸으며 붙였고 마침내 준비한 진상 자료 한 장을 ‘610’ 마당 안에 던져 넣고 되돌아오던 참이었습니다. 얼마 안 가 군복 외투를 입은 몇 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 우리를 뒤쫓았습니다. 우리는 골목길로 들어가 허물어진 흙담 옆에 숨어 발정념을 하며 사부님의 보호를 청했습니다. 흙담에 마른 풀이 있어 우리는 그들을 볼 수 있었지만 그들은 손전등으로 비춰도 우리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떠난 뒤 우리는 좁은 길로 가다 다시 발각돼 쫓겼습니다. 이번에는 옥수숫대 더미 곁에 숨었는데, 그들은 또 보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우리는 밀밭과 복숭아밭을 가로질러 작은 길을 찾아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열두 시도 되지 않았습니다. 왕복 30~40km 길을 걸었는데 네 시간도 걸리지 않았으니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셨던 것입니다.
몇 해 전 몸이 불편했습니다. 배가 자주 아프고 냉기를 두려워했으며, 여름에도 다른 이들이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켜면 견디기 힘들었고 찬 음식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 상태가 3년 동안 이어졌으나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여동생을 따라 중의사를 찾아갔는데 그는 맥도 짚어보고 약을 지어줬습니다. 딸이 약을 받아오고 아들은 약탕기를 사와서 저보고 약을 달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나는 대법제자인데 병이 있을 리 없고 약은 나에게 아무 소용도 없다.’ 결국 몇 보따리 약을 전부 버렸습니다. 법공부를 늘리고 발정념을 많이 하고 정상적으로 연공했더니, 어느새 증상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10여 년 전 어느 날 아침, 저는 일어나자마자 천지가 도는 듯 어지럽고 이명이 심하며 구토가 나와 며칠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화장실을 가려도 누군가 부축해야 했습니다. ‘아마도 어젯밤 머리를 감고 작은 숙모와 밖에서 한참 이야기하다가 냉기를 받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외부 요인에 의한 것 같았지만, 안으로 찾으니 제가 숙모와 함께 시어머니 흉을 보며 ‘일을 제대로 못한다’, ‘물건만 챙긴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다’라고 했었는데 이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쟁투심, 이익심, 뒤에서 남을 헐뜯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 마음들을 찾고 곧바로 일어나 점심을 할 수 있었고, 며칠 후에는 장에 가서 장사도 했습니다.
사부님을 도와 더 많은 중생을 구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세 가지 일을 잘하라고 하셨고 진상을 알리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장터에 가는데 시력이 좋지 않아 자주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남과 부딪히기도 하며 제가 남을 들이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저는 제 잘못이라고 말하며 남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매번 저는 이를 계기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올해 정월 초이렛날 오후, 자전거를 타고 나가다가 어느 사거리에 이르렀을 때 스쿠터에 치여 바닥에 넘어졌습니다. 스쿠터를 몰던 사람이 급히 내려와 저를 부축했지만 저는 일어나지 못했고 손, 발, 다리 등 여러 곳이 아팠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어떡해요? 우리 병원에 가봐야겠어요?”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저를 자세히 보더니 “아, 당신이구나!”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니 같은 마을 사람으로 저희 집과도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그녀와 함께 있던 사람이 저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습니다. 저는 “그만 가세요”라고 하고 자전거를 끌고 갔습니다.
이튿날 그녀가 저희 집에 찾아와 “어떻게 됐어요? 병원에 가봐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며칠 지나면 나을 겁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십니다. 만약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 이런 사고를 당했다면 뼈가 부러지거나 큰일이 났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정말 좋은 분을 만났네요.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2천, 3천 위안(元)은 써야 했을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 국민들이 돈을 버는 게 쉽지 않잖아요”라고 했고 그녀는 “제가 맛있는 거라도 사다 드릴게요”라고 했습니다. “필요 없어요. 사오시면 저는 다시 돌려드릴 겁니다. 한 푼도 받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다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그녀는 “기억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인근 마을 수련생과 협력해 두 개 마을 장터에서 자료를 배포하며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유했습니다. 이제는 진상을 아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환경도 점점 더 느슨해졌습니다. 자발적으로 자료를 요구하는 사람도 많고 우리와 함께 교류하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이런 걸 보는 게 좋습니다. 이건 모두 사실이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수련생과 함께 장터에 가서 사람을 구했고 자료를 나눠주며 설명했습니다. 장에 늘 나오는 사람이든 장사하는 사람이든 우리는 대부분 익숙했기 때문에 누가 삼퇴했는지, 누가 믿지 않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얼굴에 중점을 뒀습니다. 우선 자료 한 부를 건네고, 받으면 이어서 삼퇴를 권했는데 남쪽 큰길 끝에 잡화를 파는 노점 앞에 이르렀습니다. 매우 붐비고 사람이 많았습니다. 저는 어떤 중년 남성에게 진상 자료를 건네며 말했습니다.
“집에 가서 잘 보세요. 이건 사람을 구하는 겁니다. 요즘 천재지변과 인재가 많잖아요. 그건 모두 인간의 도덕이 타락해서 초래된 겁니다. 하늘은 나쁜 사람을 도태시키고 좋은 사람을 남겨둡니다. 파룬따파는 사람들에게 선하게 살라고 가르칩니다. 진선인에 따라 착한 사람이 되는 건 옳은 일입니다. 그런데 장쩌민이 좋은 사람을 박해했으니 하늘의 이치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가 ‘파룬궁을 이겨내겠다’고 외친 순간부터 신은 이미 그것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중공 악당의 우두머리이고 악당을 대표합니다. 만약 당신이 당·단·대에 가입했다면, 이미 그것의 일부가 된 것이고 맹세할 때 일생을 바친다고 했으니 짐승의 표가 찍힌 겁니다. 하늘이 중공을 소멸할 대재앙이 올 때 당신은 그 조직의 일원으로 함께 화를 당할 것입니다. 그러니 탈퇴에 동의하면 그 짐승의 표가 지워지고 맹세가 해제됩니다. 하늘이 중공을 멸할 대재앙이 올 때 당신은 복을 얻는 겁니다.”
그는 크게 공감하며 “당신 말대로 하겠습니다. 저는 소년선봉대만 가입했습니다”라고 하면서 흔쾌히 탈퇴했습니다. 저는 “항상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세요. 착한 사람이면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라고 했고 그는 기뻐하며 떠났습니다.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저 사람에게도 말해보세요.” 한 노인이 전동스쿠터를 끌고 떠나려 하기에 다가가 《평안을 기원합니다》 책자 한 부를 주며 “당·단·대에 가입한 적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붉은 스카프를 맨 적이 있어요”라고 했고 저는 그에게 기본 진상을 말했습니다. 그는 기쁘게 탈퇴했습니다. 또 어떤 여인은 채소를 샀고 제가 그녀한테 말하니 그녀도 탈퇴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돌아가다가 담배 잎을 파는 노점 앞에 섰습니다. 거기 몇 명 남자가 있었기에 저는 각각 진상 자료를 건넸고 그중 한 사람이 “보고 싶으니 당신 집에 가서 가져오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같은 마을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들에게 “우선 이걸 보세요!”라고 했고 두 사람이 진상을 듣고 삼퇴했습니다. 옆에서 딸기를 파는 여성은 매년 이맘때면 여기 와서 장사했는데 매번 그녀에게 말하면 웃고 넘기며 탈퇴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저는 말했습니다. “아가씨, 제가 말한 것 다 들었죠? 빨리 평안을 지키세요! 어릴 적에 소년선봉대에 가입했잖아요. 제가 가명을 지어드릴게요. 탈퇴하세요!” 그녀는 동의했습니다. 제가 “당·단에 가입한 적은 없죠?”라고 물어보니 그녀는 없다고 했습니다.
며칠 전 우리는 다른 한 장터에 가서 스쿠터를 타고 온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여러분을 못 만났는데 제게 좀 더 주세요!” 그는 평소에 늘 자료를 많이 가져가곤 했는데 집에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 다들 보게 해서 복을 받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제가 작년에 준 진상 호신부(護身符)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보세요, 이 호신부 덕분이에요. 여러 번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아무 탈도 없었어요. 하루는 제가 스쿠터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트랙터가 들이받았어요. 저는 제어를 잃고 앞으로 달려갔는데, 앞의 크고 작은 차 열몇 대가 줄줄이 부딪혀 엉키고 어떤 차는 넘어지고 어떤 차는 뒤집혔지만, 결국 보니 아무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신기하다고 했는데, 저는 호신부가 모두를 보호한 줄 알았습니다.” 그는 “보세요, 색이 다 바랬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다시 하나 찾아드릴게요”라고 했고 그는 매우 기뻐하며 떠났습니다.
진상 자료 한 부 한 부가 세상 사람의 오래 묻힌 기억을 열어줬고 양심과 선념을 깨우며, 구원될 수 있는 인연을 정해줍니다. 우리는 다시 앞으로 걸어가면서 자동차 옆에 서 있는 청년에게 “진상 좀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젊은이는 “저는 이미 있어요. 저 큰아버지가 늘 주시거든요. 저는 다 압니다. 우리 서민들이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데, 가정 꾸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중공 악당이 너무 나빠요. 하늘이 왜 아직 멸망시키지 않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빨리 멸망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곧 그럴 겁니다. 다만 우리 국민 중 아직도 선악을 분별 못 하는 사람이 있고, 구원받을 사람이 아직 충분치 않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당신처럼 분명히 알게 되면 좋을 텐데요. 우리가 왜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고 나눠주고 말합니까? 더 많이 구하려는 겁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어서 가서 더 많이 구하세요!”
우리가 과일 노점 앞에 갔습니다. 그곳은 늘 바빠 자료만 놓고 와서 말할 기회가 없었던 곳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오늘은 바쁘지 않군요. 제가 자료를 차에 두었으니 집에 가서 보세요.” 그는 좋다고 했습니다. 저는 “붉은 스카프를 매신 적 있나요?”라고 물었고 그는 있다고 했습니다. 이때 귤을 사러 온 손님이 있어 그가 장사하러 가는 사이 저도 귤을 몇 개 담으며 기다렸습니다. 저는 “자료도 많이 보셨으니 제 말 한마디만 들으세요. 빨리 탈퇴하세요. 재난에서 벗어나 평안을 지키세요. 나중에 또 말씀드릴게요”라고 했는데 그는 탈퇴하겠다고 했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저는 갑절로 노력해 정진하고 착실하게 수련할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주신 지혜와 능력을 잘 발휘하고, 안으로 찾는 법리를 잘 운용해 마음을 닦는 데 힘을 다할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바라시는 바를 최대한 이뤄 사부님을 도와 더 많은 사람을 구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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