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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파룬따파하오’가 구치소 상공에 울려 퍼지다

글/ 지린성 대법제자

[명혜망] 20여 년의 수련 여정에서 저는 수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어떤 일들은 이미 희미해졌지만, 어떤 일들은 여전히 제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중 두 가지 사례를 들어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나누며,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보호하고 제도해주신 무한한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위급한 순간, 사부님께서 지혜를 주시다

2014년 10월경 어느 날, 저는 작은방에서 진상자료(진상 지폐와 소책자)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막 작업을 마쳤는데 아직 정리하지 못한 채 컴퓨터도 끄지 않고 프린터 2대도 치우지 않았을 때, 앞 동네의 M 수련생이 시내의 S 수련생을 데리고 왔습니다. 저와 S는 한동안 만나지 못했기에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때 마침 사부님의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이 발표됐는데, 평소 같으면 함께 한 번 읽거나 제가 낭독해줬을 겁니다(S 수련생은 인터넷을 못함). 하지만 그날은 왠지 모르게 제가 낭독해주지도 않았고 함께 법공부를 하지도 않았으며 그녀를 위해 인쇄해줄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부님께서 신경문을 발표하셨다고 알려주고 M에게 S의 자료 인쇄를 도와달라고 말했습니다(M도 자료를 만듦). 그러자 두 수련생은 가겠다고 했고 저는 ‘가세요, 다른 일 좀 하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잠시 더 교류하자고 만류했을 겁니다.

두 수련생이 떠난 지 5~6분쯤 지났을 때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밖의 사람에게 누구인지, 무슨 일인지 물으니 보일러 점검하러 왔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보일러 가동 전 배관에 물을 채우는 시기였기에 저는 진짜인 줄 알고 별생각 없이 문을 열었습니다. 문 앞에는 경찰 한 명과 사복 경찰 한 명이 서 있었습니다. 저는 멍하니 서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별일 아니라며 그냥 보러 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무엇을 보러 왔느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대답 없이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갑작스런 불청객의 등장에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작은방에 놓인 물건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멍해지고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았습니다. 다급한 상황에서 저는 사부님께 간절히 구했습니다. ‘사부님, 제발 도와주세요. 사부님, 저를 빨리 도와주세요!’ 그때 문득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에게 딸이 산후조리 중이라고 말해라.’(딸이 실제로 산후조리 중이었지만 이미 한 달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경찰은 다른 곳을 보지 않고 곧장 딸의 방으로 향했습니다. 두 걸음만 더 가면 딸의 방이었기에 저는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여기는 제 딸 방인데 지금 산후조리 중이에요. 저기 보세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앞서 가던 경찰이 몸을 돌리며 미안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저희는 돌아가겠습니다.” 그들이 작은방 쪽을 보지 못하도록 제가 몸으로 시야를 가렸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작은방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문밖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즉시 문을 잠그고 쿵쾅거리는 심장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아, 정말 아찔했어!’ 사부님께서 알려주신 그 한마디 덕분에 사악한 요소에 통제되던 경찰이 밖으로 나갔고 곧 닥칠 뻔한 박해가 해소됐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위급한 순간에 제자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저는 서둘러 작은방으로 가서 사부님 법상(法像) 앞에 무릎 꿇고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물건들을 깨끗하게 정리했습니다. 10분쯤 걸렸습니다. 막 앉아서 방금 일어난 일을 되짚어보고 있는데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번에는 문을 열지 않고 가만히 있었더니 누군가 위아래로 오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몇 분이 더 지나자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방금 있었던 일을 M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볼일이 있어 나간다고 말하고 누군가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니 두 사람이 옆집 문을 두드리려다가 저를 보고 말을 건넸습니다. “아주머니, 한 분을 찾고 있는데요. 50대 정도 나이 든 아주머니인데 흰머리가 섞여 있고 키가 작고 얼굴은 둥글어요.” 그 말을 듣고 저는 ‘S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이름은요?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모르겠어요. 이 건물로 들어가는 걸 봤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두 사람이 모두 제복을 입지 않은 사복 경찰임을 알아챘습니다.

저는 그들이 찾는 사람이 S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늘 밖에서 진상을 알리는데 우리집에 온 경찰도 그녀를 찾으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경찰에게 미행당한 것이 분명해 보였고 M 집에 있는지 확인하러 가야 했습니다. 저는 집을 나와 돌아가는 길로 M 집에 들러 방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제야 두 사람은 미행당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M은 길에서 S를 만났고 S가 함께 우리집으로 가자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집을 나오자마자 두 사람은 헤어졌고 S는 집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저는 M에게 S에게 빨리 연락하라고 말했습니다. M은 S에게 연락할 방법이 있다며 안심하고 집에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 마음은 매우 불안했습니다. 방금 일어난 아찔한 순간을 되돌아보며 왜 평소처럼 S를 붙잡지 않았는지 깨달았습니다. 사실 그것은 사부님의 보호였고 저에게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만약 우리 세 명이 모두 경찰에게 방에서 붙잡혔다면 그 결과는 정말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저와 M의 이 두 자료점도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자료점은 10여 년간 이 지역의 중생을 구원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날 밤 ‘파룬따파하오’가 구치소 상공에 울려 퍼지다

2016년 7월 20일 저녁 6시경, 저는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문에 달린 작은 구멍으로 보니 A 수련생이었습니다. 그녀는 교외에 살아서 저와 거리가 멀고 이렇게 늦게 온 적이 없었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그녀는 늦게 온 이유를 묻는 제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와 20여 개의 메모리 카드를 꺼내며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을 넣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날 밤 그녀는 처음으로 우리집에서 묵게 됐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딸이 저에게 외손자의 머리를 깎아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막 머리를 깎아주고 있는데 갑자기 사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당신들은 누구야? 뭐 하는 사람들이야?” 그 소리를 듣고 저는 서둘러 방에서 나왔습니다. 보니 경찰, 협력 경찰, 사복 경찰 등 3~4명이 사돈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틈을 타 집 안으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이어서 여경 두 명도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어디서 왔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종이 몇 장을 들고 흔들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느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소속입니다. 정식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누가 ○○○(제 이름)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저입니다. 왜 그러시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당신은 파룬궁을 수련합니까?”라고 물었고 저는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A가 제 옆에 있었는데 그 남자가 A에게 “당신이 ○○○(A 수련생 이름)이죠? 우리는 밖에서 밤을 새워 기다렸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우리 두 사람은 납치됐습니다.

그들은 먼저 A를 데려갔고 남은 사람들은 불법적으로 우리집을 수색했습니다. 제가 10년 넘게 운영했던 자료점은 순식간에 싹쓸이당했습니다. 이어서 그들은 잠옷 차림의 60대 노인인 저를 차에 태웠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차가 한 곳에 도착했는데 그 현의 한 파출소였습니다.

큰 방으로 들어서니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경찰, 협력 경찰, 그리고 더 많은 대법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이틀 전 만났던 A를 보았습니다. 그는 이전에 불법적으로 5년형을 선고받았다가 막 출소했는데 다시 잡혀 왔습니다. 연이어 B 수련생, C 수련생, D 수련생도 보았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저를 보았고 우리는 서로 눈빛만 교환할 수 있었습니다. 한 협력 경찰이 말하는 것을 들으니 이번에 이미 40명이 넘는 사람이 잡혔다고 했습니다.

틈이 날 때마다 저는 옆에 있는 경찰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많은 것을 이야기했는데 그들은 모두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어 신체검사를 마친 후 그들은 저를 구류소로 보냈습니다. 감방에 들어가자마자 몇몇 사람이 다가왔는데 그중에는 제가 아는 B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늘 A와 함께 다녔습니다. 그녀는 제가 A도 잡혀온 것을 모르는 줄 알고 제게 말했습니다. “A가 오전에 불법적으로 가택수색을 당했고 경찰이 많은 대법 진상자료와 대법 서적 등을 압수했어요. 경찰은 오랫동안 그녀를 미행했고 A의 전화도 이미 도청되고 있었다고 했어요.”

이어서 B는 저에게 몇몇 수련생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한 명은 그녀와 같은 동네 사람이고 다른 세 명은 모두 이 현의 시골에서 온 수련생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전날 잡혀 왔고 저를 포함해 모두 여섯 명의 대법제자였습니다. 저만 유일하게 시내에서 온 사람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이렇게 많은 수련생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이런 환경을 갖게 된 것이 매우 기뻤습니다.

2016년 7월 22일, 옆 감방에서 한 수련생이 건너왔습니다. 그녀 역시 이 현의 수련생이었습니다. 그녀는 옆 감방에도 4~5명의 수련생이 더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어제 수련생이 파출소에서 당신이 진상을 알리는 것을 들었는데 이야기를 참 잘하셔서 교류하고 싶어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어젯밤 들어올 때 경찰이 문을 열어줄 때 옆방 철문에서 몇몇 사람이 웃으며 친절하게 저를 바라보던 것을 기억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어떻게 교류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쪽지를 전달하는 건 어때요?”라고 말했고 저는 “종이랑 펜이 어디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좋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시골 수련생들의 진솔하고 선량하며 정진하려는 마음을 이미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함께 법을 외우고 발정념을 하며 밤에는 연공을 했습니다. 같은 방의 일반 사람들과도 잘 지냈습니다. 그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했습니다. 인과응보 이야기, 전통문화, 윤회 이야기 등을 들려주었는데 그들은 아주 좋아하며 대법제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연공할 때 그들은 자진해서 문 앞에서 망을 봐주었습니다.

그때는 사부님의 신경문 ‘논어’가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부분의 수련생이 익숙하게 외우지 못하거나 아예 외우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며 며칠 만에 익숙하게 외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전법륜(轉法輪)’과 ‘홍음’ 등도 외우고 생각나는 대로 외웠습니다. 감옥 안이었지만 법 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옆 감방의 수련생들은 때때로 “잘 지내세요?”라고 안부를 물었고 우리는 “네, 잘 지내요, 아주 잘 지내요!”라고 화답했습니다.

제가 들어간 지 일주일쯤 지난 그날 저녁 8시경, 옆 감방의 수련생이 갑자기 “잘 지내요?”라고 외쳤습니다. 우리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그들은 다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것 같았고 우리는 단번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즉시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화답했습니다. 이어서 두 감방의 수련생들은 약속이나 한 듯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한 번 외칠 때마다 더욱 높아졌습니다. 구류소의 평소 침묵과 밤하늘의 고요함을 깨뜨렸습니다.

얼마나 외쳤는지 모를 정도로 모두 멈추고 싶지 않아 했습니다. 한 수련생이 “우리 노래로 불러봐요, 노래로 불러요!”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함께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는 정법이며, 불광이 두루 비추네”를 합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노랫소리는 끊이지 않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며 구류소의 음울함을 걷어내고 중생을 일깨웠습니다. 구류소 상공과 하늘에 울려 퍼졌습니다.

구류소 안은 순식간에 들끓었고 여기저기서 “노래 잘한다, 더 크게 불러줘, 파룬따파하오! 또 불러줘!”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위해 왔네’를 불렀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박수와 환호성이 들려왔습니다. 이 광경과 분위기는 거의 한 시간 동안 계속됐습니다. 저는 눈앞의 광경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너무나 자연스럽고 우연한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우연이라 하기엔 질서 있고 평온하며 순조로웠습니다. 마치 ‘콘서트’ 같기도 하고 ‘활동’ 같기도 했습니다. 놀랍고 감동적이며 벅차올랐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마음의 소리를 마음껏 외치고 노래했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대법 사부님의 명예를 회복하라”, “신앙은 무죄이고 박해는 부당하다.” 1999년 ‘7·20’ 이후 어떤 이유로 저는 수련생들과 함께 베이징 천안문으로 가서 법을 실증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오늘 이 광경이 사부님께서 저에게 보충할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이곳은 베이징이 아니고 천안문도 아니지만 사악한 박해가 계속되는 중심지입니다. 이곳에서는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박해를 폭로하며 반(反)박해를 해야 합니다. 대법에 대한 대법제자의 굳건한 믿음과 굳건함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날 밤 저는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저의 수련을 되돌아보며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경찰에게 납치되고 가택수색을 당한 것은 저의 수련에 빈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법공부가 깊지 못했고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했으며 일을 하려는 집착이 있었습니다. A에게 제때 자료를 주기 위해 여러 차례 예외적으로 그녀와 전화 연락을 했고 안전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인식하지 못해 구세력이 빌미를 잡게 됐고 결국 박해를 받게 됐습니다. 겉으로는 A가 미행당한 것처럼 보였지만 아마도 그 배후에는 다른 원인이 있었을 것입니다. 수련에는 우연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부님께서도 박해를 이용하여 제자로 하여금 부족한 점을 찾고 집착을 버리며 제고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제도에 감사드리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깊이 느꼈습니다. “오로지 사부가 당신을 돌봐주고 당신을 보호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수련 성취할 수 있다.”(시드니법회 설법) “오직 사부만이 당신들을 수련 중에서 원만으로 나아가게 하였으며 오직 사부만이 진정으로 이 일을 한다.”(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이 말씀을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습니다. 그것은 감사의 눈물,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맺음말

벌써 8년이 흘러 그날은 역사가 됐지만 그날 밤의 ‘파룬따파하오’ 노래는 여전히 제 기억 속에 울려 퍼집니다. 그것은 제 수련 여정의 한 발걸음이었고 오늘날 비교적 성숙한 저의 밑거름이었으며, 생명이 승화하는 순간이었고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하고 제도해주신 거룩한 은혜였습니다! 수련의 마지막 길은 여전히 제 발아래에 있습니다. 아직 가지 않은 길에는 고통과 어려움, 시험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사명을 완수하며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들어주신 아름다운 고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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