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장시성 통신원) 장시성 난창시 3명의 파룬궁수련자 류융잉(劉永英, 62), 리펀위(李芬玉, 68), 천둥메이(陳冬梅, 68)가 최근 난창시 시후구 법원에 의해 불법 판결을 받았다. 류융잉은 7월 15일 3년 3개월의 불법 판결을 받고 벌금 1만 위안을 갈취당했으며, 리펀위와 천둥메이는 8월 15일 모두 3년 2개월의 불법 판결을 받고 벌금 7천 위안을 갈취당했다.
류융잉은 장시성 민정학교 고급강사다. 그녀는 연공하기 전 몸에 여러 질병을 앓고 있었으나, 1996년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심신이 건강해졌다. 특히 인생의 참된 의미와 생명이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 속에서 반본귀진(返本歸眞)하는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직장에서는 성실하게 일했고 묵묵히 임무를 다했으며, 2015년과 2017년에는 부서의 모범 직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리펀위는 1957년 4월생으로 쓰촨성 출신이며 난창현 우싱컨즈창 퇴직 직원이다. 그녀는 24세 때 난창현 ‘우싱컨즈창’의 한 농장 직원과 결혼해 화목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남편이 1996년 12월 심각한 요독증으로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어린 자녀 둘과 몇만 위안의 빚을 남겨두었다. 그때 리펀위는 세상을 떠난 남편을 지나치게 그리워하며 갑작스런 충격을 감당하지 못해 정신이 흐릿해졌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머리카락이 많이 희어졌고 원래 앓던 허리 통증, 빈혈, 어깨관절염, 다발성 감기, 자궁경부염도 더욱 심해졌다. 1997년 5월 리펀위는 다행히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고 몸과 정신 모두 완전히 새로워지는 변화를 겪으며 얼굴에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천둥메이는 1957년 10월생으로 난창시 가죽제품공장 퇴직 직원이며,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심신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1. 류융잉, 이미 7년간 억울한 옥살이 겪었으나 또다시 구금돼 누명을 쓰고 3년 넘게 부당한 판결 받아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미친 듯이 박해한 후 류융잉은 파룬궁 수련을 고집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억울한 옥살이와 고문 박해를 당했다. 2000년 초 불법 강제노동 1년을 받았고, 2005년 6월 20일 밤 칭산후공안분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 7~8명이 갑자기 집에 들이닥쳐 납치한 후 불법 강제노동 3년을 받았으며, 2018년 4월 2일 집에서 납치돼 불법 판결 2년을 받았다. 불법 구금 기간 그녀는 모독, 구타, 야만적인 강제 급식, 강제 ‘전향’, 독방 감금, 초장시간 노예 노동 등 비인간적 고문을 당했고, 2020년 4월 3일 출옥할 때는 박해로 인해 비틀거리며 걷고 몸이 마르고 야위며 치아가 대량으로 빠지고 표정이 멍해지는 등의 상태가 됐다. 또한 불법적으로 공직에서 해임돼 퇴직금을 박탈당했다.
2024년 8월 21일 오후 류융잉은 난창시 칭산후공안분국, 철도공안 등 여러 법 집행 부서 사람들이 집으로 들이닥쳐 불법 가택수색과 납치를 당했다. 그들은 동시에 수련하지 않는 그녀의 남편과 아들도 납치했다(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려보냄). 다음날 류융잉은 난창시 칭윈푸구 종합관리센터의 세뇌반으로 끌려갔다. 세뇌반에서 이틀째 되는 날 혈압을 재어보니 류융잉의 혈압이 200 이상으로 매우 높게 나왔고, 사흘째 되는 날 그녀를 바로 난창시 제2구치소로 보내 불법 구금하며 누명을 씌웠다.
2025년 6월 17일 류융잉은 난창 시후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당했는데, 류융잉의 남편은 법정에 들어가 방청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거의 1년간 불법 구금된 류융잉은 몸이 허약했고 억지로 버티며 무거운 발목 쇠사슬을 끌고 법정에 들어갔으며, 발목 쇠사슬 때문에 피고인 자리에 들어갈 수 없어서야 발목 쇠사슬을 벗는 것이 허용됐다. 재판에서 검찰측이 제시한 소위 ‘증거’는 류융잉의 차에서 압수한 138장의 진상 호신부(護身符)와 경찰이 류융잉 집에서 빼앗은 대법 서적 16권, 대법 사부님 법상 등이었다.
류융잉과 변호인 변호사는 이러한 소위 ‘증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부정했고 무죄 변호를 했다. 변호인 변호사는 자신의 의뢰인인 류융잉은 그저 파룬궁을 연마해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을 뿐 죄가 없다고 말했다. 류융잉은 제시된 소위 물증인 ‘호신부’ 카드에 대한 기억이 모호하며, 2018년 그녀가 지난번 불법 판결을 받기 전의 물건임만 기억나고 지금 카드도 흐릿하게 보이는데 이번에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는 ‘증거’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류융잉은 진술에서 칭산후공안국 경찰들이 그녀의 상황을 알고는 “파룬궁이 이렇게 좋은데 어떻게 잡혀 들어올 수 있느냐”고 말했고, 자신이 구치소에 구금됐을 때 감방 안의 다른 구금자들도 모두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그녀같이 좋은 사람이 어떻게 들어올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류융잉은 법정 법 집행 인원들에게 권고했다.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은 그저 몸을 단련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으로 죄가 없습니다. 더 이상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지 마십시오. ‘머리 삼척 위에 신령이 있고’ ‘선은 선한 보답을 받고 악은 악의 응보를 받는다’는 것을 명백히 알아야 합니다.”
2. 리펀위, 이미 4차례 불법 강제노동 당해 8년간 심신 파괴 겪어
2000년 12월 말 리펀위가 납치돼 장시 여자노동수용소에 1년간 구금됐다. 그 사악함이 날뛰는 검은 소굴에서 그녀는 1대대 1층 4호 중간에 있는 6평미터의 가장 어둡고 좁은 작은 방에 구금됐다. 방에는 3명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하루 종일 빛을 볼 수 없었으며, 먹고 마시고 대소변을 모두 안에서 해결해야 했고 냄새가 코를 찔렀으며, 심지어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2001년 3월경 사악한 대대장 왕쥔정과 악경 뤼슈잉이 그녀를 ‘시체 침대’에 수갑을 채웠고, 그녀는 3일 3박을 단식했으며 대소변을 몸에 지린 채로 있도록 강요받았다.
2002년 음력 정월 리펀위는 쓰촨성 친정에 가서 딸을 보러 갔다. 3월 21일 창산진 파출소 우두머리 장샤오보가 사람들을 데리고 촌서기 왕션칭과 부녀연합회 관련 인원과 함께 아무런 근거도 없이 밭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던 리펀위를 강제로 납치해 중장현 구치소로 보낸 후 쓰촨성 난무쓰 여자노동수용소로 보내 2년간 강제노동시켰다. 리펀위는 그곳에서도 지옥 같은 고문 고통을 경험했다. 2002년 10월경 노동수용소는 리펀위에게 강제 ‘전향’ ‘공격’을 실시했다. 중대장 장샤오팡, 왕씨 성을 가진 사람과 구씨 성을 가진 마약중독 수용자 등 5~6명이 저녁 7시부터 자정 12시까지 리펀위를 번갈아가며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다. 후에 리펀위에게 가부좌를 틀게 하고 밧줄로 단단히 묶은 다음 동시에 두 손으로 큰 대나무 빗자루를 높이 들게 했는데, 팔이 조금만 떨려도 마약중독자들이 굵은 대나무 막대기로 사정없이 구타했다. 이런 고문은 전날 자정 12시부터 다음날 오후 4시까지 16시간 동안 계속됐다.
2005년 7월 리펀위는 뜻밖에 난창현 국보 공안 인원에게 납치돼 장시성 여자노동수용소로 보내져 3년간 불법 강제노동을 받았다. 그 기간 ‘금고 감금’, ‘군사훈련식 걷기’, ‘작은 물건 구매권 박탈’, ‘가족 면회권 박탈’ 등의 박해를 겪었다. 리펀위가 ‘고무 의료용 장갑 검사’ 노예 노동을 강요당할 때 노동 환경이 열악하고(독성이 있는 ‘활석분’ 사용) 노동 시간이 너무 길어(매일 10여 시간) 피부 가려움, 기침, 코피 등의 증상이 나타나 몸이 심각하게 파괴됐다. 2006년 5월경 악경들은 리펀위를 강제 ‘전향’의 ‘공격’ 대상으로 정해 그녀를 단독 격리시키고, 노동수용소에서 가장 음험하고 악독하며 ‘천마오’라는 별명을 가진 마약중독자를 불러와 24시간 그녀를 감시하게 했다. 리펀위는 20여 일 동안 매일 새벽 늦은 시간까지 강제 ‘면담’을 당한 후 새벽 5시에는 한 층 전체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고, 거의 잠잘 시간이 없었다. 악질 경찰들은 또한 그녀의 16세 딸을 부추기고 선동해 와서 정신적 압박을 가하게 했다.
2011년 9월 25일 리펀위는 세상 사람들에게 ‘션윈’ 공연 CD를 선물한다는 이유로 납치돼 2년간 불법 강제노동을 받았고, 세 번째로 장시성 여자노동수용소에 강제로 보내졌다. 50대 중반의 그녀는 또다시 지옥 같은 고통스러운 고문을 겪었다. 2013년 9월 24일 선량한 리펀위가 장시성 여자노동수용소에서 나왔을 때는 머리가 하얗게 세었고 몸무게는 40킬로에 남지 않았다.
3. 천둥메이, 3차례 불법 강제노동 받아 생명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러
1999년 ‘7·20’ 중공의 파룬궁 박해 후 천둥메이는 파룬궁 수련을 고집해 전후로 3차례 불법 강제노동(총 5년 반)을 겪으며 모독, 구타, 노예 노동, 강제 전향 등의 박해를 받았다. 2010년 그녀가 장시성 여자노동수용소에 구금됐을 때는 심각한 폐렴으로 생명이 거의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
2004년 9월 1일 천둥메이는 신젠현 창링진 성 여자감옥 근처에서 파룬궁 진상 자료를 붙이다가 한 사복 도시관리 인원의 누명으로 신젠현 국보에 납치돼 신젠현 구치소에 25일간 불법 구금됐다. 가족이 5천 위안의 소위 ‘보석금’을 갈취당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2005년 5월 28일 천둥메이는 텅왕거 근처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릴 때 텅왕거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후에 1년 반 불법 강제노동을 받았다. 장시성 여자노동수용소에 막 보내졌을 때부터 노동수용소의 전향 ‘공격’을 당했다. 번갈아가는 자동차 바퀴식 담화, 장시간 강제 비디오 시청,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의 군사훈련(땅에 기절해 쓰러져야 중단), 독방 감금, 화장실과 작업장 청소 벌, 마약중독 감시자 인원의 꾸짖음과 구타를 당했다. 한번은 천둥메이가 식사 전 줄 서서 노래 부르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당직 경찰에게 기립 벌을 받고 형기가 3일 늘어났다.
노동수용소에서 1년 반 동안 천둥메이는 노예 생산을 강요당하며 매일 거의 10시간 넘게 강제 노동을 했다. ‘활석분’으로 고무 의료용 장갑을 검사할 때 고온으로 답답한 작업장에는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었고, 공기 중에는 숨 막히는 먼지가 가득했다. 일주일만 했는데도 온몸에 빽빽한 빨간 작은 물집이 생겨 참을 수 없이 가려웠고, 온몸이 긁혀서 전혀 잠을 잘 수 없었다. 이후 노동수용소 지도원이 천둥메이를 ‘직속대’로 조정했는데, 그 기간 가족 면회도 금지되고 작은 물건도 살 수 없었으며, 오직 노동수용소의 가장 형편없는 음식만 먹을 수 있었다.
2010년 6월 30일 오후 천둥메이가 집에서 80여 세의 이웃 할머니와 함께 파룬궁 서적을 읽고 있을 때, 난창시 칭산후구 국보의 사복 경찰 7~8명이 강제로 들어와 흉악하게 그녀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수갑을 채운 후(손목이 벗겨져 상처가 남) 가택수색을 하고 그녀를 납치했다. 7월 1일 밤 국보 경찰이 또 천둥메이의 집으로 가서 그녀 딸이 근처에서 임대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을 뒤져 컴퓨터 2대, 휴대폰 2대, mp5 1대를 가져갔으며, 그녀의 딸을 어떤 호텔로 납치해 자정 12시까지 비밀리에 강요 심문했고, 심문하던 악경은 신발을 벗으며 그녀 딸을 때리겠다고 위협했다. 칭산후 국보 경찰은 천둥메이에게 연속 24시간 고문 강요 심문을 했고, 수갑으로 그녀를 심문 의자에 채우고 잠을 자지도 음식을 먹지도 못하게 했으며, 수시로 그녀 팔에 채워진 수갑을 세게 당겨 오른손 팔이 벗겨져 피가 흘렀다(지금도 상처가 남아 있음). 국보 대대장은 신발로 천둥메이의 두 다리를 악독하게 때리며 나이가 많지 않았다면 꼭 때려죽였을 거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천둥메이는 2년간 불법 강제노동을 받아 2010년 7월 30일 오후 다시 장시성 여자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건강검진에서 가슴 엑스레이 촬영 결과 폐 부분에 짙은 그림자가 보였는데 이는 폐렴으로, 노동수용소에서 수용을 거부했다. 국보 경찰이 노동수용소 소장과 교섭해 강행으로 노동수용소에 보냈다. 10일 만에 천둥메이의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아무것도 먹거나 마실 수 없었다. 후에 몸 상태를 재검사해서야 ‘병 보석’으로 처리해 집으로 돌아갔다. 천둥메이가 나왔을 때는 완전히 변해 있었고 거의 뼈대만 남아 온 사람이 생사의 경계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간 후 천둥메이는 연공을 통해 몸이 신기하고 빠르게 회복했다.
2011년 9월 25일 오전 천둥메이가 난창현 유란(幽蘭)향 두터우(渡頭)촌에서 촌민들에게 전통문화를 알리는 ‘션윈’ CD를 배포할 때 향 파출소에 납치돼 난창현 구치소에서 3개월간 구금된 후 2년간 불법 노동교양을 받아 세 번째로 성 여자노동수용소에 강제로 보내졌다. 2012년 처음 3개월 동안 노동수용소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녀에게 파룬궁을 모독하는 비디오와 서적을 강제로 보게 했고, 노동수용소 중대장은 그녀가 보기를 거부하는 것을 보자 책을 그녀의 얼굴에 세게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 또한 마약중독자들에게 지시해 감시하게 하며 ‘보증서’를 쓰지 않으면 밥을 먹지 못하게 했다. 천둥메이는 또한 생산대대로 강제 조정돼 매일 24시간 감시원이 따라다니며 감시했다. 장기간의 과중한 노예 노동과 정신적 파괴로 천둥메이는 자주 기절했다. 한번은 온몸이 세게 바닥에 넘어져 사람이 다치고 앞니가 흔들렸다. 그때 그녀는 딱딱한 밥을 먹을 수 없었고 치료도 허용되지 않아 오직 조금의 죽으로만 생명을 유지해야 했다.
4. 리펀위, 천둥메이는 최근 몇 년간 여러 차례 불법 구금 박해 받아
2018년 4월 10일 오후 난창시 칭산후공안분국의 경찰 무리가 리펀위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당시 그녀 집에는 류하이전(劉海珍), 천둥메이, 후훠메이(胡火妹), 쉬젠페이(徐建飛) 4명의 파룬궁수련자가 그녀 집에서 법공부를 하고 있었다. 경찰은 당시 리펀위의 집을 불법 수색하는 동시에 그녀들 5명을 강제로 데려가 난창시 칭산후공안분국에 불법 구금했다. 이틀 후 리펀위, 류하이전, 천둥메이, 쉬젠페이 4명은 집으로 돌려보내졌지만 후훠메이는 난창시 제1구치소로 보내져 불법 구금되며 누명을 쓴 후 1년 반 불법 판결을 받고 벌금 5천 위안을 갈취당했다. 후훠메이는 중공의 장기 박해 속에서 2023년 8월 3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나이는 겨우 50세였다.
2020년 9월 10일 오전 리펀위가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악의적 누명을 써서 포타 파출소에 납치된 후 얼치베이루(二七北路) 구류소에 불법 구금됐다. 2021년 2월 상순 천둥메이는 괴롭힘과 불법 가택수색을 당해 집을 떠나 밖에서 지내야 했다.
2023년 2월 22일 오전 리펀위, 천둥메이가 밖에서 파룬궁 진상을 알릴 때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신고로 난창시 칭윈푸구공안분국에 납치된 후 얼치베이루 구류소에 5일간 불법 구금됐다.
2024년 4월 3일 리펀위, 천둥메이가 밖에서 진상을 알릴 때 진상을 모르는 시민의 신고로 난창시 칭산후구공안분국 국보대대에 납치돼 ‘세뇌반’(‘난창시 칭윈푸 갈등분쟁 연합조정센터’, 칭윈푸구 법원 내에 위치)으로 끌려가 강제 세뇌 박해를 받았다. 난창시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부주임 류즈빈(劉志斌)은 자기소개에서 자신의 이름이 뉴샤오창(牛小强·가명)이며 이미 퇴직했다(현재 56세, 2선으로 물러났을 가능성)고 말했다. 세뇌반에서 그는 직접 소위 ‘방교소조(幫教小組)’를 만드는 데 참여했고, 낮에는 대법을 모독하는 비디오와 성 여자감옥에서 파룬궁수련자들을 잔혹하게 박해하는 비디오를 틀었다. 그는 협박하며 위협했다. “전향하지 않으면 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하며, 뻔뻔스럽게도 파룬궁수련자 푸모모(付某某)가 쟝시성 여자감옥에서 대소변을 강제로 먹이는 고문, 공중에 매달아 수갑을 채우는 고문 등의 박해를 받아 다리도 부었고 머리카락도 하얗게 셌다고 말했다. 밤에는 가족들을 불러와 함께 지내게 하며 가족정을 이용해 두 사람의 정념을 흔들려 했다. ‘처분보류’를 처리할 때는 심지어 담보 보증으로 ‘부동산증’을 제출하도록 요구했고, 본인에게 부동산증이 없으면 반드시 친척의 부동산증을 제출해야 했다. 박해 수단이 극도로 사악했다.
2025년 3월 13일 리펀위, 천둥메이가 박해에 반대하고 거짓말을 폭로하는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진상을 모르는 일반인의 신고로 납치된 후 쟝시성 난창시 제2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 명혜망 7월 6일 소식에 따르면 천둥메이, 리펀위는 7월 9일 오전 난창시 시후구 법원의 불법 재판에 직면했다고 한다.
난창시 시후구 법원:
주소: 쟝시성 난창시 시후구 자좡제(嫁妝街) 33호, 우편번호 330009
전화: 0791-86788328, 0791-86783341
원장: 슝리핑(熊麗萍)
판사: 류위팡(劉玉芳) 0791-86783341, 0791-86783310(사무실) 핸드폰: 18070080229, 0791-86783167
류위팡의 판사 보좌관 0791-86780098(사무실)
판사: 장위쥐안(章玉娟) 핸드폰: 18070080321
난창시 시후구 검찰원 주소: 시후구 루쯔루(孺子路) 168호 우편번호: 330003
전화: 0791-86215571, 0791-86233453
검찰장: 리스펑(李世峰)
공소인: 쑹훙양(宋宏洋) 0791-86234750 보좌관: 리이하오(李逸豪)
원문발표: 2025년 9월 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9/7/499201.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9/7/4992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