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60년대에 태어나 어린 시절에 ‘문화대혁명’을 겪었습니다. 대학에서 중국공산당(중공)의 역사를 공부했고, 졸업 후 직장도 대학교 중공 역사 교사, 정부 기관 비서, 중공 역사 자료 편집 등의 일을 하며 머릿속에 이른바 ‘변증법적 유물론’, ‘유물변증법’, ‘무신론’, ‘진화론’ 등의 당(黨)문화 이론, 관념, 사상, 사고방식으로 가득했습니다. 사상 의식의 시야와 각도, 높이도 모두 이러한 정신적 족쇄에 완전히 얽매여 있었습니다. 심지어 중공의 이데올로기와 다른 관념과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배척했고, 삶이 위험한 심연으로 치닫고 있었으나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1997년 10월, 저는 행운으로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을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머릿속에 깊이 뿌리내린 중공 악당의 완고한 사상 족쇄를 깨고, 우주의 특성인 ‘진선인(眞·善·忍)’에 동화하며, 확고하게 더욱 높은 층차와 경지로 승화해 가는 대법제자가 되었습니다.
당문화의 사상 틀에 깊이 빠지다
제가 기억하기 시작할 때부터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은 “마오×× 만세”, “류××를 타도하라”, “덩××을 철저히 비판하고 몰아내라”와 같은 구호였습니다. 글자를 배울 때도 나무 막대기로 땅바닥에 벽에 쓴 것처럼 투쟁과 증오가 가득한 큰 표어를 흉내 내며 썼습니다. 다섯 살 때 촌의 빈농과 중하농이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는데, 교과서 내용이 거리 벽의 구호와 똑같았습니다. 수업을 자주 중단하고 거리에 나가 구호를 외치거나 대규모 비판을 하고, 나쁜 사람을 잡는 등의 문예 프로그램 연습을 했는데, 무의식중에 많은 ‘혁명 모범극’의 창법과 노래 가락을 배웠습니다. ‘마오××을 따르자’, ‘마오××을 목숨 걸고 수호하자’, ‘부모보다 마오××이 더 낫다’와 같은 구호 노래를 고함치듯 부르는 것도 수업 전후로 반복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나이가 좀 더 들자 저는 문예소설을 읽고 라디오 듣는 것에 푹 빠져들었는데, 모두 그 시절의 ‘혁명 문예작품’뿐이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상에서부터 감정까지 확성기 선전에 나오는 인물을 흉내 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이 누구를 타도한다고 하면 분명하게 그를 ‘우리의 적’으로 여겼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를 거쳐 대학입시 제도가 회복된 후 대학에 합격할 때까지, 저의 국어, 정치 성적은 항상 뛰어났고 교과서에 있는 마르크스·레닌 글과 이른바 ‘유물변증법’, ‘변증법적 유물론’, ‘무신론’, ‘진화론’ 등의 개념과 표현을 매우 잘 외웠고, 그것들이 선전하는 ‘인류 사상의 정점’, ‘어디서나 통용되고 결코 무너질 수 없는 진리’라고 철저히 믿으며, 전혀 어색하거나 허황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비록 대학에 들어간 후 많은 서양 철학, 문학, 문화, 종교 분야를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당시 유행했던 문화대혁명의 죄악을 반성하고 문화대혁명의 피와 눈물을 고발하는 이른바 ‘상흔 문학’, ‘지청문학[도시에서 농촌으로 내려갔던 지식청년(知靑)들이 겪은 경험을 다룬 문학 작품]’ 작품도 읽을 수 있었지만, 그러한 다른 목소리들은 모두 무의식적으로 감정적으로 배척했습니다. 소위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은 주입된 사상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탐구와 사유조차 그 틀 안에서 기어 다니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중공이 모든 사회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하며, 생사여탈의 독재 권력을 가진 고압적인 환경 속에서는 중공을 높이 찬양하고, 중공에 충성을 맹세하며, 당 조직에 적극적으로 다가가야만 이익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자발적으로 중공의 사상 이론과 정책을 배우고, 관철하며,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은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일반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따라서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에 들어가 경력과 다양한 지식이 더해져도 머릿속에 굳게 자리 잡은 당문화의 사상 틀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도덕이 땅에 떨어진 ‘게 구멍’ 속에서 허우적대다
중공의 폭정이 사회 전반을 철저히 통제하고 지배하는 중국 사회에서는, 중공 체제 내부의 관료사회이든 민간 지역사회이든 간에 사람들은 인·의·예·지·신의 도덕적 전통을 잃어버렸으며, 사회 전체가 타락하고 부패했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이 사회는 겉으로는 모두가 평범하지만 사실은 커다란 ‘게 구덩이’와 같아서 사람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서로 계산하며 물고 뜯다가, 올라가지 못하면 아래에서 썩을 수밖에 없어 이미 악취가 진동해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인적으로도 주변 관료들은 서로 중상모략하고 뇌물을 주고받으며, 파벌을 지어 이익을 챙기고 배척하며 모두가 서로를 적으로 삼고 질투와 시기, 원망으로 가득 차 폭력적인 기운으로 충만했습니다. 1989년 ‘6·4’ 대학살 사건(천안문 사건) 이전에 수많은 사람이 학생들을 거리로 나가도록 앞장서서 부추기고 지지하며, 천안문 광장에서 단식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학살이 발생하자 모두 입을 닫고 침묵했고 곧바로 180도 태도를 바꿔 “분쟁을 반대”하고 “확고하게 당을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뚜렷하게 입장을 표했습니다. 시비가 혼동되고 절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이렇게 표리부동한 이중인격,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 거의 모두가 계략하고 계산적으로 말하곤 했습니다. “무슨 고상함과 숭고함이 있겠는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빨리 돈을 벌어 잘 사는 것이야말로 진리다.” 그래서 나중에 중공이 정부 기관의 ‘샤하이(下海, 무급휴직)’를 요구했을 때, 저와 몇몇 젊은 기관 동료들은 곧바로 무급휴직을 신청해 장사길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몸에는 이미 중공 관료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고, 사고방식에는 당문화의 관념 틀을 갖고 있어서 처음부터 정상적인 장사를 하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관료 사회의 인맥을 이용해 조급하게 성공하고자 했으며, 편법과 심지어 위험한 길을 택해 돈을 벌고 큰돈을 벌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회사의 첫 사업은 성(省) 외무무역국의 70여 세의 퇴직한 오랜 간부와 손을 잡고 시작했습니다. 그 간부는 과거에 충분히 부정부패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시기와 불평으로 가득 차, 이 기회에 큰돈을 챙기려 했습니다. 당시 성 외무무역회사가 들여온 합판을 두고 우리는 이익을 절반씩 나누자고 약속하고, 그가 체면을 버리고 현직 관리들을 협박하도록 부추겼습니다. 물품 인도증을 전매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첫 거래에서 약간의 돈을 벌었습니다. 다음 거래는 산둥 지역의 은퇴한 지방위원회 서기와 협상한 일이었는데, 긴급하게 필요한 2천 톤의 휘발유 거래 가격을 두고 흥정을 했습니다. 그는 현지 석유회사 사장과 은행 직원까지 대동하고 와서, 가격을 낮출 수는 있지만 반드시 전액 현금 일시불 결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당시 그만한 현금을 마련하지 못해 결국 그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다음 해에 그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그들이 판 휘발유는 국무원이 특별히 승인한 현지에 지급한 가뭄 구호 물자였던 것입니다.
그 시기 우리가 ‘협력’했던 이른바 ‘장사꾼’은 중령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군 기업에 소속된 가짜 장교도 있었고, 국영기업 창고에서 텔레비전을 훔쳐내 되파는 기업 간부도 있었으며, 전국 상품교역회에 다니며 ‘물건 도착 후 대금 지급’ 계약만 체결하고 결코 돈을 지불하지 않는 사기꾼도 있었습니다. 또 사기꾼을 도와 장물을 처리해 돈을 번 검사 가족, 채권추심으로 부수입을 챙기던 비리 경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사생아라고 사칭하며 정부 주요 건설 프로젝트를 가로챈 기업가, 소규모 유랑 극단을 꾸려 중앙 텔레비전 방송국 유명 감독이라 속여 막대한 투자와 후원을 받아 결국 정말로 영상계 거물이 된 문화인 등등 별별 사람들이 오갔습니다.
어떤 거래는 우리가 실제로 벌기도 했지만, 어떤 것은 우리 돈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빚을 받으려 독촉하고, 다른 이가 우리에게 빚을 받아내려 달려들며, 서로를 속이기 위해 머리를 짜내 서로의 돈을 빼앗아 자기 돈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명리(名利, 명예와 이익)의 장(場)에서 교제 폭이 점점 넓어지면서, 제가 예전에 썼던 오래된 대본 하나가 나중에 유명 감독이 된 사람 손에 들어가 투자를 받아 영화로 제작됐습니다. 뜻밖에도 방영 후 국가급 대상을 받으며 영상계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 후 여러 영상 제작 기관에서 계속 원고 요청이 들어왔고 제 각본도 연이어 영상으로 제작됐습니다. 언론은 저를 두고 이른바 ‘저명한 시나리오 작가’, ‘작가’로 보도하기 시작했고, 저는 그것이 더 큰 명예와 이익을 얻고, 계급 상승을 실현할 수 있는 ‘황금 열쇠’를 손에 넣은 듯했습니다.
이것이 과연 성공한 인생의 길일까요? 스스로도 점점 더 거짓으로 가고, 점점 더 본래의 진실한 감정과 즐거움을 잃어버렸으며, 점차 더욱 세속의 흐름에 따라 냉혹하게 타락해 갔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저 자신이 당문화의 관념 틀에 갇혀 휘둘리며, 이미 끝없는 심연으로 향하는 어둡고 위험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좋은 고양이”, “소리 내지 않고 큰돈을 벌자”, “분투”, “투쟁” 등 당문화 관념으로 가득 찬 무신론자, 진화론자, 유물변증법 신봉자였던 저는 사람과 자신을 고급 동물로 여기고 세상을 약육강식의 어두운 밀림으로 보며, 늘 인생은 어떻게든 ‘피를 뚫고 길을 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을 믿지 않고 하늘의 징벌과 인과응보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이와 다르게 행동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행운으로 대법을 얻어 속박에서 벗어나다
중공에 의해 주입된 사상 상태에서, 친척이 저에게 파룬따파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을 권했을 때 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수련해서 신이 된다? 우주 공간에 고급 생명이 존재한다?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너무 우습다.’ 그러나 다행히 어릴 때부터 안 본 책이면 다 읽어보려는 습관이 있어서 사부님의 책을 받아 와 점점 더 진지하게 정독하게 되었고 끝까지 읽었습니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과거에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던 많은 문제들이 하나하나 해결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전에는 동서고금의 책을 다 봐도 만족스러운 해답을 찾을 수 없었는데, 여기에서 모든 의문이 시원스레 풀리는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동안 굳게 믿었던 당문화의 개념과 이론, 사상 관념의 틀이 하나하나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줄곧 어두운 동굴에 갇혀 있던 사람이 단번에 동굴 입구로 이끌려 나온 듯, 눈앞이 확 트이면서 청명하고 투명한 광명이 펼쳐졌고, 행복과 감사의 마음이 바다처럼 차올랐습니다.
깨뜨릴 수 없을 것 같았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이론과 개념은 아주 쉽게 허점과 오류가 드러났습니다. 예를 들면, 소위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물질이 의식을 결정하며, 그러한 물질이 없으면 그러한 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존재해온 신에 대한 의식과 개념은 어디서 생겨난 걸까요? 이는 신의 물질적 실체가 원래부터 실재했음을 증명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소위 ‘진화론’은 세상의 모든 생물이 단순에서 복잡으로, 저급에서 고급으로 점차 진화하며 사람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한 생명체가 진화를 멈춘 것일까요? 멈추지 않았다면 그다음 단계는 더욱 고급 생명으로 진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무신론이 근본적으로 성립할 수 없음을 완전히 증명하는 것입니다. 또 소위 ‘유물변증법’은 진리를 인식하려면 반드시 “전면적이고, 발전적이며, 보편적 연관의 관점으로 문제를 봐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전면’, ‘발전’, ‘보편’의 정도와 범위의 기준은 어떻게 정의할까요? 정도와 범위의 기준을 말하지 않고, 이러한 지표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정도에 도달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사실 이러한 변증법은 억지를 부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부님의 《전법륜》을 읽으면서 사부님께서는 단 몇 마디 말씀으로 이 문제를 충분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부동(不同)한 층차(層次)에는 부동한 층차의 법이 있다”, “수련하는 사람이 어느 층차까지 수련되면 다만 그 층차 중의 불법의 구체적인 체현을 인식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수련한 과위(果位)ㆍ층차(層次)다.” 각 경지의 층차에 있는 사람은 그가 보는 전반적이고 보편적인 발전 과정의 한 단락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오직 높은 층차의 경지로 수련한 사람만이 그 이하의 층차를 내려다보며 모든 진리와 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단숨에 《전법륜》을 다 읽은 그날 밤, 저는 진정한 대법 수련생이 되어 진선인 우주의 근본 특성과 동화하여, 제 생명이 더 높은 층차의 경지로 승화하도록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심신의 변화, 환골탈태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전에는 마음이 좁아서 질투심, 과시심,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과 보복심이 매우 강했습니다. 예전에는 누군가가 빚을 지고 갚지 않으면 반드시 악의적으로 질질 끌며 갚지 않는다고 여겨, 온갖 방법을 써서 돈을 받아내려 했고, 심지어 못살게 굴며 보복을 가해 상대가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대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며 협력과 우정이 더욱 견고해지도록 했습니다. 정말 어려움이 있어 빚을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도 관대하고 포용하는 태도를 취해 수련인의 평화로운 마음 상태가 이런 일에 교란받지 않도록 했습니다.
어느 날은 변기가 막혀 인터넷에서 배관공을 불렀는데, 플랫폼에서 이미 총비용 80위안으로 합의가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 사람은 사납게 생긴 대머리 사내였고 오자마자 500위안을 요구하며 동의하지 않으면 80위안을 출장비로 내고 다른 사람을 부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에서 과거 제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고 전생에 이 사람에게 빚을 졌을 수 있으며 이는 빚을 받으러 온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뚫는 과정은 너무 간단해서 단번에 해결되었고 결국 저는 그에게 300위안을 주며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우리집에 세 들어 사는 할머니가 변기 뚜껑을 옮기다 떨어뜨려 부서졌습니다. 할머니는 물에 미끄러져 떨어진 것처럼 거짓말하며 저에게 새것으로 갈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저는 따지지 않고 즉시 돈을 내어 새 변기로 교체해 드렸습니다.
겨울에 여성 세입자가 난방기의 배기밸브를 고장 내 뜨거운 물이 집을 잠기게 했습니다. 그녀는 저를 불러 “당신 집의 난방기가 오래돼 낡아서 그런 거니 당신이 돈을 내고 고쳐주세요. 물이 튀어 오염된 스프링 매트리스도 새것으로 바꿔야 합니다”라고 불평했습니다. 저는 “알겠어요, 당신이 이 일로 화를 내지 않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다 처리해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아래층 이웃이 찾아와 “당신 집 난방수가 새서 우리 집 이불이 다 젖었으니 새 이불을 사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시장에서 새 이불 한 세트는 100위안이면 되는데, 그는 이불을 사지도 않고 시장에서 700위안이 넘는 영수증을 가져와 저에게 청구했습니다. 저는 따지지 않고 그 영수증대로 돈을 건네주었습니다.
당시 아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이렇게 분별 없이 손해만 보면 오히려 상대의 탐욕과 간사한 마음을 키우는 게 아닐까요?”라고 물어 저는 대답해 주었습니다. “수련인은 다만 진선인 대법에 따라 일을 할 뿐, 마음에 부끄럽지 않으면 된 것이다. 상대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는 우리가 그렇게 따질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저 자신의 선함을 지키면 되고,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지 남을 수련시키는 것도 아니며, 더구나 일반 사람을 수련시키는 것도 아니다.”
사실 요즘 모든 사람이 쉽지 않고 사회 전체에 사악한 기운이 가득합니다. 수련인이 이런 돈과 관련된 작은 일에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좋은 마음을 전할 수 있으면, 어쩌면 이런 일을 통해 누군가의 원망과 보복하려는 생각을 버리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공덕이 무량한 것 아닐까요? 그러므로 수련인이 다른 사람을 무조건 선하게 대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한동안 수련한 후 심성이 제고되고 외모도 갈수록 젊어 보였습니다. 어느 날 직장에서 한 여직원이 묻기를 “요즘 무슨 화장품 쓰세요? 피부가 눈에 띄게 보드랍고 매끄러우면서도 윤기가 나요”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보약을 먹지 않고 고급 화장품도 쓰지 않았는데, 한 남자의 피부가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심성을 수련하여 경지가 향상되자 중공 악당 문화와 이데올로기의 본질과 해악을 철저히 꿰뚫어 보게 됐고, 자연히 예전처럼 중공을 미화하는 글을 써서 양심을 속이며 돈을 버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명리를 강구하는 온갖 뇌물과 접대가 사라졌고, 신체가 건강해져 병이 없으니 약을 먹거나 입원하거나 영양제를 사는 비용이 들지 않았으며, 온갖 방종한 욕망의 취미를 버리고 마음을 깨끗이 하며, 인간관계 속에서 정상적인 사람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실 큰돈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거짓 태평을 꾸미지 않고, 중공 악당을 찬양하는 어떠한 글쓰기 항목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많은 일반인들이 저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유입니다.
어느 날,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유명 감독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어느 지역에서 대형 경찰·범죄 드라마를 찍고 있는데, 대본에 문제가 생겨 당신이 와서 수정해 주십시오. 보수는 충분히 사례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는 모처럼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며 매우 화를 냈습니다. 제가 더 이상 명리에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 여러 드라마 감독과 프로듀서들이 와서 저를 설득했습니다. “이곳은 공산당의 세상이잖소. 당신은 문화로 먹고사는 사람인데, 어렵게 분투해서 오늘날 쉽게 성공할 수 있는 좋은 국면을 얻었는데, 그걸 포기 하다니 바보 아닙니까? 진선인 신앙을 버리라는 게 아닙니다. 예전처럼 우리 같이 돈을 벌자는 것뿐입니다. 이 공산당의 돈은 벌기 쉽잖아요. 이 나쁜 놈들을 속여 버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들은 저를 설득할 수 없었고 돈과 명리로 저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하나둘씩 돌아섰고, 더는 초대하거나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사상 깊은 곳이 여전히 당문화의 족쇄에 얽매여 있는 일반인들은 더욱 그러하며, 그들이 보고 추구하는 것은 눈앞의 물질적 이익과 손실뿐입니다. 마치 흙 속의 지렁이가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무신론, 진화론, 물질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상의 속박을 타파하지 못한다면 미혹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흐리멍덩하게 중공 악령을 따라다니다 하늘의 징벌을 받는 것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련인들이 최선을 다해 진상을 알리는 이유이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악마의 잔혹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맺음말
위의 제 경험을 쓴 것은 단지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파룬따파는 진정한 정법으로, 박대정심(博大精深)하며, 비할 바 없이 심오하여 수련인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당문화의 족쇄와 미혹을 타파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는 그 어떤 종교나 다른 수련 방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며, 이것은 제가 몸소 체득한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중공 당문화에 의해 사상과 감정이 통제된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합니다. 당신이 중공 체제와 조직 안에서 어떤 이익을 얻었든, 지금 권세와 부를 가졌든 상관없이 부디 눈을 뜨고 말세 최후의 시기의 진정한 위험을 똑똑히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진선인 대법 편에 서서, 공산 악령의 족쇄와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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