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수련하면서 인식이 끊임없이 승화하다

글/ 중국 수련생

[밍후이왕] 끊임없이 법 공부하고 수련하면서 씬씽(心性)이 줄곧 제고되고 인식도 승화된다. 그 속의 현묘함은 정말로 착실한 수련에서만 확실히 느낄 수 있고 언어로는 그중 한두 가지만 말할 수 있다. 아래에 자신이 수련 후 체득한 것을 글로 적어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1. 속인과 수련인의 구별

수련인은 사부님께서 책임지신다

전에 수련생이 교류할 때 말한 적이 있다. 수련생이 한 어린이 수련생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속인이고 어떻게 해야 수련인이지요?” 어린이 수련생은 말했다. “속인은 신이 책임지지 않고, 수련인은 신이 책임져요.” 그렇다. 많은 어린이 수련생은 확실하게 보았다. 수련생마다 사부님의 법신이 보호해 주신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매 수련생의 몸 뒤에는 모두 나의 법신(法身)이 있으며 또 하나만이 아니므로 나의 법신이 이런 일들을 할 것이다.”[1]

수련인은 모순에 부딪히면 자신을 찾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2] 속인은 모순이 생기면 보통 밖으로 보며 상대방을 질책하고(특별히 수양이 좋은 속인은 상대방을 너그럽게 대하고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하지만 속으로 자기는 그와 견식을 같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수련인은 어떤 모순에 부딪히든 심지어 상대방이 자신을 억울하게 대하고 상대방이 분명히 잘못해도 안으로 자신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법에서 수련인에 대해 요구한 것이다. 왜냐하면 수련인의 길은 사부님께서 배치하셨기 때문이다. 모순이 생기면 자신이 제거해야 할 사람마음이 있는 것이다. 한 차례 씬씽을 제고할 기회다. 그러므로 일에 부딪히면 자신을 보는 것이 수련인이 속인과 다른 점이다. 그러므로 수련인이 모순에 부딪힐 때 씬씽을 지키지 못하고 노여워하거나 화를 내면 다른 수련생은 수련인 같지 않다고 말한다.

수련인은 명(名), 이(利), 정(情)을 담담히 봐야 한다

명과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속인 생활의 목표인데, 걱정되고 깊이 정에 빠져 스스로 헤여나오지 못한다. 명, 이, 정, 원한(名利情仇)을 추구하면 백 년 후 수포로 돌아간다. 수련인은 법리상에서 알고 있다. 사람의 일생은 업력윤보이다. 명, 이, 정, 원한은 모두 허황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수련하고 있고 미혹 속에 있고 속인의 염색항아리에 있기에 아직 명, 이, 정에 집착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법 공부를 하면서 점차 담담하게 보게 된다.

수련인은 생명의 본질이 이미 바뀌었다

대법 수련은 성명쌍수(性命雙修) 공법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명쌍수 공법, 그것의 에너지는 신체의 모든 세포 중에 저장된다.”[1] “당신 신체의 모든 세포는 모두 이런 고에너지물질로 대체된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당신의 신체는 아직도 오행으로 구성된 것인가? 아직도 우리 이 공간의 물질인가? 그것은 이미 다른 공간에서 채집한 고에너지물질로 구성된 것이다.”[1] “속인은 외관상 당신의 변화를 보아내지 못하는데, 그의 분자세포는 여전히 원래 그런 구조와 배열순서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의 구조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의 속 에너지가 개변(改變)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때부터 자연 노쇠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세포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청춘이 오래 머무르게 된다. 수련과정 중에 사람은 젊어 보일 것이고, 최후에는 거기에 고정된다.”[1]

법에서 알게 됐는데 수많은 대법 수련인의 몸에 일어난 변화에서도 실증할 수 있다. 수련인의 매 세포는 모두 다른 공간에서 채집한 고에너지 물질로 구성됐다. 그러므로 대다수 수련인은 얼굴이 갈수록 젊어진다. 속인은 여전히 생로병사의 규칙에 따라 사람이 젊던 데서 늙어간다. 서로 다른 나이이면 얼굴도 서로 다른 변화가 있다.

대법 수련인과 속인은 생명의 귀착점이 다르다

속인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다투다가 백 년 후 어떤 업력을 지었으면 왠선(元神)에 따라 육도윤회하고 윤회 중에 자신이 지은 업을 갚는다. 대법 수련인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수련의 길에서 고생하고 소업하는 과정에 덕을 쌓고 공이 자라며 성명쌍수(性命雙修)하고 부동한 층차에서 원만하며 윤회에서 벗어나고 삼계에서 벗어난다.

2. 진짜 나(眞我)와 가짜 나(假我)를 분간

자기의 수련에서, 수련생과 접촉하거나 속인과 지낼 때 우리는 종종 자기의 표현, 수련생의 표현, 속인의 표현이 확실하고 진실한 자신, 진실한 수련생과 속인의 본래 면목이라고 간주한다. 사실 선천적인 나(진아)는 진선인에 동화됐고 선한 것이고 위타(爲他)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최초 생명은 우주 중에서 온 것이다. 우주공간은 본래 선량한 것이고, 真(쩐)ㆍ善(싼)ㆍ忍(런),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사람이 태어나서는 우주와 동성(同性)이었다. 그러나 생명체가 많이 생겨나자 일종의 군체(群體)적 사회관계가 발생했다. 그중에 일부 사람들은 아마 사심(私心)이 증가됨으로써 그들의 층차가 서서히 낮아져 이 한 층차 중에 있을 수 없게 되었으며, 그들은 곧 아래로 떨어져야만 했다. 그러나 다른 한 층차 중에서 또 그다지 좋지 못하게 변해 그들은 또 있지 못하게 되었고, 계속 아래로 떨어져 최후에는 인류 이 한 층차 중까지 떨어져 내려왔다.”[1]

사부님의 법에 대조해 나는 깨달았다. 이기적인 마음이 있어서 사람이 층층이 아래로 떨어졌고 층층이 떨어지면서 선천적인 생명은 진선인에서 벗어난 사상과 관념에 오염됐고 거의 선천적 생명과 일체가 됐다. 하지만 모든 생명은 살아 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러나 이렇게 저급적인 인체는 아무런 능력도 없으며, 당신의 사상 경지가 어떤 것에 부합되면, 그것이 곧 당신을 지배한다. 그럼 다시 말해서, 부동한 층차상의 생명은 당신이 무엇을 갖고자 하거나 무엇에 집착하는 것을 발견할 때면, 마침 그것에 부합되기에, 그것이 바로 작용을 일으키며, 심지어 당신을 주도한다. 사람이 이지적이지 못하고 화를 분출할 때면, 부면적인 요소가 작용을 일으킨다. 무엇이든 모두 생명이며, 그것이 바로 악이고, 그것이 바로 욕망이며, 그것이 바로 원망이고, 그것이 바로 부동한 것으로 그것은 자연스럽게 작용을 일으킨다.”[3]

진짜 나와 가짜 나를 분간할 때,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하든 혹은 수련생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하건 속인이 무슨 말을 하건 무엇을 하건, 악한 것이면 진선인에서 빗나갔기에 이는 선천적인 자신, 수련생, 속인의 본래 면목이 아니고 기타 생명에 통제된 것이다. 자신에 대해 우리는 스스로 노력해 법에서 바로 잡고 악한 염두를 제거하고 선한 어투와 선한 행동으로 모든 것을 대하고 수련생의 선하지 않은 표현에서 먼저 안으로 자신을 찾는다. 수련인의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배치해 주셨다. 그중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집착심이 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 수련생 혹은 속인의 표현을 통해 당신이 안으로 찾아 층차를 제고하게 하시고 동시에 수련생을 이해하고 선의적으로 그에게 알려준다. 자신을 닦는 동시에 법에 부합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수련생을 질책, 원망하지 않는다. 속인에 대해 연민이 생기고 그의 선념을 불러일으키며 원한으로 원한을 갚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다.

3. 수련인의 길을 누가 배치했는지 분명해야 한다. 자기? 수련생? 가족? 속인? 아니면 사부님이신가?

우리는 자주 이런 경향이 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어떠어떠하다. 머리를 쥐어짜며 자기 생활이나 수련 방면의 일을 배치한다. 주도면밀하게 잘 배치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하는 수 없다는 느낌도 있는데, 가족과 기타 속인의 압력하에 그들의 말에 따라 한다. 때로는 수련생에게 어떤 번거로움이 있으면 친절하게 알려주거나 수련생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심지어 수련생을 위해 안타까워하기까지 한다. 수련인의 길은 도대체 누가 배치한 것인가?

법리에서 수련인의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질서정연하게 배치하신 것임을 안다면 자신이 만난 난과 번거로움에 대해 걱정하고 조급해하지 않고 이것은 모두 좋은 일이며 사부님께서 나를 제고하기 위해 배치하신 것이고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를 것이다. 수련인은 수련인의 표준, 법이 있다. 법에 대조해 안으로 찾고 법의 요구에 따라 하면 된다. 수련생마다 모두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가운데 있기에 우리는 수련생이 법에 있지 않은 상태에 대해 조급해할 필요가 없고 급하게 그에게 지적해 주고 그를 도와줄 필요도 없다. 한 수련생이 말한 것처럼 급히 남에게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는 것은 랜턴으로 남을 비추며 자신을 닦지 않는 것과 같다. 수련생의 부족한 점과 그가 법에 부합되지 않은 상태는 사부님께서 나에 대해 점화해 주시는 것이고 사부님께서 나에게 주신 거울이며 나의 집착심을 비춰주신 것이다. 나를 깨닫게 하고 나를 닦게 하기 위한 것이다. 사부님의 질서정연한 배치로서 나를 제고하게 한다. 누가 어떤 집착심이 있는지는 사부님께서 모두 똑똑히 알고 계신다. 수련생이 만난 번거로움에 대해 조급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수련생이 깨닫고 제고해 올라가게 한 것으로 수련생 스스로 깨달아야 하고 수련생의 제고가 가장 중요하다. 시시각각 사부님께서 보살펴주고 계신다. 난에 처한 수련생에 가장 좋은 도움은 함께 법 공부를 하고 수련생이 바른 장에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수련생은 법에서 깨닫고 사부님께서 수련생을 점화해 주신다. 사악한 생명이 수련생을 교란하면 예를 들면 수련생이 법 공부를 할 때 졸리게 하거나 수련생이 불안할 때 우리는 그를 도와 발정념을 해서 수련생을 교란하는 일체 사악한 생명을 청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整體)이기 때문이다.

4. 시시각각 수련 속에 있고 일마다 자기가 제고할 요소가 있다

매 시각 우리가 수련할 요소가 있다

아침 연공과 발정념 시간에 깊이 잠들었을 때 제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가? 이것은 자신의 안일심을 제거할 때다. 밥을 먹을 때 앞에 맛있는 음식이 한 상 차려졌는데, 이건 좋아하고 저건 별로라 하면서 입맛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하려 했는가? 자신은 수련인이고 배만 부르면 된다고 생각했는가? 수련인의 가족이 무례하게 하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할 때 그들이 내 수련을 돕는다고 생각했는가? 사부님께서 나에게 집착심을 찾고 심성 제고하게 배치해 주신 것이다. 그들은 법과 인연이 있고 사부님께서 나를 잘 닦고 그들을 구도하게 베치하신 것이다. 노년의 가족 수련생이나 다른 수련생을 보고 당신이 그들은 연세가 많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노년 수련생을 늙었다고 본 것이고 수련인으로 본 것이 아니다. 당신이 비좁은 버스에 탔을 때 자신은 수련인이고 중생구도의 사명이 있다고 생각했는가? 인연이 있는 미혹 속의 한 차 가득한 사람에게 그들이 대법 진상을 아는 것을 방해하고 생명 구도를 방애하는 사악한 모든 생명 요소를 청리하는 강대한 발정념을 했는가? 세 가지 일을 하거나 발정념을 할 때 주이스(主意識)가 명석하게 신통으로 악을 제거했는가? 법 공부가 수만 세고 진도만 나갔는가, 법에 용해돼 법의 박대정심한 내포에 깊게 매료됐는가? 연공할 때 ‘선선허이(身神合一)’하고 사부님의 구령에 따라 연공했는가? 아니면 몸은 움직이고 사상은 딴 데로 갔는가?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기점이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열심히 하는가 아니면 자신이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위덕을 쌓기 위해 하는가? 매 시각 우리가 수련할 요소가 있다.

일마다 자신의 제고를 위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기왕 수련인 이상 우리의 수련 이 길에는 우연한 일이 없다.”[4] 사부님께서 우리가 잘 수련하게 배치하시고 제고하게 하셨다.

우리가 체면에 집착하고, 명에 집착하면 우리는 대중 앞에서 치욕을 당하거나 자신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수련생과 속인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 이익에 집착하면 우리를 속이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혹은 이익에서 손실을 보는 일이 생긴다. 이때 우리가 안으로 찾아 명을 구하는 마음과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 우리가 육친정에 집착할 때 육친은 일마다 순조롭지 않다. 이때, 사악한 생명이 틈을 타게 될 때 역시 사부님께서 장계취계(將計就計)하시어 우리에게 빨리 마음을 바로잡게 하고 층차를 제고하게 하신다. 질투심이 있으면 대가를 치른 것에 대해 배은망덕한 일이 발생하고 혹은 상대방의 명확한 질투심이 우리 눈에 보이게 한다. 우리가 어떤 마음이 있으면 수련에서 그에 상응하는 일이 나타난다. 여기에 구세력의 교란이 있고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보살펴 배치하시며 장계취계가 있는데 우리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법에 따라 대조하고 제때 안으로 찾으면 제고하는 좋은 기회이고 좋은 일이다.

이상은 개인의 씬씽이 처한 층차에서 몇 가지 체득한 것이니 부족한 점은 수련생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뉴질랜드법회 설법’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4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www.minghui.org/mh/articles/2021/4/27/423737.html