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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따파가 나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진정으로 수련에 들어선 지 이제 10년째다. 이 10년이 안 되는 수련을 통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는 정말로 나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아래에 나의 수련 과정을 써서 여러분과 나누고 사부님께 보고하며 파룬따파와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1. 수련에 들어서 고난에서 벗어나다

2015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나는 직위든 수입이든 이미 기술자로서 정점에 도달했고 회사에서는 기술 고위 관리자였다. 하지만 업무상의 압박으로 숨 막힐 지경이었고 한동안 불면증까지 생겼다. 해결할 수 없을 때 나는 소림사에 가서 해탈의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소림사 벽에 있던 ‘단비구법(斷臂求法)’ 이야기가 나를 깊이 감동시킨 것이 기억난다. ‘도대체 어떤 힘이 혜가(慧可)로 하여금 팔을 잘라 법을 구하게 했을까?’ 의문을 품고 다시 현실의 업무를 마주해야 했다.

아마 인연이 다다른 것 같았다. 그해에 여러 번 시험을 보는 꿈을 꿨는데 아무 문제도 풀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문제도 풀 수 없어서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다. 소림사에서 돌아온 후 단비구법 이야기를 찾아봤다. 다시 시험을 보는 꿈을 꿨을 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혹시 내가 다시 수련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학창 시절 파룬따파를 반년 정도 배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중공)이 박해를 시작한 후 대법을 마음속에 묻어두고 그 이후로는 감히 자신이 대법을 배운 적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해에 소중히 간직했던 대법 보서 『전법륜(轉法輪)』을 꺼내 책을 보기 시작했다. 책을 보면서 마음속의 의문들이 점차 풀렸고 업무 중의 압박을 담담히 마주할 수 있었다. 그저 자신의 일을 잘하고 결과가 어떻든 순리에 맡기고 담담히 받아들였더니 마지막에 위기가 기적적으로 해결됐다.

이후 한 기회로 인터넷 봉쇄를 뚫고 명혜망을 볼 수 있게 됐고 사부님의 경문을 다운로드했다. 보면서 눈물을 흘렸고 자신이 십여 년의 시간을 낭비한 것을 후회했으며 사부님께서 여전히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러 차례 일깨워주셔서 마침내 나를 수련 중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에 감사드렸다.

법공부를 통해 수련인으로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너무 많이 뒤처진 것 같아서 나는 스스로 규정을 정했다. 매일 수십 장의 자료를 배포하고 얼마 시간마다 한 주거 단지를 다 돌겠다고 생각했다.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매우 강한 채로 했고 또한 발정념(發正念)도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것도 형식만 갖췄을 뿐이었다.

결국 불법적으로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다. 이후에 또 나를 구치소에서 직접 세뇌반으로 보냈다. 법공부를 겨우 반년 한 나에게는 이 고비가 매우 컸다. 법공부가 부족해서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와 『논어』만 기억했다. 결국 이 고비를 넘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후 직장에서 완곡하게 해고하고 싶다는 뜻을 표했고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곤란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사직했다. 직장을 잃고 친구를 잃었으며 가족의 압박과 주변의 끊임없는 각종 공공연하거나 은밀한 감시가 있었다. 공포가 큰 산처럼 다가왔으니 말 그대로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홍음-마음고생)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오직 법공부뿐이었다.

1년여 동안의 법공부를 통해 점차 수련의 함의를 깨달았고 수련의 결심을 굳혔다. 고향에서 이 1년여 동안 나는 최선을 다해 잘했고 집안일을 많이 하며 어머니를 돌봤다. 가족들이 점차 더는 원망하지 않았다. 이후에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 기구)이 계속 가족들에게 전화해서 가족들에게 매우 큰 압박을 가했다. 나는 직장이 있던 도시로 돌아가 직접 마주하기로 했다.

돌아가는 도중에 마침 태풍이 있어서 줄곧 광풍과 폭우였다는 것이 기억난다. 나는 울면서 운전했고 앞으로 마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1년여의 법공부로 이미 수련의 결심을 굳혔다. 막 집에 도착하자 610,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파출소, 거주 위원회 일행 5명이 집에 왔다. 그들이 사진을 찍으면 나는 지우라고 했다. 그들이 또 나에게 물었다. “연공하는가?” 나는 말했다. “연공합니다! 만 번 물어도 연공합니다!” 이후 나는 또 불법 압수당한 컴퓨터를 되찾기도 했다.

나는 관심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의 생활은 항상 ‘관심’ 속에 있다. 정말 고통스럽다! 외출하면 누군가 미행하고 특히 중공 악당이 회의할 때는 그들이 아예 복도에 조명을 설치해 24시간 문 앞에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상의할 사람도 없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진상을 말하는 것이 만능열쇠이다. ”(각지 설법4-2003년 애틀랜타 법회 설법)

나는 매일 오전에 법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복도에 가서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이렇게 천천히 모두 익숙해졌고 그들도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나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매우 선량한 사람들이었고 기본적으로 모두 외지 사람으로 진상을 모르는 상태였다. 그들이 진상을 알게 된 후 태도는 대부분 좋아졌다.

이후 어떤 사람이 나에게 연락해서 그의 회사에서 일하기를 희망했고 나는 또 출근하기 시작했다. 내가 출근하면 그들이 뒤따라왔고 매번 출근할 때마다 나는 몇 번씩 차를 갈아타며 그들을 따돌려야 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매우 바짝 미행해서 나는 화가 나 그에게 화를 냈던 것이 기억난다. 그날은 매우 추웠고 밖에는 눈이 내렸으며 복도도 꽤 추웠다. 나는 문득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선자(善者)는 늘 慈悲心(츠뻬이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정진요지-경지) 내 눈시울이 빨개졌고 정말 그들이 매우 불쌍하다고 느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후 그가 복도에 있는 것을 보고 주머니에서 사탕 한 개를 꺼내 그에게 주며 말했다. “오전에 제 태도가 좋지 않았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이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9년의 시간을 거쳐 나는 세 명의 파출소장에게 진상을 알렸다. 길에서 끌려가고 강제로 지문을 채취당하면서도 나를 박해하는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다. 내가 대법의 요구에 따라 ‘안으로 찾고’ 자신을 수련하며 타인을 선하게 대하는 과정에서 주변 환경도 점점 더 느슨해졌다.

2. 업무에서 모든 작은 일을 잘하다

내가 다시 일하게 된 후 첫 번째 직장은 해외 설계였다. 이것은 이전 업무와 차이가 컸다. 하지만 매번 난제를 만날 때마다 항상 사고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지막에 나는 신입이었지만 다른 사람보다 두 달 빠른 시간에 설계를 완성했다. 사장님이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을 안 후 압박이 매우 클 것을 고려해 이 회사를 떠나 지금의 회사에 왔다.

회사 주차 공간이 부족해서 모두 출근할 때 여기저기 주차 공간을 찾아야 했다. 주차 공간을 찾는 데도 십여 분이 필요해서 모두 기본적으로 먼저 회사에 가서 출근 체크를 한 다음 다시 차를 몰고 주차 공간을 찾으러 갔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는데 나중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나는 수련인인데 이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진(眞)’을 하지 못한 것이니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15분 일찍 나가기로 했다. 먼저 차를 세우고 나서 출근 체크를 하기로 했다. 지각하더라도 먼저 체크하고 나중에 주차하지 않기로 했다.

저녁에 야근할 때는 정시로 계산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시간을 맞추기 위해 출근 체크기 옆에서 기다렸다가 시간이 되면 체크했다. 나도 점차 자신을 바로잡았다. 때로는 50여 분 야근을 해도 체크할 때 한 시간이 안 되면 야근 시간으로 계산되지 않았다. 가끔 조금 불공평하다고 느껴도 점차 마음을 내려놓았다.

우리 회사 제품이 전기 설비 원인으로 고객의 불만을 받았는데 우리는 전기 설비 품질 문제라고 여겼다. 구매 부서가 공급업체와 소통한 후 설계 원인이라고 했고, 또한 회사 총경리도 설계 원인이라고 여겼다. 내가 설계 책임자이기 때문에 압박이 매우 컸고 변명할 곳이 없었다. 고객 불만과 영업 부서의 압박에 마주해서 정말 백 개의 입으로도 변명할 수 없었다. 나는 이것이 아마도 내 업력으로 인한 것이니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난 것이니 내가 해결해야 하고 선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른 브랜드 공급업체를 찾고 공장을 검사했다. 공급업체는 이 문제가 제품 품질 문제라고 확인했지만 증거가 없으면 여전히 안 됐다. 책임자의 지지하에 다른 브랜드 전기 설비 일부를 구매했다. 교체 후 이 브랜드에도 문제가 나타났다. 구매 부서는 이것도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모두 설계 문제라고 제기했다. 또한 원래 공급업체도 이에 대해 더 이상 책임지지 않겠다고 표했다.

회사 구매부, 영업부, 총경리가 모두 기술 부서에서 해명을 요구했다. 나는 정말 압박이 산더미 같았다. 마지막에 나는 기본적으로 인근 지역의 여러 공급업체를 모두 상담해 봤고 품질 문제임을 확인했으며, 한 공급업체가 우리를 위해 보고서를 써주겠다고 했다. 우리가 일정한 서비스비를 지불한 후 실험을 하고 보고서를 줬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자신의 억울한 마음, 원망심, 쟁투심을 봤다. 이 일이 해결된 후 구매부는 나에게 압박을 가한 것에 대해 조금의 미안함도 없었지만 나는 매우 평온했다.

10년이 안 되는 수련을 거쳐 자신이 완전히 변했다고 느낀다. 사업의 정점에서 박해받고 실업하고 공포에 떨며 사람을 감히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시 일어나 계속 수련하는 것에서부터 지금 당당하게 괴롭힘과 오해를 마주하기까지, 지금의 나는 비록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렀지만 동년배보다 몸이 훨씬 좋고 또한 보기에도 정신이 좋고 젊다.

파룬따파가 나를 완전히 변화시켰고 파룬따파의 홍은(洪恩)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파룬따파와 은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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