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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길 (4)

글/ 중국 대법제자 리리(李莉), 유편(遺篇)

[밍후이왕] (전편에 이어)

법을 얻어 착실히 수련

내가 인생의 갈림길에서 헤매며 갈 곳을 모르며 심신이 무너져가는 1992년 여름, 교원연구실의 동료가 나의 집에 찾아왔다. 그녀는 기쁜 심정으로 말했다. “지금 기공 학습반에 참가해 새로 파룬궁(法輪功)이라는 기공을 배우고 있어요, 꽤 괜찮은 거 같아요.” 나는 파룬궁이라는 세 글자를 듣자마자 침대에서 뛰어내리며 말했다. “가르쳐주세요. 지금요.”

그녀는 나에게 포룬(抱輪) 동작을 가르쳐주고 말했다. “조급해 마세요,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해 배울 수 있어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평소 관계가 매우 좋아 나는 그녀를 믿었다. 며칠 후 나는 아들과 함께 사부님께서 지린(吉林)성 위원회 강당에서 개최하신 대공(帶功) 보고회에 참가했다. 이는 내가 처음으로 사부님을 뵙게 된 날로 그날 사부님께서는 흰색 바탕에 줄이 있는 셔츠를 입으셨다. 키가 매우 컸고 이분은 정말로 바르며 정직하고 올곧아 그 누구와도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 아들은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부님 신체에서 금빛이 발산되는 것을 발견했다. 아들도 보았다. 나는 속으로 ‘정말로 보통이 아니시구나, 어찌하여 이렇게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대공 보고회가 끝나자 나는 사부님을 뵈려고 즉시 밖으로 달려나갔다. 사부님께서는 파란색 큰 트럭에 오르셔서 화물을 싣는 적재함에 앉으셨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매우 즐거워하셨고 편안해 보였다. 나는 사부님을 따라가고 싶었다.

여름방학이라 남편이 우한(武漢)대학에서 돌아와 그에게 말했다. “며칠 후 기공 학습반에 참가하려는데 파룬궁이라고 합니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뜻밖에 남편이 시원스럽게 “참가해요. 내가 날마다 자전거로 데려다줄게요.”라고 대답해 나는 매우 즐거웠다.

1992년 9월 7일, 이날은 나의 인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나는 정식으로 사부님의 10일 설법반에 참가했다.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은 내가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는 내용이었고 너무 설레고 격동됐다. 매일 집에 돌아와서는 기억나는 내용을 남편에게 들려줬다. (지금 생각하면 옳지 않으며, 사부님의 법을 단장취의 해서는 안 된다) 설법을 듣는 나날에 날마다 사부님을 뵙는 기회도 많았다. 중간에 휴식 시간이나 밤에 설법이 끝나면 나는 방법을 대 사부님의 주위를 맴돌았다. 사부님을 더 뵙고 싶었을 뿐으로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으며 사부님께서 어디로 가시면 따라다녔다. 어느 날 사부님 설법이 끝난 후 나는 마지막 남은 몇 명과 함께 사부님을 따라 강당에서 나왔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명의 수련생과 앞에서 걸으셨고 나는 혼자서 뒤에서 따라갔다. 걷다가 나도 모르게 사부님의 발자국을 밟으며 걸었고 생각을 거치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사부님의 발자국을 따라서 걸어야지.” 사부님께서 내 말을 들으시고 뒤돌아 나를 보고 웃으셨다.

나는 집에 돌아와 가부좌했다. 가부좌를 틀어본 적이 없어 다리가 고사포처럼 들렸고 몇 분도 안 돼 다리가 매우 아팠고 따라서 배도 아팠다. 나는 즉시 다리를 내리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며칠을 계속 이러했으며 10분도 견지하지 못했다. 어느 한번 가부좌를 틀었는데 역시 다리가 아프기 시작해 내려놓으려고 할 때 사부님께서 나의 우측에 나타나셨다. 양복을 입으셨고 낮에 뵀던 똑같은 모습이었다. 사부님께서 손가락으로 다리를 가리키며 “내려놓지 마세요!”라고 하셨다. 그날부터 나는 가부좌를 하고 아플 때면 될수록 참아내야 하는 것을 알았다.

제3기 학습반을 개최할 때 파룬궁에 관련된 책이 아직 출판되지 않았고 단지 간단하게 적힌 얇은 노란색 갈피의 책이 있었다. 학습반이 끝난 후 나는 혼자서 이 책을 보기 시작했다. 펼친 첫 장은 사부님의 흑백 사진이었다. 나는 자세히 사부님을 보았는데 매우 친절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나의 눈이 조여들기 시작했고 안으로 뚫고 들어갔다. 눈은 초점을 조절하여 맞추듯이 변했으며 조절이 끝난 후 사부님의 사진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잠깐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선명하고 진실했다. 20여 세의 젊은 문인의 중국인 모습이었다가 또 전형적인 서양인 모습으로 깊은 눈동자에 높은 콧대, 두 볼이 패였고 뾰족한 턱으로 영국인 모습인지 미국인 모습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또 다른 모습도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게 된 나는 조금 두려웠고 어찌 된 영문인지 알지 못해 바로 책을 내려놓았다.

이튿날 다시 책을 들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제 본 것이 진실인가? 만약 오늘 다시 보게 되고 어제와 같은 모습이라면 그건 진실일 거야.’ 나는 단정하게 의자에 앉아 사부님의 사진을 바르게 책상에 세워놓고 바라보았다. 하나하나의 모습이 어제와 똑같았다. 그제야 나는 진실로 받아들였다. 나는 나의 전신사진을 찾아 바라보았는데 역시 여러 모습으로 변했다. 나는 원래 네 번 여자의 모습으로 태어났고 바로 전생에 남자였다. 네 번의 여자 모습은 매우 예뻤다! 지금의 자신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형상은 전보다 너무 큰 차이가 나고 못생겼구나. 어찌하여 나이가 들수록 추하단 말인가?’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보게 된 것을 진실로 받아들였고 또 일부 사부님 전생의 정황도 알게 됐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어째서 외국인으로 태어나셨는지, 어째서 나에게 이런 형상을 보여주시는지 나는 알지 못했고 그때는 좋은 느낌만 들어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보았다면 본 것으로 그러려니 여겼으며 이 일도 단지 몇 명의 수련생과 다른 일로 교류하다 무심결에 언급했었다.

나는 자신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마음은 상쾌하게 몸은 이제까지 느껴본 적 없는 홀가분한 상태로 됐다. 하루는 점심에 낮잠에서 깨어나 눈을 떠보니 좌측에 파란색 갈피의 책이 있어서 책 가운데를 열었다. 그랬더니 책 옆에 수정으로 된 매우 아름다운 신발이 나타났다. 투명했고 영롱한 빛을 뿜었다. 이 신발이 좌측 앞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아름답고 예쁘다는 느낌을 받으며 이 책은 어떤 책인지 궁금해졌다. 그때는 몰랐으나 나중에야 이 책이 ‘중국 파룬궁’과 ‘중국 파룬궁(수정본)’ 임을 알았다. 남편이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아들은 사부님의 대공 보고회에 참가하면서 천목이 열려 흰색 벽에서 각종 광경을 볼 수 있어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아들이 본 것에 호기심을 가져 매일 집 벽의 광경을 보라고 했다. 그날 아들이 말해줬다. “오늘은 스님이 보였는데 연로한 스님이었어요. 대머리에 점이 9개 있었어요.” 또 다른 날에는 “오늘은 어린 여자애를 보았는데 손에 생화를 쥐고 있었고 잠시 후에 다시 보니 울고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아들이 본 것에는 각별한 흥미를 느껴 매일 보라고 했는데 차차 추구하는 마음이 형성됐다. 남편이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아들에게 자주 보라고 시키는 것을 보고 크게 화를 냈다. “당신이 매일같이 애한테 보라고 하는데 바르지 않아요.” 그의 화내는 모습에서 나는 청성해졌다.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신 것이나 그때는 알지 못했으며 더는 아들에게 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들을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연구실의 그 동료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사부님댁에 갑시다.” 나는 듣고 기쁜 심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그날도 아홉 살 된 루루(陸路, 아들)를 데리고 갔다. 도착하니 사부님께서 몇 명의 수련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방이 너무 작아 우리는 바로 밖으로 나와 사부님을 기다렸다. 이는 처음으로 사부님댁에 찾아간 것으로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앞선다. 사악은 사부님께서 호화로운 주택에 거주한다고 공격했는데 나는 증인으로 나설 수 있다. 그것은 순전히 날조다. 사부님댁은 낡아서 볼품없는, 창춘에서 매우 낡은 층집으로 난방 장치도 없었다. 사부님댁은 4층이었고 집에 들어서면 좁은 통로가 있고 우측에는 아주 작은 주방이며 끝으로 들어가면 작은 방이 있었다. 바깥쪽의 방은 조금 크나 안쪽의 방은 실내장식도 하지 않은 작은 방으로, 가구 몇 개만 있어 매우 간소했다. 벽에는 사부님께서 크레용으로 직접 그린 몇 장의 불가와 도가의 대각자가 걸려있었는데 매우 눈에 띄었다.

사부님께서 그린 그림이 유난히 좋았다. 나중에 나는 왕 씨, 이 씨 수련생과 함께 사모님 직장에 갔었는데 그때 사모님께서 우리에게 사부님께서 그린 그림을 찍은 사진을 선물했다. 그중 한 세트는 내가 보존하고 있다. 사부님댁의 벽에는 또 한 자루의 검이 걸려있었다. 수련생들이 다 돌아간 후 우리는 다른 일이 없었으나 단지 사부님을 뵙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부님께서 나오셔서 배웅해주셨는데 문 어귀에 이르러 동료가 나와 내 아들을 사부님께 소개해드렸다. 사부님께서는 우선 위에서 아래로 나를 보시고 “매우 좋네요.” 그리고 아들을 위아래로 보시고 “매우 좋아요.”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나는 하나의 문제가 생각나 사부님께 질문했다. “사부님, 저는 어째서 물건을 보면 여러 개인가요? 그것이 왜 모두 함께 있나요?” 사부님께서는 조용히 “바로 그런 거죠!”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사부님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정상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공간의 본래 모습이 나에게 반영될 때 일부는 이러했다.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누구나 이런 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아무 말이 없으셨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이런 상태였고 어떤 물건을 보아도 모두 여러 개로 보였다. 그것을 나눌 수도 없었고 셀 수도 없었다. 마치 같은 공간과 같은 곳에 함께 섞여 있는 것 같았으나 실제로 또 전혀 같지 않은 공간에 있었다. 그 때문에 나중에 사부님께서 공간에 대해 설법하실 때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수련 전에는 눈으로 책을 볼 때 자주 피곤을 느꼈고 늘 글의 행을 잘못 보았고 물건을 보면 흐리멍덩해 실제로 느껴지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면 늘 사람과 부딪쳐 그 후에는 탈 수 없었다. 그렇지만 시력은 특별히 좋았다. 이런 선천적인 상태에 대해 전에는 개의치 않아 사람들이 모두 이런 줄로 알았다. 사부님 학습반에 참가해서야 명백해졌다.

제3기 학습반이 끝나고 사부님께서는 베이징으로 설법하러 가셨다. 나는 루루를 데리고 동료와 다른 몇 명의 수련생과 함께 기차역으로 사부님을 배웅하러 갔다. 열차 앞에서 우리는 사부님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에는 사부님, 사부님의 따님, 그 동료와 그의 작은 아들, 그리고 나와 내 아들 루루가 있다. 사부님께서 열차에 오르셨고 출발하기 전 객실에서 밖의 수련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사부님께서 명함 몇 장을 꺼내 몇 명의 수련생에게 주었다. 사부님께서 아직 나에게 건네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서 주시면 받아야지, 주시지 않는다면 요구할 수 없다며 그곳에 서 있었다. 이때 사부님께서 웃으시며 명함 한 장을 나에게 주셨다. 나는 이내 받았다. 열차가 천천히 움직였고 우리는 열차가 멀어져가는 것을 보고 그곳을 떠났다.

(계속)

 

원문발표: 2021년 3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29/4216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