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명혜망에 게재된 ‘해외 불학회에게 일깨워드린다’ 문장을 읽고, 중국 수련생으로서 지난 27년간의 반(反)박해 수련 과정을 바탕으로 중국 협조인들에게도 한마디 조언을 전하고자 한다.
지난 27년의 수련 여정을 돌이켜보면, 우리 중국 수련생들은 불학회가 없고, 표면적으로는 사부님과 천산만수(千山萬水)처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모든 진정한 수련자들은 사부님께서 항상 우리 곁에서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심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법을 스승으로 모신다”는 것과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명혜망의 태도를 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풍파 속에서도 한결같이 걸어오면서 대부분 수련생들이 점차 성숙해졌다.
중국공산당(중공)의 박해로 중국에서는 단체 법공부 환경을 잃었지만, 모두가 자발적으로 서로 도우며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신성한 사명을 함께 짊어지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일부 중국 수련생들이 자진해서 나서서 협조 업무를 맡았다. 예를 들어 법공부 모임을 조직하거나 박해받는 수련생을 구조하는 등의 일을 해왔고, 전체 수련생들의 제고를 위해 이들은 지난 몇 년간 대법을 실증하고 모두의 수준을 높이는 데 확실히 기여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마음을 지닌 이들도 있다.
시간이 흐르고 중공의 박해가 계속되면서 많은 수련생들이 세 가지 일을 형식적으로 하게 됐고,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착각하게 됐다. 진정한 수련에 힘쓰지 않아, 최근 몇 년간 앞장서서 걷던 사람들, 진상 알리기에 용감했던 사람들, 모두가 ‘수련을 잘한다’고 여겼던 사람들이 잇따라 병업(病業) 가상이 나타나거나 세상을 떠나거나, 심지어 사악에 의해 구금되고 박해받는 등 원래 나타나지 말았어야 할 상황들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우리 모두 책임이 있으며, 나 역시 반성하며 안으로 찾고 있다. 본문은 주로 일부 협조인들 사이의 문제를 제기하여 교류하고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1. 현재의 발정념 문제에 관하여
올해 초부터 우리 중국 수련생들은 명혜망 등의 웹사이트 보도를 통해, 미국에서 사부님을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해외에서도 박해의 풍랑을 일으키려는 중공의 조직적 시도를 인식하게 됐다. 이 충격적인 정사(正邪)의 대전쟁에서 중국과 서방의 대법제자들 모두 예외 없이 그 한가운데 있다. 해외 수련생들과 함께 정념을 발하는 것은 우리 중국 수련생들이 최선을 다해야 할, 피할 수 없는 책임이다.
이 기간에 현지 협조인도 구조팀을 조직해 진상을 알리다가 지역 사법당국에 불법 구금된 한 수련생을 구조하고 있었다. 그중 어떤 협조인은 자신이 관할하는 이 항목 때문에 해외를 향한 발정념을 중단시켰는데, 그 이유는 ‘사악의 뿌리가 중국에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몇 달 전 수련생들이 해외 항목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면서 지역 수련생을 위한 발정념의 힘이 약화되어 박해받던 수련생이 예상보다 더 무거운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양쪽 모두 다소 극단적인 면이 있었을 수 있다. 많은 일이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여도 구하지 않으니 늘 도(道) 중에 있도다”[홍음-도(道) 중에서]를 실현할 수 있는지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때로는 일을 하더라도 무위(無爲)의 마음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결국, 우리 각자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우주 속 창해일속(滄海一粟)의 일속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2. 당문화의 해독을 제거하고 자신을 수련생 중에 두기
중국에서 자란 수련생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중공의 당문화(黨文化: 공산당 문화)에 물들었거나 영향을 받았다. 강압적이고, 이기적이며, 투쟁적이고, 타인을 존중할 줄 모르는 등의 특성이 우리 협조인들 사이에서도 매우 두드러진다. 또한 우리 중국 수련생들, 특히 나이 많은 노수련생들이 많은데, 직장 상사에게 순종하고, 추켜세우고, 아첨하는 데 익숙하며, 독립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협조인을 지도자처럼 여기며, 법에 부합하지 않는 언행을 봐도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당문화에서 말하는 ‘남에게 미움 살까 봐 두렵다’는 것인데, 이는 무형 중에 협조인의 독단과 자만심을 조장했다. 누가 협조인에게 다른 견해를 제시하거나 그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바로 교란이고,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 것이며, 그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여겨서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냐고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이상 의견을 제시하거나 보충하는 사람이 없게 됐다.
또 어떤 협조인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하기 위해 “대도 수련은 정체(整體)”라는 말을 자주 입에 담는다. 그 말의 숨은 의미는 “나를 중심으로 하여, 모든 것은 나 협조인 말을 들어라”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보도원 일을 잘할 것인가? 우선 자신을 수련생으로 두어 수련생 위에 있다는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한다. 일을 할 때 모르는 것이 있으면 겸허하게 여러 사람들과 함께 탐구하고 토론해야 한다.” “자신을 높이려는 생각이 있기만 하면 수련생은 당신의 心性(씬씽)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므로 겸허(謙虛)해야 하며, 그래야만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성망(聲望)은 법 학습을 잘함으로써 수립되는 것이다. 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잘못이 없을 수 있겠는가?”(정진요지-어떻게 보도할 것인가)
수련생 여러분, 우리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자신을 수련 중의 일원으로 두어, 모두 법을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 협조인은 모범이 아니고 수련인 중에는 ‘지도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3. 자아를 내려놓고 타인을 위해 더 많이 생각하기
중공 악당의 사악한 통제하에서 이 몇 년 동안 자발적으로 법공부 장소를 제공하는 수련생이 많지는 않았다. 첫째는 가정의 비수련인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고, 둘째는 수련생 본인이 이러한 정념을 가져야 한다. 수련생과 전체의 안전을 위해 각 법공부 팀의 수련생들은 모두 조용히 수련생이 제공한 법공부 환경을 유지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어떤 협조인은 배치할 때 종종 가정을 법공부 장소로 제공하는 수련생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마음대로 사람을 데려가거나 배치하는데, 일부 팀은 인원도 꽤 많다. 다른 사람 집에서 법공부하는데 인사도 없이, 이렇게 가혹한 환경에서 제공자의 감당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협조 업무만을 생각하는 것은 제공자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존중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어떤 협조인은 특정 항목을 맡고 싶어 여러 사람 앞에서 자리에 없는 수련생에게 까다로운 일들을 안배한다. 겉으로는 완벽하게 배치된 것처럼 보이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협조인이 매우 책임감 있고 세심하게 배치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은 그 수련생과 상의했는가? 그 사람에게 시간이 있는가? 그 가정에 어려움은 없는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협조 능력과 존재감만 중시한다. 또 어떤 협조인은 자신을 가까이 따라다니는 수련생을 핵심적인 자기 사람으로 삼아 일을 배정하고 돌아와서 보고를 받는다.
이런 당문화식 행정 관리 방식을 우리 수련인 중에 가져오는 것은 수련생들에 대한 불존중, 불신을 드러내며, 더욱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지 없는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지 안 되는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전법륜)라는 가르침을 체현하지 못한다.
4. 수련할수록 단순해져야 반본귀진(返本歸眞)할 수 있다
일부 협조인은 자신이 관할하는 항목에만 집착한다. 어떤 협조인은 크고 눈에 띄는 일에만 집착한다. 노력은 많이 들지만, 보상이 적거나 안전 위험이 있는 일은 피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항상 이해득실을 따지며 자신의 존재감에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고, 속인 중에서 오랫동안 형성된 이기적이고 교활한 성격을 수련인 사이에 가져온다.
수련을 통해 우리는 인류의 도덕이 이렇게 아래로 미끄러지고 전통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의 근원이 ‘사(私)’임을 알고 있다. 생각이 복잡할수록, 관념이 많을수록 도에서 멀어진다. 반본귀진하기 위해서는 수련할수록 순수하고 정결해지고 생각이 단순해져야 한다!
일하는 것이 수련은 아니지만, 일거수일투족 속에는 우리가 수련해야 할 것이 있으며, 모두 우리의 수련 상태를 반영할 수 있다.
5.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며 신의와 성실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우리 중국 수련생들은 모두 20~30년을 수련한 노수련생인데, 지금도 여전히 ‘진(眞)’을 실천하지 못하는 수련생이 있으며 ‘선(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예를 들어 일부 협조인은 다른 사람과 시간, 장소를 약속하고 무슨 일을 하기로 했지만, 순간적으로 생각이 바뀌어 가지 않기로 하거나,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느껴 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있다. 반면 수련생들은 매우 성실하여 협조인이 무슨 일이 있어 약속한 시간에 오지 않았을까 걱정한다. 또는 수련생들을 문 앞에서 기다리게 하고 나중에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 것은 흔한 일이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사과 한마디도 없다. 수련생들을 모두 자신의 부하처럼 여긴다.
전통문화에서는 사람됨이 신의와 성실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으며, 장자도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 자신을 엄격하게 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대 속인 중에도 도덕성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가장 기본적인 도덕이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해왔는데도 당문화 교육의 세뇌가 우리 몸에 이렇게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가?
어떤 일들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협조인으로서의 위신을 유지하기 위해 거짓된 모습을 만들고 거짓말을 한다. 한 번 거짓말을 위해 다시 여러 번의 거짓말로 둘러대는데, 한 번 잘못하면 계속 잘못한다. 수련생 여러분, 법공부와 수련은 별개가 될 수 없으며 우리는 진정으로 수련해야 한다!
법공부와 발정념이 형식적이 되고 있다. 매번 법공부 전에 박해받는 수련생을 위한 발정념을 안배하는데, 원래 15분이었던 것이 점차 30~45분으로 늘어났다. 겉으로는 매우 효과적으로 보이지만, 손바닥이 처지지 않거나 졸지 않고 넘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이러한 사람들은 여러 사람을 이끌고,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며, 또 여러 사람을 교란하고 있다.
본문은 누구를 평가하거나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들은 것과 본 현상을 경고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이 스쳐 지나가는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모두 법을 크게 여기고, 수련인으로서 자율적으로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고, 서로 비교하며 수련하기 바란다.
본문의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 있다면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거나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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