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수련이 부족해 정진하는 많은 수련생들과 비교하면 매우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가정 자료실 운영에 관한 수련 체득을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1. 가정 자료실의 시작과 운영
1) 우리집 ‘작은 꽃’이 처음 피어나다
1999년 중국공산당(중공)이 대법을 박해하기 전, 저는 직장의 컴퓨터 교육에 참가해 타자법과 컴퓨터 기본 조작을 배웠는데, 이것이 나중에 진상 자료를 만들어 사람을 구하는 기초가 됐습니다. 2000년에 집에 데스크톱 컴퓨터, 레이저 프린터, 스캐너를 구입했고 곧 사용법을 익혔습니다.
2002년 겨울이 되어서야 직장에서 진상 소책자를 한 권 주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박해받는 진상을 알게 됐고, 다시 수련의 길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부님 설법을 통해 대법제자에게 사명이 있음을 알게 됐을 때, 진상 자료로 중생을 구하는 것이 제가 가야 할 사람을 구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의 일깨움으로 한 수련생과 연락이 닿아 가끔 진상 소책자를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2003년부터 받은 소책자를 스캐너로 스캔하고 프린터로 인쇄한 후 벽지칼로 재단하여 제본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진상 자료를 만들 때는 사악한 요소들이 저를 위협했습니다. 한번은 스캐너로 자료를 스캔하는데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마치 스캐너에서 나는 소리처럼 느껴져 급히 기계를 껐습니다. 아래층을 내려다봤지만 아무 일도 없이 조용했습니다.
2004년 아이 학교 문제로 학군에 집을 임대했습니다. 남편이 사람을 불러 전화선으로 인터넷을 연결해줬습니다. ‘내가 직접 명혜망에 접속해서 자료를 내려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수련생 말로는 명혜망 접속이 집안일처럼 간단하다고 했는데 저는 아무리 해도 접속이 안 됐습니다. 그래서 수련생과 함께 외지로 가서 연락 가능한 수련생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했습니다. 아마 안전상의 이유로 외지 수련생은 우리를 만나지 않고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CD에 우회 접속 소프트웨어가 있어 쉽게 접속할 수 있다고만 알려줬습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에 연결하고 ‘9평’ CD를 컴퓨터에 넣어 우회 접속 소프트웨어를 찾았지만 여전히 명혜망에 접속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CD 안의 음성을 들어보라고 점화해주셨습니다. 음성 설명대로 작은 비둘기 아이콘을 더블 클릭하자 하늘색 명혜망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너무나 기뻐서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때부터 마음대로 명혜망에 접속해 각종 자료, 소책자, 음성, 영상 파일 등 필요한 모든 것을 내려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컴퓨터에 어떤 안전 보호 장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룻밤 사이에 모든 ‘9평’ 음성 파일과 대량의 매일 명혜 글을 내려받았습니다. 사악에게 발각되지 않은 것은 모두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덕분이었습니다.
나중에 우리 시의 기술 수련생과 연락이 닿았고, 그가 안전 시스템이 완비된 중고 노트북과 캐논 컬러 잉크젯 프린터를 가져왔습니다. 저는 금목걸이와 반지를 팔아 5천 위안을 마련해 그에게 줬습니다.
2) ‘작은 꽃’이 더욱 화려하게 피어나다
기술 수련생의 도움과 지도로 자료 제작이 물 만난 고기처럼 순조로워졌고, 우리집 ‘작은 꽃’은 더욱 화려하게 피어났습니다. 명혜망에 수련생들이 디자인한 진상 자료는 점점 더 아름다워졌고, 제가 만든 자료도 보기 좋아졌으며 종류도 다양하고 완벽해졌습니다. 진상 CD 굽는 법도 배웠고 진상 달력 등도 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직접 나가서 붙이고 배포했고, 나중에는 직장 수련생들에게 제공했으며, 그 후 현지 협조 수련생과 연락이 닿은 후에는 현지 대부분의 수련생들에게 제공했습니다.
때로는 자료 제작에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한번은 집에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너무 배가 고파 우유 한 팩을 마셨는데, 그 우유는 이미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것이었습니다. 저녁에 속이 메스꺼워 구토했고 온몸에 힘이 빠져 앉아 있을 수도 없어 남편에게 기대어 토했습니다. 처음에는 쓴맛이 나서 ‘담즙이 나오나?’ 싶었는데, 나중에는 짠맛이 나서 눈을 떠보니 피를 토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깜짝 놀라 병원에 데려가려 했지만 저는 괜찮다며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저를 구해달라고 빌었고, 파룬이 제 몸속에서 ‘윙윙’ 돌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사부님께서 독소를 제거해주신 것이라 생각하니 정상으로 회복됐습니다.
3) 진상 자료 배포
처음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나갈 때는 달이 없고 바람이 센 밤을 골라 주변 농촌에 배포했습니다. 바람이 몸을 관통하는 것 같았지만 춥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한밤중에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이 화낼까 걱정했는데, 남편은 웃으며 문을 열어주고 전혀 걱정하거나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자를 격려하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현지에서 자료를 배포하는 것 외에도 친정에 갈 때마다 고향 사람들에게 이 귀중한 선물을 가져다줬습니다. 친정아버지, 여동생, 조카딸들이 모두 저를 도와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때로 어머니께서 기차가 안전하지 않다며 미리 전화로 자료를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혜롭게 자료를 다른 물품의 포장상자에 넣고 테이프로 붙였습니다. 어머니께서 그것을 보시고 “이 방법이 좋겠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번은 설 연휴에 기차 검문이 매우 엄격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남편이 직장 운전기사가 제 친정 쪽으로 갈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부님의 안배라고 생각하고 진상 자료를 가지고 아이와 함께 그 차를 타고 고향에 갔습니다.
2. 꽃을 보호하는 거름이 되기를 원하다
명혜망에서 자료 거점을 곳곳에 꽃피우자는 제안 이후 현지에서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이 많아졌고, 이에 따라 기계와 소모품 구매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느 날 협조인 집에서 한 수련생을 만났는데, 그가 제게 구매 업무를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안 돼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상인과 소통하는 방법, 업계 용어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제공해줬습니다. 저는 공책에 기억하지 못한 것을 적어놓고 천천히 연구하고 소화하고 이해했습니다. 점차 상인들과 거래하는 법을 배워 이 임무를 맡게 됐습니다.
1) 프린터 구매
한번은 기차를 타고 수백 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프린터 대리점과 연락했습니다. “모 모델 프린터 한 묶음을 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억양이 현지 억양과 비슷해서 그는 저를 현지 실물 가게 주인으로 여기고 창고 위치를 알려주며 직접 물건을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작업복을 입고 창고에 가서 발주 담당자에게 도매가로 기계 한 묶음을 받았습니다. 기계를 끌어낸 후 미리 준비한 포장봉투로 기계를 하나씩 씌우고 테이프로 묶어서 발송했습니다.
두 번째는 대리상과 미리 연락해 또 한 묶음의 기계를 원한다고 하고 물건 가져갈 날짜를 정했습니다. 다시 작업복을 입고 창고에 갔는데, 그 기계들이 아직 운송 중이라 먼저 가게로 돌아가서 내일 다시 와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멀리 왔는데 헛걸음할 수 없다. 오늘 반드시 물건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을 돌며 음식을 좀 먹었습니다. 오후에 다시 창고로 가서 재촉했고, 마침내 이 기계들을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서둘러 지난번처럼 발송했습니다.
2) 수련생들의 소모품 구매를 돕고 귀인의 도움을 얻다
최근 몇 년간 계속 필요한 수련생들의 소모품 구매를 도왔는데, 그곳에서는 진상 자료 배포가 매우 잘 됐습니다. 모두가 협력해서 배포했기 때문에 진상 간행물, 달력 등에 대량의 소모품이 필요했습니다. 매년 수만 위안 어치를 구매했습니다.
한번은 수련생에게 물건을 배달하고 돌아오는 길에 길을 잃었습니다. 우회전해야 하는 구간에서 우회전하지 않아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휴대폰도 없고 내비게이션도 없어서 운전하면서 길을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먼 길만 살피고 눈앞의 길을 소홀히 했더니 갑자기 ‘쾅’ 소리가 났습니다. 급히 차에서 내려보니 앞바퀴가 1미터 크기의 큰 돌판 위로 올라갔고, 이 돌판이 길 가운데 큰 구덩이에 빠져 차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겁이 났습니다.
지나가는 차량 운전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 바삐 지나갈 뿐 아무도 내려서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큰 크레인을 찾아 들어 올리세요”라고 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어디 가서 큰 크레인을 찾겠습니까? 정말 어쩔 수 없어서 사부님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사부님, 제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께 도움을 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검은색 승용차가 다가오더니 젊은이 두 명이 내렸습니다. 그들이 곧장 걸어와서 제가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두 사람이 자세히 살펴보더니 옆에서 돌을 찾아 앞바퀴 뒤에 놓고 후진을 시도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떠날까 봐 “두 분은 떠나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당신을 도우러 왔으니 떠나지 않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서둘러 차에 올라 후진 기어를 넣고 세게 가속 페달을 밟으니 차가 단번에 빠져나왔습니다. 이 두 젊은이에게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들이 떠나는 것을 배웅했습니다.
3) 상인을 선하게 대하고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다
전염병 기간에 소모품 한 묶음을 구매하려 했습니다. 전화로 연락한 상인은 한 젊은이였는데, 알려준 가격이 예전보다 조금 저렴했습니다. 가격이 인하된 줄 알고 돈을 송금하고 물건이 도착하기를 기다렸습니다. 나중에 그가 전화해서 저를 다른 큰 고객으로 착각해 가격을 잘못 알려줘 600위안을 덜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실 물건은 이미 주문이 확정됐고 그 자신의 문제였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됐습니다. 게다가 같은 물건인데 왜 사람마다 구매 가격이 다를까요? 하지만 저는 대법제자이고 사부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회사에는 큰 고객에게 할인해주는 정책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전염병 기간에 물건 파는 것도 쉽지 않고 그에게도 판매 실적이 있으니 600위안을 더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제게 억울함을 토로했을 뿐인데 정말로 보충해줄 줄은 몰랐다며 매우 기뻐했습니다. 비록 이럴 때 진상을 말해줄 수는 없었지만, 대법제자의 선을 그에게 남겨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유사한 일이 또 많이 있습니다. 제가 위챗을 사용하지 않아서 물건을 반품, 교환, 배달하는 비용을 현금으로 거슬러 줘야 해 세인에게 확실히 번거로움을 줬습니다. 이런 상황을 만날 때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거나 아예 잔돈은 받지 않고 팁으로 줬습니다. 나중에는 매번 잔돈을 많이 준비해서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4) 프린터 유지 보수
자료실이 곳곳에 꽃핀 후 프린터 유지 보수 역시 필요한 일이 됐습니다. 저 스스로 자료를 만든 수년 동안 기계에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고 작은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련생들의 기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고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기술 수련생이 직접 기계 작동 원리를 먼저 이해하고 고장 판단의 사고방식과 방법 등을 가르쳐줬습니다. 그 수련생은 자주 성공 사례를 공유했고, 저도 자주 천지행 포럼에 질문하고 배우면서 경험을 쌓은 후 프린터 수리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계가 순조롭게 수리되면 매우 기뻤고, 잘 수리되지 않거나 고쳐지지 않을 때는 실망했습니다. 저는 자신의 원망심, 환희심, 더러움을 싫어하는 마음을 보았고 그것들을 수련해 없애려고 노력했습니다.
5) 자료실 안전 보호
교란과 박해를 피하기 위해 자료실을 다섯 번 이전하고 소모품 보관 장소를 일곱 번 이전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이 한 번 한 번의 운반과 연마를 통해 밀라레빠 부처의 수련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밀라레빠 부처의 사부는 그에게 집을 지었다가 다시 허물게 하기를 반복했지만 그는 원망 없이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겪은 이 작은 고통과 피로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 과정에서 저의 부족함을 찾을 수 있었고, 세인과 같지 않게 심성을 단련하고 업력을 소멸했으니 이 모든 것이 큰 좋은 일이 아닙니까? 이 사람을 구하는 기계와 소모품의 안전을 잘 지켜서 우리가 사람을 구하는 작은 꽃이 시들지 않고 계속 피어나도록 확보하는 것이 저의 영광이자 사명입니다.
맺음말
20여 년간의 수련 과정에서 자료를 이용해 사람을 구하는 이 길 위에서 시시각각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살피고 격려하며 깨우쳐주시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단지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소망만 가졌을 뿐인데 사부님께서 가장 좋은 안배를 주셨고 제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사부님의 보살핌 아래 이루어졌음을 압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수련 시간 동안 꽃을 보호하는 거름이 되어 사람들을 많이 구하고 사명을 완성해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기를 원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4/29/4889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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