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수련생을 구출하면서 자신을 수련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2023년 봄날 오후, 저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억울하게 수감된 A 수련생의 가족 리(麗)가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솔직히 마음에 부담이 됐습니다. 직장 유선전화가 도청되고 있었고 제 휴대폰과 리의 휴대폰도 감청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 개의 감청 장치 아래서 대화해 매우 압박이 심했습니다. (여기까지 쓰면서 당시 정념이 부족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이치로 압박감을 느낄 게 아니라 정념을 발해 감청 장치 뒤의 사악한 요소를 철저히 제거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리가 찾아온 것은 분명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감청 여부는 신경 쓰지 않고 정상적으로 대화했습니다.

며칠 전 A 수련생이 출소하는 감방 동료를 통해 가족에게 전할 말을 부탁했는데, 가족이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제게 물으러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듣자마자 알아차렸습니다. A는 중국에서 모든 휴대폰 통화가 감청된다는 것을 알기에, 감방 동료가 가족에게 전화해도 직접 말할 수 없고 암호로만 전달하게 한 것입니다. 그 암호의 뜻은 가족에게 저를 찾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깊이 부끄러웠습니다. A가 감옥에서 매우 열악한 상황에 처해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A가 처음 불법 판결받았을 때 우리는 1심부터 2심까지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결국 수년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A가 납치돼 수감된 후 저는 더 이상 이 일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수련생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으며 수련생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리가 암호의 의미를 모른 채 저를 찾아온 것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일이라 느껴졌고, 반드시 잘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법률 포럼을 찾아보며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확인했습니다. 동시에 몇몇 수련생들에게 사이트 내 메시지로 상황을 알리고, 되도록 많은 수련생들에게 전달해 감옥의 A를 위해 정념을 발하고, 다른 공간에서 감옥을 조종해 A를 박해하는 모든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도록 했습니다. 인터넷을 못 쓰는 수련생들에게는 발정념을 부탁하는 쪽지를 인쇄해 전달했습니다.

A의 아이가 어려 가족이 돌봐야 해서 시간을 낼 수 없었기에, 리는 여름방학에 찾아오기로 약속했습니다. 어느새 6월 중순이 됐지만 리는 여전히 오지 않았고 저는 초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 출소한 지 반년 된 C 수련생(A와 같은 감옥이지만 다른 감방)이 집에 오라고 전해왔습니다. 제가 찾아가자 C의 가족들은 매우 두려워하며, 아들이 보면 크게 화낼 테니 빨리 가라고 했습니다. 제가 방문하면 아들이 받는 압박이 크다는 것입니다. 설날 무렵 제가 선물을 사 들고 C를 찾아갔을 때는 분위기가 괜찮아서, C의 아들에게 대법이 뭐가 나쁜지 물었습니다. 아들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다른 건 제쳐두고 네 아버지 얘기만 하자. 규폐증은 오래 광산에서 일하며 과도한 분진을 들이마셔 생기는 병인데, 우리 위층 이웃도 규폐증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해골처럼 되어 피를 크게 토하다 세상을 떠났어. 네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신 건 대법 수련이 몸에 좋다는 증거야.” 아들은 묵인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이해 못하는 점들을 많이 털어놨습니다. 저도 제가 이해한 법리로 그를 설득했고, C에게도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만 하지 말고 아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라고 권했습니다.

역시나 제가 C와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그의 아들이 와서 우리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C는 A의 가족을 찾아가 돈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A가 돈이 없어 감옥 생활이 매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들이 곧바로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A 가족이 어디 사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C는 D 수련생을 찾아가면 그가 안다고 했습니다. 악당의 고압적인 박해 속에서 수련생 가족들이 받는 압박이 얼마나 큰지 잘 알기에 필요한 정보를 얻고 인사하고 나왔습니다.

예상외로 C의 아들이 함께 가겠다며 따라나섰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그는 저를 붙잡고 아버지와 다른 수련생들에 대한 불만을 거의 두 시간 가까이 털어놨습니다. 저는 성격이 급한 편인데, 대법 수련으로 많이 제거했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참고 인내하며 그를 타일렀습니다. “수련자마다 부족함은 있을 수 있지만 대법은 좋은 것이고 ‘진선인(眞·善·忍)’은 틀림없어.” 저도 명확해졌습니다. 그의 아들은 진심으로 대법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악당의 박해로 불만이 생긴 것입니다. 게다가 이번에 그의 아버지가 박해받은 표면적 원인은, 한 수련생이 안전에 주의하지 않고 위챗이 설치된 스마트폰을 갖고 그의 집을 드나들다 도청되고 실내 환경이 원격 촬영돼 박해 증거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때로 사람은 감정을 털어놓고 존중받을 수 있는 경청자가 필요합니다. 처음엔 저도 시간을 흘끔거렸지만 이내 그 급한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고 인내와 선한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제가 다음에 해야 할 일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내려놓자 일이 곧바로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C의 손자가 어디선가 나타나 아버지가 저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더니 아버지를 데리고 과일을 사러 갔습니다. 저는 그대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여기까지 쓰고 나서야 사부님께서 수련생 구출이라는 일을 통해 제 급한 마음을 버리게 하려 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D의 사이트 내 메일함에 편지를 써서 함께 A의 가족 리를 찾아가기로 약속했습니다. 그곳에 도착해 D는 아래층에 차를 세우고 리가 퇴근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가 저보고 먼저 올라가라고 해서 올라갔습니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중년 남성이었는데, 저는 인사하며 속으로 ‘리의 남동생인가?’라고 추측했지만 아니었습니다. ‘그럼… 아, 남편이구나.’ 생각이 미치자 제 안에서 원망심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파출소에 A가 파룬궁수련생이라고 악의적으로 신고해 A가 억울하게 수년의 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원망심과 A를 위한 분노가 1분 정도 용솟음쳤지만 곧 경각심을 가졌습니다. ‘이 원망심이 나를 지배하게 해선 안 된다. 정말 이 사람이 신고해서 A에게 일이 생긴 걸까? 아니다. A가 수련 중에 누락이 있었고, 구세력이 틈을 타 이 사람을 조종해 나쁜 일을 하게 만든 것이다. 만약 그때 A가 이성과 절제를 잃지 않고 그와 말다툼해 그의 악한 면을 자극하지 않았다면 이후의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고 대법제자가 구해야 할 사람이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그가 제 신분을 캐묻기에 리의 오랜 친구이고 리 언니를 만날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화 중 그는 제가 그의 가정사를 훤히 아는 것을 보고 경계심을 많이 풀었습니다. 사실 4년 전 A에게 일이 생겨 구출하기 위해 리를 알게 됐고, 그 과정에서 그녀의 가정 상황을 알게 된 것입니다. 거의 30분쯤 지나자 리의 아이가 방에서 나와 리가 전화로 아래로 내려오라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제가 내려가니 D 수련생이 리와 이야기하고 있었고, 우리는 7월 하순에 A를 면회하러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리와의 약속이 매번 지연되는 것을 고려해, 저는 두 명의 수련생을 찾아 우리 세 사람이 리와 함께 감옥에 가서 이 일을 확정 짓기를 바랐습니다. D는 프리랜서이고 E는 고정 수입이 있어 출근할 필요가 없어서, 온라인으로 함께 면회 가자고 편지를 썼습니다. 수련생 구출은 매우 중요한 일이므로 모두 당연히 잘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뜻밖에도 D가 거절했습니다. 저는 매우 불만스러웠습니다. A에게 일이 생기기 전, 모두 A의 수련 상태가 옳지 않다고 느꼈고, 이대로 계속되면 A가 구세력에게 틈을 타 박해당할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저와 Z 수련생이 마침 D의 집에서 만나 교류했고, D가 A를 찾아가 잘 교류하기를 바랐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방면의 문제를 위주로 교류해야 하는지까지 이야기했고, 당시 D도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당시 저는 A의 직장과 거주지를 몰라 찾을 수 없었는데, D는 A의 직장을 알 뿐 아니라 자주 A의 집에 갔습니다. 몇 달 후 A가 박해당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후 E로부터 A에게 일이 생기기 전에 D가 A를 찾아가 교류했지만 A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E 앞에서 D를 호되게 질책했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제가 공산당 당문화 사고가 심각하고, 사람에게 선한 마음이 부족하며, 항상 비판과 질책하는 습관이 있고,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안으로 찾으면서 동시에 선의로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만약 애초에 D가 제때 A를 찾아 교류해 수련생이 자신의 문제를 의식하고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게 했다면 이 박해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수련생이 박해받는 것은 자신의 수련에 누락이 있는 것이 주요 문제입니다. 구체적으로 A의 경우, 당시 각 자료점들이 그에게 너무 의존했고, 수련생들이 자신의 기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안으로 찾아 자신을 바로잡고 기계 고장 빈도를 줄이는 게 아니라, 조그만 문제가 생겨도 A를 찾아가 A의 법공부 시간을 모두 빼앗았습니다. 이것도 A가 박해받게 된 중요한 원인입니다. 당시 제가 D에게 왜 A를 찾아 교류하지 않았는지 물으니, D는 말해도 소용없고 A도 듣지 않는다고 느꼈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소극적인 생각도 법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너무 무감각해져 수련생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며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는데, 일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결과는 완전히 같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E가 답장으로 자신이 계속 소업 상태에 있어 한나절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A가 있는 감옥이 우리 지역에서 2~300km 떨어져 있어 왕복 500여 km이고, 차량 대여비만 천여 위안이 들며, 왕복하는 데 한나절이 걸립니다. 당시 제 마음은 ‘수련생들이 어떻게 다 이런가? 수련생을 구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하며 조급했고, 마음에 큰 좌절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 일을 잠시 내려놓고 먼저 법공부를 한 후 다시 말하기로 했습니다. 법공부를 마친 후 명혜망 당일의 교류 문장을 보았습니다. 온몸이 가벼워지고 공간장의 초조함과 원망하는 물질이 사라진 것을 느꼈습니다. 냉정하게 안으로 찾아보니 역시 제가 사려 깊지 못했습니다. D의 아이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어 D에게 경제적 압박이 매우 컸고, 만약 우리와 함께 면회를 간다면 반드시 휴대폰을 꺼야 해서 고객 유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나중에야 D 수련생이 겉보기엔 정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건강도 고비를 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그가 나중에 편지로 우리에게 발정념을 도와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즉시 D에게 편지를 써서 사과하고, 제가 고려하지 못했음을 인정했으며 안심하고 일하도록 했습니다. 동시에 E에게도 편지를 써 격려하며, 몸의 소업 상태를 너무 중하게 보지 말고, 우리가 하는 일은 바른 일이므로 반드시 사부님의 도움이 있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초보적인 공감대를 이뤄 저와 E가 리를 동반해 A를 면회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저녁에 시간을 내서 리의 집에 가서 용건을 설명했고, 리는 이미 감옥과 연락이 됐으며 다음 주에 면회 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가족이 박해당한 후 대법제자들이 제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보태서, 앞뒤로 두 번 변호사를 선임하는 데도 많은 비용을 들였는데 너무 감사하다며, 시간과 노력을 너무 많이 들여서 모두 바쁘니 이번엔 우리를 번거롭게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설사 우리가 함께 면회를 가도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고, 직계가족이 아니면 면회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를 보고 저는 가방에서 500위안을 꺼내 리에게 주었지만 리는 사양하며 받지 않았는데, 아르바이트로 2천위안 조금 넘는 월급만 받는 제 경제 상황을 그녀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받아요. 이것도 당신에게 주는 게 아니에요. 면회 가는데 다리 통행료만 해도 몇백 위안이 들고, 또 두 아이를 키워야 하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감격해 돈을 받았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D에게 편지를 써서 이 일을 말하고, 가족이 우리와의 동행을 원하지 않아 가족에게 돈을 줬다고 알렸습니다. 다시 리의 집에 갔을 때, 리는 제가 지난번에 다녀간 이틀 후 D가 왔다며, 그 역시 500위안을 주고 A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당부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제 자아가 너무 강하고,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이 제 생각대로 하기를 좋아하며, 주관적으로 다른 사람을 추측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대법제자의 선의와 인내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돌이켜보니 D도 당시 저와 마찬가지로 빚을 지고 있었고, 또 몸의 고통을 참아내야 했는데, 저는 상황 파악도 않고 먼저 그에게 불만을 가졌으니 이게 어디 진선인을 수련하는 대법제자와 같겠습니까? 사실 D는 얼마나 좋은 수련생입니까.)

집에 돌아와 E에게 편지를 써서 일이 해결됐다고 알리며 말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자아를 내려놓고 정체를 형성해 이 일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가족들이 우리의 동행을 바라지 않고 우리의 정력을 소모하지 않도록 스스로 면회를 가기로 결정한 것 같아요. 우리는 그냥 정념을 발하면 됩니다.” 그 당시 저는 하루 종일 근무하고 하루 쉬는 패턴이었고, 퇴근 시간도 비교적 늦었습니다. 어느 날 퇴근 무렵, 매일 휴대폰만 보고 말을 잘 하지 않던 동료가 갑자기 물었습니다. “자네 친구(수련생) 돌아왔어?” 리가 가끔 제 직장에 찾아왔기 때문에 그들은 A가 억울하게 판결받아 감옥에 간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론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에 우린 이런 얘기 안 하는데, 왜 갑자기 묻는 거지?’ 어쩌면 이것은 사부님께서 일깨워주신 것일 수 있으니 서둘러 리를 찾아가 상황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퇴근 후 밥도 먹지 않고 우선 버스를 타고 리네 집으로 갔습니다.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가야 했는데, 가는 길에 CCTV가 많이 있었고 아파트 입구에도 CCTV가 있어서 저는 길을 걸으며 계속 정념을 발하면서 리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알고 보니 리가 며칠 전 이미 면회를 다녀왔습니다. 리는 원래 근무 시간도 길고 차멀미까지 하는 데다 심한 독감 증세까지 겹쳐 아직도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제가 A의 상황을 물으니, 리는 머리가 멍하고 어지러워 면회 때 상황을 간간이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했지만 많은 세부 사항은 잊어버렸습니다. 시간도 늦어 인사하고 돌아가 리가 푹 쉬게 했습니다. 며칠 뒤 머리가 맑아지면 다시 와서 자세히 알아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법률 포럼을 찾아보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봤습니다. 법률 전문가들은 항소(재심)할 수 있다고 했지만, A가 억울하게 판결받은 지 이미 수년이 지났고, 우리 손에 A 수련생의 신분증이 없어 1심·2심 법원에서 판결문을 열람 발급받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리의 휴대폰으로 당시 변호사에게 연락했지만, 변호사가 이미 전화번호를 바꾸고 새로운 법무법인으로 옮겨 판결문을 제공받을 수 없어 이 일은 또 진척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A가 감옥에서 당한 구타와 박해는 반드시 폭로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뒤 퇴근 후 다시 리네 집을 찾았습니다. 이번엔 리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돼, A가 감옥에서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기억나는 세부 사항까지 모두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는 리에게 A의 가족 자격으로 관련 부서에 항소해 감옥에서 가족을 박해한 악행을 고발하자고 제안했고, 리는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리가 두 번에 걸쳐 말해 준 상황을 검토하고, 간단히 메모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녀가 이야기한 단편적인 상황을 꼼꼼히 정리한 후 타이핑해 명혜망으로 전송했습니다. 며칠 뒤 명혜망에 바로 게재됐습니다. 그 후 D가 제게 편지를 보내 제가 보도한 내용에 과장이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리가 당시 자신에게 이야기한 내용엔 그런 부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분명히 리가 두 번에 걸쳐 말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두 번째에도 리는 머리가 완전히 맑지 않다고 했지만 제게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많은 일을 더 떠올렸고, 그 부분은 D가 알지 못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엔 D가 사소한 일을 크게 만들고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에 약간 불만이 생겼습니다.(여기까지 쓰고 보니 제가 정말 너무 자아가 강했고, 과시심과 환희심이 강했으며, 다른 사람의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D가 말한 몇 가지 문제를 다시 살펴봤습니다. D 역시 이 일을 최대한 잘 처리하고, 박해 보도가 최대한 정확하게 사실을 재현해 사악함을 폭로하고 중생을 구하는 역할을 하길 바랐던 것입니다. 한 곳의 형용사가 확실히 정확하지 않았는데, 당시엔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 더 이상 일을 지체하지 않으려고 그대로 온라인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저는 즉시 명혜편집부에 편지를 보내 그 문장을 다시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고, 명혜망은 곧바로 이를 수정해 주었습니다.

저는 다시 법률 포럼의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제가 항소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는 정말 인내심을 갖고 빠르게 항소장을 정리해 주었습니다. 저는 다시 포럼을 꼼꼼히 살펴보며 항소장을 어느 부서에 보내야 하는지 학습했습니다. 마침 한 수련생이 중고 컴퓨터 사는 것을 도와달라고 해서 시장에 가서 중고 컴퓨터를 하나 샀습니다. 불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지운 뒤, 그 컴퓨터를 들고 직장에서 인터넷을 하며(그때는 이미 오전 근무로 복귀했고, 퇴근 후 인터넷을 할 수 있었습니다) 관련 직위의 부서 책임자를 검색해 하나하나 찾아내고, 이름과 부서를 메모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항소장을 인쇄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봉투도 작성했으며(리는 아마도 학교를 몇 년밖에 다니지 않아 글을 쓸 줄 몰랐고, 몇 글자만 알았습니다), 우표, 고체 풀, 빨간 인주를 준비했습니다. 시(市)에서 성(省)까지 전국에 걸쳐 총 10여 통의 항소장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리 집에 가서 그녀에게 지장을 찍게 하고, 내용을 보여주어 상황을 이해시키며, 미리 준비해 둔 열몇 장의 신분증 사본을 꺼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각 탄원서에 신분증 사본 한 장씩 넣어 봉투에 담았습니다. 우표는 이미 붙여두었고, 봉투를 풀로 붙여 봉했지만 편지가 분실되지 않도록 등기우편으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각 봉투마다 요금이 더 들지만 우체국에서 등기우편 도장을 찍어주어 반드시 수신인에게 전달되도록 했습니다.

며칠이 지나 다시 리네 집에 가서 상황을 알아봤습니다. 그녀는 그 지역 공안국장이 전화를 걸어와 항소장을 보고 싶다고 했고, 또 감옥에 주재하는 검사관도 전화를 걸어왔으며, 감옥 간부도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요구사항이 있는지 물었고 일을 크게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그 후 리는 가족 자격으로 매달 한 번 A와 전화 통화를 할 수 있게 됐고, A의 감옥 내 상황이 개선됐으며, 건강 상태도 어느 정도 회복됐습니다. 그러나 약 두세 달이 흐르는 동안 한번은 A의 몸 상태가 매우 위급해진 적이 있었습니다. 외지의 한 수련생이 A에게 정념을 발하던 중 가부좌 상태에서 유골함 위에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난 것을 보았는데, 상황이 매우 긴박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몇몇 수련생에게 내부 메일로 편지를 보내 가능한 한 많은 수련생들에게 알려 A를 위해 정념을 발하고, 다른 공간에서 A를 박해하는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제거하도록 부탁했습니다. 저의 가족 수련생도 A의 공간장에 검은 물질이 있는 것을 보았기에, 매일 밤(제가 집에 있을 때) 7시, 8시, 9시에 저와 가족 수련생이 함께 A를 위해 정념을 발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명혜망에서 읽었던 한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한 수련생이 정념을 발하다가 힘이 부족하다고 느껴 즉시 의념으로 지역 내 모든 대법제자들의 정념 신통과 하나로 연결하자 단번에 사악이 해체·소멸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계발받은 저는 한편으론 사부님께 자신의 정념을 가지(加持)해 달라고 청하고, 한편으론 의념으로 우리 지역 모든 대법제자들의 정념 신통과 하나로 연결해 다른 공간에서 A를 박해하는 모든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철저히 제거했습니다. 정념을 마친 후 가족 수련생이 검은 물질이 제거됐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제가 리를 찾아갔을 때 A와 한 번 전화 통화를 했는데 A의 목소리가 매우 쇠약하고 건강 상태가 우려스럽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A는 최근 사흘 동안 몸이 좋지 않아 작업에 나가지 못했다고 했는데, 이는 마침 외지 수련생이 보았던 상황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그 몇 개월 동안 A를 구출하는 과정을 되돌아보면,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전법륜) 같았습니다. 매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사부님의 인도하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A는 비록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사부님께서는 늘 제자 곁에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A의 항소 문제에서 판결문이 없어 아무 방도가 없을 것 같아 막막했는데, 나중엔 법률 포럼의 전문가가 항소장을 작성해 주며 하나하나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후에 감옥이 고발당하자 사악한 기세가 크게 수그러들었고, 함부로 A를 박해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질서 있는 안배였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저 역시 단련돼 일부 두려움, 안일함, 조급함을 닦아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잘하지 못한 부분이 많고, 특히 연공에서는 늘 소홀히 해왔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이 귀중한 시간 동안 반드시 자신을 돌파하고 세 가지 일을 잘 해내어 사부님의 크나큰 은혜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8/10/4970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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